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과 확장

로컬을 좋아하고 브랜드를 소비하는 누군가의 생각

by 다채롭게



Episode 7. 두 마리의 토끼를 모두 잡기 위해 (1)



성공한 로컬 브랜드에 대한 기준이 있다면 무엇일까. 아니, 그전에 로컬브랜드에 성공이라는 단어가 붙으면 어딘지 조금 어색하게 느껴진다. 단어를 그대로 해석하면 자신의 목적이나 뜻을 달성했으니 전혀 문제 될 게 없는데도 말이다. 또한 성공은 목표와 때에 따라 크기도 천차만별인데 대체로 사람들이 떠올리는 성공은 그렇지 않다.


우리 주변에서 전해 듣는 성공 사례를 보면 과정을 헤쳐나간 경험 자체보다는 결과로 얻어지는 사회적 지위나 부, 조직의 규모와 같은 것이 많다. 그 사이사이 작은 성공은 '성공'도 '실패'도 아닌 애매한 것으로 간주되기도 한다. 때문에 그 일에 관심이 없거나 참여하지 않은 사람들은 눈에 띄지 않는 성공은 존재를 알 수 없다. 그래서 성공 대신 '성장'이라는 말이 그 뒤를 받쳐준다. 성공이 다 큰 어른이라면 성장은 아직은 작고 미숙하지만 미래가 열려있고 성공 가능성이 있는 풋풋한 이미지가 있다. 어쩐지 로컬브랜드는 성장이 더 어울린다.


아마도 아직은 규모를 키운 로컬브랜드가 많지 않다 보니 해당 분야 자체가 성장하는 시기여서 그런 것 같다. 그리고 로컬브랜드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아는 성공한 브랜드보다는 희소한 브랜드에 매력을 느끼는 성향도 있는 듯하다. 아직 사람들이 잘 모르는, 나만 알고 싶은 브랜드를 선호한다. 다양성의 추구와 동시에 그 안에서의 차별성, 자신만의 개성 등을 찾는 사람들이 로컬브랜드와 로컬크리에이터에게 먼저, 그리고 빠르게 반응하곤 한다. 게다가 로컬크리에이터들 간의 콜라보는 훨씬 더 흥미롭다 못해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경험인 만큼 '리미티드 에디션'으로서의 가치도 높다.



[출처] 강원 '브레드메밀' (업체 인스타그램) / 해남 '간만의 숲' (본인촬영)



그러나 무한한 성장이란 없듯, 언젠가는 자연히 소멸되거나 대체 가능한 다른 것이 나타나기 전까지 나는 어디까지 갈 것인지, 궁극적으로 내가 도달하고 싶은 모습은 무엇인지를 정하고 어떻게 실현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 방향성이 중요한 이유는 더 빠르게 가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성장'이라고 정의할 수 있는 조건으로서 시작점과 도달점을 잇는 선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던 일과 분야 때문인지, 나는 '성장을 강조하는' 리더와 '방향성을 모르겠다는' 구성원들이 부딪히는 모습을 종종 마주하곤 했다. (이걸 해결하는 게 주로 내 일이기도 했다..) 자세히 관찰해 보면 다음과 같은 유형과 원인이 있었다.



a. 도달하고 싶은 모습이 명확하여 방향성이 있는 리더는 성장이 필요하다.
a-1. 리더 본인만 알고 있다 / 구성원들은 모른다. (=비전으로 공유하지 않거나 소통x)
a-2. 리더와 구성원이 각각 원하는 방향성이 다르다 (=동상이몽)
a-3. 리더가 도달하고 싶은 모습이 너무 많다 / 구성원들이 각자 움직인다 (=배도 많고 산도 많고 사공은 더 많음)


b. 도달하고 싶은 모습이 불분명한데 일단 성장을 외친다.
b-1. 하다 보면 좋은 게 나올 거라 생각하는 리더 / 왜 해야 하는지 모르겠는 구성원. (=방치와 무책임의 대환장 콜라보)
b-2. 같이 고민해 주길 바란다 / 구성원은 내가 하고 싶은 걸 얘기한다. (=초기엔 화기애애, 시간 지나서 하고 싶은 게 서로 달라지면 각자의 길로)
b-3. 리더도 이 일을 왜 하는지 모른다 / 구성원은 당연히 더 모른다. (=제발...)



지난 회차 말미에 로컬브랜드가 자신의 방향성을 찾고 난 뒤 성장과 지속가능성을 얻기 위해서는 조직의 영역으로 과제가 넘어간다고 말했다. 사실 방향성이 있든 없든 다수 이상의 그룹이 유지가 되려면 공동의 목표가 있어야 한다. 목표 달성을 원한다면 그룹을 유지시켜야 하고, 유지 자체가 목적이라면 그냥 친목 쌓고 놀듯이 하면 된다, 동아리처럼.


