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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틴강 Jul 24. 2023

돌아올 때의 마음

7월 24일 월요일, 봉선사를 다녀와서

목요일 대신 오늘 하루 쉬었다. 쉬는 날 글을 하나 쓰면 좋겠다 싶어서 여러 가지 주제를 고민했다. 어떤 마음을 갖고 시험장에 들어설지 무척이나 비장한 마음을 다룬 글을 쓰려고 했다. 상상을 했던 것들을 장황히 늘어놓는 글을 생각하기도 했다. 그런데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면 생각할 때는 무언가 된 것만 같이 웅장하고 울컥하는 마음이 들다가도 막상 글을 쓰려고 앉으면 좀처럼 써지지 않았다. 너무 무거운 주제를 잡은 탓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냥 오늘의 일과와 소회를 적는 아주 평범한 일기를 쓰기로 마음먹고 글을 쓴다. 


어젯밤 학원 시험을 마치고 오랜만에 같이 공부했던 두 친구와 저녁을 먹었다. 시험 성적은 커트라인을 넘는 정도의 평범한 점수인 것 같다. 마지막 시험이라 긴장은 되었으나 컨디션이 좀처럼 따라주지 않았다. 직전 며칠이 좀 힘들었다. 약간의 아쉬움을 남기고 마지막 모의고사가 끝났다. 그리고 친구들을 만나려고 허둥지둥 노량진으로 갔고, 짧은 저녁 식사를 했다. 둘 다 많이 지쳐 보였다.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시험이 끝나고 방탈출을 하기로 했던 약속을 생각하며 이야기를 나누고 짧은 수다를 떨다가 집으로 왔다. 오는 길에 여자친구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그리고 여자친구를 홍대에 내려주고 나는 의정부로 갔다. 오랜만에 의정부에 가는 것 같았다. 그리고 오랜만에 엄마와 순돌이를 만나는 것 같았다. 


아침 6시에 눈이 떠졌다. 알람도 꺼두고 잤는데도 눈이 떠졌다. 순돌이랑 조금 놀다가 씻고 나갈 준비를 했다. 8시 즈음 봉선사로 향했다. 봉선사 초입에 광릉수목원이 있는데, 좁은 도로에 속도제한도 있어 약 10분 정도를 천천히 숲길을 지나야 한다. 창문을 활짝 열고 습기 묻어있는 숲 속 향을 맡으며 봉선사로 갔다. 봉선사는 연꽃 축제 준비를 하고 있었다. 시험이 끝난 뒤라서 한 번 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활짝 핀 연꽃들을 보며 초를 사러 갔다. 내 이름을 쓸 초와 두 친구의 이름을 쓸 조금 작은 초를 샀다. 작은 초 두 개에 각각 이름을 쓰고 합격을 썼다. 그리고 조금 더 큰 초에 내 이름과 합격캠프 친구들 합격을 적었다. 초를 붙이고 자리에 옮겨두러 가는데, 작은 초 하나가 자꾸 꺼졌다. 유독 자신 없어하는 친구였는데, 초가 자꾸 꺼지니까 내심 오기가 생겨서 붙을 때까지 불을 붙였다. 꼭 합격하길 바라는 마음이 더 간절해졌다. 초를 다 옮겨두고 나서 공양미도 절에 가져다 두었다. 그리고 또 기와에도 합격해 달라고 적었다. 이런 걸 잘 믿지는 않지만 이렇게 하면 엄마의 마음이 조금은 좋아질 것 같아 기분을 맞춰줬다. 나도 내심 좋았다. 오랜만에 엄마와 순돌이와 절에 갔다 왔고, 밥도 먹고, 시내도 가서 장도 보고, 학원을 다닌 후로 처음으로 월요일에 같이 시간을 보낸 것 같다. 시험이 끝나면 다시 월요일에 엄마와 순돌이와 시간을 보낼 수 있을까. 아직은 잘 모르겠다. 끝나봐야 알 것 같다. 


