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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하 Nov 05. 2023

#25. 엄마의 불안은 아이의 사랑으로 지워진다

싱가포르 한 달 살기

2023년 1월 29일 일요일
싱가포르 한 달 살기 23일차 


아이와 함께 오랫동안 여행을 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상황이 발생하거나 예상치 못한 경우가 생기더라도

당황하지 않고 대처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마음이 저 밑변에 깔려있어야 한다.

나보다 작고 어린아이를 안전하게 보호하고 끝까지 책임져야 하는 건 당연한 것이고,

어떠한 일이 생기더라도 아이 옆에서 어른의 불안함을 드러내지 않는

강인한 보호자의 모습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열이 내린 이후 설사가 시작된 아들은 집에서 챙겨 온 비상약으로도 나아지지가 않아

결국 오늘 다시 병원에 다녀왔다 

엊그제 한 번 가봤다고 처음 갔을 때처럼 낯설지는 않아서

자연스럽게 접수하고 진료 순서를 기다렸다. 

다른 병원은 가보지 않아서 비교가 어렵지만 시설로만 봤을 땐 깔끔하고 의료진들도 친절한 편인 것 같다. 

고열 때문에 한 번 왔던 병원이라 다른 병원으로 가기도 애매하고

진료 기록이 있으니 증상을 살펴보는 거에도 한층 수월할 거라고 생각도 들었다. 

지난번도 평일 오전 응급 시간대에 진료를 받아서 당직 의사였는데

오늘도 일요일 휴일이라 오늘 당번인 당직 선생님으로 그제와는 다른 의사분이셨다. 



두 번째 응급실 방문


간단하게 상태 확인하고 (배가 아픈지 손으로 누르면서 물어보고, 토는 하는지, 먹자마자 화장실을 가는지 등등)

정확한 원인 파악을 위해 변 검사가 필요할 것 같다고 하셨는데

우리는 여행객이고 일주일 후에 한국으로 돌아갈 거라고 하니

그럼, 시일이 걸리는 변 검사 대신 경구약을 처방해 주었다. 

약은 총 4가지. 유산균, 항생제, 설사약 두 종류(하나는 증상이 심할 때 추가로 먹는 거).

종류도 많고 양도 많고... 이걸 다 어떻게 먹이나 싶을 정도로 많았다. (약만 먹어도 배부를 듯...)

약을 받아 들고 계산을 하는데 22만 원의 병원비가 나왔다. 

휴일 응급에 외국인이다 보니, 그리고 싱가포르는 병원비가 비싸다는 이야기를 익히 들었던 터라 크게 놀라지는 않았다. (병원비 뿐만 아니라 싱가포르는 전체적으로 물가가 비싸다.)

엊그제 고열로 병원에 왔을 때는 15만 원이었는데, 약 값의 차이인지 진료 요일의 차이 때문인지 병원비 차액의 이유는 살짝 궁금하긴 했다. 


설사 때문에 컨디션이 불편했던 아들은 그래도 의사 선생님한테 진료를 받아서인지 한결 마음이 편해 보였지만 숙소로 돌아오는 택시에서 기사 아저씨의 끊이지 않던 말장난에는 무척 피곤해하였다... ㅋ




그랩으로 부른 택시를 기다리며.. 하늘이 다시 우중충해지는구나.. 또 비가 오려나봐..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싱가포르에서는 아이들이 택시를 탈 때에도 카시트가 필요할 수 있다는 말은 들어서 인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난 3주 동안 아이와 함께 택시를 많이 타고 다녔었는데

단 한 번도 키를 물어보거나 카시트 착용 요구를 한 택시 기사는 없었다. 


그런데 오늘 숙소로 돌아올 때 탄 택시 기사는 아들의 키를 물어보더니

유아 카시트를 해야 한다면 2싱달러가 추가된다고 하였다. 

안 그래도 택시 탈 때마다 성인 안전벨트가 아들 목에 닿는 게 은근히 신경 쓰였는데

택시 기사가 먼저 말을 꺼내주니 내심 안심이 되었다. 


택시 기사는 내가 외국인인 걸 눈치채고 (아들과 한국말로 대화를 하니)

자기가 운전하는 택시에서는 절대 카시트 없이 아이들을 태우지 않는다며

안전에 있어서 만큼은 타협은 없다며 나름의 자부심과 안전에 대한 연설(?)을 하기 시작하셨다..ㅎㅎ;;

나 또한 아이를 키우는 엄마 입장에서 안전이 1순위이기에 택시 기사의 이야기가 아주 당연한 이야기로 들렸다. 


뒷좌석에 휴대용 카시트를 장착해 주시고 아들이 편하게 앉을 수 있도록 자세를 잡아 준 후

카시트가 필요 없게 빨리 키 크라며 하이파이브도 해주었다. 

그러면서 한국에서 온 손님이니 숙소로 돌아갈 때까지 한국 노래를 틀어주겠다며 아기 상어를 틀어주셨다.

아... 저희 아들은 그 노래는 이미 지났어요..라고 차마 말은 하지 못하고,

아들과 나는 눈을 마주치며 웃기만 했다. 

