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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온 Mar 19. 2024

종이접기가 필요한 시대

내가 이번 학교에서 1~2학년 수업만 하는 

수석교사로 살아가면서 

좋은 점 한 가지는, 

전교의 대부분 아이들을 

다 수업에서 만날 수 있다는 점이다. 

물론 내가 여기로 온 해 3학년이었던

아이들은 결국 못 만나지만. 


1학기에 2학년, 2학기에 1학년 수업을 

거의 고정적으로 하다시피 하니 

2학년이었던 아이들이 5학년이 될 때까지 

성장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아이들은 정말 변화무쌍하다. 

그런 변화를 살펴보는 것도 

참 재미있는 일이다. 


가끔 담임을 못해서 

허전한 마음이 들 때 

나는 스스로에게 위로한다. 


학급 담임들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1년마다 바뀌니까 

한 해 동안 학급 아이들의 모습을 

깊이 알 수 있어도 

전체적인 성장의 맥락을 파악하기는 힘들 거야. 

이런 모습을 볼 수 있는 것도 얼마나 좋아?

라고. 


1학년에서 2학년이 되면 

아이들은 당연히 성장한다. 

그런데 그 성장은 여러 가지 변화를 내포하는데 

어른들이 보기에 예쁜 모습으로만 

변화하진 않는다. 


때로는 뒤로 주춤했다가

 앞으로 쑤욱 나갔다가 

옆으로 삐죽했다가... 

변화는 다양하게 나타나고, 

변화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샌가 그 한가운데를 관통하는 

성장의 결정적인 때가 있다. 


그러나 성장은 혼자만의 힘으로 

이루어지기는 힘들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아이들의 변화를 눈여겨본다. 

거기에서 성장의 지점이 보이면 

얼른 손잡아 당기려고. 


며칠 전 그런 지점에 준호가 있었다. 


준호는 참 사랑스러운 아이다. 

1학년 때, 교실 맨 뒷자리

 1학년 답지 않게 진지한 표정으로 

듬직하게 앉아있던 모습이 

첫인상이었다. 


살집 있는 큰 덩치에 

큰 목소리를 가진 준호는

 반전 매력이 있었다. 

눈웃음을 장착한 뽀얀 얼굴과 

철철 넘치는 애교까지. 


무엇보다 준호는 무엇을 하건 

스스로에게  혹은 친구들에게 

용기를 불어넣는 혼잣말을 했다.


 "이거 어려운데? 그래도 한 번 해봐야지.",

 "어 이거 이상한데? 재미있겠다.",

 "뭐든 즐겁게 하면 된댔어." 

"친구야 짜증 내지 마. 짜증내면 복이 달아나."

 "힘들어도 하다 보면 더 머리가 좋아져."  


초 긍정맨. 

마치 바른생활 교과서에 등장하는 아이 같았다. 

처음에는 그 모습이 낯설었으나 

1년쯤 지나니 

준호가 어른들 사이에서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랐겠구나 

짐작했다.

(담임 선생님의 부연 설명으로도 

준호는 외동아이로 

외가, 친가 조부모님과 

친밀하게 지내고 있다고 했다.) 


그런데 준호가 2학년이 되니  달라졌다. 


가끔 수업 중  하기 싫다고 짜증을 내기도 하고,

친구에게 핀잔을 주기도 하고, 

슬금슬금 눈치 보며 짝꿍과 이야기를 나누거나, 

심지어 어떤 과제는 한 것처럼 

시치미를 뚝 떼곤 했다. 


지난 수요일이었다. 

우리는 '내 생일을 내가 축하해요'라는 주제로 공부했다. 

내가 얼마나 소중한 사람인지 느끼고, 

나에게 하고 싶은 축복의 말을 쓴 

왕관을 종이 접기로 만들어 선물로 주는 게 

주요 활동이었다. 


복의 말을 쓴 왕관 조각 8개를 

색종이로 접어 풀로 붙이고 

테이프로 자기 머리에 맞게 조절해 고정하는 것인데

2학년에게는 꽤 난이도 있는 작업이다. 


수업 앞부분 그림책을 읽고, 

자신이 얼마나 소중한 사람인지를 생각해 보고, 

자신에게 해 주고 싶은 축복의 말을 생각할 때까지  

준호는 즐겁게 참여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손가락과 손바닥을 

적절히 사용해 종이를 접는 반면, 

호는 엄지손가락 아래부분 

두툼한 손바닥 쪽만 사용했다. 

