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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혜림 Oct 14. 2017

#첫 번째 편지 : 어떤, 책방지기들.

이름에게_ 페미니즘 책방 '달리, 봄'

#첫 번째 편지 : 어떤, 책방지기들.

이름에게_ 페미니즘 책방 '달리, 봄'




이름에게


1

들어봐. 여섯 크리스마스 때 난

산타할아버지한테 수첩 세트를 받았는데, 포장지를 뜯자마자 심장이 쿵쿵거렸어.

그때 나는 작은 수첩 선물 받는 것이 제일 행복했거든.

무언가를 계속 끄적이는 걸, 좋아했나 봐.

소설책을 읽는 것도 좋아했어. '빨간 머리 앤'은 아직도 내가 인생 책이라고 떠들고 다녀.

앤 처럼 수많은 상상을 하며 살고 싶었어.

나는 꼭 할머니가 되기 전에, 캐나다에 있는 '초록지붕 집'에 가 볼 거야! 

또 난, 언제까지나 작가가 될 거라고 다짐했지.

글을 짓고 이야기를 전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어.


2

책방이 좋아.

작은-책방을 좋아해.

큰 서점의 화려함보다 보다 작은 책방이 주는 뭉클함을 아껴.

이 조그만 공간에 앉아 책을 파는 저 사람은, 어떤 생각과 꿈을 가지고 있을까 궁금해.

책을 잘 보지 않는 시대라잖아. 책 보다 눈길 가는 것들이 참 많은 세상이라잖아.

이런 시대, 그런 세상에서 책 담은 공간을 만든 사람들의 마음은 뭘까. 



3

긴-긴 연휴가 이어지던 지난 금요일에

봉천동 책방 '달리, 봄'에 다녀왔어.

해가 조금씩 지던 저녁이었고, 거리가 점점 어둑해지고 있었지.

마음 따듯해지는 글씨체로 적힌 조그만 간판이 예뻤어.

문을 열고 들어서자 젊은 남녀 두 분이 우리를 반기시는 거야.

'달리, 봄'의 두 책방지기 주승리, 그리고 류소연 씨였어.


아늑하게 꾸며진 책방을 한참 구경하다가

우리는 시원한 오미자차를 한 잔 얻어마시며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지.


4

달리, 봄은 페미니즘 책방이야.

지난 8월에 처음 오픈한 이 책방은

페미니즘 책뿐만 아니라 젠더 이론서, 대중서도 있어. 

실존주의 철학 책, 사진집도 있더라고.

소연 씨가 말하길

이곳은 다양한 여성들의 이야기들을 폭넓게 이어서 설명하는 책방이래.

소연 씨와 승리 씨는 원래  '허스토리(Herstory)'라는 소규모 출판사를 운영하고 있었어.

주로 어르신들의 자서전을 만들어드리는 거야. 

처음에는 엄마의 작은 자서전이라는 것으로 시작하셨대.


어디서 이런 문장을 본 적이 있어.

'엄마는 처음부터 그냥 엄마인 줄 알았다.'

여성들에게 가장 흔하게, 붙는 이름이 '엄마'잖아. 실은 우리 엄마도

엄마라고 명명되기 이전에 한 사람이고, 사람이기에 가지고 있는 삶의 이야기가 있을 텐데 말이야.

소연 씨, 승리 씨는 그런 것에 문제제기를 하면서 여성들의 이름을 찾아주고 싶었대.


5

그러다가 이 책방을 열게 되었다고 하시더라. '허스토리(Herstory)'도 운영하면서 말이야.

여성들의 다양한 이야기를 계속해서 소개하고 싶고, 

기존의 편견이나 관념의 변화의 시작으로 ''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대. 

그렇지만 무엇보다도 페미니즘 책방을 열게 된 건

페미니즘이 두 사람의 가장 큰 관심사이기 때문이지.



6

소연 씨는 자신에게 페미니즘이란

여성들이 자기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언어를 찾기 위한 가장 중요한 수단-

이라고 이야기했어.

승리 씨는 자기 자신대로 표현되는 것-이라고 이야기했지.

'달리, 봄'에서는 단순히 책을 파는 것을 넘어서

북토크도 열고 영화 상영회도 진행해. 흥미롭지?


7

아, 그거 알아?

두 사람 사실 연인 사이야!

