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컬을 좋아하고 브랜드를 소비하는 누군가의 생각
Episode 5. 로컬브랜드의 성장에 필요한 '더 많은 소비'
옛날에는 로컬이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올랐던 게 지역 농수산물, 특산물 매장 등 식재료와 관련된 것들이었다. 유기농으로 재배했거나, 여러 유통 단계를 거치지 않고 직거래로 판매를 하거나... 로컬에 사람들이 반응했던 이유는 자신의 문제로서 가장 관심을 많이 가질 법한 '건강'과 '비용'에서의 효과를 높였기 때문이다. 로컬 자원이 만드는 가치보다는 소비자의 니즈에 부합하는 기능적 측면이 더 강했을 때다.
그러나 웰빙이라는 트렌드와 코로나19 사이에서 건강이라는 니즈가 스펙트럼을 확장함과 동시에 증폭하고, 온라인 신선식품 쇼핑이 일상화됨에 따라 사람들이 먼 지역의 로컬 푸드도 쉽게 접할 수 있게 되면서 같은 제품군에서도 더 눈에 띄는 상품들이 있고, 비교적 합리적인 가격을 제안하는 곳도 많아졌다. 그 속에는 친환경 농법을 확산시키고자 했던 농부와 연구원, 소작농의 판로 확충을 고민하는 유관기관과 지자체, 개인들의 노력과 수많은 시행착오도 담겨있다. 그들의 스토리가 로컬푸드의 가치소비를 만들어 주었다.
< 로컬푸드에서의 가치소비 >
친환경 농법 : 건강한 식재료를 얻을 수 있고, 땅을 오염시키지 않으면서 농업을 지속가능하게 하는
토종 작물 보존 : 지역풍토에 잘 적응하고 생존율이 높은 만큼 친환경 농법이 용이하고, 종다양성을 유지하여 생태계를 회복할 수 있고, 식량안보에 중요한 종자주권*확보에 필요한
소작농의 판로 개척 : 작은 규모의 농가에서 생산한 좋은 품질의 농작물을 합리적인 가격에 구입, 농가에서는 적정 가격에 판매할 수 있는 상생구조
지역 활성화 : 지역 자원을 활용한 경제활동 강화와 지역민 일자리 창출
그리고 이러한 그들의 노력에 결실을 맺어주듯, 뜻이 확고하고 아이디어 넘치는 청년 농업인들이 로컬푸드를 활용해 로컬브랜드로 성장해나가고 있다. 최근에는 다양한 품종을 선보이며 자신의 취향을 고르는 재미까지 더한 샘플러 제품도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 미식과 종다양성 추구를 결합한 좋은 사례라고 생각한다.
개인의 경험과 취향에 따라 로컬 푸드를 시작으로 로컬 브랜드에 관심을 갖게 되었지만, 로컬푸드의 브랜드화는 위와 같은 다양한 이해관계 속에서 얼기설기 쌓여온 가치들과 인간이 가진 자연으로의 회귀 본능이 시너지가 돼서 잘 풀린 케이스라고 생각한다. 이외에도 다양한 분야에서 많은 로컬 브랜드가 있는데 활동하는 것에 비해 (내 생각에) 아직은 그들의 고객이 충분하지 못한 것 같다. 물론 고객을 더 많이 확보하는 것보다 더 나은 세상을 위한 가치를 제안하고 지켜나가는 것이 그들의 우선순위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더 아쉽고 더 많이 알리고 싶은 것이다.
일을 하면서 알게 된 로컬 브랜드들이 어느 순간 고객이 일정 수준에서 더 늘어나지 못하고 정체되는 문제를 어떻게 하면 극복할 수 있는지 고민했다. 그리고 많은 사례들을 관찰하면서 낮은 접근성과 확장의 한계에 대한 원인을 다음과 같이 2가지로 정의했다.
a. 생소한 자원의 낮은 접근성 혹은 그 반대
로컬브랜드들의 최소한의 공통점이자 로컬브랜드로 구분하는 기준은 바로 로컬이 가진 자원을 활용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자원에 담긴 지역적 이야기가 있고 그것의 강점을 활용하거나 약점을 해결하는 형태로 비즈니스모델이 만들어진다. 그러나 그 자원이 사람들에게 익숙하지 않다면 구전이 되기 쉽지 않다. 지역문제를 외부인이 100% 공감하지 못하는 것 이전에 자원(원재료 또는 아이템) 자체가 사람들에게 익숙하냐에서 첫 번째 장벽을 만나게 된다. 반대로 상품이 또 너무 익숙하면, 지역의 스토리가 차별화가 될 수는 있지만 상품 자체로 경쟁사가 많아진다. 지역과 고객 사이의 먼 거리를 잇는 연결 요소가 추가로 필요하다.
