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컬을 좋아하고 브랜드를 소비하는 누군가의 생각
Episode 4. 내가 로컬을 좋아하게 된 경로
가치소비를 접하기 이전에도 나는 'Local'을 좋아했다. 이 단어는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한데 모아 가득 담을 수 있는 요술주머니다. 겉으로 보면 작지만 그 속을 보면 어디까지 담을 수 있는지 모를 정도로 무한한 공간 이 있는 것처럼.
제철 식재료
지역특산물
절기음식
건강하게 먹기
슬로푸드 운동
음식 인문학
가치소비
시작은 네다섯 살 어린 시절까지 돌아가야 한다. 어릴 때는 어머니께서 전업주부로 지내고 계셨고 그래서 간식을 직접 만들어 주셨다. 오븐에 통닭이나 피자토스트를 굽기도 했고 집 마당 작은 화단에서 진달래를 따서(사실 밖에 있는 철쭉 아무거나 따갔다가 이건 독 있는 거라고 혼났다) 화전도 만들어주셨고, 찹쌀을 쪄서 밥알이 잘 안 보일 때까지 치대어(절구가 작아서 스텐 대야에 놓고 짱돌로 하느라 동생이랑 번갈아가면서 열심히 했다) 인절미도 만들어 먹었다. 간식 만들기는 나와 동생에게는 집에서 할 수 있는 최고의 놀이였다.
집에서 요리를 하시니 옆에서 구경하면서 하나하나 배워갔고, 학교 끝나고 집에 오면 학원 가기 전 그 짧은 시간에 주방에 앉아서 요리책을 보는 게 취미였다. 지금 생각하면 어머니의 전략이었던 것 같다. 초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어머니께서 일을 다니면서 식사의 일부를 나에게 맡기기 시작했고 주요 담당은 된장찌개(만) 그리고 반찬 조리를 위한 식재료 손질이었다. 어머니는 저렴한 비용(=용돈)으로 훌륭한 수셰프(=?)를 구하셨다. 열정도 넘쳐났다. 연차가 쌓일수록 신선하고 좋은 식재료를 구분하는 노하우도 터득했다.
먹는 것에 매우 까다로운 어머니의 영향으로 식탁 위에는 항상 탄단지와 식이섬유, 오방색을 모두 갖춘 식단이 올라왔다. 당연히 식후에는 비타민 섭취도 중요했다. 밥을 먹는다는 건 단순히 허기를 채우는 것 이상으로 영양을 보충하는 것이고 다양한 식재료를 경험하는 것이 우리 집의 식문화였다.
키우기 간단한 채소들은 집 마당에서 직접 길렀고 집에서 해 먹을 수 없는 건 나가서라도 경험했으며 부모님을 따라 여행을 많이 다니면서 지역 음식과 산지 식재료를 일찍이 접할 수 있었다. 열 살 열두 살 남짓 했을 때에는 동해바다로 여행을 가서 해도 뜨지 않은 캄캄한 새벽에 아버지를 따라 오징어잡이 배를 탔는데, 어린 마음에 어디 납치되는 건 아닐까 무서워하던 게 무색할 정도로 막상 잡히는 오징어를 구경하니 신이 나서 결국에는 여느 어른보다도 열심히 오징어회를 초장에 찍어먹고 있었다.
음식은 나에게 놀이이자 지역을 탐험하는 여행가이드와도 같았다. 어떤 식재료가 어느 지역에서 나는 게 맛이 좋은지를 알고, 왜 그런지를 듣다 보면 나에게 그 지역은 'ㅇㅇ이 맛있는 곳'으로 기억 속에 저장되었다. 그래서 나는 지역 식재료와 지역 음식으로 다른 동네를 탐방하는 것에서부터 여행을 시작한다. 그리고 나와 함께 하는 사람들은 어디가서든 먹는 것에 대해서는 전혀 신경 쓰지 않고 내 선택에 맡기는 편이다.
이렇듯 나에게 로컬의 시작은 음식이었다. 그리고 로컬은 계절과 관계도 깊었다. 여전히 어머니가 꼭 챙겨주시는 음식이 몇 가지 있는데 봄에는 어린쑥부침개, 여름에는 호박잎쌈과 오이지, 가을에는 생굴무침, 겨울에는 팥죽이다. 제철에 먹는 좋은 식재료는 나고 자라는 환경적 특징에 따라 특정 지역의 특산물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계절마다 바빠지는 지역이 다른 걸 따라가 보는 것도 꽤 재미있다. 계절을 즐기고 건강하게 먹는 삶을 알려준 부모님 덕분에 나는 어른이 되고 나서 좋은 식재료에 대한 떼루아까지 생각해 볼 줄 알게 되었다. 그러나 급격한 산업화와 환경오염, 기후위기로 인해 어종이 바뀌고 채소와 과일의 맛이 변해가고 있다는 사실을 통해 점점 좋은 식재료를 구하기가 어려워지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때 마침 알게 된 것이 바로 슬로푸드 운동*이었다.
