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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ajaC 카작 Aug 18. 2024

초고난도 '성의 있는 삶' 도전

성의 있는 게 '간지'다

지난 8월 8∼11일. '무려',  '3박4일', '숙식하는', '단체' 피정에 참여했다. 예상보다 타이트한 일정 탓 지내는 동안은 줄곧 피로감을 토로했다. 허나, 이제와 돌아보면 꽤 많은 생각을 남긴 시간이었다.


(※피정 : 성당·수도원 등에서 가톨릭(천주교) 신자들이 행하는 일정기간 동안의 수련생활을 지칭하는 용어)


핵심은 '성의 있게 살자'는 것. 


우선, 이번 피정은 출발 때부터 사정이 녹록지가 않았다. 고작 3개월 전쯤 다녀온 피정 때와는 크게 달랐다.

-[피정 후기①] 평화가 준 선물,  간직할 시간 / 보기 

-[피정 후기②] '감사하기' 만으론 부족하거늘/ 보기


전에 다녀온 피정은 떠나기로 다짐한 순간부터 나름의 각오 같은 게 있었다. '오롯이 스스로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자' 등의 결심이었다. 결과적으로도 그 시간 내내 나 자신에 집중할 수 있었다.


이번엔 아니었다. 꽤 오래전,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잡힌 일정이라 그랬을까. 실은 출발 직전까지도 한동안은 아예 생각도 못하고 있었다. 입소를 불과 며칠 앞두고 성당 식구들이 보내준 " 피정 가지? 잘 다녀와" 메시지를 받고서야 현실을 알아 차렸다. "아 맞다, 벌써 모레네…"


그렇게 8월 8일 입대, 아니 입소의 순간. 피정의 집 정문에서 마주한 신부님과 첫 대화를 나눴다.


Q."발걸음이 무거워 보이시네요?"

A."그럴 리가요. 좋아서 날아갈 것 같은요… " 


이 따위 드립(?) 겸 허튼소리로 3박 4일 여정을 시작했다.


행사의 구체 내용은 소개할 수 없다. 말하면 안 된단다. 뭐‥천주교 피정이니 뻔하다. 기도, 또 기도를 상상하면 된다.  


약간의 특이사항이라면, 꽤 빡빡한 스케줄 속 통제도 좀 따른다. 얼차려와 신체 훈련만 없을 뿐, 웬만해선 혼자 있게 내버려두지 않는 특징 등은 군대 훈련소와 크게 다르진 않다. 여기 다녀온 자매님이라면 "군대 좀 알 것 같아요" 말해도 그리 큰 무리는 아니다.  


우리 성당


부랴부랴 오게 된 피정이라 그런지 좀처럼 내면에 집중하기가 힘들었다. 대신 주변 환경과 사람들에 계속 눈길이 갔다. 거룩한 분위기, 열심인 형제·자매들.


물론, 나를 돌아본 순간도 없진 않았다. 눈을 감고 두 손 모아 기도하던 중 10여년 전 예비신자였던 내 모습을 떠올렸다. 신앙이 간절한 시절이었다. 뭐가 그리 힘들었는지, '제발 신이 존재하길' 갈구했다. 매일 속으로 '저를 구해주세요' 외쳤더랬다.


그때는 새벽 미사도 거의 안 빠졌다. 몹시 추운 한 겨울 새벽, 곳곳이 꽁꽁 얼고 길에 눈이 가득 쌓였을지라도, 소복소복 20분을 걸어 성당으로 향했다. 점퍼만 몇 겹씩 걸치고, 목도리까지 두른 채, 발이 얼어 버릴 것만 같아도 오로지 성당만 바라보며 걸음을 내디뎠다. 그렇게 성당에 도착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몸과 마음이 따뜻해졌다.


당시 내가 가장 부러워했던 이들은 모태신앙, 혹은 늦어도 중고딩 때, 세례 받은 지 오래된 신자들이었다. 난 미사 때마다, 또 집에서 혼자 기도할 때마다 간절치 않은 게 없었는데, 그들은 늘 '설렁설렁'이었다. 미사 때 집중을 하는 건지, 마는 건지…일상에서도 기도를 하는지, 마는지‥


그런데, 신앙에 매사 대충인 듯한 그들 모습이 내겐 이상하게도 멋있어 보였다. 성의 없단 느낌보단, '신앙이 일상에 녹아내렸다'는 인상이 컸기 때문이었다. 한 마디로 '간지' 그 자체였다. 나도 그들처럼 신앙을 애절하지 않게, 조금 편안하게 가져가고 싶었다.


