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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현수 Mar 08. 2017

보더 행성주의자의 몰락

1.

루드카야비 은하력 3426년, 보더행성에서 루드카야비 연맹 특조단이 조사와 처벌을 완료한 뒤 보더를 떠났다. 뒤이어 보더는 곧바로 새로운 총리의 선출을 위한 선거절차에 들어가게 되었다. 비록 연맹 특조단이 그 어떤 권력에도 예외 없는 칼을 가차 없이 휘둘러 수많은 권력자와 부역자들을 청산했음에도 운 좋게 처벌의 칼날을 피한 자들이 남아 있었고, 죽은 총리 라마드를 추종하던 자들 또한 남아있었다. 사실 이러한 추종자들은 특조단으로서는 어찌할 수 없는 것이 이들은 권력자나 범죄 당사자가 아닌 그저 그들을 따르던 보더의 자연인에 불과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라마드나 시리의 유착과 부정부패, 부역자들의 죄가 밝혀지자 이러한 추종자들 대부분은 정의와 진실에 눈을 떴으나 그렇지 못한 무지몽매한 자들이 여전히 남아있었다. 이들은 매우 극단적인 행성주의자들로, 라마드의 아버지가 그리했듯 강력한 권력자의 철권독재체제를 이상향으로 여기는 시대에 뒤떨어진 자들이었다.


이들은 행성인에게 자유는 사치, 방종일 따름이며 오직 뛰어난 자가 강력한 권력을 쥐고 통제와 통치를 실시해야만 한다고 굳게 믿었다. 그것이 곧 보더행성 전체를 위한 길이며 나아가 보더인을 위한 일이라 믿는 자들이었다. 그를 위해 개인이 희생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여겼다.      


물론 전 총리였던 라마드는 그런 뛰어난 자와는 거리가 먼 무능력한 인물이었으나, 이들은 위대한 아버지를 둔 것보다 더 나은 능력은 없다는 논리를 내세웠다. 피는 속일 수 없다는 것이다.


보더행성이 썩은 권력자에 대한 원성으로 들끓어대고, 특조단이 활동할 때만 해도 이들은 그저 침묵을 지킬 따름이었다. 그러나 특조단이 떠나자마자 어둠 속에서 기어 나오는 해충처럼 스멀스멀 제 존재를 부각시켰다. 또한 아직 남아 있는 부역자들은 이들의 존재를 발판 삼아 또다시 권력을 쥐기 위한 마수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중 대표적인 인물이 교아니였다. 교아니는 보더의 부총리로 라마드를 그림자처럼 따르던 자였으나 이번 사건에 직접적인 혐의점이 발견되지 않는 바람에 특조단의 칼날을 피했다. 물론 많은 사람들은 라마드의 부정부패를 알고도 모른 척했을 거라는 비난을 했지만, 교아니는 그저 부총리로서 라마드가 시키는 일을 했을 뿐이라고 변명했다. 더하여 루드카야비 특조단은 부총리가 라마드의 사망 이후, 총리대행을 맡고 있었으니 더 이상의 혼란을 피하기 위해 엄격한 조사를 하지 않았다는 설도 있었다.     


아무튼 조사기간 동안, 조용히 납작 엎드려 있던 교아니는 특조단이 떠난 뒤 조금씩 제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혐의가 가벼운 몇몇 부역자들을 총리대행의 특권을 이용해 사면을 해주는가 하면, 특조단이 떠난 뒤 거의 박살이 난 행성주의 여당에 가입하는 것도 모자라 끝내는 새로운 총리후보로 나서기에 이르렀다. 라마드를 지지하던 극단적 행성주의자들은 이제 교아니가 라마드의 유지를 이었다며 응원하고, 따르기 시작했다.     


다수의 보더인들이 교아니 또한 라마드의 부역자이자 청산대상으로 여기고, 최소한의 양심이 있다면 연일 부총리와 총리대행 자리에서 물러나라며 탄핵을 외치고 있는 모습과는 정반대의 행보였다.      


2.

한창 시끄러운 와중에 커다란 스캔들이 터졌다. 총리 후보로 나서기 위해서는 많은 선거자금이 필요하며 자금원이 필수적이다. 그나마 행성주의 여당의 자금줄이던 기업들이 줄줄이 라마드와 시리에게 엮여 총수가 구속 및 수감되고, 각종 비리와 세무에 관해 조사를 받으며 홍역을 치르고 있는지라 정치인이 아닌 공직자 교아니로서는 자금원이 요원했다.      