깔끔하고 예쁘게 모양이 접히지 않았다. 


아무리 여러 번 다시 접어도 

되려 색종이만 쭈글쭈글해졌다. 

그러자 준호는 눈에 띄게 시무룩해졌다. 


내가 도와줘서 어찌어찌 8개의 조각을 접고, 

그 위에 축복의 말을 쓰는데 

아무래도 네임펜으로 쓰다 보니 

연필 쓸 때와 다른 힘조절이 필요했다. 


준호는 이번에도 색종이에 줄줄 미끄러지는 

네임펜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해 

거의 알아볼 수 없게 글씨를 썼다. 


마지막 최종 관문, 

자기 머리 크기에 맞게 8개 조각 이어 붙이기는 

대부분의 아이들이 힘들어했다. 


준호에게는 더 어려웠을까? 

준호는 정말 앞에서부터 다닥다닥 붙여서 

이마 부분만 가릴 정도로 만들었다. 

내가 다시 떼서 몇 개를 간격을 조절해 주었지만, 

뒤에 스스로 붙인 것은 다시 다닥다닥했다. 

몇 번의 수정 끝에 완성된 왕관은 너덜너덜해졌다. 


비록 모양은 너덜너덜해졌지만, 

나는 준호가 그 어려운 과제를 끝낸 것이

 내심 대견했다.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해낸 것이다. 


"준호야, 힘들었지만, 끝까지 해냈구나. 

스스로에게 정말 자랑스러운 선물이네." 


진심을 담아 준호의 뒷머리를 쓰다듬고 

칭찬했다. 

그런데 준호의 표정이 영 좋지 않았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스스로 스카치테이프를 

용하여 왕관 크기를 조정했다. 

몇몇은 힘들어해서 내가 도와주는 동안, 

이미 완성한 몇몇은 왕관을 쓰고 교실을 돌아다니며 

친구들에게 자랑하느라 교실은 왁자지껄했다. 


수업 마지막, 

아이들은 스스로에게 선물한 왕관을 쓰고 소감을 말했다. 

그 모습이 너무 예뻐서 

나는 사진을 찍어주거나 

원하는 아이들은 동영상을 찍었다. 

다음 시간에 함께 보고 '나'에 대해 

더 알아보는 주제로 이어나갈 예정이었다. 


수업을 마치고 사진과 동영상을 편집하는데

준호가 화면에 배경으로 찍혀있었다. 

이번 주 준호의 자리가 교실 맨 앞 

교사 책상 바로 앞이라, 

교실 앞에 나와 발표하는 아이들을 

내가 복도 쪽 벽에 붙어 찍었는데 

화면 귀퉁이에 뒷모습 쪽이 

대각선 방향으로 찍힌 것이었다. 


그런데 가만 보니 자기 왕관을 

책상 서랍 쪽으로 끌어내려 

살그머니 구기고 있었다. 


'설마?'


바로 2학년 1반으로 가서 

준호 자리 주변을 이리저리 찾아보았다. 

없었다. 

'집으로 가져갔나? 가져갔겠지.'

그러다 뒷 문쪽으로 나오는데 

삐죽 나온 색종이 뭉치들이 보였다. 

'일반쓰레기'

쓰레기통 안에 준호의 왕관이 

처참한 모습으로 처박혀 있었다. 

......


몇 년 전부터 1~2학년 수업할 때, 

종이접기를 활용해 활동을 구성하곤 했다. 

개인적으로 종이 접기에 대한 

비현실적인 기대가 있거나 특별해 좋아해서는 아니다. 

다만, 종이 접기가 필요한 시대라고 생각했다.  

좀 엉뚱할지 몰라도 

  30여 년의 시간 동안 같은 자리에서, 

같은 시기의 아이들이 변화하는 걸 보며 든 생각이니까 

아무리 나 개인의 감에 불과할지라도 

마냥 틀리지는 않을 것이다. 


내가 본 견지에서는, 

아이들이 손으로 하는 활동을 예전보다 귀찮아한다. 

그리고 절차를 기억해서 차례대로 따져서 

수행하는 것을 점 점 더 어려워한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손으로 하는 작업의 완성도가 

완연히 떨어진다. 


생각해 보면 당연하다. 


