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파걸 Sep 25. 2021

포도가 드라마 속 등장인물이라면?

포도 품종 이제 어렵지 않아!


까베르네소비뇽? 그거 와인 이름 아냐?


와인을 잘 모르는 사람도 '까베르네소비뇽'이라는 말은 한 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처음에 나는 그게 어떤 와인의 이름이나 브랜드인 줄 알았다. 와인에 전혀 관심이 없었으니 그게 와인 이름인지 뭔지 당연히 모를 수밖에..


와인에 푹 빠진 후에야 나는 '까베르네소비뇽'이 와인을 만드는 데 사용되는 아주 유명한 포도 품종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포도 품종와인의 맛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무언가를 좋아하게 되면 더 많이 알고 싶어 지기 마련이다. 그럼 까베르네소비뇽 말고 다른 포도 품종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 맛은 어떻게 다를까? 궁금함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레드 와인을 만들 때 사용되는 적포도 중에는 '까베르네소비뇽','메를로','피노누아','시라/쉬라즈', 가 가장 유명하다고 한다.


그런데 죄다 똑같이 생긴 포도송이인 데다가 아무리 설명을 읽어봐도 뭐가 다른지 모르겠다. 이 것도 검은 과일의 향이 난다 하고 저 것도 검은 과일의 향이 난다 하니 원.. 껍질의 두께가 얇은지 두꺼운지, 타닌이 많은지 적은 지, 산도가 높은지 낮은지 아무리 달달 외워봐도 와인을 잘 모르는 입장에서는 각 품종의 차이가 딱히 크게 와닿지 않았다.


그러다 포도를 '사람'이라고 생각해보니 그때부터 포도의 캐릭터가 확실하게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마치 드라마 속의 등장인물 소개를 보는 것처럼 말이다.





카베르네 소비뇽(Cabernet Sauvignon)



사람으로 보기


건장하고 단단한 체격의 신사다. 강하고 남성적이지만 뭔가 잘 다듬어진 느낌이고 귀티가 난다. 딱 떨어지는 검은색 정장이 잘 어울리며 재미있기보다는 다소 진지한 성격이다. 따뜻한 날씨를 좋아하고 곁에 다가가면 시원한 민트향이 은은하게 느껴진다. 머리가 하얗게 센 할아버지가 되어서도 카리스마 있게 호통을 칠 것처럼 강건하고 에너지 넘친다. 혼자 시간을 보내는 것을 좋아하지만 의외로 사람들과도 곧잘 어울리곤 한다.

세계 어디에나 그의 땅이 있는 부동산의 황제이기도 하다.


포도로 보기


껍질이 두껍고 씨앗도 많아 떫은맛을 주는 타닌을 많이 함유하고 있다. 이 품종으로 만든 와인은 대부분 강하고 무게감이 있다. 온화하거나 더운 기후가 재배하기에 이상적이다. 블랙커런트, 블랙체리 등 검은 과일향과 피망, 민트 같은 허브향이 나며 풍부한 타닌 덕분에 수십 년 동안 숙성할 수 있다. 단독으로도 훌륭한 와인을 만들 수 있고, 다른 품종들과 섞어서 쓰는데도 용이하다.

환경 적응력이 뛰어나 어떤 환경에서도 잘 자라나기 때문에 전 세계 어디서나 재배되는 레드 와인의 대표 품종이 되었다.




메를로(Merlot)



사람으로 보기


보통 체격에 온화하고 부드러운 성격을 가진 남자다. 비즈니스 캐주얼이 잘 어울리며 친근한 성격 탓에 사람들에게 쉽고 편안하게 받아들여진다. 딱히 질풍노도의 시기도 없이 무난한 기질을 유지하며 잘 컸다. 평소에 워낙 친근한 이미지라 가끔 그가 진지하게 한 마디 하면 그 말에는 굉장히 무게감이 실린다.

'까베르네 소비뇽'의 단짝이다. '까베르네 소비뇽'이 강한 성격 탓에 사람들과 마찰을 빚을 때면 부드러운 성격의 메를로가 중재하고 나선다. 그리고 말로는 해결이 안 되는 불한당들을 만날 때면 '까베르네 소비뇽'이 강한 카리스마로 제압하여 메를로를 돕는다.



포도로 보기


과일향이 풍부하며 마시기 편하고 부담 없어서 인기가 높다. 타닌이 적은 편이고 산도도 높지 않아 어린 와인일 때도 비교적 편하게 마실 수 있다. 알이 크고 껍질이 얇아 과육의 부피가 커서 다른 품종보다 당분이 많은 편이며 완성된 와인의 알코올 도수가 약간 높을 수 있다. 그리고 그만큼 바디감도 풍부하다.