그런 교아니를 위해 행성주의 여당이 나서서 정치자금을 모금했는데 놀랍게도 엄청나게 많은 금액이 모금되었다. 애초에 정치적 기반이나 대중적 인지도가 낮은 교아니였던 만큼 합리적인 의혹을 샀다. 도대체 저 돈이 다 어디서 생긴 걸까? 합리적 의심이 생긴 보더의 유력 주간지 보더유니버스의 기자 누지지는 교아니의 선거자금을 추적하게 되고, 엉뚱하게도 보더가 아닌 다른 행성, 이치에서 선거자금의 대부분이 흘러들어왔음을 확인하게 된다.     


누지지는 이치까지 가서 그러한 자금의 근원을 끈질기게 추적한 끝에 마침내 대형 특종을 터트린다. 우선 이치는 과거 보더의 모든 부정부패사건의 중심인 시리가 잠적하고 있던 곳이다. 누지지는 여기서 힌트를 얻어 조사한 결과 아직도 남아있는 시리의 차명계좌가 있고, 시리의 계좌를 관리하는 자 또한 건재하고 있었음을 밝혀낸다.     


즉 교아니의 정치자금이 시리의 주머니에서 나왔다는 것이다. 시리는 영원한 징역형으로 후프에 갇혀 있는데 대체 그 대리인은 왜 교아니의 정치자금을 지원했을까? 그렇다. 어쩌면 이것은 시리의 대리인과 모종의 거래가 성립했을 수도 있음을 단적으로 추론할 수 있는 정황이었다.     


이러한 사실이 알려지자 보더인은 재차 분노할 수밖에 없었다. 여전히 라마드와 시리의 썩어 문드러진 암세포의 일부가 남아 증식을 시도하고 있음이다. 거기다 적어도 20년 안에는 루드카야비의 특별조사단을 호출할 수도 없다. 그건 행성이 외부의 힘이 아닌 자력으로 위기를 극복하고 바르게 진보해나갈 수 있는 자생력을 부여하기 위한 특조단의 내부 수칙이었다. 즉 보더인들은 이제 남아 있는 종양을 직접 수술해내야 했다.     


마침내 엄청난 숫자의 보더인들이 직접 광장으로 나와 교아니의 퇴진과 검찰조사를 부르짖기 시작했다. 보더인들은 한 차례 대의적 합의를 거쳤고, 이제 스스로 옳다는 확신이 있었다. 그리고 차근차근 기능을 회복해가는 보더의 정부와 사법체계는 충분히 정당성을 가지고 있다고 여겼기에 매우 평화적으로 자신들의 메시지를 전달했다.     


보더의 야당들은 그러한 여론에 힘입어 교아니의 퇴진을 행성의회에서 결의하기로 합의했다. 당연, 여전히 남아있는 여당의 의원들은 이를 극렬히 반대하고 나섰다. 보더의 민주주의와 정의를 들먹이며 이것은 명백한 소수여당에 대한 탄압이며 보더에서 행성주의를 몰아내려는 시도이자 공작이라며 맞불을 놓았다.     


그들은 매우 필사적이었기에 야당으로선 주춤할 수밖에 없었다. 여당은 이게 마지막인 듯 더욱 발악하기 시작했는데, 그 시작은 보더 유니버스의 기자 누지지를 고소하는 것으로 출발했다. 부총리인 교아니에 대한 명예훼손과 허위사실 유포라는 것이다. 물론 누지지는 당당히 모든 증거가 갖춰져 있다며 법정에서 만나자고 응수했다.     


이게 끝이 아니었다. 행성주의 여당은 매일 같이 시위를 벌이는 보더인들에게 맞서 자신들을 지지하는 행성주의자들을 자극하고 선동하기 시작했다. 효과가 있었다. 물론 모금된 정치자금을 이용, 돈으로 시위대를 조직한다는 소문이 있었지만 어쨌거나 생각보다 꽤 많은 이들이 광장에 모이기 시작했다.      


결국 광장은 두 가지 목소리로 양분됐는데, 보더인들이 자발적으로 나선 교아니의 퇴진과 검찰조사를 촉구하는 시위와 극렬한 행성주의자들의 교아니 퇴진 결사반대 시위였다. 경찰들이 배치되고 시위대는 각자의 영역에서 주장을 펼쳤다. 허나 행성주의자들의 시위 방식은 보통의 보더인들과는 확연히 달랐다.      


행성주의자들은 일단 행성기를 전면에 내세웠으며, 자신들이 진정 행성을 사랑하는 자들이라는 기치아래 매우 폭력적인 언사와 행동을 하곤 했다. 경찰들은 이들의 그러한 행동에 매우 소극적으로 대처했는데 어쩌면 여전히 총리대행 자리에서 버티고 있는 교아니의 입김이 작용한 것인지도 몰랐다.     


