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원한 생맥주와 즐기는 여름의 맛
여름이 되면 떠오르는 면은 역시 메밀. 소면은 사계절 언제 먹어도 좋은데 여름에는 메밀, 겨울에는 우동처럼 특정 계절에 유독 더 끌리는 면이 있다. 메밀은 찬 성분을 가졌고 냉면의 재료로도 쓰이니 확실히 여름에 잘 어울리는 것 같다. 한의학에 8 체질이라는 것이 있는데 예전에 진단을 받은 바에 의하면 나는 체질적으로 메밀이 잘 맞지 않는다. 맹신하는 건 아니지만 체질이라는 것에 어느 정도 신뢰하고 있기에 처음에는 식단을 잘 지키는 편이었다. 그러나 사람이 어찌 몸에 좋다는 것만 먹고살겠냐는 변명하에 얼마 지나지 않아 입에서 끌리는 음식들에게 KO패 당하고 말았다. 그때 이후로 지금도 역시나 몸에 맞지 않다는 것도 신경 쓰지 않고 잘 먹고 있다. 신경이 둔한 편이라 잘 깨닫지 못할 뿐 사실 몸에 맞지 않은 음식이나 식재료들은 나에게 작게나마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는 생각이 있긴 해서 구수해서 좋아하는 메밀차나 메밀 소바 등을 먹을 때마다 약간의 죄책감을 가지고 있다. 그러다 보니 10번 먹을 것을 반절 정도로 줄여서 먹게 되는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년 여름부터 빠진 음식이 있었으니 바로 메밀국수 김밥.
메밀국수 김밥을 처음 접한 것은 몇 해 전, 마스터 셰프 코리아의 우승자였던 최강록 씨가 운영하는 식당에서였다. 메밀로 김밥을 싼다는 것을 처음 봤을 때는 어떻게 이런 요리를 할 수 있나 싶어 신선하고 신기해했던 기억이 난다. 맛을 보니 맛도 있었지만 직접 만들어볼 생각을 하지는 못했다. 누군가의 요리를 보면 나도 한 번 해볼 수 있겠다 싶은데 메밀국수 김밥은 쉽게 해 볼 생각을 못했다. 그러다 메밀국수 김밥을 다시 보게 된 것이 인스타그램이다. 그 사람의 관심사를 알아보려면 인스타그램 돋보기 (탐색 탭)을 보라는 말이 있는데 내 돋보기에는 요리 콘텐츠만 뜬다. 1,2년 전쯤부터 인스타그램에서 찾아보는 것이라고는 요리와 여행 릴스뿐이라 알고리즘이 두 가지만 번갈아 보여준다. 계속 보다 보니 요즘에 인기가 있는 음식이 무엇인지, 유행하는 요리 릴스 스타일을 대략적으로나마 짐작할 수 있는데 작년 여름에는 이 메밀국수로 만든 김밥이 한창 인기였다. 막상 만드는 영상을 보니 그리 어려워 보이지는 않아서 한 번 도전해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당시 낭독 모임 때문에 현미김밥을 자주 싸던 때라 밥과 재료들을 하나씩 다 준비해야 하는 김밥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쉬워 보였던 것도 있다. 음식만 볼 때는 어렵게 여겼는데 만드는 영상을 보니 생각의 벽이 쉽게 무너졌다. 몇 가지 영상을 보고 혼자 레시피를 정리해 만들어 보기로 했다.
메밀국수 김밥
준비물 : 메밀국수 (메밀 함량이 너무 높지 않은 것이 좋다. 김밥으로 말기에도 먹기에도 찰기가 조금 있는 것이 좋다.), 계란, 오이, 크래미, 쯔유, 들기름
1. 계란은 계란말이로 두툼하게 말아준다. 지단을 채 썬 것보다 말이 쪽이 식감이 좋다.
2. 오이는 필러로 한 면으로 잘라 준다. 채를 썰어도 좋으나 밥이 아니라 국수 위에 깔기 때문에 면적이 넓은 쪽이 편하다.
3. 크래미는 하나를 김밥용으로 그대로, 두툼한 것은 반으로 잘라서 사용한다.
4. 메밀국수는 삶아서 쯔유와 들기름 1:1로 간을 해준다.
5. 김을 깔고 메밀국수와 계란, 크래미, 오이를 넣어 김밥을 싸듯 돌돌 말아준다.
6. 고추냉이를 곁들여 먹어도 좋다.
김밥보다 준비 시간이 적게 걸려서 더 간단하게 느껴지는데 짭짤한 쯔유와 고소한 들기름이 어우러져 별미로 좋다. 두툼하게 잘 말아 자르면 이자카야의 안주가 부럽지 않다. 메밀국수 김밥은 시원한 일본 사케 (정종)나 커다란 컵 밖으로 땀을 흘리듯 물이 뚝뚝 떨어지는 생맥주 한 잔, 혹은 냉장고에 오래 두었다 꺼내먹는 이보다 더 시원할 수 없다 싶은 병맥주와 함께 먹으면 잘 어울린다. 왠지 일본 여름밤의 불꽃 축제가 떠오르는 더운 여름밤과 잘 어울리는 안주다. 글을 쓰는 지금 이 조합이 간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