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의 유령이 무대를 떠돈다

국립극단 <빙화> 취소에 관한 소견

by 최성진

<빙화>의 작가 임선규는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충남 논산 출신의 작가다. 우리나라 최초 연극전용 극장이던 동양극장의 전속 극작가로 활약했으며 이후 극단 아랑에서 <김옥균>, <동학당> 등 민족성향의 작품들을 만들기도 했다.

그는 동경 유학 이후 각종 관제 연극제에 출품하며 친일 활동을 하였으며, 조선총독부가 결성한 조선연극문화협회의 이사를 맡고 <빙화>와 <꽃피는 나무> 등을 발표한다.

<빙화>는 1940년대 일제강점기 당시 친일연극제인 ‘국민연극’의 참가작이다.

국민연극은 일제의 지배이데올로기를 합리화하는 황국신민 내선일체의 매개로 활용되며 주로 증산과 공출, 군입대 지원과 일본어 교육, 만주개척 등의 내용을 장려했다.

<빙화>는 1937년 9월, 소련에 의해 연해주로 강제 이주하게 된 20만 조선인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강제로 이주당한 조선인들이 새로운 삶을 찾아 만주, 연해주로 떠나거나 황무지 개척에 이용당하고 다시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당해야만 했던 역사의 단면을 보여준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황국신민으로써 일본인에 귀속된다는 것의 자긍심 다시 말해 관객에게 근대 국가 관념의 주입을 통해 공산주의에 대한 적개심을 그려내고 있다.

당초, 국립극단은 이 공연의 선정 사유를 친일 연극의 실체를 드러내 비판적 성찰로 역사를 직시할 기회를 마련하자는 취지였다고 말한다. 그러나 연극사적이나 문학적으로 문제작을 발굴하여 소개한다는 그들의 취지와는 달리 한일 간 외교 갈등이라는 문제로 취소한다고 한다.

그러나 내 생각은 다르다.

친일 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2009년)한 친일 반민족행위 705인 명단에 들어가 있단 이유로 혹은 최근의 냉각화된 한일관계의 이유로 공연을 취소했다는 점은 정말 아쉬운 변명이라 생각된다.

친일잔재를 말끔하게 청산하지 못한 우리 모두의 책임이다.

친일작품을 불사르는 것보다 왜 친일작품인지 그리고 그것이 현대 한국사회에서 어떻게 인식되어야 하는지를 봐야 하기 때문이다.

내가 더 보고 싶었던 이유는 양승국을 비롯한 몇몇 학자들의 <빙화>에 대한 연구 때문이다. 몇몇 논문에서 친일의 행적보다는 대중적 민족정서를 환기시키는 힘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그리고 연해주의 조선인 디아스포라들에게 던지는 민족적 동류의식을 불러일으키는 장치들을 교묘하게 배치하는 것으로 임선규의 극작 전략 등을 제시함으로 그를 이중적 의미로 해석해야 한다고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의 주장에 따르면 작품에서 독립운동가를 연상시키는 인물의 등장과 사회주의자의 등장은 당시 국민연극 경연대회의 공연대본이라는 점이 무색할 정도며, 친일의 모습을 그려내는 과정에서 친일에 대한 반문을 던지는 요소로 활용되기도 한다.

90여 편의 작품 중 4편의 작품만 존재하는 임선규의 행적을 추적하다 보면 전작들이 주로 대중극 중심인 반면 급작스레 거대담론을 그려내야만 하는 강제성에 동원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암튼 이번 공연 취소는 그런 문제들을 다시금 확인해 볼 수 있는 기회를 놓친 아쉬움이 따른다. 그리고 그가 친일작가이고 <빙화>가 친일작품이라면 이런 것들을 숨기지 말고 더 적극적으로 알려서 작금의 민족정서에 부응토록 했어야 한다.

앞서 말한 바처럼 이중적 의미를 해석하는 과정에서 그 다양성들을 관객이 어떤 콘텍스트로 완성시킬 수 있을까? 그건 실연을 통해 확인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아니, 그것을 거부할 수 있는 권리를 관객에게 직접 제공함으로 친일작품의 대중적 저항에 대한 판단 역시 관객의 몫으로 돌렸어야 한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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