(생소한 자원의 대표적인 예시)
는 바로 나... 12년 전 창업멘토로 매칭된 기술벤처기업 대표님께 첫 미팅에서 소개시간 20분 내내 소셜다이닝 설명만 하다 끝난 적이 있다. 심사받을 때도, 주변 사람들에게도 매번 소셜다이닝을 풀어서 얘기하는 것부터 시작했다. 말솜씨가 부족했을 수도 있지만 일단 설명해야 한다는 것 자체에서부터 난관이었다. 그다음을 이야기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반성하자면 지역 자원(을 간접적으로 활용)도 아니고, 지역(으로 묶을 만한 게 한두 개가 아닌)스토리도 아니어서 애매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고, 그때는 나도 사실 뭘 하고 싶은지 명확하지 않았던 것 같다. 참고로 지금도 가끔 소셜다이닝이라는 단어를 꺼내면 사람들이 그게 뭐냐고 물어본다. 하하...
생소한 자원을 사람들이 흥미를 가질 만한 소재로 가공하거나, 익숙한 것을 새롭게 느낄 수 있도록 변형하는 것은 창작의 영역이다. 로컬브랜드-오너라고 하지 않고 로컬크리에이터라고 부르는 이유가 이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함께 머리 맞대고 고민하기, 타 지역의 비슷한 사례들을 학습하기, 다양한 아이템과 자원을 매칭하는 연습 등은 지원사업 교육프로그램에 포맷처럼 들어가 있는 방법론이다. 이것도 중요하지만 진짜 창의적인 것은 그 자신에게서만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무엇을 추구하고 어디에 진정성을 두고 있는지가 분명해져야 무슨 얘기를 하든 사람들에게 통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어떤 타인에게도 통하지 않는 창작물은 비즈니스가 될 수 없다는 것도 유의해야 한다. (창작물을 만들 수 있는 시스템을 팔면 모를까)
그래서 낮은 접근성을 해소하기 위해 로컬크리에이터들은 시간이 조금 걸리더라도 브랜딩을 위한 콘텐츠를 만들고 사람들과 소통하려고 한다. 브랜드의 시작은 찐팬들의 입소문에 의해서 이뤄진다는 공식을 알기 때문이다. 생소한 자원이라도(혹은 먼 동네의 이야기라도) 팬이 될 만한 사람들과의 지속적인 소통을 통해 우리의 스토리를 한 단계 더 진화시켜 가치로 발전시킴으로써 확장의 토대를 만든다.
b. 높은 비용에 따른 확장의 한계
일을 통해 다방면에서 좋은 가치를 제안하는 지역 기반 기업과 상점들을 발견하고 가치소비를 즐길 수 있었지만, 소비자로서 한 가지 고민이 있었다. 즐긴다는 표현에서 말해주듯 일상 속의 모든 소비재를 바꾸지는 못했는데 이유는 간단명료하다. 비용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좋은 소비재로 하나씩 바꿀 때마다 생활비 단위가 올라가는 게 부담스러우니 자연스럽게 그다음 실천으로 쓰는 것 자체를 아끼게 되었다. 자원사용을 줄이니 환경에는 좋겠지만 이렇게 해서는 다른 사람들에게 적극적으로 추천할 수 없었다. 내가 선뜻 구매하지 못하는 것들도 있었다. 소비자의 비용 부담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공급자의 결심이 필요했다. 단순하게 가장 먼저 떠올랐던 건 생산량을 늘려 원가를 낮추는 방법***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원가절감은 생산 프로세스부터 판매까지 각 구간마다 영향을 준다. 당연히 쉽지 않은 선택이다. 처음과 같은 품질이 유지된다는 보장도 어렵다. 설비를 투자하고 자동화를 하더라도 투자비용을 회수하려면 시간이 오래 걸린다. 관리비용도 무시할 수 없다. 동시다발적으로 불안정성이 늘어난다. 작은 규모의 로컬 브랜드가 갑자기 덩치를 키우면 비슷한 문제를 겪는 이유기도 하다.
반대로 오랫동안 천천히 유지해 나가는 곳은 가치를 담는 핵심으로서 '품질'을 더욱 확고히 하는 대신 그 가치만큼의 가격을 고수하는 것을 선택한다. 더욱이 자원의 특성상 생산량이 얼마 나오지 않는 제품이라면 의도하지 않더라도 희소성 덕분에 프리미엄화가 더 잘 된다.