슬로푸드란, 지역의 전통적인 식생활 문화나 식재료를 다시 검토하는 운동 또는 그 식품 자체를 가리키는 말이다. 자연의 시간에 따라 성장한 제철 유기농식품으로 화학적 조미료를 전혀 사용하지 않고 정성스럽게 만들어 그 음식에 대해 생각하고 음미하며 건강하게 먹고 마시는 전반적인 식습관을 의미하기도 한다.
(출처:위키백과)
슬로푸드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서 우연히 좋은 기회가 되어 2013년 아시아에서 최초로 열린 슬로푸드 국제대회 'AsiO Gusto'의 국내 미각교육관 공동 기획자로 함께 할 수 있었는데, 이 커다란 행사에는 그동안 내가 소비자로 수동적인 입장에서만 바라봤던 문제들을 직접 몸으로 부딪히며 고민하고 해결하는 농업인과 제조업자, 교육자, 셰프, 술도가, 문화예술가 등이 모였다. 그들을 통해 농업과 음식 분야에서의 로컬 생태계를 경험하면서 나 또한 조금 더 능동적인 행동을 취하고 싶어졌다.
그들만큼은 아니더라도 좋은 음식운동과 문화를 나누고자 영국 셰프 제이미올리버가 전 세계적으로 펼치던 Food Revolution Day**를 한국에서도 하겠다며 지인들을 모아 건강한 음식과 레시피를 나누기도 했고, 미래식량을 연구하는 모임에도 참여해 곤충단백질로 파스타생면과 떡볶이를 만들어 보기도 했다. 나는 음식으로 사람들과 가치 있는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좋아했다. 그래서 음식을 통해 사람들과 어우러지는 소셜다이닝 창업을 도전하기도 했다.
그러나 문화를 공유하는 것만으로는 왠지 아쉬웠다. 음식과 관련해서 좋은 것을 찾으려 파고들수록 그 뒤에는 '지속가능성'이라는 단어가 항상 따라붙었다. 그저 환경을 보호하고 자원을 아끼는 것이 아니었다. 나는 푸드 분야에서의 지속가능성을 알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로컬 말고도 산업이라는 또 다른 범주의 생태계에 대한 이해가 필요했다. 컨설팅은 업종과 분야를 다양하게 경험하기 좋은 직무였다. 그리고 꾸준히 좋은 푸드 브랜드를 찾아 소비하면서 지속가능성을 탐구하고 관심 있는 회사가 생기면 더 자세히 관찰하기도 했다.
*슬로푸드 운동 : 이탈리아의 작은 마을에서 시작된 슬로푸드 운동의 초기 목적은 좋은 음식과 미식적 즐거움, 느린 삶을 지향하고 지키는 데에 있었다. 슬로푸드에서 말하는 미식이란 단순히 향락을 위한 맛있는 음식이 아니다. 이 새로운 미식 개념에는 3가지 조건이 있어야 하는데 바로 Good(좋음), Clean(깨끗함), Fair(공정함)이다. 음식을 넘어 삶의 태도까지 바라보게 하는 이 운동은 전통적이고 지속가능한 음식과 식재료, 경작법 등을 보존하고 생물의 종 다양성을 보호함으로써 생태계와 조화를 이루는 지역사회의 오랜 지혜를 계승하고자 한다.
*제이미올리버 : 영국의 유명 셰프이다. 재료 본연의 풍미를 살리는 것을 강조하다 보니 조리법이 복잡하지 않고 자유분방한 스타일로 요리를 한다. 건강식을 중요하게 생각하여 영국의 급식제도를 개선하는데 큰 기여를 했고, 자선재단 피프틴을 설립하여 재소자나 실업자들을 요리사로 키워 피프틴레스토랑 등에 고용하기도 했다. 최근 방송 중인 백종원의 레미제라블의 원조격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피프틴 재단처럼 취약계층을 고용하여 요리사로 훈련시켜 취업과 사회 활동을 지원하는 사회적기업으로 베트남의 KOTO, 한국에는 오요리아시아가 있다. (다만 현재는 피프틴레스토랑과 오요리아시아는 폐업을 했다. 내가 지속가능성에 집요하게 고민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