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컬을 좋아하고 브랜드를 소비하는 누군가의 생각
Episode 9. 미래에 필요한 것
내가 하고 싶은 일로써 로컬이라는 분야를 좋아하게 된 데에는 주변 환경의 영향도 있었지만, 내면에서는 늘 성장에 목말라하는 욕구의 영향도 컸다.
학습된 지식을 체득하여 지성과 지혜로 발전시키고 싶었고, 더 높은 생산성과 효율을 위해 이상적인 협업을 현실적으로 고민하게 되고, 다양함을 접목한 창의적 즐거움을 얻기 위해 더 넓은 시야를 가지려 노력하던
그 과정에서 경험한 모든 것들과 만났던 사람들을 통해 나는 어떤 의미를 좇으며 살고 있는지, 내가 어떤 사람으로 인식되고 싶은지를 고민할 수 있었고 잘 만든 로컬 브랜드는 그런 점에서 벤치마킹하고 싶은 여러 가지 방법 중 하나였다. 창업은 이것을 공부하기 가장 좋은 수단이었다.
<벤치마킹 포인트>
행동경제 = 좋은 제품(=기능)을 사람들에게 많이 알리기 위해, 고객을 만나는 또 다른 접근방식(=관계)
가치확산 = 자원발굴과 스토리텔링을 통해 가치를 공유하고 전달하는 매개체 역할
지속가능성 = 느리지만 꾸준하게, 지속가능함을 다각도로 고민하게 만드는 분야
연결성 = 지역의 연대가 되기도 하고, 취향/팬덤이 되기도 하고, 새로운 문화코드가 되기도 하는
경쟁력 = 상향평준화된 제품/서비스와 그럴듯한 메시지가 넘쳐나는 시장에서 진정성 있는 코어(core)를 갖춘
비즈니스로 빠르게 성공하고 싶다면 입체적이고 감도 높은 브랜드를 만들거나, 트렌디하면서도 차별화된 아이템을 선택하면 된다. 스타트업을 중심으로 사업기획, 전략 업무를 하다 보니 그런 생각을 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고, 딱히 나쁘게 생각할 일도 아니었다. 하지만 겉으로는 좋은 가치를 추구하는 척하면서 실상은 돈을 벌기 위한 가면으로만 활용하는 곳이 생각보다 많고, 그런 브랜드를 만드는 기업과 창업자들을 보면 딱히 돕고 싶은 마음은 안 들었다. 제안하는 가치에 완벽하게 부합할 수는 없지만 조금이라도 행동하려 노력하는 모습조차 없다면 진정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그래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펼치기 전에 스스로 앞장서서 행동으로 보여줄 수 있는 나의 진정성은 어떤 지점에 있는지를 먼저 찾고 싶었다. 그게 내가 만드는 일과 브랜드의 중심축이 되고, 긴 호흡을 유지하기 위한 끈기와 책임감의 근원이 된다는 것을 다양한 로컬브랜드와 로컬크리에이터를 관찰하면서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로컬의 역사적 또는 문화적 요소를 보존하여 자연과 사회의 다양성을 유지하고, 옛 지혜와 전통을 시대의 흐름에 맞게 재가공함으로써 땅과 사람, 문화가 어우러진 삶이 지속될 수 있도록 기여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다. 나는 이러한 움직임이 비록 각각의 작은 단위일지라도 꾸준히 모이면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이들은 협동의 필요와 가치를 잘 알고 활용한다. 이것이 내가 로컬을 지향하는 이유이자 배우고 싶은 지점이다.
그렇게 다양한 분야에 관심 갖고 가치 지향 비즈니스를 몸소 경험하며 나만의 '결'을 탐색하는 과정으로서 일을 해왔지만, 내가 어떤 결을 가진 사람인지는 여전히 알 수 없었다. 타고난 기질로써 이해되다가도 살면서 보고 듣는 것에 따라 변하는 듯했다. 때문에 내가 좋아하는 로컬크리에이터와 로컬브랜드에 더 가까이 다가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쉐도잉을 하면 조금은 더 힌트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기존에 유지해 오던 방법(=일)이 아닌 새로운 시도(=개인적인 학습과 여행, 활동)에 집중하니까 내가 방향을 정하는 기준이 무엇인지 아주 조금이나마 깨달을 수 있었다. 아직은 흐릿하지만 전보다 진정성의 형태가 그려지기 시작했다.
어쩌면 나는 그동안 일을 통해서만 고민했기 때문에 깨닫지 못한 게 아닐까 생각한다. 함께 일하면서 좋은 취지와 가치에 공감했지만 그건 온전한 내 문제가 아니었다. 남의 문제를 해결하는 일을 마치고 그곳을 벗어나면, 정작 내가 지내는 환경에는 아무것도 없었고, 딱히 이렇다 할 취미도 없었기에 단조롭고 무색무취의 일상에 유일하게 다채로운 건 내가 소비해 오던 제품과 좋아하는 브랜드뿐이었다. 탐색의 과정이라는 이유로 일에 파묻혀 나 스스로에 대해 알아갈 시간이 부족했던 만큼 비즈니스라는 시야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걸 깨닫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앞으로 내가 주체가 되는 활동을 통해 나의 중심축을 찾게 되면, 그것으로 함께 할 수 있는 로컬을 찾고, 그곳에 활력을 채울 수 있는 커뮤니티를 만들고 싶다는 장기적인 목표가 있다. 이를 위해서라도 로컬브랜드를 더 많이 탐구하고 싶지만, 근래에 로컬 기반의 움직임이 활발해지는 게 확연히 체감되면서도 새로운 브랜드와 로컬크리에이터를 만나는 것은 보석을 발견하는 것처럼 희소하고 귀하다. 아직은 주류라고 말하기 힘든 이 분야가 더욱 활성화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생각해 봤다.
