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컬을 좋아하고 브랜드를 소비하는 누군가의 생각
Episode 2. 좋은 제품인데 왜 안 팔릴까
가치소비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서 내가 선호하고 만족도가 높은 상품들은 편익의 극대화보다는 문제 해결에 더 집중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예를 들면,
떡이 먹고 싶을 땐 집 앞 3분 거리의 전통시장에서 언제든 사 먹을 수 있다.
설기, 인절미, 꿀떡, 바람떡 등 종류도 많고 저녁에 가면 3팩에 5천 원에 구매할 수도 있다.
VS
지역 제철 농산물과 국산 쌀로 만든 떡을 온라인으로 주문해서 먹는다.*
구매 단위도 크고, 배송도 며칠을 기다려야 하고, 냉동돼서 온 떡을 소분해야 한다.
온라인상에 고시된 제품 정보를 통해 원료 비율을 확인할 수 있다.
한 번 구매하는 가격이 약 5배 차이가 나는데도 후자를 선택하는 이유는 '좋아 보여서'만은 아니었다. 나는 글루텐 불내증이 있어서 빵을 먹으면 배에 가스가 차는 편인데, 언제부터인가 떡을 먹고 난 뒤에도 같은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매번 그런 것도 아니어서 처음에는 컨디션이 안 좋으면 그런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떡을 만들 때 전분이 들어가서 그랬던 것이다.
쌀보다 저렴한 전분을 넣어 원가도 낮추고 떡이 굳는 시간도 지연되어 오래 팔 수 있으니 가게 입장에서는 넣는 게 더 이득인 셈이었다. 판매 가격도 저렴했다. 생각보다 많은 곳이 전분을 사용하고 있었다.
떡을 좋아하지만, 사 먹으려면 원료를 확인해야 했다. 하지만 오프라인에서는 떡에 쌀만 들어가는지, 다른 게 혼합되는지를 알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상품정보제공고시가 의무인 온라인으로 찾아보면서 구매하기 시작했다. 쌀로만 만든 떡을 먹었더니 가스가 차는 증상이 없었다. 맛도 식감도 쌀로 만든 게 훨씬 맛있었다.
이처럼 내 생활에서 건강상으로, 환경적으로 나쁜 영향을 주는 것들을 하나씩 문제로 정의하고 이를 해결하거나 문제를 최소화하는 제품들을 찾다 보니 차츰 직업관도 바뀌게 되었다. 아니, 직업관이 생겼다고 하는 게 맞는 것 같다. (막연히 하고 싶은 것 말고 일과 회사를 선택하는 기준으로)
‘이왕에 돈이 되는 마케팅을 하고 싶다면, 사회에 좋은 영향을 주는 혁신적인 것들이 팔리도록 돕자’
그런 제품과 서비스를 많이 만나 볼 수 있기를 기대하면서 소셜벤처 창업자와 사회적기업, 로컬 소상공인 등을 돕는 일을 첫 번째 커리어로 선택했다. 그들 중에서도 제품이나 서비스가 더욱 명확하고 진정성 있게 와닿았던 곳은 주로 자신(또는 자신이 생활하는 지역)이 겪고 있는 문제를 직접 해결하고자 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이러한 팀들도 상당수가 유지조차 힘들어하거나, 유지는 하고 있지만 더 큰 규모의 기업으로 성장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 또한 ‘문제해결’ 관점으로 그들의 비즈니스를 살펴봐야 했다.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고객이 충분히 모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자신(지역)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만들어낸 대안이
A. 누구에게 : 고객
B. 어디에서 : 시장
C. 어떤 방식으로 : 지불방법
에 따라 각각의 요소마다 원인이 있었고, 대체로는 아래와 같은 루트로 문제가 인식되었다.
보다 이해하기 쉽도록 사례를 들면 다음과 같다.
사실 제품이 안 팔리면 본능적으로 가장 먼저 고민하는 것이 '홍보'이다. 그런데 위와 같이 살펴보면 고객에게 제품을 노출시키기 전부터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다. 바로 STP(시장세분화/목표시장선택/포지셔닝) 전략이다.
