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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리니시 레터 Mar 28. 2022

잊혀진 커피의 발견, 스테노필라

Old ruins on the former sklave colony Bunce island, Sierra Leone


아라비카의 풍미, 그리고 뛰어난 기후저항능력

커피는 기후위기에 가장 민감한 작물 중 하나입니다. 커피는 기온변화에 까다롭기 때문에 재배지가 열대 고산지에 한정되어 있는데요. 온난화로 인해 점점 재배가 어려워지고 있죠. 2050년까지 커피재배가 가능한 토지는 절반 이하로 줄어들 것으로 예상됩니다.


문제는 대부분의 커피가 아라비카 단일종이라는 점입니다. 커피의 유전자풀이 넓지 않으니, 기후저항성을 높인 새 품종을 만들기도 쉽지 않습니다. 상대적으로 강한 종인 로부스타가 있지만, 향미 특성이 아라비카와 현저히 달라 시장에서 환영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큐 왕립 식물원(Royal Botanic Gardens)의 커피연구책임자인 Dr.Aaron Davis는 2020년 5월, <Lost and Found> 논문을 통해 새로운 커피종 C.stenophylla의 발견을 공식 확인했습니다. 좁은 잎을 가진 이 야생커피는 아라비카에 비해 연평균 6.2~6.8°C 높은 기후에서도 잘 자라며, 무엇보다 아라비카와 구분할 수 없는 유사한 향미를 가졌음이 확인되었습니다. (bbc, 2021/4/19)



영국왕립식물원의 1896년 11월호 간행물 표지(왼쪽)와 189p 시에라리온의 고산지 커피소식(오른쪽)



잊혀진 커피, 스테노필라

19세기 이전에는 다양한 커피들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문헌에만 존재할 뿐이지만, 적어도 1960년대까지 산지별로 서로 다른 커피들이 경작되고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현재는 향미가 좋은 아라비카(C. arabica), 생산성이 좋은 로부스타(C. canephora)만이 재배되죠.


스테노필라 커피도 19세기 후반까지 시에라리온, 기니를 비롯한 서부 아프리카에서 실제 재배되고 수출되었던 커피입니다. 당시 프랑스인들이 높은 가격을 지불하고 수입했고, 왕립식물원은 이 종이 아라비카와 경쟁할 가능성이 있다고 봤습니다. 스테노필라 커피는 이후 가나, 세네갈, 코트디부아르, 우간다 등지에서도 재배됩니다.


다만 스테노필라는 아라비카나 로부스타에 비해 생산성이 낮아, 세계적으로 경작되지 못했습니다. 열매 성숙에 더 많은 시간이 걸리는데다, 빈 사이즈가 작고, 수확량이 적었습니다. 커피가격이 내려가고, 생산량이 압도적인 로부스타 커피가 도입되면서, 스테노필라 종은 자연스럽게 농장에서 사라집니다. 공식적으로 스테노필라 커피가 마지막으로 목격된 것은 1954년입니다.


그러나 기후위기가 현실로 나타나고, 각종 병충해가 전 세계 커피농장을 강타하면서, 지속가능성을 위해 커피의 유전자풀을 다양화할 필요가 대두됩니다. 그 과정에서 1896년 기록된 서아프리카 커피가 다시 조사팀의 관심을 끈 것이죠. 큐가든 조사팀은 2018년부터 2020년까지 시에라리온 현장조사를 통해 C. stenophylla와 C. affinis를 발견하고, 스테노필라와 리베리카가 교배 가능함을 확인했습니다.



1900년대 트리니다드 농장에서 촬영된 사탕수수와 스테노필라 커피. Royal Botanic Gardens, Kew. / 코트디부아르 국립농업연구센터에서 촬영한 스테노필라. 잎이


블라인드 테이스팅에서 80.25

Stenophylla는 “좁은 잎”이라는 뜻의 그리스어로, 식물학명이나 품종명에서 자주 등장합니다. 스테노필라 커피는 길고 좁은 잎을 가졌으며, 열매가 검게 익는 특징이 있습니다.


이 커피의 유전적 잠재력은, 야생종이 발견된 서아프리카의 재배조건에 있습니다. 시에라리온과 코트디부아르는 연간 강우량이 1,500~1,700mm에 불과한 건조지역이며, 연평균 기온이 25.5°C로 아라비카 종의 재배조건(19°C)보다 덥습니다. 즉, 이 커피는 상대적으로 낮은 고도인 해발 200~700m에서도 재배할 수 있으며, 온난화로 기존 재배지의 연평균이 높아지더라도 계속해서 커피경작이 가능할 수 있습니다.


이 지역의 강우량과 스테노필라 커피의 느린 성장 주기 또한 밀접한 연관이 있습니다. 이 야생종은 건기 동안 휴면 상태에 들어가며, 적은 강수량에도 불구하고 열매의 수분함량을 85%까지 증가시키면서 천천히 성장합니다. 이는 다른 주요 커피 경작종보다 가뭄에 대한 저항성이 더 높고, 강우량이 적은 지역에서도 경작이 가능하다는 뜻입니다.


새로운 품종을 경작하는 데 있어서 함께 고려해야 할 것은 소비자들이 만족할 만한 향미특성입니다. 아론 데이비스는 이를 <Arabica-like flavour in a heat-tolerant wild coffee species(2021)>에서 보였으며, 직접 기고한 글(springer nature, 2021/5/13)에서도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습니다.


스테노필라는 2020년 런던 Union Hand-Roasted Coffee에서 처음 평가되었습니다. SCA 커핑프로토콜을 준수한 해당 시음에서 시에라리온 샘플은 80.25점을 받아, 아라비카 스페셜티와 동일한 품질로 인식될 수 있음을 확인했습니다.


이후 JDE, 네스프레소, Belco를 포함한 현직 커피전문가를 상대로 블라인드 테이스팅을 실시합니다. 이 테스트에는 코트디부아르 스테노필라 샘플과 함께 비교군으로 아라비카 샘플 2개(고품질 1개, 저품질 1개), 고품질 로부스타 샘플 1개를 비교했으며, 커퍼들에게 품종 정보나 테스트의 의도를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이 블라인드 테이스팅에서 심사위원의 81%는 해당 샘플이 아라비카의 전형적인 특성을 보여준다고 확인했으며, 이는 저품질 아라비카(44%)나 로부스타(7%)에 비해 훨씬 높은 유사성을 보인 것입니다. 다만 테스트에서 높은 유사성을 보인 것과는 별개로 47%의 심사위원이 해당 샘플을 새로운 커피로 식별했으며, 충분한 틈새시장을 가질 수 있다는 의견을 내놓았습니다. (cirad, 202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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