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남미, 너와 나를 담는 여행길 ]
제기가 서로 부딪히는 부산스러운 소리에 눈을 뜬다. 오랜만이지만 너무나도 익숙한 떡국 냄새가 코 끝을 스치자 잠에서 깬다. 배낭을 싸고 준비물을 재차 확인하느라, 아니 시간이 없어서 막 눌러담느라 새벽 서너 시쯤에 잠들었는데. 두어 시간밖에 못 잔 것에 대한 피곤함과 무언가 깊숙이 올라오지만 정확히 감지할 순 없는 설렘이 공존하는 아침 공기는 차갑다.
설날에 여행길에 오르는 덕에 조용히 떠나고픈 계획은 물 건너갔지만 할머니의 따스한 걱정과 친척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가족들이 인천공항까지 나를 데려다주는 크고 작은 호의 호사를 누린다. 다들 성묘를 가고 고향길을 밟는데 인천공항으로 향하는 그 느낌은 매우 이질적이다. 마치 내가 변태 같다 싶을 정도로 그 느낌이 좋다. 자세히 모르겠는 그 감정이, 새로운 이 감정이.
공항에 도착해 간단한 절차를 거쳐 보딩체크 존에서 부모님과 작별인사를 하는 순간이 닥친다. 정말 떠날 시간이다.
나 아직도 실감이 안 나. 잘 다녀올게. 걱정하지 마. 나 지금 엄청 신나니까.
우리는 서로 태연한 척하느라 바쁘다. 누구보다 나를 믿어주시지만 그만큼 걱정도 많은 분들이기에. 정말 신나는데 눈물이 차오를 것 같은 건 또 뭘까. 씩씩한 척했지만 사실 무섭기도 했나 보다. 그렇다. 여전히 엄마 아빠 앞에서 나는 철부지 애다. 그렇다고 울 수는 없기에 걸음을 재촉하기로 한다. 멋지게 손을 흔들어 보이며 뒤돌아서서 숨을 크게 들어마시고 나서야 벅차오르는 감정이 조금 가라앉는다. 이게 뭐라고 이렇게 떨리는 거야 참. 바보 같고 촌스러운 듯하지만 미워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게 나니까.
비행기 탑승을 위해 게이트에 들어서는 순간이 오자 제대로 실감이 난다. 에스컬레이터를 내려갈수록 점점 선명해지고 커지는 비행기를 내 눈에 담자 정말로 온몸에 피가 돌면서 야릇한 느낌이 올라온다. 차분한 척 자리를 잡고 앉았지만 솟구치는 설렘과 두려움 그 자체는 미친 듯이 내 안에서 뒤섞여 폭풍 치고 있다. 그래 가는 거야...
지금부터 겪게 될 총 3번의 이륙과 대기시간을 포함해 40시간이 넘는 비행. 나는 그것을 견디는 중이 절대 아니다. 그저 설레는 이 순간을 감히 여행 중이라고 하겠다.
여행을 사전에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 닥쳐서 막 헤쳐나가는 스타일 덕분에 두려움과 긴장감은 두 배로 챙겼다. 이제부턴 브라질 리우 갈리앙 공항에 무사히 도착하는 게 당장의 미션일 뿐. 카니발 기간인 복잡한 리우에서 당장 묵게 될 숙소조차도 모르는 나는 앞으로의 여정을 다짐하며 비행기 안에서 순간의 감정들을 기록하는 시간을 가진다.
나리타 공항을 경유하여 비행기를 갈아탈 때쯤 되자 출출해지기 시작하는 저녁이 오고 있다. 해가 지기 시작하는 무렵. 미국 휴스턴행 비행기 속에서 지는 석양을 바라보며 긴 비행을 시작한다. 엄청난 진동을 내며 비행기가 이륙을 하자 내 마음도 붕 뜨는 것만 같다. 어느 정도 위로 올라와 안정을 찾자 비행기 창 밖으로 들어오는 빛이 피부에 닿는다. 자연스레 다시 창밖을 본다. 일본 혼슈의 하늘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그 순간 내 눈 앞에 풍경에 넋을 잃고 멍하니 한참을 흐뭇하게 바라본다. 셔터를 누를 새도 없이. 분홍빛 솜사탕 같은 뭉게구름들이 그 넓은 하늘을 가득히 수놓고 있기 때문이었다. 가슴이 뛴다. 벚꽃송이처럼 푹신해 보이는 몽환적인 하늘을 보고 있자니 꿈을 꾸고 있는 것만 같다. 그 구름 사이에서 인사이드 아웃에서의 빙봉처럼 내 마음속 나만의 빙봉이 튀어 나올 것만 같은 느낌을 받는다. 철부지 24살 꼬맹이는 그렇게 더 동심으로 가보기로 다짐한다.
나를 아이처럼 만드는 것. 그저 홀리게 되는 것. 주체할 수 없는 여러 가지 감정의 마음속 요동침. 그런 것이다. 가슴이 뛴다는 것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