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트리장식

by 마흔에 글쓰다

아빠는 46년 넘게 농촌교회에서 목회를 하셨다. 젊은 사람이 별로 없으니 새벽예배부터 모든 차량운행을 직접 하셨다. 과거에 농촌엔 버스가 자주 다니지 않았기에 차량운행만 1시간 정도 되는 듯하다. 초등학교때부터 나는 아빠가 차량운행을 나가면 따라나가곤 했다. 유일하게 아빠를 차지하는 시간이었고, 성도님들에게 인사하면 반겨주시는게 좋았고, 부축해드리면 칭찬받는게 좋았던 것 같다.


농촌교회는 지금은 보기 어렵지만 예배시간을 알리는 교회 종이 있었다. 아빠가 차량운행을 나갈 때 교회종을 치곤 했는데 사춘기시절에 딸랑딸랑하는 소리가 온 마을에 퍼지고 해가 지는 풍경을 보고 있노라면 뒤죽박죽이었던 내 마음이 다스려지는 기분이었다. 아빠는 그렇게 차량운행을 하고 설교와 예배 집례를 모두 마치고서도 차량운행을 이어갔다. 지금 생각해보니 얼마나 힘들었을까 하는 마음이 든다. 딸의 입장에서 보다가 사모의 입장으로 바라보니 참 고생이 많으셨구나 하는 마음이 일렁인다. 그렇게 교회의 모든 일을 도맡아 하시면서 화장실 청소까지 하셨다. 엄마는 주로 2~30인분 되는 밥을 혼자 차렸는데 내 눈에 자주 엄마의 고단함이 느껴지곤 했다. 나는 예배 마치고 친구들과 놀러 가고 싶은 마음을 꾹 누르고 엄마 옆에서 설거지를 했었다. 그렇게라도 엄마가 힘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가끔 이런 이야기를 엄마와 주고 받고 싶다는 마음이 든다. 더 좋은 곳에 계시니 아쉬운 마음을 달래본다.


우리 교회도 농촌교회이다. 70대가 대부분인 성도들이 있는 교회다. 8년전에는 60대가 그래도 많았는데 막내였던 50대 라인은 60대가 되었다. ㅎㅎ 남편은 6~7년째 교회 밖에 있는 소나무에 등을 달아 트리를 만들고 있다. 3~4시간을 걸려 완성하면 가로등도 없는 농촌의 겨울나기가 조금은 수월해진다. 문득 그 트리를 보다가 젊을 적 아빠의 모습이 떠올랐다. 아빠는 성탄절이 다가오면 산에 나무를 하러 갔다. 그 당시에는 가능했고 지금은 불법으로 되어서 하면 안 된다. 아빠는 잘생긴 소나무를 하나 골라와서 화분에 심고 우리에게 트리 장식을 하게 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때만 해도 트리를 사는 게 어려운 교회형편인지라 아빠는 그렇게 대처를 했던 것 같다. 생생한 소나무에 장식을 달면 소나무 향기가 진하게 느껴졌다. 지금 생각해 보니 아빠는 어떻게 소나무를 산에서 가져올 생각을 했을까 싶다. 나의 창의력은 아빠에게서 온 것 같다. ^^ 그렇게라도 성도들과 성탄절을 기다리는 마음을 기념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 추억이 참 고맙게 느껴진다. 그때는 몰랐었다. 아빠가 뭐라도 일을 시키면 짜증을 내던 사춘기 소녀였다. 그러다가도 짜증낸 것이 미안해져 마음이 복잡했던 시절이었다. 지금이라도 고마운 기억으로 남게 된 것이 참 다행이다. 그리고 귀중한 경험을 하게 해줬던 아빠에게 고맙다. 도란 도란 옛날 이야기를 나눌 시간이 우리에게 얼마나 남았을까. 사는게 바쁘고 목회하는게 바쁘고 아이들 키우는게 바쁘다고 자주 나누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나는 엄마가 너무 일찍 천국에 가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다 못하고 산다며 여전히 어린 아이의 모습으로 지내고 있다.


우리 교회는 소나무가 많아서 그 위에 전선만 감아주면 매년 멋진 야외 트리가 완성된다. 작년엔 마을에 불이 나서 어떤 것도 할 힘이 나지 않았었다. 2박 3일간 마을 산 2/3를 태웠기에 트라우마가 컸다. 연기만 나도 놀라던 때였다. 그때 마을이 휑하다며 트리가 없어 서운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올해는 남편이 힘이 났는지 트리 장식을 더 확장해서 밤마다 따뜻한 기운이 난다.

농촌의 긴긴 겨울밤. 별만 보이는 밤하늘과 반짝반짝 빛나는 야외 트리로 성탄을 맞이한다. 그렇게 어린 시절 아빠가 만든 트리를 보고, 지금은 남편이 장식해 놓은 트리를 보며 나는 참 복 받았구나 싶다. 살아가면서 너무 힘들 때는 불평의 마음이 일어나곤 한다. 어느 곳에도 빛은 보이지 않는 것만 같다. 다 헛된것만 같다. 좌절과 무기력감이 짓누른다. 그러다가도 또 일어날 힘을 주신다. 나의 회복탄력성은 신앙의 힘이 크다. 그래서 인지 매번 성탄절에 주시는 감동이 있다. 빛으로 우리에게 찾아오셔서 다시 소망을 이어가게 하신다. 성탄절의 감동은 매년 더 깊어지는 듯 하다.


글을 쓰며 지난날을 돌아보면 감사할 거리가 넘친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부정적인 것들을 이길 힘이 솟는다. 이러한 것들로 나의 부르심을 받아들이고 광야와 같은 시간들을 견딜 수 있었다. 스쳐지나가던 따뜻했던 추억을 붙잡아 두고 싶다. 기록하며 마음에 잘 새겨두고 싶다. 빛은 우리 곁에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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