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컬을 좋아하고 브랜드를 소비하는 누군가의 생각
Epilogue. 팝업 안 하면 죽는 병 같은 건 없습니다
다양한 로컬브랜드를 관찰하면서 늘 아쉬웠던 점은 그들이 이정표를 세워가며 어렵게 만든 길을 의도와 다르게 어느 순간 변질시키는 주변 요소들이었다.
길가에 아무렇게나 피어있는 들꽃과 무성한 나무들, 좁고 울퉁불퉁하지만 충분히 제 역할을 하고 있는 오솔길, 파란 하늘 아래 어우러진 자연스러움과 무해함을 찾아온 사람들을 뒤따라 위협적으로 밀고 들어오는 시멘트 발린 큰 도로. 그때부터 이곳은 길이 아닌 돈으로 보이기 시작한다. 차가 다니기 시작하고 더 이상 이곳에서는 자연스러움을 찾아볼 수 없게 된다.
내가 바라본 관점에서 이를 촉진시킨 가장 큰 요소 중 하나는 팝업의 유행이다.
새로운 아이디어와 트렌드를 보기 위해 습관처럼 시장조사를 하면서도 한동안 팝업에 대해서는 기피하던 때가 있었다. 팝업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피로도가 높아져서인데, 경험한 팝업의 대부분이 진열되는 브랜드만 다를 뿐 비슷한 구성에 공간 경험을 통해 떠오르는 메시지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서 다녀온 사람들의 후기를 찾아보는 걸로 대체하기 시작했다.
애초에 나는 팝업 컨텐츠를 소비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브랜드가 고객과 어떻게 관계를 만드는지를 벤치마킹하는 게 목적이기 때문이다. 현장을 가지 않아도 대략적인 내용을 파악하고 직접 갔다 온 고객의 반응도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다른 이들의 후기가 훨씬 효율적이었다. 그럼에도 직접 경험해보고 싶은 곳이 생기면 꼭 가보는 편이지만... 만약 브랜드 경험을 해칠 것 같은 어수선한 환경이라면 방문 여부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그렇게 고르고 골라도 한 달에 한두 번은 날을 잡고 둘러봐야 할 만큼 팝업이 넘쳐난다.
요즘은 어디든 팝업을 안 하면 안 되는 필수 관문처럼 인식하는 듯하다. 과거에는 고객 접근성이 낮은 로컬 브랜드가 장소를 옮겨가며 사람들을 만나는 방법으로써 팝업의 형태를 활용했다면, 지금은 팝업을 선호하는 소비자를 겨냥해서 모든 브랜드가 마케팅의 일환으로 팝업을 선택한다. 전자와 후자가 같은 내용인 것 같지만, 본질적으로 팝업이라는 방식이 고객을 만나는 최선이었냐고 묻는다면 그 답은 제각각일 것이다.
더욱이 대기업에서도 큰 자본력을 바탕으로 플래그십 스토어나 대형 팝업 행사를 만들어 이 유행을 더 고조시키고 있는데, 그들 또한 기존의 마케팅과 판촉만으로는 한계를 느끼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대형 유통사들이 로컬브랜드를 꾸준히 자신들의 공간으로 데리고 오는 것을 보면, 소비자가 원하는 것이 달라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앞선 글들을 통해 가치소비를 지향하는 것으로 시작해서 로컬브랜드에 대해 관찰해 본 내용까지를 톺아보면, 사람들은 상품 자체를 넘어 그 상품을 사용하는 '나의 모습'이 얼마나 건강하고, 진정성 있는가도 고려하는 방향으로 소비가 변화하고 있다. 이런 부분을 표현해 줄 수 있는 브랜드의 지속가능성과 사회적가치 등에 관심을 갖기 때문에 대기업에서도 ESG를 도입하고, 사회공헌을 홍보의 앞단으로 세우고, 지속가능성 등 가치지향 단어를 경영의 핵심가치로 내미는 것 또한 같은 맥락이라고 생각한다. 이 변화 속에서 나는 어쩐지 대기업들이 로컬 브랜드처럼 보이고 싶어 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들은 로컬브랜드 팝업이 진행되면 시장조사와 벤치마킹을 목적으로 찾아오는 팝업 단골들이기도 하다.
물론 이 과정에서 로컬브랜드가 더 많은 고객 접점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얻기도 하기에 그런 점은 좋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미 많은 판로를 확보하고 있는 대기업의 제품들이 그 형태를 따라 팝업을 운영하는 것을 보고 있으면 사람들의 방문 목적에서 조금은 다른 결이 느껴진다.
고객접점 or 브랜드경험 or 프로모션 컨텐츠
사람들이 로컬브랜드 팝업을 찾는 가장 큰 이유는, 쉽게 만나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 지역까지 가지 않으면 만날 수 없는 만큼 접점의 편의성이 생기기 때문에 그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고 한다. 그런 로컬브랜드를 데리고 온 유통기업은 그들을 자신의 공간을 채울 컨텐츠로 바라본다. 그중에는 가치 있는 브랜드를 한데 모아 경험하게 함으로써 공통의 메시지를 더 증폭시키는 편집샵 같은 역할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미 인지도가 충분하고, 어디서나 쉽게 찾고 구매할 수 있는 데도 팝업을 여는 기성 브랜드에 대해서는 시선이 조금 달라진다. 브랜드를 만나는 것 자체가 목적이라기보다는 일상 또는 여가 시간을 보내기 위해 팝업 컨텐츠를 소비하고, 팝업에서 제공하는 혜택을 받기 위해 찾아간다. 고객 입장에서는 판촉 활동과 크게 다르지 않다. 내가 얻는 메리트에 집중하는 만큼 당연히 브랜드 메시지가 크게 와닿지 않는다. 팝업의 만족도 또한 가성비에 집중하게 된다. 더 퍼주지 않으면 실패한 팝업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성공(사람이 많이 오는 것) 해도 그때뿐, 브랜드 오디언스는 형성되지 않는다.
