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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파걸 Sep 28. 2021

비싼 와인은 뭐가 다를까?

취향과 품질의 차이


인생은 나쁜 와인을 마시기에는 너무 짧다   

- 괴테


가끔 와인 코너를 둘러보다 보면 헉 소리가 날만큼 비싼 와인들이 종종 보인다. 그런데 바로 맞은편을 보면 만원도 안 되는 와인들이 잔뜩 쌓여있다. 도대체 똑같은 술 한 병의 가격이 왜 이리 차이가 나는 걸까? 그리고 비싼 와인은 그 가격만큼 훨씬 더 맛있을까?


사실 와인의 맛과 가격이 정비례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와인의 맛은 개인의 '취향'이 굉장히 영향을 많이 미치기 때문이다.

묵직하고 입 안이 조여드는 느낌이 들 정도로 타닌이 강한 와인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수백만 원이 넘는 부르고뉴의 섬세한 피노누아를 마셔도 별 감흥이 없을 것이다. ‘이거 왜 이리 밍밍해?’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 말이다.


하지만 와인도 좋은 와인과 그렇지 않은 와인을 구분하는 ‘품질’이라는 게 있다. 취향과 품질은 분명히 다르다.

예를 들어, 내 남동생은 라면을 굉장히 좋아한다. 특히 엄마가 끓여주는 라면이 세상에서 제일 맛있다고 한다.

반면에 프랑스의 코스 요리는 너무 난해하고 감질맛만 난다며 돈이 아깝다고 했다. 아무리 비싸고 유명한 레스토랑을 가도 마찬가지였다.


동생이 프랑스 요리보다 라면을 더 좋아하는 것은 그의 취향이다. 난 동생의 취향을 존중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라면이 프랑스 코스 요리보다 품질이 더 뛰어난 요리는 아니지 않은가? 라면은 아무리 맛있어도 조미료가 맛의 전부인 인스턴트식품이다.


훌륭한 프랑스 요리는 재료가 가진 맛을 최대한 이끌어내고 다른 재료와의 균형감을 잘 맞추며 무척 섬세하다. 그리고 그 섬세한 맛을 만들기 위해 굉장히 난도가 높은 기술이 필요할 때도 있고, 요리를 통해 사람들에게 감탄을 줄만한 창의력도 필요하다.

그래서 미슐랭의 별을 받은 레스토랑의 셰프들은 많은 존경을 받는다. 권위 있는 기관으로부터 맛의 품질을 인정받은 셈이니 말이다.


하지만 세상에서 라면을 가장 잘 끓이는 우리 엄마에게는 미슐랭이 별을 주러 온 적이 없다.


그럼 어떤 와인이 품질이 좋은 와인일까? 와인을 평가하는 전문가들은 대부분 5가지 기준으로 와인의 좋고 나쁨을 구분한다.




1. 향의 강도 (Intensity)


향이 너무 약한 와인은 들릴락 말락 하는 작은 소리로 듣는 음악과도 같다. 아무리 훌륭한 오케스트라 연주라도 오디오의 볼륨을 1이나 2로 맞춰놓고 들으면 그 웅장함과 감동을 거의 느끼지 못할 것이다. 아니 제대로 들리기나 할까? 와인의 맛에는 향의 역할도 무척 크기 때문에 향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면 좋은 와인이라고 볼 수 없다.



2. 복합적인 풍미 (Complexity)


와인의 향에는 3가지 종류의 향이 존재한다.


1차 향, 포도 품종 자체가 갖고 있는 향 (과일, 꽃 등)
2차 향, 와인을 만드는 과정에서 생기는 향 (오크, 버터, 바닐라 등)
3차 향, 병 숙성 과정에서 생기는 향 (커피, 버섯 등)


1차 향만 갖고 있는 와인은 ‘단순하다’고 표현하며, 2차 혹은 3차 향까지 모두 갖고 있는 와인을 ‘복합미가 있다’고 표현한다. 고급 와인이나 평론가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는 와인들은 대부분 복합적인 풍미를 가진 와인들이다.



3. 균형감 (Balance)


와인의 맛은 단맛, 신맛, 타닌, 바디감(무게감)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 중 어느 하나 도드라지게 튀지 않고 잘 어우러질 때, 와인의 균형감이 좋다고 표현한다.


이 균형감은 마치 실내 온도가 적당할 때 쾌적한 느낌을 받는 것과 비슷하다. 너무 더우면 축축 처지고, 너무 추우면 몸이 덜덜 떨려서 견디기 힘들다.


마찬가지로 와인의 신맛이 너무 강하면 날카롭게 찌르는듯한 느낌이 들거나 식초를 마시는 것 같아서 불쾌할 수 있고, 단맛이 강한데 신 맛이 부족하면 무겁고 느끼하게 느껴질 수 있다. (달지 않은 와인의 경우에는 밍밍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타닌이 지나치게 많으면 떫은맛이 두드러지고, 너무 적으면 질감이 밋밋해진다.


와인의 무게감에는 알코올이 큰 영향을 미치는데 알코올이 너무 많으면 불쾌한 쓴맛이 남으면서 육중한 느낌을 주고, 너무 적으면 가벼워서 깊이감이 없어진다.