나는 스타트업이 스타트업을 못 벗어나고, 로컬 브랜드가 작은 규모 만으로는 오래 유지하지 못하는 결정적인 원인을 주로 조직(운영)의 실패에서 발견했던 편이라 누군가 좋은 아이템이 있다고 하면 정말 좋은 건지(1화의 좋은 제품 기준 참조) 확인한 뒤 가장 먼저 물어보는 게 혼자 할 건지에 대한 여부였다. 혼자 하겠다고 한다면 그에 맞게 리소스를 충족할 방법을 찾으면 된다. 그런데 대부분은 팀을 원한다. 혼자서 하는 건 내가 힘들기 때문이다.


외부 환경을 잘 파악하는 것부터 적절히 대응할 수 있는 것까지 사업처럼 돌아가게 하려면 일을 어떻게 만들어야 할까? 대부분 처음에는 일을 만드는 것에 집중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어떻게'가 중요해진다.



내가 알아서 하던 일들을 다른 사람에게 맡길 때, 어떻게 설명하는가?


지속이든 확장이든 하고 있는 일을 반복하고 넓히려면 일손이 더 필요하다. 당장에 변하는 외부 환경에 대해서는 리더이자 로컬크리에이터인 본인이 가장 먼저, 직접적으로 체감하고 대응한다. 하지만 그 사이 해야 할 일을 놓치게 되니 도와줄 사람을 구한다. 단순한 작업을 주로 맡기고, 그 사람의 손에 익은 것을 확인하고 나면 그 일에 대해서는 신경 쓰지 않는다. 그렇게 내 일을 하나 둘 다른 손으로 옮기고 나면 보다 안정적으로 운영이 된다. 새로운 일을 펼칠 수 있는 여력이 생기고, 맞대어 고민할 머리와 손이 더 필요해진다. 앞서 사람을 구했을 때 잘 안착되었으니 똑같은 방식으로 사람을 구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안타깝지만 여기서부터 두 번째 죽음의 계곡으로 향한다. 스타트업계에서 자주 쓰이는 이 용어는 창업 초기 비즈니스 구축 이후 성장 및 확장을 위해 자금, 인력 등의 리소스 확보에 힘써야 하는 상황에서 이를 해결하지 못하고 높은 확률로 실패하는 것을 표현하기 위해 사용하는데, 나는 이 시기를 넘기고도 확장된 규모를 안정화하지 못하면 두 번째 죽음의 계곡으로 가는 것이라고 표현한다. 시장에서의 좋은 반응을 얻고, 늘어나기 시작하는 수요에 맞춰 규모화를 하는 과정에서 겪는 문제의 발생 원인은 명확하다.


리더가 조직화를 해본 경험이 없고, 직접 뽑은 팀원들인 만큼 알아서 잘하겠거니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문제라기보다는 문제를 만드는 원인에 가깝다. 진짜 문제는 그 이후에 있다.


모르고 놓치는 사이에 안에서 문제가 하나 둘 쌓이기 시작하면서 한창을 곪아있다가 동시다발적으로, 또는 연달아서 터지기 시작한다. 사람 관리가 안되서일까? 그것도 맞다. 그럼 이 부분은 인사의 문제일까? 아니다.


내가 혼자 알아서 잘하다가, 다른 사람에게 일을 넘겨줄 때 우리는 인수인계라는 것을 한다. 인수인계가 잘 되지 않으면 기존만큼 일이 돌아가지 않는다. 잘해도 그 일에 익숙지 않은 사람이 적응할 때까지 모든 것은 넘겨받은 당사자에게는 변수가 된다. 이 변수를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좋은 팀원으로 인정받거나, 실력 없는 팀원으로 평가받는다. 몰랐다는 말이 핑계처럼 들리고, 당사자의 억울함과 상관없이 빠르게 다른 인력으로 대체되지만 똑같은 현상이 반복된다. 사람이라는 리소스가 '관리'가 안 되는 문제에 대해 관심 있는 리더는 그리 많지 않다. 거기까지 생각하기엔 해결할 일이 너무 많아서이다.


그래서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 일이 되고 있을 때, 그 모습을 문서로 남겨두는 것이다. 그리고 이 모습이 유지가 될 수 있도록 같이 일하는 사람들에게 공유하고 새로운 사람이 오면 알려주어야 한다. 내가 봤던 곳들 중에서 성장이 빠르든, 느리든 탄탄한 조직을 유지하고 있는, 그렇게 하고자 하는 곳들은 언제나 디테일한 가이드가 존재했다.



<가이드라인의 구성요소>

리더의 비전이나 그룹의 활동 이력이 정리된 문서

일 할 때 지켜야 할 최소한의 규칙

그룹 안에서의 업무소통 방법



최근에 관심 갖게 된 아이스크림 가게가 있는데 그곳은 직원 채용을 위해 160페이지가 넘는 접객가이드를 책으로 엮어낸 것으로도 유명한 곳이다. 그만큼 우리를 찾아주는 손님들에게 진심을 다하겠다는 의지가 돋보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함께 일하는 사람에게 자신이 생각하는 비전과 일하는 방식을 명확하게 전달하는 데에는 이만한 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출처] 용산 '녹기전에' 채용페이지. 450가지 이상으로 추정되는 아이스크림과 독특한 작명으로도 유명하다. 맛있으니 기회가 되면 꼭 드셔보기를.