그러한 탓인지, 행성주의자들의 언사와 행동은 날이 갈수록 점차 도를 넘어서고 있었다. 심지어 행성주의자들의 시위에 참여한 여당의원들까지도 거기에 발을 맞추어 ‘행성주의 정부건설’은 물론 ‘혁명’과 ‘내전’이라는 말까지 심심찮게 떠벌이곤 했다. 물론 적어도 아직까진 시위대 간의 실질적인 충돌은 없었으나 일촉즉발의 위기는 늘 존재했다.     


야당들도 가만히 있지만은 않았다. 마침내 여당의 방해를 뚫고 의회에 입성, 교아니 탄핵법안을 발의하고 통과시키기에 이르렀다. 이와 동시에 교아니의 직무권한이 정지되고, 행성재정부 장관이 뒤를 이어 권한을 대행하기 시작했다.     


동시에 기자 누지지와 야당의 의원들은 교아니를 불법선거자금 축재로 고소했고, 이치행성에도 협조공문을 보내 검찰수사를 진행하기 시작했다. 이제 진짜 보더인들만의 싸움이 시작된 것인지도 몰랐다.     


3.

행성주의자들의 시위는 교아니의 검찰조사가 보도된 이후 더욱 격렬한 양상을 띠기 시작했다. 여당 의원들도 여기에 앞장서서 의회의 탄핵결정과 검찰조사에 반발하여 연일 발언을 쏟아냈다. 거기에 여전히 지지부진한 이치행성의 수사협조 탓에 자금줄 또한 끊이지 않아 산발적으로 시위가 곳곳에서 벌어지고, 의회와 검찰에 대한 테러위협행위, 더하여 가짜뉴스까지 배포되는 등 조직적인 움직임이 포착되었다.     


허나 이와 같은 극단적 행성주의자는 어차피 많이 잡아야 보더 전체 인구의 4% 남짓한 숫자였고, 나머지 96%는 이와 같은 행동에 손가락질을 하는 것이 사실이었다. 그럼에도 이들은 연일 자신들이 보더행성의 주류이자 정의이자 애성인들이라 자부하며 온갖 방법으로 자기기만을 해댔다.     


어쨌거나 교아니는 탄핵절차에 들어갔고, 검찰조사를 받게 됐다. 시류는 보더인들 다수가 원하는 정의대로 흘러가는 것처럼 보였고, 96%의 다수는 추가적인 행동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았기에 광장에는 행성주의자가 훨씬 더 많았다. 때문에 이들은 자신들의 주장이 정말로 옳기에 더 많은 숫자가 모여들었다는 착각을 하고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리하여 행성주의자들은 결국 교아니에게 구속영장이 발부되는 날, 나무를 창끝처럼 뾰족하게 자르고, 거기에 행성기를 매달아 일명 행성기창을 준비해 광장에 결집했다. 당장이라도 유혈사태가 벌어질 수 있는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야당 측에선 이들을 이끄는 행성주의 여당 측에 협상을 제시하게 됐다.


야당은 무기만은 내려놓으라 청했고, 여당은 당장 교아니의 탄핵과 검찰조사를 중단하라 요구했다. 물론 말도 안 되는 요구였다. 이미 법정에서도 교아니의 죄를 인정했기에 영장을 발부한 것이다. 이들은 행성법이 아닌 자신들의 기준과 논리에만 집착하고 있을 뿐이었다. 결국 협상은 결렬됐다.    

  

마침내 보더인들의 분노도 폭발했다. 도무지 더 이상은 저들의 만행을 참아줄 수 없다는 여론이 득세했다. 광장에 또다시 엄청난 숫자의 보더인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이를 지켜보는 여당의원들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사실 여당의원들의 속셈은 이랬다. 되도 않는 요구를 하고, 온갖 막말과 욕설, 폭력적 행동을 통해 보더인을 자극해 행성주의자들을 공격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 다음엔 그들의 폭력행위에 대해 물고 늘어질 셈이었다. 당연 양심적인 보더인들은 이에 관해 성찰과 반성을 하게 될 것이고, 그 민의와 본질이 흐려질 터였다. 이런 방식으로 여론을 무마시키고, 정치공세를 이어갈 계산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일은 생각지도 않은 방향으로 흘러갔다.  

