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안녕히 잘 주무시고 계시죠.
방학 때면, 보은 할머니 집을 찾았습니다. 그곳에서 길게는 한 달, 짧게는 몇 주를 보내고 왔죠. 요즘 생각하면, 컴퓨터나 인터넷도 없었고 군것질거리를 파는 변변한 슈퍼도 없었기에 정말로 재미없는 곳이었지만, 스스로 노는 법을 알았던 때이기에 외사촌 형이 있는 시골은 즐거운 곳이었습니다.
불만이 하나 있었는데, '음식'이었습니다. 할머니는 음식을 참 못했습니다. 할 줄 아는 음식이 거의 없었죠. 당시 할아버지는 작은할머니와 수원에서 사셨습니다. 명절이나 되어야 오셨죠. 제가 알기로는 할머니와 결혼을 하고 몇 해 지나지 않아서 작은할머니와 살림을 냈다고 합니다. 할머니는 밥을 차려줄 남편도 없고 사내아이들 세 명만 데리고 있었으니, 음식을 제대로 배우지 못했던 것이죠. 외도는 분명 할아버지가 벌인 일이었지만, 증조할머니는 할머니 탓을 하셨다고 하네요. 제게는 인자하셨던 두 분이셨지만, 각기 며느리들에게는 그렇게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습니다.
해가 지면 이른 저녁을 먹고, 할머니는 TV를 켰습니다. 그리고 TV가 떠들기 시작하면, 본격적으로 꾸벅꾸벅 졸기 시작하셨죠. 저는 TV를 보는 것인지 잠을 자는 것인지 알 수 없었습니다. 저녁이 내리면 크게 할 일도 없었기에 나는 꾸벅꾸벅 조는 할머니와 TV를 번갈아 보면서 시간을 보냈습니다.
잠속에 깊이 빠진 것 같으면 TV를 껐습니다. 저도 슬슬 잠자리에 들어야 하니까요. TV를 끌 때마다 할머니는 바로 알아차렸습니다. 가끔 TV를 다시 켰기도 하셨고, “저 잘 거예요, 할머니”라고 말하면, 그때서야 이불에 누워 잠이 드셨죠. 할머니 모습을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모습이 TV를 보면서 조는 모습입니다. 그렇다면 저는 아이들에게, 아이들의 아이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기억될까요. 조용히 앉아서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아빠, 할아버지로 기억되고 싶은데요, 지금처럼만 하면, 기억될 수 있을까요.
제가 할머니를 닮아가는 것이 하나 있는데요, 초저녁잠입니다. 직장에서 퇴근하고 집에 오면 대략 6시쯤 됩니다. 집안일을 정리하고 저녁까지 먹으면 7시 무렵이 되는데요, 몸의 무게추가 아래를 향하기 시작합니다. 왜 이렇게 몸이 무거워지는지 모르겠습니다.
한때는 훨씬 이른 잠자리에 들기도 했습니다. 8시 무렵 잠이 들면, 새벽 4시 무렵 잠에서 깨게 되더군요. 너무 이른 시간입니다. 책도 읽고 글도 쓰는 시간을 보낼 수 있어서 좋기는 했는데, 새벽부터 에너지를 쏟아버리니, 일과시간이 힘겨워졌습니다. 그리고 저녁은 참을 수 없는 시간이 되어 버리고 말죠. 그래서 취침 시간을 바꿨습니다. 9시~10시 사이에 취침, 5시쯤 일어나는 것으로요. 이렇게 바꾸고 나니, 저녁 시간을 한·두 시간 정도 사용할 수 있습니다.
나이 들면 자연스럽게 아침잠이 줄어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를 불변의 법칙처럼 생각했는데요, 제가 틀렸습니다. 일찍 자니까요, 일찍 일어나는 것입니다. 보편이라고 얘기하기는 어렵지만, 제 경험에 따르면 그렇습니다. 일찍 일어나니까 제 할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저녁에 꾸벅꾸벅 졸고요, 다시 새벽에 누구보다 빨리 일어나더군요.
이렇듯 할머니를 생각하며 글을 쓰니 저에게만은 한없이 다정하셨던 할머니 모습이 그리워집니다. 삶이 바쁘다는 이유로 돌아가시기 전에는 자주 찾아뵙지도 못했었는데요. 단 며칠이라도 초등학교 시절로 되돌아가, TV를 보며 꾸벅꾸벅 조는 할머니 모습을 바라보며 저도 함께 잠에 빠져들고 싶습니다. 안녕히 잘 주무시라는 얘기도 다시 해드리고 싶습니다.
2009년에 계간 시인시각으로 등단하여 작품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2016년 첫 아이를 잃은 슬픔을 담은 『아이의 손톱을 깎아 줄 때가 되었다』(시인동네, 2016년)를, 2020년 위로의 시편을 담은『당신이 아니면 나는 아무것도 아닌 사람』(걷는사람, 2020년)을 출간했습니다. 매일 새벽에 일어나 한편의 산문을 쓰고 인스타그램을 통해서 공유합니다. 브런치를 통해서는 일주일에 한두편, 재미있는 산문을 중심으로 원문을 연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