아기 상어에 큰 반응이 없자 기사님은 BTS 노래로 바꾸어 틀면서

본인 아내가 직접 종이로 접은 거라며 새끼손톱만 한 크기의 종이 상어를 한 뭉텅이 집으시더니

우리에게 손을 펴서 받으라며 전달해 주었다. 

중간중간 신호 대기로 차가 멈춰 기다리는 동안엔 직접 종이 상어 접는 방법도 알려주시고, 

숙소 가서 접어보라며 종이도 왕창 주셨다..;;;



종이로 만든 아기 상어 ㅎㅎㅎ



숙소에 도착해서 일단 점심밥을 foodfanda로 시키고 (밥을 할 에너지마저 없어진 나...)

아들 상태를 계속 체크했다. 

점심은 소고기국을 시켰는데 반도 못 먹고 그만 먹고 싶다는 아들.

오늘 아침밥도 몇 숟갈 먹지 못했기에 걱정이 되었다. 


그래도 약은 먹어야 하니 처방받아 온 약들을 챙겨보았다. 

유산균은 아침에 한 개씩 씹어 먹는 거라 했으니 내일 아침에 먹으면 되고, 

항생제는 10ml씩 하루 세 번 먹고

diarrhea는 설사 약인데 물에 타서 하루 두 번,

다른 설사약은 증상이 심할 때 하루 세 번 먹으면 된다고 했다. 


그래서 처음 먹는 거니 항생제와 하루 두 번 먹어야 하는 설사약을 먼저 먹이면서 시작하기로 했다. 

항생제는 우리나라 처방약과 좀 다르게 가루채로 주고

먹기 직전에 물에 타서 먹어야 할 용량만큼 먹게 가이드를 해줬다.

우리나라는 처음부터 물약으로 주던데 여기는 가루만 주고 먹기 전에 물에 타라는 점이 우리나라와는 다르다. 


두 약을 먹이는데 아들은 오만상을 찌푸린다. 

약을 먹이는 나의 표정도 같이 찌푸려졌던 것 같다. 

많기도 하다... 후...




약 먹고 좋아하는 게임도 실컷 하고 나더니

컨디션이 조금 나아졌나... 아님 아침, 점심을 덜먹어서 그런가..

간식을 먹고 싶다면서 사다 놓은 참붕어빵을 순식간에 먹어버렸다..

아... 밀가루라 먹으면 안 되는데 ㅠㅠ

그래도 뭐가 됐든 뭐라도 먹는 게 낫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런. 데.

약 먹은 지 1시간 반쯤 지났을까.

아들 눈 밑으로 모기에 물린 듯한 알레르기가 우두두 올라왔다. 

왼쪽 눈 아래로는 부위가 넓고 오른쪽 눈 아래로는 작은 것들ㅇ리 여러 개 있었다. 

갑자기 알러지가 올라와서 걱정되는 마음에 검색을 해보니 항생제 알러지 같다는 글들이 보여서

곧바로 병원으로 다시 갔다....



핸드폰으로 알러지 증상을 검색하는 내내,

그리고 병원으로 다시 가는 동안

나는  아들 앞에서 얼마나 불안감을 드러냈을까?

사실 아무렇지 않은 척, 별거 아닌 일인 것처럼 아들에게 병원에 다시 가보자고 말했지만

아마 나는 내가 인지하지 못했을 뿐 나의 불안함이 아이에게 드러났을 거라 생각한다. 

눈빛, 손동작, 말투, 목소리, 행동 등등... 아들은 나의 불안함을 얼마나 읽어냈을까.

지금 일기를 쓰는 이 순간, 이제서야 그게 깨달아지고 미안한 마음이 밀물처럼 밀려온다. 


어떤 상황이든 아이와 함께 있는 한 엄마는 불안해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물론 엄마도 사람이기에 불안이라는 감정을 느낄 수 있지만

아이에게 그걸 드러내느냐 아니면 잘 참고 컨트롤할 수 있느냐에 따라 아이의 정서 또한 달라지기에

나는 늘 나의 불안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노력은 했다. 

하지만 오늘은 그 노력이 무너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이 밤에 몰려온다. 


나의 불안은 내가 인지하고 내가 컨트롤할 수 있을 거라는 오만함이 아이를 더 불안하게 하지 않았을까..

오늘 병원을 두 번 오가며 힘든 하루를 보낸 아들의 마음은 어땠을까?

한국과는 다른 분위기의 병원과 이해가 안 되는 영어로 어른들끼리 대화하는 걸 

옆에서 분위기로 눈치로 파악해야 했던 아들은 나보다 더 불안하지 않았을까?

물론 매 순간순간 아들에게 설명을 해주었다. 지금 무얼 했고, 무슨 진료를 받을 것이며, 우리가 왜 또 병원에 왔는지, 의사 선생님이 뭐라고 말씀하시는지 등을 차근차근 설명을 해주었지만

아들은 얼마만큼 이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며 마음을 진정시킬 수 있었을까?


후드득.. 택시 창으로 떨어지는 빗방울. 우리의 불안은 곧 지나갈 거야.


