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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urdoc Oct 23. 2017

<다큐inBIFF> 감정의 밑바닥과 마주하기

<The Work> 다큐리뷰

 SXSW 대상 수상작으로 알려진 <The Work>를 2017 부산국제영화제를 통해 만날 수 있었다. 영화제 초반 이 영화에 대해 빠르게 퍼지고 있는 입소문을 들었다. 미처 표를 예매하지 못했지만, 마지막 상영 당일 한 시네필의 도움으로 표를 어렵게 구해 관람할 수 있었다.  '한 교도소에서 재소자들의 그룹 상담 프로그램에 일반인 3명이 참여한다'라는 다소 정적으로 보일 수도 있는 시놉시스와는 달리 등장하는 다큐의 씬들은 다소 충격적이다. 얼핏 종교의식처럼 보일 수도 있는 이 프로그램에선 날 것인 남자의 눈물, 그 안에 응어리진 트라우마와 억압된 감정들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물론 그들을 괴롭히는 감정들을 해소한다고 그 죄들이 면죄부가 되거나, 모든 문제가 해결될 수는 없다. 하지만 그 과정을 같이 지켜보는 관객은 그들이 오랫동안 잠가놓은 분노를 그룹 가이드 아래 해소하는 과정을 보며, 규정할 순 없어도 공감할 수 있는 치유 과정을 간접 경험할 수 있다. 이 상담 프로그램에 참여한 재소자와 일반인들의 적극적인 고백은 다큐가 함유할 수 있는 뛰어난 수준의 캐릭터를 만들어냈다. 그들이 만들어낸 합으로 어떤 다큐에서도 보지 못한 놀라운 씬도 볼 수 있다. 꼭 권위에 기대어 추천하고 싶진 않지만 굳이 SXSW의 이름을 빌어서라도 추천하고픈 다큐이다.



다음 내용부터는 다큐멘터리의 내용 누설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다큐의 리뷰에 앞서 이 글에선 폴슨 교도소에서 행해지는 이 그룹 상담 프로그램의 이론적 배경이나 실제 치료 효과 여부에 대한 논의는 차치하고 다큐라는 앵글 내에서 보여지는 측면에 대해서만 얘기하고자 한다.


 다큐가 촬영되는 로케이션은 대부분이 교도소 내부 공간이다. 그곳을 채우는 사람들도 모두 문신 가득한 거구의 남자들이다. 4일간 매일 집중적으로 진행되는 이 상담 프로그램엔 기경험자인 재소자들이 가이드 역할을 한다. 적극적으로 억압된 기억을 떠올리는 참여자도 있고, 미처 예상치 못한 당황스러운 방식에 거리를 두는 참여자도 있다. 굳이 참여를 강요하지 않지만, 마음을 열고 가장 꺼내놓기 불편한 기억들을 진술하는 이에겐 그룹의 모두가 적극적으로 도움을 자처한다. 폭력 혹은 살인 전과가 있는 재소자가 다수이기에 감정이 격해지는 상황이 오면 스크럼을 짜고 폭력 혹은 상해 상황이 발생하지 않도록 짓누른다. 그 속에서 한참 동안을 분노하고 감정을 토해낸 참여자는 시간이 지나면 누그러든다. 

 이런 상황이 다 익숙한 건 아니다. 재소자가 아닌 일반인 참여자 중 한 명은 "난 여기 울려고 온 게 아니다"라며 거리를 두기도 한다. 이 다큐를 보는 관객 중 일부는 같은 생각을 할 수 있다. 그러나 다큐를 따라가다 보면  적극적인 심리적 지지라던지, 억압된 기억 속의 상대 캐릭터를 그룹 중 한 명이 연기하는 연극 치료와도 같은 등의 다양한 형태로 진행됨을 알 수 있다. 이 상담 프로그램의 방식은 생각보다는 체계적이며 그간 쌓인 노하우가 엿보인다. 


 다큐에서 비춰주는 캐릭터는 각자 다른 기억들을 토로한다. 세상을 떠난 누이에 대한 그리움과 슬픔으로 괴로워하는 참여자도 있고, 아버지에게 인정받지 못한 기억을 토로하는 참여자도 있다. 다양한 크고 작은 감정적인 기억들을 꺼내고 해소하며 프로그램은 진행된다.

 재소자 중 한 명인 단테는 무거운 형량으로 출소를 기약할 수 없다. 그의 아내는 더 이상 면회를 오지 않는다. 그는 아들을 만날 수 없는 현실에 괴로워한다. 그는 자살에 대한 생각을 놓지 못한다. 이런 위기를 토로하는 그를 한 재소자 가이드는 적극적으로 지지한다. 그의 곁에는 도우려 하는 이들이 있으며, 다소간의 시간이라도 두고 실제적인 해결방법을 찾자고 약속하는 가이드에게선 진정성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그 가이드와 단테가 포옹하는 순간 그들이 차고 있던 마이크가 서로의 가슴팍의 심장 박동을 전달한다. 이 장면은 진정성과 순간의 포착 그리고 우연이 겹친 <The Work>의 가장 극적인 씬이라고 하겠다.


이 다큐에서 조명하는 핵심은 감정의 가장 취약한 부분과 마주하는 이야기이다. 사람들이 마음에 숨겨놓은 분노의 에너지들이 부서진 잔해가 되어 꺼끌 하고 날카로운 모서리로 정신의 장기를 찢고 있을 수 있다. 그렇다면 '그 가장 아픈 바닥의 바로 옆에 약이 있다'는 다큐 중의 말처럼 고통의 잔해 끝까지 다가가야 한 걸음 나아갈 수 있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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