대학 때부터 쭉- 사랑하고 있는 중 이래.

소연 씨는 '사회적 기업'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었어. 사회에 도움되는 일을 하면서

나도 즐겼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

그러다가 승리 씨랑 '허스토리(Herstory)'라는 사회적 기업을 운영하고

이어서 '달리, 봄'도 같이 열게 된 거야.


아무래도 연인 사이이다 보까 사적인 일로 싸운 것이

일에까지 영향을 줄 때가 있다더라고. 

그렇지만 요즘은 사적인 일로 싸워도, 일은 일대로 하고 그런대. 


8

암묵적인 '트랙'이 있다고 생각했어.

세상을 잘 살아가기 위해 사람들이 거쳐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여러 가지 절차들 말이야.

대학에 가야 하고, 이왕이면 좋은 직장에 취직하고, 괜찮은 배우자를 만나 적당한 나이에 결혼하고.


사회에서 이야기하는 보편적인 방식-이 나는 사실 힘들어.

내 방식대로 살고 싶어. 그렇지만 또, 그만큼의 용기가 필요하겠지.

한참을 이야기 나누다가 물어보았어.

살고 싶은 대로 살아가야겠다는 의지와 용기는 어디서 나오는 걸까요?


9

"언제부턴가 말을 안 듣는 사람이 되어버렸어요.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대학을 2년 늦게 갔거든요. 

지금 생각해보면 자퇴하고 나서 그 시간들을 조금 더 잘 살 수 있지 않았을까 싶어요. 

좋은 대학 가야 한다는 강요 속에서 살다가 대학 와서  제 마음대로 사는 것 같아요. 

10대 후반에 왜 다양한 시도를 못해봤을까 하는 생각들도 있고. 

제가 하고 싶은 것 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는 걸 깨달아 가는 것 같아요. 

또 작은 데서 나름의 변화를 만들어가는 게 사회적인 성공의 기준보다 더 중요해진 것 같아요."

-소연


"힘든 것 같아요. 설득의 연장이랄까? 

부모님께 ‘공채 안 쓰니’이런 이야기도 듣는데

그럴 때마다 설득하고 있는 거죠. 충분히 먹고살 수 있다고요. 

이렇게 살아도 죽지는 않는다는 거. 

힘들어도, 어떻게든 지나가겠지 이런 생각들을 하는 것 같아요. 

가장 중요한 건재밌으니까."

-승리



10

눈이 참 빛나는 사람들이야.

소연 씨와 승리 씨. 두 사람 모두.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사는 사람들의-

설레는 에너지가 멋졌어.

힘을 얻었던 것 같아. 

빛나는 눈빛에서, 열정에서, 

이야기할 때의 손짓, 웃음, 책방 안의 공기 속에서.

날이 완전히 저물고

길고양이 한 마리가 문 앞에서 우리를 지긋이 쳐다볼 때쯤

마지막으로 물었어.



당신의 ‘공(空)’은 무엇으로 채워져 있나요?

"설득이요. ‘나대로 살고 있다’는 것을 설득해야 하는 것 같아요. 

힘들지만, 나는 이렇게 살고 있고 이렇게 살 거라고 말하는 과정인 거예요."

-승리


"고민의 연속? 연속되는 생각이라고 해야 할까요? 

내 안에 갇히지 않게, 다양한 방식으로 사유하는 거?

좀 거창해 보이긴 하지만, 끝없이 고민해보는 거죠. 제 삶의 태도와 관련된 거요."

-소연



11

가을이 잠깐 얼굴만 내밀고 도망갔나 봐.

날이 추워.

아프지 않게, 따듯하게 지내다가 

다시 만나자.

또 편지할게.





타인이 아닌 자신만의 '맥락'을 만들어가는 사람들의 이야기.

'나'의 이야기로 삶을 채우는 사람들의 이야기.

공(空)의 반란, 계-속          



공(空)의 반란 프로젝트를 

글과 사진으로 기록하고, 전달합니다.

모든 글은 '이름에게' 전하는 편지입니다.

여기서 이름은 불특정 다수를 칭합니다.

결국 나는, 나에게. 너에게. 

'이야기'를 가진 세상의 모든 사람들에게

나의 이야기를, 내가 만난 사람의 이야기를

꾸-욱 눌러써 보냅니다.       


사서함

pt007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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