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ol Nov 07. 2023

외로움을 느끼는 사람과 외로움이 되는 사람

외로움을 느끼는 사람과 외로움이 되는 사람,



지난주 연인과 경주 가는 길에 나누던 대화였다. 나는 내가 강한 사람이기에 외로움에서 몸으로 부림을 쳐왔더라면. 그는 고독과 외로움, 그 자체가 되는 사람이었다. 그는 내가 없는 사람이었기에.


다시 말해  외로움에 대해선 나는 외로움을 '느끼는, 하는(do)'사람이었던 것이었고 그렇기에 삶에서 오지게 이를 겪으며 벗어나고자 애썼다면. 그는 그 자체가 '되어버리는(be)'사람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되어버리기에 그냥 있는. 난 내가 있기에 거기에 몰입하는 사람일 수 있었고 이 말은 '외로움'에 대하여 그것과 분리가 된 '대상'으로서 '나'로 거기에 들어가는 말, 그러면서 동시에 그 자체로 함께 있음을 취하는 방식으로 살아왔다는 것이었다. 반면 그는 내가 없기에 외로움, 고독감 그 자체가 되어버린 사람이었다. 그것들과 하나가 되어버린.


추상적이고 모호하지만 난 선명히 우리의 다름이 느껴지는데. 변태 같나. 내가 이렇게 집요하다. 우린 서로 다른 방식으로 같은 것을 살면서 겪어낸 것이었다. 이게 뭐가 중요하냐만 내겐 참 재밌는데. 결국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사람이 다르나. 그러면서 내가 그에게 했던 말은 '참 너는 나보다 더 어렵다!'였다. 나는 느끼는 사람이기에 외로움, 고독을 자연스럽게 고통으로 느꼈기에 자발적으로 살기 위하여 치유의 길, 지금의 길에 서기까지 원동력이 확실했다. 고통이 있었기에 쉽지 않았지만 쉬웠던 것이다. 의지를 내기가 쉬운 것이다. 다른 방향으로 살기 위해.


하지만 그 자체가 되어버린 이는 고통을 느낄 틈이 없다. 그 자체가 되어버리기에. 하지만 알지 못하지만 문득 느껴지는 삶의 중간에서 오는 서늘함과 허무함과 늘 함께 했고. 이를 눈치채기까진 의지를 내기가 그는 더 어려운 사람인 것이다. 그 자체로 있어버리면 고통이 낄 자리가 없기에. 텃텃함을 빠져나오기까지 더욱 긴 시간이 걸릴지도 모른다. 그는 긴 시간을 허무주의에 있었던 것 같다고 자신에 대해 말했었다.


야, 참! 너 진짜 외로운 사람이었겠다-! 그렇게 너와 나의 다름을 다시 만나던 날. 어쩐지 그래서 내가 처음 봤을 때부터 그를 좋아했나 보다. 결국 너도 나랑 똑같아서! 나와 다른 너의 방식을 동경하며 그것이 내가 가야 할 방향이라는 것을 진작에 알아서!



작가의 이전글 내 이야기를 하는 것이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