    

광장에 모이는 보더인의 숫자가 이전의 시위와는 궤를 달리했다. 혹 행성주의자를 제외한 96%의 보더인이 전부 움직이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광장을 꽉 채우고도 모자라 파도처럼 밀려드는 보더인들은 점점 더 늘어나기만 했다.      


물론 그렇다고 행성주의자들이 기가 죽진 않았다. 여당 의원들도 한 사람 빠짐없이 전부 광장에 모여 있었고, 경찰도 바리케이드를 쳐주었으므로 큰 문제는 없을 터였다. 이들은 더욱 큰 소리를 내고 행성기창을 휘두르며 근처에 있는 사람을 위협했다.    

 

그리고 마침내 여당의원들이 노리던 상황이 벌어졌다. 행성기창에 팔이 베인 한 청년이 그만 분을 못 참고 제 팔을 찌른 행성주의자의 창을 빼앗은 다음, 발로 배를 뻥 걷어차 버린 것이다. 행성주의자들은 오랜 과거 그들이 숭배하던 독재자의 시대를 향유하던 자들인지라 대부분 노쇠하고 늙어빠진 이가 대부분이었다. 얻어맞은 자도 마찬가지였다.      


여당의원들은 옳다구나 하고 몰려가 청년을 붙잡았고, 청년은 당황하여 안절부절 못했다. 행성주의자들이 청년을 둘러싸고 무대를 향해 데리고 가는데 그 모습을 보더인들이 목격했다. 청년을 놓아주라 요구했으나 행성주의자는 듣지 않았고, 마침내 보더인들 몇몇이 청년을 구하기 위해 뛰어들었다. 싸움이 벌어졌다. 허나 말했듯 행성주의자들은 내일 당장 쓰러져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노인들이 대부분이다. 상대가 될 턱이 없었다. 하지만 이들은 무기를 들었다.      


마침내 행성주의자가 내지른 창에 보더인 하나의 배가 찔렸고, 또 하나는 어깨가 찔렸다. 피를 본 보더인들은 흥분해서 달려들었고, 경찰은 뒤늦게야 현장에 도달해 싸움을 말리려고 했지만 이미 상황은 걷잡을 수가 없었다. 싸움이 연쇄적으로 얽히며 들불처럼 번져갔다. 성난 보더인들의 물결이 행성주의자들을 휩쓰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싸움은 금방 끝이 났다. 행성주의 여당과 행성주의자 전원, 한 사람도 남김없이 끔찍하게 찢기고 얻어맞은 시신이 되어 바닥에 널브러져 짓밟혔다. 극도로 혼란한 상황이었던지라 누가 누굴 때리고, 누가 누굴 죽였는지 알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행성주의자들을 전부 휩쓸고도 분노한 보더인의 물결은 계속 순환하고 있었다. 광장은 그러한 물결로 끝없이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나, 결국 이날 죽은 자들은 그냥 그렇게 죽게 됐다. 그렇게 보더에서 행성주의자들이 사라져버렸다. 다만 보더인들은 이들의 명복만은 빌어주었다. 사실 그들의 죄는 그리 대단찮을지도 모른다. 그들의 죄는 무지했으며, 그릇된 자를 따르고, 그릇된 말에 선동되었으며, 그릇된 사고를 지니고 있었을 뿐이다. 하지만 그들의 무지는 그것이 당연히 목숨을 걸어야 할 만한 일이라는 것 또한 모르고 있었을 것이다.     


교아니는 검찰조사 결과, 그 죄가 낱낱이 드러났다. 예상대로 교아니는 시리에게 선거자금을 지원받는 대신 비밀리에 시리를 영원한 징역형에서 풀어주기로 약속했다는 것 또한 드러났다. 교아니 또한 영원한 징역형에 처해질 확률이 높았다.


시리는 예외적으로 의회 의결을 통해 이제는 사라지고 없는 소멸형을 추가로 받게 됐다. 이는 말 그대로 미믹에 담겨 있는 정신마저 소멸시켜 완전히 세상에서 사라지게 하는 것이다. 여전한 시리의 위험성이 드러났으니 그에 합당한 조치가 필요하다는 논리였다. 남은 시리의 차명계좌에 은닉재산도 지속적인 추징에 들어갔다.

     

아무튼 보더의 역사서엔 이렇게 또 하나의 새로운 역사적 사건이 기록됐다. 어쨌거나 수많은 이들의 죽음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고 비극이라 할 수 있다. 이 또한 앞으로의 역사가 평가해줄 터였다. 보더인들은 다시 일상으로 돌아갔다. 이제부턴 오롯이 자신들의 뜻과 손으로 만든 행성의 미래를 지켜보고 기다리는 일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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