근래에 가치소비가 트렌드가 되기까지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소비와 가치는 다른 영역으로 간주했다. 가치를 위한 활동은 자원봉사나 후원, 기부 등을 떠올리지만 소비는 욕구 해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렇기에 사람들에게 아무리 이 제품이 어떤 의미로 좋은지 설명해도 시장성이 없으면 구매로의 전환율은 바늘구멍과도 같았다. 나조차도 실제로 필요해서 구매하는 것보다 후원하듯이 구매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고, 재구매는 왠지 부담스러웠다.
시장 점유를 목표로 시작한 일이 아니었으니, 시장에 있는 사람들까지는 와닿지 않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좋은 의도만으로는 제품이 팔리지 않으니 시장성을 집요하게 물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런 피드백은 그들을 더 주눅 들게 만들 뿐이었다. 원인은 파악했지만 해결하는 게 정말 쉽지 않았다. 시장성을 보완하려다가 본래 목적이 희미해지는 경우도 많았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곤 했다.
그런데 외부 행사에서 우연히 고객을 잘 모으는 어떤 대표님을 보게 되었다. 해당 업체는 사회적기업도 아니었고, 딱히 문제를 해결하는 목적으로 만들어진 아이템도 아니었다. 특허가 있지만 평범한 편이었고 그보다 대체재가 훨씬 많은 제품이었다. 눈에 띄는 점이 있다면 그 대표님이 제품을 홍보하고 다니는 곳이 지역 행사나 모임 같은 곳이었다. 그는 당신의 니즈가 아니라, 우리의 니즈로 사람들에게 상품을 팔고 있었다.
우리 지역 자원으로 / 우리 동네에서 만든 / 우리 동네 사람들이 하는
나는 '그것만으로 과연 사람들이 알아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그렇게 새로운 고객을 소개받고 또 다른 행사에서 그 제품을 계속 볼 수 있었다. 공공기관의 지역구매우선제도가 아니어도, 지역민들이 소비하고 또 다른 지역의 지인들에게 소개하는 것을 보면서 문득 '로컬(지역)'의 힘을 깨닫게 되었다.
로컬이 가진 기능은 지리학적 구분이라고만 생각했지 판매 전략으로도, 소비자의 니즈로도 생각해 본 적 없는 요소였다. 되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도 지역인구감소나 지역쇠퇴같은 부정적인 단어들이었다.
(아마도 수도권에 살면서 서울 중심으로 지역을 바라봤기 때문인 것 같다)
요즘 사람들이 좋아하는 로컬의 매력과는 조금 다른 모양새이지만 적어도 내가 로컬의 힘에 관심 갖게 된 시작은 여기였다.
*마켓레이지헤븐 : 참고로 내가 구매했던 마켓레이지헤븐은 떡집은 아니다. 지역에서 재배한 농산물을 그대로 또는 가공해서 판매하는 곳인데 산지에서 가까운 만큼 신선한 제철 식재료로 만든 데다 평소 본 적 없던 독특한 떡이어서 흥미로운 마음에 첫 구매를 했고, 이후로 4계절의 떡을 사 먹었다. 봄에는 쑥버무리, 여름에는 완두설기, 가을에는 단호박콩찰떡, 겨울에는 들깨절편. 마레헤는 나에게 계절을 기다리는 재미를 알게 해 주었다.
**더스페이스프렌즈 : 외국인 거주 비중이 높은 용산구 해방촌에서 쪽방을 활용해 공부방을 운영하는 동네 커뮤니티로 시작한 사회적기업이다. 부모 양쪽 모두가 외국인이고, 한글을 쓰지 않는 저소득계층의 다문화가정 자녀들은 한글 습득이 더뎌 학습 속도가 떨어지면서 고등교육으로 갈수록 진학률이 기하급수적으로 떨어진다고 한다. 그래서 공부방에는 초등 저학년 친구들이 많지만 중고등학생도 더러 있었다. 열몇 살인데 처음에는 말을 아예 안 하는 친구도 있었다고 했다. 고등교육이 궁극적 목적은 아니지만 사회로 나가기도 전에 고립되는 삶은 그 자신에게도 고통이며, 추후 그들이 사회 안에서 해야 할 역할과 영향에도 큰 문제가 될 수 있다. 교육이나 건강 분야에서의 사회문제해결은 이렇듯 생애주기를 함께 고려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