팝업을 여는 브랜드의 인지도/규모/목적에 따라 스펙트럼은 넓을 수 있지만, 이를 유행의 관점에서 팝업이라는 한 단어로만 묶어보면 팝업(을 통해 작은 브랜드들)이 관심받기 시작한 초기와는 달리 점점 기괴해지는 것이 보인다. 팝업을 진행하는 장소와의 연계성도 애매하고, 사람을 모으는데만 그쳐 몰린 인파로 인해 고객과의 접점을 놓치는 경우도 많고, 간혹 SNS감성에 치우쳐 정작 중요한 경험적 요소들은 뒤로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어쩌다 팝업이 만능키가 되었을까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나는 요즘은 팝업보다는 쇼룸이 더 안정적으로 느껴지기도 하고 그보다는 처음 설계 할 때부터 브랜드의 경험을 생각하고 만든, 세심하게 운영되는 공간을 더 선호한다. 그리고 사실은 억지스럽게 꾸민 것보다 원래 가진 모습이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친절하지만 완벽하진 않은 공간과 브랜드를 좋아한다.
팝업을 하는 본질적인 이유는 '브랜드가 고객을 만나서 교감하는 장소가 필요해서'라고 생각하는 입장이라, 브랜드 가치를 담은 메시지가 전달되는 경험은 제공하지 않고 단순한 재미와 눈요깃거리만 충족시킬 거라면 굳이 할 필요가 있을까 싶다.
매출을 올리는 데 얼마나 기여*를 하는지는 모르겠으나 이런 사례들이 많아지면서 팝업을 더 화려하게 만들기 위한 경쟁이 심화되고, 그 효과는 지역으로까지 번져 기존 상점을 밀어내고 팝업 전용 임대를 내놓으며 한 달에 1억이 넘는 비용을 청구하는 건물소유주나 팝업 대행업체들이 생겨나도록 만들었다. 정작 로컬에서 지속가능하고자 하는 작은 가게와 로컬브랜드에게 안 좋은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을 보면 팝업의 긍정적 효과보다는 부정적 영향이 더 크게 느껴진다. 정작 팝업이라는 방법이 필요한 작은 브랜드에게도 무리한 것을 기대하거나 효과를 떨어뜨리는 악순환을 갖고 온다.
팝업을 해야 한다, 하지 말아야 한다를 논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적어도 브랜드가 고객을 만나고 자신들을 가장 좋은 상태로 경험할 수 있도록 고민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
그저 짧은 시간에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인지도를 빠르게 높이는 것 때문에 자극적인 요소들로 팝업을 채우고 사람들이 그것에만 반응하게 된다면, 지금 당장은 효과가 있을지 몰라도 장기적으로나 지역적으로는 자원만 낭비하고 기존에 갖고 있던 지역적 문화 요소를 훼손하는데 사람들을 동원하는 셈이 된다.
그것은 앞으로 다른 지역에서 팝업을 통해 사람들을 만나야 할 로컬 브랜드뿐만 아니라 지역과 거기에 있는 로컬브랜드에도 폐를 끼치는 일이다. 그러니 팝업(이 아니더라도)을 해야 한다면 비즈니스 본능에만 충실하지 말고, 브랜드의 본질과 고객/지역 안에서의 관계도 고려해서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주변 환경과 공간 경험을 통해 브랜드의 가치를 공감할 수 있는 방법을 함께 고민해야 한다.
그래서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로컬브랜드는 그런 본질을 우선시하며 팝업에 집착하기보다는 자신의 공간에서 한 사람 한 사람을 면 대 면으로 만나고자 한다. 그리고 일회성이 아닌 지속적인 소통과 관계를 유지하려고 한다. 또한 이들은 이미 제품과 서비스에 지역 스토리텔링을 포함하고 있어 사람들이 지역에 관심 갖게 하고 여행 올 수 있도록 하는 매개체 역할이 되기도 한다. 브랜드를 통해 사람과 만나는 가장 좋은 곳을 떠올리면, 그곳이 꼭 팝업은 아닐 것이다.
*팝업의 매출 기여 : 특히나 팝업은 이익보다는 인지도를 메인 KPI(성과지표)로 보는 편이다. 팝업에서 발생하는 매출보다 팝업을 운영하는데 드는 비용이 더 많기 때문이다. 물론 일을 잘하는 마케터라면 매출 또한 신경 쓰겠지만, 일반적으로 유통채널에서 프로모션을 통해 만들어내는 매출과는 비교하기 힘들다. 전반적으로 팝업은 수익이 적게 나오는 부분까지도 마케팅비로 퉁치기(?) 때문에 방문객 수나 이후의 고객반응지표를 중점적으로 살펴보고 후속관리를 통해 유입/구매전환으로 옮기는 작업을 한다. 전략 입장에서는 조금 아쉬울 수밖에 없는 성과이나, 장기적인 관점에서 브랜딩 효과는 J커브(성장세)의 곡선을 더 가파르게, 오래 지속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고객관계형성은 무시할 수 없다. 물론, 브랜딩을 목적으로 고객경험을 통해 팝업에서 성공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했다는 전제 하에... 마케팅팀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는 정성적 성과지표를 함께 고려하면 좋을 것 같다. 그러나 이미 인지도가 있고 시장 점유를 더 높이는 게 목적이라면, 팝업보다는 유통채널을 활용한 프로모션으로 구매 건수나 매출을 높이는 것을 권유한다. 불필요한 비용과 힘을 빼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