4. 지속성 (Length)


와인을 삼킨 뒤 입 안에 느껴지는 느낌을 '여운(Finish)'라고 한다. 와인이 가진 향이 주로 느껴지는데 이 여운이 오래 지속될수록 좋은 와인이라고 평가된다. 보통 와인들은 몇 초만에 여운이 사라지며 최고급 와인은 1분 이상 여운이 지속되는 경우도 있다.


단, 긍정적인 느낌이 지속되는 시간만 평가해야 한다. 쓴 맛이 오래 남고 과일이나 바닐라, 커피 등의 풍미는 금방 사라졌다면 여운은 짧다고 봐야 한다.



5. 포도 품종 & 떼루아의 특성 표현


음식으로 비유하자면 '재료의 맛을 잘 살리고 있는가'라고 볼 수 있다. 좋은 재료는 재료 본연의 맛만 잘 살려도 그 무엇보다 훌륭한 음식이 된다. 좋은 팥으로 만든 팥죽은 따로 설탕이나 조미료를 넣지 않아도 그 자체로 끝내주게 맛있지 않은가?

좋은 와인도 마찬가지다. 좋은 땅에서 정성 들여 키운 좋은 포도는  맛과 향을 최대한  보여주기만 해도 무척 훌륭한 와인이 된다. 게다가 포도 품종이 가진 고유의 향과 맛이 강하게 나타나며,  포도가 자란 토양과 기후의 특징까지도 드러나게 된다.


예를 들자면, 척박한 땅에서 자란 포도는 영양분을 찾아 땅 속 아주 깊이 뿌리를 내리기 때문에 깊은 땅 속에 있는 미네랄 성분 등 풍부한 영양소를 흡수해 맛이 훨씬 좋다. 그리고 추운 지역에서 자란 포도는 신맛이 강하고, 따뜻한 지역에서 자란 포도는 단맛이 강하다.


반면 좋지 않은 포도를 사용하는 저가 와인은 첨가물을 이용하여 단 맛을 높이거나 사람들이 좋아하는 바닐라향을 입혀서 오히려 포도의 특징과 포도가 자란 토양/기후(떼루아)의 흔적을 지운다.




이렇게 5가지 기준을 모두 충족하는 와인은 '좋은 품질'을 갖춘 와인으로 평가받는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비싼 와인들은 대부분 품질이 좋다. 다만, '좋은 품질' 하나로 와인의 가격이 정해지지는 않는다.


와인의 가격에 영향을 미치는 것에는 와인을 재배하는 '포도밭의 땅값', 기계로 수확하지 않고 사람이 직접 포도를 수확할 때 드는 '인건비', 적은 생산량으로 인한 '희소성', 유명 와인 생산자의 '네임밸류', 평론가로부터 받은 '높은 점수' 등 다양한 요소들이 있겠지만 한 나라의 이미지, 즉 '브랜드'가 영향을 미칠 때도 있다.


예를 들어, 프랑스는 나라 자체가 오랜 전통을 지닌 일종의 브랜드다. 게다가 프랑스 와인에는 서열화된 '등급'까지 존재한다. (프랑스 보르도의 그랑크뤼 클라쎄가 대표적이다. 1등급부터 5등급까지 있으며 1등급은 단 5개뿐이기 때문에 '5대 샤토'로 불린다.)


'등급'은 일반 소비자들이 좋은 와인을 구분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기 때문에 예전부터 그 파급력이 엄청났고, 등급이 높은 와인들은 거의 명품과도 같은 위치를 얻게 되었다. 그래서 프랑스의 최고급 와인인 '5대 샤토'는 생산연도에 따라 가격이 80만 원~700만 원 이상까지도 나간다.


하지만 칠레의 최고급 와인은 비싸 봤자 20~30만 원대이다.

재미있는 건 2004년 베를린에서 진행된 블라인드 테이스팅에서 칠레의 최고급 와인이 프랑스의 5대 샤토를 누르고 1등을 했다는 사실이다. 심지어 단 한 차례가 아니라 10년 동안 전 세계를 순회하며 18회나 같은 방식의 테이스팅을 진행했는데 9번 모두 칠레 와인이 1등을 차지했다.


(좌) 베를린 테이스팅 (우) 에두아르도 채드윅 세냐와인 회장


칠레 와인은 베를린 테이스팅을 계기로 최고의 품질을 인정받았지만 '저렴하고 가성비 좋은 와인'이라는 인식이 너무 강해서 아직까지 고급 와인으로 포지셔닝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샤넬백은 700만 원이 넘어가는 가격에도 사람들이 백화점에서 줄을 서가며 사간다. 하지만 아무리 아름다운 가방이라고 해도 이름 없는 무명 디자이너의 가방을 700만 원에 판다면 과연 누가 사갈까? 안타깝지만 브랜드의 힘은 가방의 세계에서도 와인의 세계에서도 너무나 엄청나다.


선입견으로 인해 고급화에 어려움을 겪는 칠레 와인이 안쓰럽다가도, 그래도 덕분에 저렴한 가격에 훌륭한 품질의 와인을 마실 수 있어 감사하기도 하고.. 사람의 마음이란 참 간사하다.


비싸고 엄~청 맛있는 와인도 좋지만, 솔직히 직장인에게 가장 좋은 와인은 '맛있고 저렴한 와인'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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