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진부하고도 애틋한 그 이름
인천에서 헬싱키로 가는 비행기 안. 불이 꺼지면 비행기 안은 극장이 됩니다. "멍멍멍!" 강아지도 놀러오고, 비둘기도 놀러왔다 갑니다.
아이와 함께 인천에서 헬싱키까지 9시간 반 비행을 했습니다. 바로 비행기를 경유하기엔 아이에게 무리가 될까봐, 여행겸 헬싱키에서 3일을 머물렀다가 오늘 로바니에미로 갑니다.
비행기를 탈땐 엄마와 아빠는 합동작전을 펼칩니다. 아빠는 귀를 막고 엄마는 아이에게 물을 먹입니다. 아이는 기압차때문에 울지 않았습니다. 맹물을 먹였더니 맛없다고 웁니다. 6개월 아기의 혀도 이미 도사입니다.
헬싱키 아시안마켓 스트리트에는 이미 저희가 박스에 싣고온 식료품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라면이 1.05유로 정도 하니 부담스럽지 않은 가격입니다.
전압은 같지만 헤르쯔(Hz)가 달라 전자제품이 고장나기 쉽다는 말에 현지에서 밥통을 구매했습니다. 55유로, 네덜란드 제품이라고 합니다. 이제 쌀밥과 아이의 중기이유식을 책임질 녀석입니다. 시내에 있는 Posti(우체국)에 들러, 기숙사에 밥통을 부쳤습니다.
이번 일정에는 아이의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추억여행으로 함께했습니다. 손이 부족한 우리를 도와 짐을 들어주시고, 아이를 챙겨주셨습니다.
아이의 할아버지는 유모차를 처음 끌어본다 하셨습니다. 대개 한국에서 아빠라는 이름을 갖게 될 땐, 아이와 함께할 시간이 가장 적은 시기입니다. 아쉽게도 은퇴할 시기가 되어야만, 그 젊은 날 야근에 지쳐, 피곤에 지쳐 제대로 안지 못했던 내 아이의 체온을 지금 내 자식이 낳은 아이를 통해 느낍니다.
우리 세가족,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추억을 아이와함께 이 곳에서 남기고 싶습니다. 일이 우선인 것 같아도, 지나고 나면 가족이 최고라고 느끼는 순간이 올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때는 맞지만 지금 돌아보니 틀린 인생을 살았다고 말하지 않기 위해 어쩌면 우리는 이 먼곳으로 떠나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