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에 다녀온 피정은 떠나기로 다짐한 순간부터 나름의 각오 같은 게 있었다. '오롯이 스스로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자' 등의 결심이었다. 결과적으로도 그 시간 내내 나 자신에 집중할 수 있었다.
이번엔 아니었다. 꽤 오래전,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잡힌 일정이라 그랬을까. 실은 출발 직전까지도 한동안은 아예 생각도 못하고 있었다. 입소를 불과 며칠 앞두고성당 식구들이 보내준 "곧 피정 가지? 잘 다녀와" 메시지를 받고서야 현실을 알아 차렸다. "아 맞다, 벌써 모레네…"
그렇게 8월 8일 입대, 아니 입소의 순간. 피정의 집 정문에서 마주한 신부님과 첫 대화를 나눴다.
Q."발걸음이 무거워 보이시네요?"
A."그럴 리가요. 좋아서 날아갈 것 같은데요… "
이 따위 드립(?) 겸 허튼소리로 3박 4일 여정을 시작했다.
행사의 구체 내용은 소개할 수 없다. 말하면 안 된단다. 뭐‥천주교 피정이니 뻔하다. 기도, 또 기도를 상상하면 된다.
약간의 특이사항이라면, 꽤 빡빡한 스케줄 속 통제도 좀 따른다. 얼차려와 신체 훈련만 없을 뿐, 웬만해선 혼자 있게 내버려두지 않는 특징 등은 군대 훈련소와 크게 다르진 않다. 여기 다녀온 자매님이라면 "군대 좀 알 것 같아요" 말해도 그리 큰 무리는 아니다.
우리 성당
부랴부랴 오게 된 피정이라 그런지 좀처럼 내면에 집중하기가 힘들었다. 대신 주변 환경과 사람들에 계속 눈길이 갔다. 거룩한 분위기, 열심인 형제·자매들.
물론, 나를 돌아본 순간도 없진 않았다. 눈을 꼭 감고 두 손 모아 기도하던 중 10여년 전 예비신자였던 내 모습을 떠올렸다. 신앙이 간절한 시절이었다. 뭐가 그리 힘들었는지, '제발 신이 존재하길' 갈구했다. 매일 속으로 '저를 구해주세요' 외쳤더랬다.
그때는 새벽 미사도 거의 안 빠졌다. 몹시 추운 한 겨울 새벽, 곳곳이 꽁꽁 얼고길에 눈이 가득 쌓였을지라도, 소복소복20분을 걸어 성당으로 향했다. 점퍼만 몇 겹씩 걸치고, 목도리까지 두른 채, 발이 얼어 버릴 것만 같아도 오로지 성당만 바라보며 걸음을 내디뎠다.그렇게 성당에 도착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몸과 마음이 따뜻해졌다.
당시 내가 가장 부러워했던 이들은 모태신앙, 혹은 늦어도 중고딩 때,즉 세례 받은 지 오래된 신자들이었다. 난 미사 때마다, 또 집에서 혼자 기도할 때마다 간절치 않은 게 없었는데, 그들은 늘 '설렁설렁'이었다. 미사 때 집중을 하는 건지, 마는 건지…일상에서도 기도를 하는지, 마는지‥
그런데, 신앙에 매사 대충인 듯한 그들 모습이 내겐 이상하게도 멋있어 보였다. 성의 없단 느낌보단, '신앙이 일상에 녹아내렸다'는 인상이 컸기 때문이었다. 한 마디로 '간지' 그 자체였다. 나도 그들처럼 신앙을 애절하지 않게, 조금 편안하게 가져가고 싶었다.
그랬던 시기가 이젠 엊그제 같으면서도, 아득하게 느껴진달까. 옛날 기준으로 보면, 최근 피정 때 보인 내 모습은 설렁설렁, 대충대충, 즉 '간지' 그 자체였다. 아니 근데, 왜 자부심이 안 느껴지지…어찌 되레 스스로에 안타깝고, 서운하기까지 한 거지.
사실 그건 간지가 아닌 때문이었다. 마침내(?) 신앙에 설렁설렁해진 지금의 내겐 피정 내내 열정의 신앙을 보여준 다른 이들이 더 멋있어 보였다. "후, 옛날의 내가 멋있었구나…" 이렇게라도 위안을 해야 하려나, 아, 답답했다.
퇴근길
'간지란 무엇인가'
피정 때 잠깐 스쳐간 생각인 줄 알았는데 다행히 며칠 더 갔다. 회사로 복귀하고 보니, 일하기가 유난히 귀찮아진 영향도 컸다. '피정 때도 대충, 일하기도 싫증' 이게 맞냐는 반성이었다. 덕분에 '성의 있는 신앙', 이게 '성의 있는 삶'으로 표현이 살짝 바뀐 채 몇 날 머릿속을 맴돌았다. 마침, 3개월 전 피정 때도 기도로써이런 메시지를 내면에 담아 온 터였다. "주어진 하루에 최선을 다하자".
신기했다. 통상 '최선을 다하자'는 건아주 건조하고 으레적인 워딩이지만, 내겐 꽤 커다란 심적 변화라서다. 나는 '최선' 같은 단어를 들을 때면 본능적으로 오글거림을 느꼈다. 2년 전(지난 글 : 2022 슬로건은 '한심하게 살자'였다.)에는 아예 한심하게 사는 게 모토였다. 그땐 "일만 열심히 하자"고, 그래도 충분하다고 여겼다.
자, 이제 좋다. 문제는 '최선' '열심' '성의'를 갖춘 삶이 뭐냐는 거다.
이건 아직 잘 모르겠다.
단, 성경은 좀 찾아봤다.
마르코 복음에서
그러니 깨어 있어라. 집주인이 언제 돌아올지, 저녁일지, 한밤 중일지, 닭이 울 때인지, 새벽일지 너희가 모르기 때문이다…내가 너희에게 하는 이 말은 모든 사람에게 하는 말이다. 깨어 있어라.
"깨어 있어라". 위 구절 속뜻을 찾는 게 남은 과제다.
사무실에서
난 복 받은 사람이다.
신앙에 유독 뜨거웠던, 그니까 '찐간지'였던 옛 시절 나를 이끌었던성당 청년회 가족들과최근 다시 만났다. '피정 이수'만으로도커다란 축하를 받았다. 피정에갈 수 있도록 공부를 가르쳐준 봉사자께서도 고생을 많이 해주셨다.
또 피정을 마친 바로 다음 날, 회사에서도 새 삶을 응원해줬다.
부장 : 기도 잘 하고 왔냐?
나 : 네, 저는 앞으로 '새삶'을 살기로 했습니다.
부장 : 그래, '헌삶'은 그만 살어. 회개 좀 해.
나 : 네.....
새 삶을 담는 여러 캐치프래이즈 가운데에선 '성의 있는 삶'이란 문장을 택했다.
사전을 보니, '최선'은 "가장 좋고 훌륭함"을 뜻한다고 한다. 가장 좋고 훌륭할 자신까진 없다.
'열심'은 "어떤 일에 온 정성을 다하여 골똘하게 힘씀"을 의미한다고 한다. '온 정성' '골똘' '힘씀' 등의 단어는 다소 무겁게 느껴졌다.
'성의'는 "정성스러움"을 뜻한다고 한다. 이 정도는 도전해 볼만 하다 싶다. 마침 '예수가 입었던 옷'이라는 의미도 있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