그랬던 시기가 이젠 엊그제 같으면서도, 아득하게 느껴진달까. 옛날 기준으로 보면, 최근 피정 때 보인 내 모습은 설렁설렁, 대충대충, 즉 '간지' 그 자체였다. 아니 근데, 왜 자부심이 안 느껴지지어찌 되레 스스로에 안타깝고, 서운하기까지 한 거지.


사실 그건 간지가 아닌 때문이었다. 마침내(?) 신앙에 설렁설렁해진 지금의 내겐 피정 내내 열정의 신앙을 보여준 다른 이들이 더 멋있어 보였다. "후, 옛날의 내가 멋있었구나…" 이렇게라도 위안을 해야 하려나, 아, 답답했다.


퇴근길


'간지란 무엇인가'


피정 때 잠깐 스쳐간 생각인 줄 알았는데 다행히 며칠 더 갔다. 회사로 복귀하고 보니, 일하기가 유난히 귀찮아진 영향도 컸다. '피정 때도 대충, 일하기도 싫증' 이게 맞냐는 반성이었다. 덕분에 '성의 있는 신앙', 이게 '성의 있는 삶'으로 표현이 살짝 바뀐 채 몇 날 머릿속을 맴돌았다. 마침, 3개월 피정 때도 기도로써 이런 메시지를 내면에 담아 터였다. "주어진 하루에 최선을 다하자". 


신기했다. 통상 '최선을 다하자'는 건 아주 건조하고 으레적인 워딩이지만, 내겐 꽤 커다란 심적 변화라서다. 나는 '최선' 같은 단어를 들을 때면 본능적으로 오글거림을 느꼈다. 2년 전(지난 글 : 2022 슬로건은 '한심하게 살자'였다.)에는 아예 한심하게 사는 게 모토였다. 그땐 "일만 열심히 하자"고, 그래도 충분하다고 여겼다.


자, 이제 좋다. 문제는 '최선' '열심' '성의'를 갖춘 삶이 뭐냐는 거다.  


이건 아직 잘 모르겠다.


단, 성경은 좀 찾아봤다.

 

마르코 복음에서

그러니 깨어 있어라. 집주인이 언제 돌아올지, 저녁일지, 한밤 중일지, 닭이 울 때인지, 새벽일지 너희가 모르기 때문이다…내가 너희에게 하는 이 말은 모든 사람에게 하는 말이다. 깨어 있어라.

 

"깨어 있어라". 위 구절 속뜻을 찾는 게 남은 과제다.


사무실에서


난 복 받은 사람이다.


신앙에 유독 뜨거웠던, 그니까 '찐간지'였던  시절 나를 이끌었던 성당 청년회 가족들과 최근 다시 만났다. '피정 이수'만으로도 커다란 축하를 받았다. 피정에 갈 수 있도록 공부를 가르쳐준 봉사자께서도 고생을 많이 해주셨다.


피정을 마친 바로 다음 날, 회사에서도 새 삶을 응원해줬다.


부장 : 기도 잘 하고 왔냐?

나 : 네, 저는 앞으로 '새삶'을 살기로 했습니다.

부장 : 그래, '헌삶'은 그만 살어. 회개 좀 해.

나 : 네.....


새 삶을 담는 여러 캐치프래이즈 가운데에선 '성의 있는 삶'이란 문장을 택했다.


사전을 보니, '최선'은 "가장 좋고 훌륭함"을 뜻한다고 한다. 가장 좋고 훌륭할 자신까진 없다.

 

'열심'은 "어떤 일에 온 정성을 다하여 골똘하게 힘씀"을 의미한다고 한다. '온 정성' '골똘' '힘씀' 등의 단어는 다소 무겁게 느껴졌다.


'성의'는 "정성스러움"을 뜻한다고 한다. 이 정도는 도전해 볼만 하다 싶다. 마침 '예수가 입었던 옷'이라는 의미도 있단다.


물론, '성의 있는 삶'마저도 초고난도다. 그렇지만 의미 있는 도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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