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도 못 가고 뒤로도 못 가지

앞으로도 못 가고 뒤로도 못가면 어디로 가야하나

by 주영헌


초등학교 때부터 대전에 살았습니다. 제 고향은 보은이지만, 유년 시절을 보낸 곳은 대전입니다. 교육열 때문인지 아니면, 시골을 답답해했던 젊은 날의 부모님의 마음 때문인지 알 수는 없지만, 줄 곳 그러했습니다. 처음 일 년은 아버지가 예멘의 공사 현장으로 떠난 뒤였고, 어머니는 농사를 지어야 했기에 할머니가 제 보호자 역할로 하셨습니다.


부모님이 대전에 정착한 이후 할머니는 시골로 되돌아가셨습니다. 도시는 답답하다고 하셨죠. 방학 때면 시골로 내려가 한두 달을 같이 보냈기 때문에 어린 저는 우리 집에서 할머니가 같이 살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결혼한 후 다시 생각해보면, 내가 어머니의 입장을 헤아리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저에겐 좋은 할머니였지만, 어머니에겐 시어머니였으니까요.


할머니는 장수하셨습니다. 아흔이 넘게 사셨죠. 할머니의 어머니도 장수하셨습니다. 집안의 내력인 듯합니다. 진 증조할머니를 여러 번 뵈었는데요, 두 분이 참 많이 닮으셨습니다. 작은 키에 얼굴도 자매처럼 닮았습니다. 두 분 다 돌아가시기 전에 치매를 앓았는데요, 삶에서 가장 안타까운 시간이 저 말년의 시간이었을 것입니다.


치매를 우리는 파킨슨 씨의 병이라고 부릅니다. 우리는 뭉뚱그려 같은 말처럼 사용하는데요, 이 두 개의 용어는 유사하지만 다르점도 있습니다. ‘파킨슨병’은 병명이고 치매는 병의 통칭이며 현상을 말합니다. 치매란 ‘지능·의지·기억 등 정신적인 능력이 현저하게 감퇴한 것’을 말합니다. 파킨슨병은 정신적인 질환이기보다 운동장애입니다. 그런데요, 파킨슨병을 앓는 분 중에 치매를 앓고 계시는 분들도 많아서 두 병을 혼용해서 부르기도 합니다.


할머니는 돌아가시기 전까지 수년간을 치매를 앓았습니다. 처음에는 부모님께서 집에서 모시다가, 병증이 심해지자 집 근처의 요양원으로 모셨습니다. 부모님은 대추 농사도 지어야 하고 나이도 적지 않아서 할머니를 모실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이죠. 삶의 분주함 때문에 가끔 할머니를 찾아뵙고 인사를 드리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천천히 저를 잊더니 나중에는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마지막까지 기억했던 동생이 둘째였는데, 저보다 오래 할머니와 지냈기 때문일 것입니다.


기억을 잃은 할머니가 어느 날 반복해서 말씀하시던 문장이 아직도 제 머릿속에 둥둥 떠오릅니다.

“앞으로도 못 가고 뒤로도 못 가지…”


할머니의 상황을 이보다 더 잘 설명할 수 있는 말이 어디 있을까요. 할머니뿐만이 아니라, 우리의 상황과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어떤 거부할 수 없는 억압의 상황에서 우리는 전진도 후퇴도 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됩니다. 그것이 심리적일 수도 있고 물리적일 수도 있습니다. 삶에서 어쩔 수 없는 순간을 반복적으로 마주하게 됩니다. 앞으로도 못 가고 뒤로도 못 가는 안타까운 상황. 할머니가 마주했던 순간은, 의지를 상실한 이후의 순간이라 묵묵히 견디는 것이 최선이었을 것입니다. 우리가 묵묵히 오늘을 견디는 것처럼.


저도 나중에 같은 상황을 마주할 수 있습니다. 건강관리를 잘하면, 조금이나마 시간을 늦출 수 있겠지만, 치매는 노력만으로 극복할 수 있는 질병이 아닐 테니까요. 그렇다고 벌써 걱정할 필요는 없겠죠. 불안과 걱정이 치매를 앞당길 수도 있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삶을 긍정하며, 열심히 쓰는 일입니다. 꾸준히 책 읽고 글 쓰는 것도 치매 예방의 좋은 운동의 일환이라고 하니까요. 어쩌면 치매에 걸리기 전에 유명을 달리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시 쓰기가 가혹한 정신노동이었기 때문일까요. 시인 중에는 일찍 생을 마감하신 분이 유난히 많습니다.




2009년에 계간 시인시각으로 등단하여 작품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2016년 첫 아이를 잃은 슬픔을 담은 『아이의 손톱을 깎아 줄 때가 되었다』(시인동네, 2016년)를, 2020년 위로의 시편을 담은『당신이 아니면 나는 아무것도 아닌 사람』(걷는사람, 2020년)을 출간했습니다. 매일 새벽에 일어나 한편의 산문을 쓰고 인스타그램을 통해서 공유합니다. 브런치를 통해서는 일주일에 한두편, 재미있는 산문을 중심으로 원문을 연재합니다.


keyword
이전 06화삶의 무게를 나눌 때 행복은 안전해 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