이런저런 마음에 대해 쓰려고 했다. 시험장에 들어설 때 어떤 마음으로 갈 것인가, 엄마의 마음과 여자친구의 마음은 어떨까, 나는 어떤 마음을 가지고 남은 며칠을 보낼까, 합격하고 싶은 마음은 무엇일까, 합격하면 어떤 기분일까, 떨어지게 되면 어떤 마음일까, 나는 합격하고 친구들은 떨어지면 어떤 마음일까, 나는 떨어지고 친구들은 합격하면 어떤 마음일까, 아무도 합격하지 못하면 우리는 어떤 마음일까, 오만가지 상상을 했다. 합격하는 상상을 포함한 모든 상상이 마음이 편치 않았다. 합격하는 상상을 하면 너무 낙관적이어서 불안하고, 떨어지는 상상을 하면 그 이후의 일정이 암담할 것 같아 무서웠다. 어떤 미래를 상상해도 그것이 쉽게 납득되지 않았다. 하지만 지나치게 염세적이지도 않고, 우울한 감정이 거대하지도 않다. 그저 조금은 잔잔하고 때로는 조금 더 일렁이는 마음의 동요가 있곤 했다. 어쩌면, 앞으로 4일 동안 똑같은 마음이 반복될 수도 있다. 이 글을 쓰기 전에만 해도 이러한 마음들을 모두 잠식시킬 수 있는 아주 거대하고 확고한 큰 마음으로 다 덮어버릴 것처럼, 앞으로 4일은 그 무엇에도 흔들리지 않을 마음을 나는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고, 그것을 글로 쓰려고 했다. 하지만 그것은 거짓이다. 나는 그러한 마음을 갖고 있지도 않고, 그러한 능력도 없다. 나는 그저 흔들리면서 7월 29일 만을 바라보는 아주 작은 소시민 같은 사람이다. 나는 남은 기간도 불안하고 두렵고 지칠 것 같다. 그럼에도 무언가 하나 정도는 희망을 갖고 보내며 시간을 마주할 것 같다. 


선생님이 제일 태평하시다. 합격캠프 친구들 다 합격할 것 같다고 하신다. 평소에는 그런 말씀을 잘 안 하시는 분인데, 그 말이 나는 자꾸 머릿속에 남는다. 처음에는 용기를 주시려고 하는 말씀이라고 생각했다. 두 번째에는 내 성적이 어느 정도 올라왔다고 평가해 주신다고 생각했다. 세 번째에는 자신감이 필요해 보여서 필요한 말을 해주신다고 생각했다. 네 번째에는, 오늘은 그 말의 의미는 잘 모르겠지만, 매일 같이 나를 봐왔던 사람이 하는 말이니까 의미는 몰라도 믿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오늘 한 번 더, 다섯 번째에는 나는 나에게 확신이 없지만, 내가 합격할 것 같다는 말, 그 자체를 그냥 믿고 싶었다. 물론, 결과는 시험이 끝나봐야 아는 것이 맞다. 그리고 커트라인을 확인해 봐야 비로소 합격권 일지 아닐지 판단할 수 있다. 혹여나 선생님의 말이 맞다면, 필기시험 합격 그 이후를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필기시험이 가장 중요한 관문이겠지만 그 이후를 생각하지 않으면 순경 시험 때와 같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필기시험이 끝나면 그제야 비로소 1/3이 시작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시험이 한참 남았을 때에는 필기시험 합격 못하면 체력시험과 면접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말하곤 했다. 그런데 시험이 다가오니 필기시험만 바라보고 있으면 숨 막혀 죽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조금 더 멀리 바라보고 있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체력시험은 언제부터 준비할 것이며, 공부한다고 운동을 덜 했던 것을 어떻게 회복할 것이며, 면접은 어떻게 준비하며, 향후의 시간을 어떻게 생활화하며 루틴을 만들 것인지 차근차근 준비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쓸모없는 준비가 될 수도 있겠지만 대비 없이 맞이하고 싶지도 않다. 조금 더 앞을 바라보고, 그다음을 생각하며 남은 며칠을 보내야겠다. 


시험이 끝나고 돌아올 때의 내 마음은 어떤 마음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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