오늘 하루가 다 지나고 아이가 잠든 후 밤이 깊어서야
아들의 불안이 걱정되는 나..



사실 세 번째 진료를 받고 숙소로 돌아오는 내내 아들은 어두운 얼굴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내 손만 꼬옥 잡고 있었고 행여나 내가 가방에서 여권을 꺼내거나 서류를 꺼내기 위해 손을 잠시 놓으면

이내 내 팔을 잡았다. 


아들은 불안해했다. 


그 순간에 내가 더 충분히 달래어 주지 못한 것이 너무 미안하다. 

그래서였을까, 

병원에서 수납을 하며 간호사에게 이것저것 물어보고 설명을 들으며 약과 지갑, 여권, 보험 서류 등을 가방에 정리하고 있는데 아들은 대뜸 "엄마 사랑해"라고 하였다. 

자동반사적으로 "엄마도 아들 사랑해"라고 말했지만 나는 이제서야 그 뜻을 알았다.

아들은 지금 상황이 불안했고 엄마가 대처하고 있는 모든 일을 지켜보면서 혼자서 불안을 달래고 있었다는 것을.

"엄마 사랑해" 가 "엄마, 나 불안해"라고 이제서야 해석이 되었다.


그때는 머리로는 해석은 못했지만 그래도 엄마로서의 육감은 발휘가 되었던 것이었을까.

숙소에 도착해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방으로 올라가는 동안 

나도 모르게 아들에게 말을 꺼내었다.

"아무것도 걱정할 것 없고 다 괜찮아질 거야. 우리 아들 옆에는 항상 엄마가 있고 아빠가 있어"라고.

그랬더니 얼굴을 반대로 돌리더니 눈물을 찔끔 흘리는 아들.

이제 좀 컸다고 엄마에게 눈물을 보이기 싫은 건가? ㅎ

왜 우냐 물었더니 그냥 눈물이 난다고 했다. 

어떤 마음인지 기분인지 자세히 물어보고 싶었지만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자신을 중심으로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 불안감을 느꼈을 테고

엄마가 있어서 다행이라는 안도감도 느꼈을 테고

낯선 곳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무섭게도 느껴졌을 테다. 


아들의 마음속에 들어갈 수 없기에 엄마라고 해도 그 마음을 온전히 다 알 수는 없다. 

그러나 엄마이기에 알아차릴 수 있는 아이의 마음을 최대한 보듬어주고 알아줘야 할 것이다. 


아직 잠든 아이를 바라보며, 오늘도 뒤늦게 깨닫고 뉘우치는 엄마..

아이와 낯선 곳에서 단둘이 오랫동안 여행을 하겠다고 결심하고 준비하는 동안

우여곡절이 하나도 없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우려할 수 있는 가장 큰 상황은 아프거나 다치는 경우일 거라고 생각도 했었고, 

나름 대비도 해왔다. (현지 병원 정보, 여행자 보험, 비상약)


하지만 요 며칠 아이가 아픈 것을 대비해 엄마가 준비해야 할 것은 강한 멘탈이라는 생각이 든다.

엄마가 불안해하고 걱정하고 어쩔 줄 몰라 하면 아이는 그 몇 배로 불안해할 테니까.


일기를 쓰다가 잠시 아들 얼굴을 살펴보니 알러지가 또 올라왔다. 

나는 여전히 불안하다. 

싱가포르가 선진국이라고는 하지만 내가 신뢰할 수 있는 의료 경험이 없으므로 그런 거라 생각된다.

하지만 나의 불안을 티 내어서는 안 된다. 

아이를 살펴보고 머릿속으로 마음속으로 해결책을 찾아내야 한다. 

흔들리는 멘탈을 꽉 붙잡고 있어야 한다. 

그러면 모든 것이 잘 될 것이다. 




** 손으로 쓴 이날의 일기를 블로그로 옮기면서 다시 읽어보니 이때 저의 멘탈이 많이 약해졌다는 게 느껴졌습니다. 며칠 동안 이유 없이 아픈 아이를, 그것도 외국에서 단둘이 있는 동안 아프다 보니 나름 강한 멘탈의 소유자라고 생각한 저도 조금씩 지쳐갔던 것 같아요. 그래서 세 번째로 병원을 다녀오면서는 저도 모르게 불안한 저의 상태가 아이에게 전해지고, 덩달아 아이도 불안했던 것 같아요. 

아이는 직접적으로 불안하다, 걱정된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대신 저에게 사랑한다고 말해주었어요.

그 말이 그때는 "엄마, 나도 불안해" 말로 들렸는데

지금은 "엄마, 괜찮아, 불안해하지 마"..라고 다독이는 말로도 들립니다. 


이 일기를 읽고 나서 아이에게 싱가포르에서 아파서 병원 갔던 거 기억나?라고 물으니 '응!'이라고 답합니다. 

그때 어땠어?라고 물으니 '뭐, 아플 수도 있지~'라고 말하는 아들...

아들은 그때의 기억을 어떻게 가지고 있을지 궁금해서 오늘 한 번 다시 물어보고 싶어졌어요. 

그리고 그만큼 엄마와 아들이 성장하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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