요즘은 손으로 해야 했던 많은 것이 

편리하게 대체되었다. 

예전에 집에 가려면 꼭 써야 했던 알림장도

학급 홈페이지나 밴드, 스쿨마스터에서 확인하고, 

칼로 조심조심 깎았던 연필도 

연필 깎기로 수동이면 손으로 돌리며 깎거나 

그마저도 자동이면 스위치를 켜고 연필만 꽂아 깎으면 된다. 

그래고 손을 움직여야 놀 수 있었던 공기놀이나 딱지치기 등등도 

이젠 휴대폰 게임으로 정말 즐겁게 놀 수 있다. 


참 좋은 세상이다.


이 좋은 세상에서 손이 많이 가는 종이접기를 소환하는 건, 

내가 시대 부적응한 사람이거나 

옛것을 무조건 고집하기 때문은 아니다. 

또, 손으로 하는 활동을 좋아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도 아니다. 


'내 것에 대한 소중함을 느끼고, 기뻐하는 마음 키우기'에 

종이 접기가 적절하기 때문이다. 

이를 전문용어로 '자기 효능감 향상'이라고도 할 수 있다. 


종이접기를 할 때 아이들은 

차원이 달라지는 것을 경험한다. 

평면인 2차원이 입체인 3차원이 되는 놀라운 작업이다. 

차원이 달라지기에 적절한 과정이 있다. 

올바른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결과를 만들기 힘들다. 

그러다 어느 정도 종이 접기에 숙달이 되면

 다른 방식으로 비슷한 모양을 접는 공간감을 키울 수 있다. 


또,  종이접기는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접는 방법이 정해져 있어서 

그 과정을 세심하게 기억해야 한다. 

즉 절차적 지식이 중요하기 때문에 

처음 배울 때는 단기 기억을 주로 쓰게 된다. 

단기 기억은 뇌를 집중해서 쓰기 때문에 힘든 작업이다. 

하지만, 이 단기기억 용량을 늘리면 

생각하는 힘이 점 점 늘어나서 

장기기억으로 더 큰 용량을 저장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종이접기는 

종이를 접는 기능이기 때문에 

머리로 생각한 것을 구현하기까지

 여러 번의 반복 작업이 필요하다. 

머리로는 될 것 같은데 막상 접어보면 안 된다. 

그럴 때 여러 번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자신이 조금씩 조금씩 더 잘 접게 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저학년 수업에서  

위험하지 않고, 

반복해도 재미있고, 

구들과 의사소통할 수 있으면서 

이만한 효과를 가진 활동도 잘 없다. 


그러나 준호에게는 그렇지 않았다. 

준호는 자기가 만든 왕관이 부끄러웠고, 

구겨서 쓰레기통에 버릴 정도로 싫었다. 

자기 자신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을 

길러주고자 했던 수업 목표는 

준호의 경우에 있어서는 

철저히 실패라고 할 수 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답은 간단하다.


 다시 하면 된다. 


언제까지? 


자신의 변화를 느낄 때까지.

 (어려운 말로 메타인지라고 한다.)


다른 주제의 수업에서 

비슷한 난이도의 종이접기를 하면서

지난번과 자신이 무엇이 달라졌는지 

생각해 보게 하는 것이다. 

물론 그때는 내가 준호의 옆에 바짝 붙어 

좀 더 멋진 종이접기를 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겠지만. 


한 번의 성공 경험은 

그다음에 대한 기대를 가져온다. 

기대를 하고 

또 성공을 하면 더 더 큰 기대를 가져온다. 

그리고, 이것이 반복되면 

'아, 난 이것에 대해 자신 있어!'라고 

스스로를 생각한다. 

그러다 보면 중간에 실패하더라도

 다음에 좀 더 잘해봐야지라고 

툭툭 털고 일어날 수 있다. 


어떤 좋은 활동도 한 번으로 끝나버리면, 

나쁜 선입견만 남는다. 

아이들이 좋은 선입견을 가질 수 있도록, 

그리하여 마음이 더 단단해져서 

좋은 선입견에 반하는 결과도 

유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수업하고 싶다. 


아직 준호의 다음 종이접기는 실행되지 않았지만,

 내 머릿속 계획은 세워졌다. 


과연 어떻게 될까? 

아, 수업이 이렇게 짜릿한 일이라니.


선생으로 누릴 수 있는 정말 큰 호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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