그런데 20명이 넘어가고 50명이 넘어가면, 여러 부서로 팀이 나뉘고 작은 리더(=중간관리자급)가 나타나면서 가이드라인만으로는 해소되지 않는 것들이 생긴다. 바로 사업의 우선순위이다. 비즈니스가 지속되지 못하거나 예전과 달리 성과를 내지 못하고 정체되는 경우를 보면 그룹의 생존과 지향점 사이에서 리더와 구성원 간에 합의된 우선순위 없이 각자 따로 일하고 있을 때가 많다.


모든 게 다 중요하다는 건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다는 것과 다름없다는 말이 있다. 이 이슈를 리더가 해결해주지 않으면 모든 구성원들은 자기 일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우선순위가 없이 일이 진행되면 사업 전체의 속도가 느려지고 심한 경우 협업을 하지 않으려는 조직문화가 형성되면서 독단적인 행동으로 추후 다른 사람의 일에 악영향을 주기도 한다. 구성원의 업무와 의사소통을 조율하고 정리하는 오퍼레이팅 단계로 넘어오게 된다.



<초기 가이드에서 오퍼레이팅으로의 진화>

초기 가이드 : 리더의 비전 + 일이 진행된 서사 + 구성원의 업무 분담 + 해야 할 일에 대한 내용과 방법

늘어난 규모에서의 오퍼레이팅 : 초기 가이드 + 비전에 따른 방향성 + 우선순위 + 의사소통 및 합의 방법



물론, 모든 구성원이 어벤저스 급이어서 여기저기 터지는 문제를 알아서 해결하고 자신의 바운더리에 대해서도 완벽하게 책임질 수 있을 정도의 노련함과 전문성을 갖추고 있다면 괜찮다. 가능하다면 말이다. 오퍼레이팅의 핵심은 사람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따라오면서 일을 할 수 있게끔 한다는 것이다. 초반에 말했던 일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의 그 '어떻게'에 해당한다.



어떻게에는 3가지 세부사항이 있다.


- 그룹이 가고자 하는 도달점, 방향

- 거기까지 가기 위해 필요한 것, 현재 우리 역량 (가진 리소스, 강점과 약점 등)

- 거기까지 가는 데 고려해야 할 환경 (시장 기회나 경쟁사, 위협 요소 등)



이것을 분석하는 기법을 SWOT이라고 하는데, 이를 통해 해결해야 할 일들이 나열되고 나면 우선순위를 정하게 된다. 이 우선순위에 따라 연간 계획이나 전략, 혹은 먼저 구성해야 할 팀(중요한 순서대로)이 결정된다. 리더가 다 결정한 뒤에 공유한다면 Top-down 방식이 될 거고, 비전워크숍 등을 통해 다 같이 논의 한 뒤에 최종적으로 리더가 결정한다면 Bottom-up 방식이 될 것이다. 구성원들의 역량이나 성향에 따라 어느 쪽으로 하든 적합하면 된다고 생각하지만 이렇게 우선순위를 정하고 공유하는 과정 자체가 없을 경우엔 위의 a나 b같은 상황으로 이어지면서 성장이 정체된다.


이 지점을 극복하지 못하면 장기적으로는 퇴화하고, 무리하게 확장해서 더 큰 리스크를 맞이하게 될 수 있다. 처음부터 차근차근 일을 만드는 방식과 우리의 방향성을 명문화(텍스트화)하고 소통하지 않아서 생기는 문제이다. 어린 시절 방학 일기를 차곡차곡 미뤄뒀다가 개학 전날 밤새 내용을 쥐어짜 내느라 머리가 아팠던 것의 아주 매운 사회맛(!) 버전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브레드메밀 : 강원도 평창에서 메밀을 활용해 빵을 만드는 로컬베이커리이다. 메밀은 글루텐이 없어 빵을 만들기 어려운 곡물임에도 평창에서 나는 메밀을 비롯한 다양한 식재료를 활용해 꾸준히 연구하여 빵을 개발하였다. 몸에 좋은 빵을 만드는 일 외에도 토종식재료워크숍, 지역농가와의 협업 등 지속가능한 음식과 관련한 활동들을 하고 있다. (현재는 평창에서 영월로 사업장을 옮겼다.)


*간만의 숲 : 전라남도 해남에 소재한 3만 평 규모의 사유지로, 매 해 1년에 단 한 번 무료로 숲을 개방하기 때문에 이름도 '간만의 숲'이다. 차로 시골길을 한참 들어가 유채꽃이 가득 핀 밭을 지나가면 스태프가 주차할 곳을 알려주고, 입구를 따라 언덕을 올라가면 해남의 로컬 브랜드들이 모인 플리마켓을 구경할 수 있다. 숲 지도를 받아서 산책하다 보면 곳곳에 쉴 수 있는 공간과 가볍게 체험할 수 있는 문화예술 프로그램도 있다. 올해는 4월 5일에 연다고 하며, 무료이지만 사유지인만큼 사전예약을 해야만 들어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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