그럼 후자를 선택한 로컬브랜드는 확장할 수 없을까?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브랜드의 본질과 제품의 특징에 따라 다르고, 브랜드를 만들고 운영하는 사람들의 가치관과 속도에 따라 충분히 확장할 수 있다.
다만 내가 생각했던 건 '좋은 제품들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오랫동안 사랑받고 합리적인 가격으로 자주 쓰일 수 있으면 좋겠다'였기에 작은 상점으로 시작해 기업이라는 규모로 안정적인 비즈니스 스케일-업을 위한 혁신적인 방법을 모색하고 싶은 욕심이 있다. 가치소비가 확산되기 위해서는 그만큼 더 많은 고객을 만나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다른 결의 질문도 함께 떠오른다. 가치는 확산도 중요하지만 잠깐 유행하다 마는 게 아니라 지속하는 것도 중요하지 않나? 비즈니스의 확장이 지속을 담보하는 것이 아님을 깨달은 후였다.
<연상되는 질문들>
규모를 확장하고 성장하지 않으면 지속가능하지 못한가?
작아도 오래 유지하면 지속가능한 것 아닌가?
그럼 지속가능성은 비즈니스보다 문화에 가까운가?
로컬브랜드에게 지속가능성이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종자주권(Seed sovereignty) : 농업과 식량 생산에서 중요한 개념으로, 전 세계적으로 대형 농업 기업들이 종자의 생산과 공급을 통제하고 있는 상황에서 농민들이 자신들의 전통적인 방법과 자원을 기반으로 독립적이고 지속 가능한 농업을 할 수 있도록 보장하려는 운동에서 나온 용어이다. 우리나라는 IMF이후 종자기업 대다수가 외국계 기업에 인수되면서 대다수 토종 종자에 대한 주권이 사라졌다고 한다. 농사를 지을 때마다 매번 종자를 구매해서 써야 하는데, 만약 어떠한 이유에서 공급을 받지 못한다면 우리나라 토종 종자임에도 우리나라에서 농사를 지을 수 없는 것이다.
**그래도팜 : 강원도 영월에 소재한 친환경 유기농 토마토 농장이다. 2대를 이어 지속가능한 농업을 위해 유기농법을 고수하고 다양한 토마토 품종을 재배하고 있다. 대표적인 상품은 에어룸 토마토인데, 에어룸(heirloom)이란 오랜 시간 변형 없이 토종 그대로 유지되었다는 뜻이라고 한다. 2024년에는 16가지 품종이 수확되었다.
**귤메달 : 다양한 종류의 귤을 경험해 볼 수 있는 제주기반 시트러스 브랜드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한라봉, 천혜향, 레드향을 비롯해서 꾸준히 늘어나는 신품종들을 소개하고 귤을 활용한 다양한 상품들을 개발하고 있다. 과일포장을 감각적인 디자인을 입히면서 많이 알려지게 되었다.
**옥희방앗간 : 강원도 원주에 소재한 방앗간이다. 1972년에 문을 연 할아버지와 어머니에 이어 3대가 리브랜딩 한 곳으로, 대표 상품으로 들기름/참기름을 로스팅 콘셉트를 접목해서 각각 2가지 버전으로 판매하고 있다. 오랜 지역기반업체인 만큼 지역 농가와의 협력뿐 아니라 카페 운영 등을 통해 로컬푸드 커뮤니티와 문화가 어우러진 다양한 경험형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원가절감 vs 이윤최소화 : 그냥 기업이 이윤을 줄이거나 안 남기면 되지 않냐고 물어볼 수 있다. 사회적기업 제품을 접한 대부분의 소비자들이 이런 질문을 많이 했다. 100% 이윤 없이 돌아가는 회사는 성장하지 못한다. 최소한의 이윤은 좋은 품질을 유지 하기 위한 시설 관리, 더 많은 생산을 위한 설비 투자 등 다음을 위한 자금 마련에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걸 부당하게 유용하거나, 상품의 가치에 비해 크게 부풀리는 나쁜 회사(의 대표)가 문제다. 그리고 정말 좋은 재료로 만드는 제품들은 생각하는 것보다 이윤이 남지 않는다. 재료비를 포함한 원가 자체가 높기 때문이다. 게다가 인건비, 물류비, 임대료 등 고정비는 계속 상승 중인 반면 소득에서 그만큼 체감되지 않으니 무작정 가격을 높일 수도 없다. 특히나 평소 저렴한 가격으로 소비했던 품목이라면 더욱 갭을 크게 느끼기 때문에 가격민감도가 높은 아이템을 갖고 있는 곳은 고민이 많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이 사이를 절충하기 위해 IT분야에서는 '적정기술'이라는 개념이 나오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