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들어 장례가 많이 났다. 9년 차 농촌목회를 하면서 20여 명 넘은 장례가 있었다. 지금까지 눈에 선하던 70대 남자 집사님이 계신데 아픈 아내와 어린 손주를 혼자 돌보시다가 덜컥 암에 걸리셨다. 집사님이 암수술을 하시고 병원에 입원하고 계셔서 우리 부부는 도시로 심방을 갔다. 집사님은 아픈 와중에도 심방 와준 것에 대해 매우 감사해하시고 아픈 몸을 이끌고 엘리베이터까지 배웅 나오시고, 한참 젊은 우리 부부에게 "안녕히 가세요" 공손히 인사하셨다. 나는 그때 그 모습이 각인이 되면서 왠지 모를 마지막 인사 같았다. 얼마 후 집사님이 갑자기 돌아가셨다고 했다. 주일 예배를 드리려고 하는데 마을 방송이 울렸고, 집사님이 돌아가셨다는 것이다. 예배드리는 내내 집사님의 선하던 모습과 인사하시던 장면이 계속 생각이 났다. 우리 부부를 환대해 주시고 항상 웃어주시며 너무 좋아라 해주셨다. 몇 년이 지난 지금까지 조금 더 우리와 같이 신앙생활하셨으면 참 좋았겠다는 아쉬움이 있다. 어린 손주는 아빠를 따라 도시로 떠났고, 거동이 불편했던 아내 되는 성도님도 병원으로 옮겨졌다.
최근 세분의 장례가 있었다. 아직도 80대 90대 집사님, 권사님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9년 차가 되니 정이 많이 들어 아직도 실감이 잘 나지 않는다. 성도들의 마지막 순간을 같이 한다는 것은 인간적으로는 서운한 일이기도 하다. 남편은 장례예배를 정성껏 준비한다. 그동안 살아왔던 추억을 소환하며 우리는 천국에 환송하는 예배를 드리며 하늘의 위로를 받는다. 80대 90대 어머니가 떠날 때 60대 70대 되는 자녀분들이 펑펑 우는 것을 봤다. '엄마~ 엄마~ 사랑해요' 하며 펑펑 우신다. 나는 20대에 엄마를 천국에 보냈는데 엄마와 충분한 시간을 보냈을 것 같은데도 그렇게 아쉽구나 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나이가 들어도 엄마의 존재는 대단하다.
가끔 꿈에 엄마가 나이 든 모습으로 나올 때가 있다. 엄마는 사모로 살다가 유방암에 걸리셨고, 40대 후반에 천국에 가셨다. 엄마의 50대 60대가 어떤 모습일까 상상하곤 했다. 친구들의 엄마들을 보면서 우리 엄마의 나이 든 모습을 떠올리곤 한다. 가끔 권사님들이 자녀들과 통화하는 내용을 듣는다. "딸 김치 뭐 먹고 싶어? 깍두기 할까 배추김치 할까" 아, 사무치는 마음이 올라온다. 시어머니도 계시지 않으니 엄마의 정이 많이 그립다. 감사하게도 농촌 목회를 하면서 권사님들이 직접 기른 농산물과 김치들을 선물로 주신다. 부지런히 직접 농사지은 농산물을 다 먹으려고 김치도 담그고 장아찌도 만든다. 그렇게 나는 엄마의 정을 대신 채운다. 어느새 나는 할 수 있는 요리도 많아지고, 맛도 낼 줄 알게 되었다. 잔뜩 요리를 해서 아이들과 남편에게 차려줄 때면 나는 엄마의 정을 대신 느낀다. 힘든 날에는 반찬을 잔뜩 만들어 나에게 대접한다. 그러면 마음이 꼭꼭 채워지는 느낌이다. 나에게 음식은 엄마가 되어 나에게 먹이고 돌보는 일이 되었다. 혼자서도 잘 일어서고 할 줄 아는 게 많아졌다는 것이 큰 위로가 되고 있다. 엄마의 빈자리는 어느새 풍성해졌다. 결핍이 나를 내몰고 슬픔에 빠지게 할 때가 있었다. 그런데 점점 차오르게 되었다. 아, 그렇게 살아지고 자라는구나. 이제 나는 나의 엄마가 되었고, 우리 가족과 성도들에게 그리고 나와 만나는 내담자들에게 도움이 되는 존재가 되고 있구나. 마음속에 감사한 마음이 자라고 있었다. 참 다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