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일기, 일곱 번째 : 요가 강사 친구에게 배우 교훈
며칠 전, 고등학교 때 친하진 않았지만 잘 알고 지냈던 친구를 만났다. 졸업 10년 만에, 서울에서 열린 고등학교 동창의 결혼식에서 만난 우리는 다른 친구들과 1박2일로 서울의 한 숙소를 빌려 짧은 여행을 떠났다.
사실 그 친구는 내 고등학교 시절 기억 속에 크게 남아있지 않다. 그냥 평범한 친구였고, 조용히 학교를 다니며, 무리 속에 있는 하얀 친구였다. 뭔가 뿌옇다고 할까. 오랜만에 만났을 때도 뿌옇고 희미한 느낌은 그대로였다. 10대의 끝에 헤어져 20대의 끝자락에서 다시 만난 만큼 공감대도 달라 고개를 갸우뚱할 때도 있었다.
그런데 그 친구가 갑자기 밝게 빛나게 보이기 시작한 건, 바로 자신의 일에 대해 말할 때였다. 회사를 다니다 그만둔 뒤 1년 전부터 요가 강사를 시작했다는 친구는 숙소에서 자고난 다음날 아침 ‘효리네 민박’처럼 일일 요가 교실을 열었다. 나는 당장 보내줘야 할 글이 있어 요가를 하지 않고 옆에서 구경만 했다. 숙소 거실에 자리를 잡자 “이제 존댓말로 할게”라며 요가를 시작한 친구는 눈빛부터 달라졌다. 친구는 프로페셔널한 모습으로 친구들의 자세를 봐주고, 요가를 이끌어갔다. 수강생은 단 두 명, 전날 밤 술자리의 영향으로 퉁퉁 부은 친구들이지만 웃음기 대신 요가를 향한 진지한 자세가 거실 공기를 데웠다. 그 공기 속에서 친구에서 나는 빛을 보기 시작했다. 친구는 힘든 자세에 낑낑거리는 우리들에게 말했다.
요가는 유연성이 중요한 게 아니야. 자세에 집중하고, 자신의 호흡을 제대로 찾는 것이 중요하지.
요가를 향한 편견도, 그 친구에 대한 선입견도 깨졌다. 이후 우리는 서촌 거리를 함께 걸으며 이야기를 조금 더 나눴다. 요가를 시작한 이유부터 현재 삶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친구의 목소리엔 만족감이 묻어 나왔다. 요가 덕분에 10년 동안 앓았던 피부 습진이 나은 이야기, 엄마의 강요로 요가를 시작한 학생의 마음을 연 이야기, 요가 강좌를 구성하는 이야기 등등 친구는 아직도 배울게 많다며 신이 난 듯 여러 이야기를 속사포로 들려줬다. 어제까지만 했던 뿌옇던 친구의 모습은 물기 가득한 생화처럼 선명해졌고, 그만의 아우라를 형성하기 시작했다.
나도 그런 순간들이 있었다. 연예부 기자로 일을 시작하고, 처음 2년은 모든 것이 신세계였다. 하는 것마다 새로워 흥미가 넘쳤고, 칭찬을 들을 때마다 더욱 잘하려고 노력했다. 조금만 잘해도 칭찬을 받는 ‘막내의 특권’까지 누리며 열정을 바쳤다. 초심자의 열정은 업계의 어두운 이면을 깨달으면서 지쳐 갔고, 결국 5년을 제대로 채우지 못하고 3번의 퇴사를 기록했다.
친구는 퇴사 이후 전업에 성공한 경우다. 그리고 하고 싶은 것을 찾아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가며 인생 2막을 여는 데에 성공했다. 그동안 자신도 몰랐던 재능과 열정을 찾은 것이다. 퇴사를 결심하면서 나를 가장 힘들게 했던 건, 나의 재능은 무엇이며 내가 진짜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 찾는 일이었다. 재능과 열정을 다시 찾아야 하는 강박에 시달렸다. 내가 특별해야 한다는 강박까지도.
스스로도 빛이 난다고 믿었던 순간은 지나갔고, 이제는 나의 밑천이 드러날까봐 전전긍긍하고, 이전의 선택을 후회할까봐 합리화의 강박에 시달리고 있다. 그래서 특별할 거 없는 일기에 솔직한 마음을 드러내며 스스로 위로하고 있다. "요가는 유연성이 중요한 게 아니야. 자세에 집중하고, 호흡을 제대로 찾는 것이 중요하지"라는 말처럼, 잘하는 것에 대한 압박보다 나에게 집중하는 게 더욱 중요한 때다.
퇴사하는 순간 실패자란 스스로에 대한 낙인을 지워나가야 한다. 누군가는 퇴사의 용기에 박수을 보내지만, 그 박수에 어울리는 멋진 2막을 열어야 한다는 압박도 받는다. 나를 지우고, 나를 채우는 과정.. 나만의 호흡법을 찾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