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개를 숙이고 시선을 낮춰야만, 삶이 풍요로워 집니다.
꽃향기를 맡기 위해선 고개를 숙인 뒤, 무릎을 굽혀 허벅지와 종아리가 기억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 뒤 꽃에 내 시선을 맞추고 얼굴을 꽃 앞으로 움직이면, 선명한 원색의 꽃이 눈에 들어옵니다. 눈을 감고 향기를 맡으면,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향기가 느껴집니다. 향기에서 달콤함까지 느껴집니다.
몸을 움직여 다시 자리합니다. 다른 꽃으로 다가가기 위함입니다. 때로 무엇인가에 다가서기 위해서는 허리를 구부려야 합니다. 무릎을 굽히고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야 합니다. 다가서기 위해서는 몸을 세우기보다 굽혀야 하고, 달리기보다 멈춰서야 하며, 높은 곳에 시선을 유지하기보다 시선을 아래로 낮춰야 합니다.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이 하교할 때, 집으로 되돌아오는 길이 오래 걸리는 까닭은 우리와 눈높이가 다르기 때문일 것입니다. 저 작은 아이들이 바라보는 세상은 원시안이기보다 근시안입니다. 눈높이가 낮기 때문에 가까운 곳에 집중합니다. 특히 아이들 특유의 호기심은 주변의 사물을 샅샅이 훑어보게 합니다. 개미의 움직임에도 눈을 떼지 못합니다. 작은 체구의 개미가 자신보다 더 큰 물건을 나를 때면, 마블의 영웅들을 본 듯 신기해합니다. 이런 아이들도 고학년이 되고 키가 크면서 세상을 다른 방식으로 바라보기 시작합니다.
걷고 뛰는 운동을 선호하지 않은 저라서 골프라는 운동을 한 적이 있습니다. 10여 년도 더 된 것 같습니다. 골프에서 득점하는 방법은 간단합니다. 정해진 횟수보다 공을 적게 쳐서 멀리 떨어진 홀에 넣는 것이죠. 지극히 간단한 것 같지만, 규칙이 많아서 생각보다 쉽지 않은 운동입니다. 멀리만 공을 보낸다고 다 되는 것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정확한 지점에 보내야 합니다. 만약 정해진 코스를 벗어나거나 웅덩이에라도 빠진다면, 벌타를 받게 됩니다. 방향을 잘못 잡아 수풀 속으로 들어가도 낭패입니다.
정확히 그린에 공을 올렸다고 해도 홀에 공을 넣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스포츠 뉴스에서 자주 보는 장면 중 하나가 채 1m도 되지 않는 홀에 골을 넣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해가 안 되죠. 수십 년을 골프만 한 선수들이 실패하는 모습을요. 또 하나 보게 되는 모습이 무릎을 꿇거나 몸을 구부려 공의 길을 살피는 것입니다. 힘만으로 구멍까지 공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길을 읽어 그 길로 공을 보내기 위함을 것입니다. 힘으로만 공을 친다면, 구멍을 통과하여 처음 위치한 곳보다 더 멀리 흘러갈 것입니다.
누군가에게 다가서기 위해선 몸을 구부려야 합니다. 구부린다는 것은 나를 낮추는 것이 아니라 골프에서 길을 읽는 것처럼, 그에게 다가서는 방식을 익히는 것입니다. 그가 살아온 방식을 읽는 것입니다. 그의 부족을 내가 가진 것으로 채워, 가득 채워지는 관계를 만드는 것이죠.
아이러니하게도 사람들의 부족함을 누구보다 잘 알아차리는 이들이 ‘사기꾼’입니다. 그들은 기가 막히게 무엇이 부족한지를 알아차리죠. 보통의 관계와 다른 점이 있다면, 부족한 사람들의 마음을 채우려고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부족함을 자극해서 자신의 이익을 채운다는 점입니다. 보통 사람들의 생각에는 말도 안 되는 설명이 솔깃함으로 작용하고, 그 솔깃함은 사기꾼들의 말을 통하여 확신이 됩니다. 욕망을 자극한 까닭입니다. 그런데요, 궁극적으로 채울 수 있는 것은 우리 자신의 욕망이 아니라, 사기꾼들의 이익입니다.
사이비 종교가 판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사이비 종교는 달콤하게 들려옵니다. 오늘보다 내일을 말하고, 지금의 삶보다 더 중요한 후생이 영생으로 준비되어 있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현생에서 어떤 고행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죽음도 불사합니다. 오늘 우리의 삶이 후생으로 나아가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삶은 지상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것을 다른 말로 중력이라고 부릅니다. 삶은 중력의 영향을 받습니다. 우리가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것, 관계, 의미, 가치들 모두가 저 중력의 영향권 내에 있습니다. 저는 후생 또한 중력 영향권 내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인드라의 구슬처럼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는 것이죠. 아이들이 잘 자라서 후에 멋진 어른이 되는 것처럼요.
삶을 차분하고 진지하게 바라볼 수 있는 여유가 필요합니다. 이익의 눈이 아니라 마음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하는 것이죠. 뺏기보다 채우려는 눈으로, 시기하고 질투하기보다 감사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봐야 합니다. 매일 감사 일기를 쓴 사람의 성공담이 질투한 사람보다 더 많은 것은 우리 삶이 연결되어 있다는 증거입니다. 실제로 우리는 질투하는 사람보다 감사하는 사람을 더 좋아합니다. 감사하는 사람들에게 마음을 열게 되어있습니다. 이처럼 진심으로 고개 숙이고 무릎 꿇을 때 우리에게 새로운 기회가 열립니다. 지상을 의지하여 사는 우리이기에 지상과 가까워져야만, 시선을 낮춰야만, 삶은 풍요로워집니다.
2009년에 계간 시인시각으로 등단하여 작품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2016년 첫 아이를 잃은 슬픔을 담은 『아이의 손톱을 깎아 줄 때가 되었다』(시인동네, 2016년)를, 2020년 위로의 시편을 담은『당신이 아니면 나는 아무것도 아닌 사람』(걷는사람, 2020년)을 출간했습니다. 매일 새벽에 일어나 한편의 산문을 쓰고 인스타그램을 통해서 공유합니다. 브런치를 통해서는 일주일에 한두편, 재미있는 산문을 중심으로 원문을 연재합니다.
주영헌 시인의 인스타 https://www.instagram.com/jooyounghe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