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누군가 간신히 적어나간, 흘려 쓴 문장
하루에 한 번 이상 세탁기를 돌립니다. 가족이 다섯이나 되니 하루에 나온 빨래가 빨래 통에 가득합니다. 수건도 하루에 열 개 이상을 세탁합니다. 속옷부터 시작해서 겉옷까지 빨래의 종류도 다양합니다. 그런데요. 옷과 수건만 세탁하는 것이 아닙니다. 옷과 함께 딸려 들어간 다양한 사물도 세탁의 대상이 됩니다. 종이, 이어폰, 동전, 돈 기타 등등의 것들.
만 원짜리 한 장과 천 원짜리 한 장을 세탁기에서 주웠습니다. 누구의 것일까요. 주인은 금방 찾았습니다. 큰 딸이었습니다. 식탁을 누가 어질렀는지, 설거지통의 주인은 누구인지 쉽게 나타나지 않지만, 집 안에서 잃어버린 돈의 주인은 금방 나타납니다. 아니, 너무 많이 나타나서 문제입니다. 찾은 지폐는 하나인데 주인은 둘 이상입니다. 딸에게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벌써 돈세탁하면 어떻게 하니” 내가 의미한 돈세탁과 딸이 알아들은 돈세탁은 개념이 다를 것입니다. 딸은 돈세탁이라는 의미를, ‘세탁기에 넣어 돈을 빨다’라는 의미로 받아들였겠죠. 세탁기에 넣어 빤 돈이 깨끗해 보이는 것은 누구나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볼펜도 세탁기로 흔하게 빨래하는 물건 중 하나입니다. 그런데요. 펜을 빨면 가끔씩 고약한 일이 벌어지기도 합니다. 옷에 잉크가 번져버리는 것이죠. 옷에 번진 잉크는 고약해서 다시 빨아도 빨리지 않습니다. 락스에 담궈도 지워지지 않는 경우가 태반입니다. 잉크뿐일까요. 삶의 문장들도 고스란히 옷의 안과 밖에 얼룩으로 남겨지는 것은 아닐까요.
작가와 직장인으로서의 이중생활을 하는 저는, 삶 속에서 글의 소재와 만납니다. 내 글을 읽는 다수의 분들이 “내 얘기를 하고 있어요”라고 말하는 까닭도 그것에 있습니다. 직장에서 일을 할 때면, 일에만 집중하므로 직장인으로서 삶만을 살지만, 일의 경계를 뛰어넘어 문득 생각이 떠오를 때가 있는데요, 그럴 때면 노트나 포스트잇에 급하게 생각을 씁니다. 잠을 자려고 누웠다가 생각이 떠올라서 몸을 일으키는 때도 많습니다. 잠자기 전 독서를 하는 습관 때문에 발생한 일인데요. 책이 나에게 전달해 준 의미가 몸속에서 화학 작용을 일으켜, 뜻밖의 생각과 만나게 해 줍니다.
잠을 자다가 눈을 떴을 때 어떤 생각과 만나기도 합니다. 이런 경우는 흔치 않지만, 간혹 있습니다. 몸을 일으켜 불을 켜고 책상에 앉아 정성스럽게 글을 써도 되지만, 생각이 휘발될까 걱정됩니다. 그럴 때면 어두운 상태에서 주변에서 볼펜과 종이를 찾아 글을 씁니다. 글을 쓰고 난 뒤 불을 켜고 그 글씨를 읽을 때도 있고, 다 기록했다는 안도감에 잠을 청할 때도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쓴 글씨는 알아볼 수 있으면 천만다행입니다. 겹쳐 쓴 글씨도 있고, 자음과 모음이 분리된 경우도 있습니다.
급하게 쓴 글씨들이 또박또박 쓰여질 리 없습니다. 일상을 돋움체나 궁서체로 기록하는 사람이 있을까요. 흘림체가 일상의 온전한 기록입니다. 삶을 자신의 필체로 보관하고 싶을 때, 흘림체로 하루를 종이에 옮겨 씁니다. 그래서요 삶을 흘림체라고 말하는 시인들이 많은 듯합니다.
그런데요, 오래된 흘림체를 다시 읽으면, 내 글씨라도 읽기 어려울 때가 있습니다. 경험에 기대보면, 이 경우 글씨체의 문제이기 보다 ‘의미의 문제’가 더 클 것입니다. 아무리 흘림체라고 해도, 문장이나 단어는 읽어낼 수 있습니다. 문제는 어떤 까닭에 이 단어와 문장을 썼는지 기억나지 않아서 최초의 의미에 접근할 수 없다는 점이지요. 기록이란 나의 삶을 문자로 바꿔 쓰는 행위인데요, 미래에 의미를 다시 떠올릴 수 없는 기록이라면, 그것을 무엇이라 부를 수 있을까요. 낙서라는 단어가 가장 적당할 것 같습니다.
우리의 하루하루 낙서에 가까울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세탁기 속의 펜처럼 번져 버린 잉크일 수도 있고요. 시간이 지나면, 지나온 세월은 과거라는 한 단어로 갈음되어 버립니다. 중요한 사건만 기억에 남고, 나머지는 기억 속에서 흐릿해져 버리기 때문이죠. 그렇다고 삶의 의미까지 사라져 버린 것은 아닙니다.
우리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그 증거입니다. 얼마나 성실히 삶을 기록하며 살아왔는지는, 오늘 나의 모습과 주변을 둘러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말이 있죠. 사람을 판단하기 전에 그 사람의 주변을 둘러보라고요. 세상은 무수한 빈 종이의 공간이어서 투명한 글씨든 검정글씨든 유·무형의 방식을 떠나 기록되기 마련입니다. 행위의 당사자만 모를 뿐이죠. 때가 되면, 세상이 나를 증명해 줄 것이라는 믿음을 갖는 까닭이기도 합니다.
2009년에 계간 시인시각으로 등단하여 작품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2016년 첫 아이를 잃은 슬픔을 담은 『아이의 손톱을 깎아 줄 때가 되었다』(시인동네, 2016년)를, 2020년 위로의 시편을 담은『당신이 아니면 나는 아무것도 아닌 사람』(걷는사람, 2020년)을 출간했습니다. 매일 새벽에 일어나 한편의 짧은 산문을 씁니다. 50여편 정도의 산문을 모아서 산문집 출간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