가장 먼저는 로컬을 지향하는 문화가 더 확산하는 것이다. 그리고 온고지신의 마음으로 지역의 역사적/문화적 가치를 훼손하지 않고 활용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는 지속가능성을 실체화하여 사람들에게 더 나아지고 있는 모습을 공유하는 것이다.
1. 로컬을 지향하는 문화 만들기
로컬 안에서의 커뮤니티 외에도 도시와 농업, 도시와 지역을 잇는 로컬 컨텐츠와 프로그램을 만드는 다양한 플랫폼과 크리에이터들이 있다. 이들은 로컬 각각의 다양성을 존중하고, 재미와 경험을 넘어 생활에 스며들도록 연구하며, 개인이 자신의 진정한 내면을 바라보게 함으로써 건강함을 추구할 수 있도록 한다. 로컬에 살고 있지 않더라도 쉽게 연결될 수 있는 접점을 만들고 가볍게 참여할 기회를 제공하여 지역의 가치에 공감하고 행동할 수 있도록 진입장벽을 낮추는 역할을 통해 더 많은 사람들이 로컬을 지향할 수 있도록 돕는다.
2. 온고지신과 지역재생
로컬 활성화에 있어 떼놓을 수 없는 단어가 있다. 지역재생 또는 도시재생이라 불리는 활동은 옛것을 전부 없애고 새롭게 만드는 게 아니라 보존할 가치가 있는 것들을 발굴하고 이를 활용해서 지역을 회복하는 것에 의미가 있다. 지역재생은 1년짜리 성과도,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시장 기회도 우선이 아니란 뜻이다. 지속가능성을 바라보며 장기적으로 이어가야 하고, 지역의 가치를 훼손하지 않는 선에서 공공과 개인, 기업이 지역에 기여할 수 있는 것을 고민하면서 자원을 활용해야 한다.
3. 지속가능성의 실체화 (지표 활용)
또한 위의 모든 것들이 감정의 호소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지역의 가치에 대해 본질적으로 인지하고 공동의 목표로서 바라보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려면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명확한 미션과 비전을 만들고 행동에 대한 결과를 측정하여 사람들에게 그 효과와 성과를 공유하고 알려야 한다. 가치 지표는 지역의 모든 이해관계자들과 객관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 도구가 될 수 있다. 지표를 설정하는 과정에서 특정 집단의 이익과 지역이기주의에 매몰되지 않도록 이끌어 간다면, 생산적인 토론문화가 형성될 수도 있다. 결과적으로는 공동체를 회복하는 과정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로컬의 주체로서 행동하는 사람들과 브랜드가 있다면 그들을 응원하고 지지하는 조력자로서 움직이는 것도 좋다고 생각한다. 나도 과거의 일을 통해 위와 같은 고민을 하게 되었고, 그렇게 그들에게 관심 갖고 소비하며 주변에 알리고 있다.
다만 나는 앞으로는 조력자이자 주체자로서 살아가고자 한다. 물론 주체가 되기 위해서는 갈 길이 멀지만, 생각을 하는 것만으로도 즐겁고 설렌다. 어차피 일은 다 힘드니까 이왕이면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고 싶다. 혹시라도 나처럼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다양성을 좋아하며 창의적인 영감을 얻고 싶은 사람이라면, 로컬브랜드를 깊이 들여다보면서 많은 힌트를 얻으면 좋겠다.
*예하(@yeha5_9) : 채소요리연구가. '할머니와 나의 사계절 요리학교'라는 책을 쓴 저자이며, 할머니의 레시피를 통해 제철채소와 우리 토종 식재료, 전통장 등을 활용한 채식요리를 선보이고 있다. 자연이 오롯이 담긴 플레이트를 보면 리틀포레스트가 떠오른다.
*파머투비 : 안정적인 농업 생산과 지속가능한 소비를 위해 소비자가 직접 참여하는(=프로슈머) 플랫폼을 운영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하동 차밭 지키기 프로젝트가 있으며 찻잎 따기와 차 만들기 클래스 등을 통해 소비자에게는 경험과 지속가능한 농업을 알리고, 지역 농가에는 부족한 인력을 채우는 역할을 하고 있다.
**까미노사이더리 : 지구온난화로 인해 사과 재배 지역이 점점 윗 지역으로 올라오면서, 양구에서도 사과를 재배하고 있다고 한다. 그중에서도 파지 사과를 활용해 애플사이더를 만드는 곳으로, 발사믹펄/블록 등 다양한 형태의 식초를 만날 수 있다. 또한 생산자와 소비자를 있는 플리마켓 '양구 잇(eat)장', 퍼머컬처(지속가능한permanent+농업agriculture)학교 등을 운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