'까베르네 소비뇽(Cabernet Sauvignon)'과 '메를로(Merlot)'를 혼합하는 것은 전통적인 보르도의 양조 방식인데, 메를로는 떫은맛을 내는 까베르네 소비뇽에게 부드러움을 부여하고, 까베르네 소비뇽은 메를로에게 부족한 타닌과 산도, 강한 과일 풍미를 더해준다.




피노누아(Pinot Noir)



사람으로 보기


귀하게 자란 여리여리한 공주님이다. 얇은 실크 드레스가 잘 어울리며, 침대 매트리스 밑에 작은 콩 한쪽만 들어가 있어도 불편해서 잠을 못 이 룰 정도로 예민하고 까탈스럽다.  하지만 그녀의 섬세한 아름다움에 사람들은 보자마자 넋을 잃는다. 도도해서 웬만해서는 다른 사람들에게는 곁을 잘 내어주지 않는데, 가끔 프랑스 상파뉴에서 '샤르도네', '피노 뫼니에'와 함께 노는 모습을 보았다는 제보가 종종 들어오곤 한다.

프랑스 부르고뉴 지역의 공주님은 믿을 수 없을 만큼 우아하다. 특히 DRC라는 지역의 공주님은 세상에서 가장 우아하고 아름답다고 하며, 어떤 사람들은 이 공주님을 만나는 것이 일생의 소원이라고 한다.

미국이나 뉴질랜드에는 우아한 공주님들도 있지만 발랄하고 친근한 공주님들도 많다.



포도로 보기


껍질이 얇으며 타닌이 적고 무게감도 가벼운 편이다. 와인을 만드는 여러 포도 품종 중 가장 다루기 힘들기로 유명하다. 적합한 생산지를 고르는 것도 까다롭고 재배하는 과정도 어렵다. 하지만 그만큼 섬세하고 실크처럼 부드러우며, 딸기, 체리, 라즈베리, 버섯, 젖은 낙엽 등 풍미가 화려해서 누구나 마시기 쉬운 품종이기도 하다.

피노누아는 주로 단일 품종으로 와인을 만들며 다른 품종과 섞어서 만드는 것은 피하는 편이다. 예외적으로 샴페인을 만들 때는 '샤르도네(Chardonnay)', '피노 뫼니에'(Pinot Meunier)'와 섞어서 만들기도 한다.


프랑스의 부르고뉴는 최고급 피노누아 와인 생산지로 유명하다. 특히 부르고뉴 최고의 와이너리이자 세계에서 가장 비싼 피노누아를 생산하는 곳으로 알려진 'DRC (도멘 드 라 로마네 꽁띠)'의 와인들은 수 천만 원이 넘는 가격에도 판매되며 와인 애호가들이 죽기 전에 꼭 마셔보고 싶어 하는 와인 중 하나이다. (2020년 소더비 경매에서는 DRC의 로마네 꽁띠 와인 한 병이 약 218억에 팔리기도 했다.)

오죽하면 부르고뉴 피노누아에 맛 들이면 가산 탕진한다는 말까지 있을까?


그러나 최근 미국이나 뉴질랜드 등에서도 품질이 좋은 피노누아 와인을 만들고 있으며 가격도 상대적으로 저렴하다. 부르고뉴의 우아하고 복합적인 스타일 대신 좀 더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직관적인 스타일의 피노누아 와인도 많이 만드는 추세이다.




시라/쉬라즈(Syrah/Shiraz)


(좌) 시라 Syrah,    (우) 쉬라즈 Shiraz


사람으로 보기


굉장히 남성적이고 튼튼한 체격을 가진 이란성쌍둥이 형제다. 쌍둥이라는 것을 말 안 하면 모를 정도로 각자 스타일이 무척 다르다.


형인 '시라'는 프랑스에 살면서 사업을 시작했고 매우 큰 성공을 거두었다. 특히 론 밸리 북부에 있는 '코트 로티''에르미타주'라는 지역에서 가장 많은 부를 쌓았는데 그곳에서 그가 가진 땅을 밟지 않고서는 거리를 걸어 다닐 수 없을 정도라고 한다.


론 밸리 남부에 있는 ‘코트 뒤 론’이라는 지역에서는 ‘그르나슈’와 '무르베드르’라는 사업가와 함께 손을 잡고 일을 했으나 아쉽게도 큰돈을 만지지는 못했다. 하지만 때마침 로마의 교황청이 론 밸리 남부에 위치한 아비뇽으로 옮겨오면서 교황이 추진하는 사업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으니 참 운이 좋은 사람이다. (그 사업에 18명이나 참여한다는 사실을 알고서는 조금 당황했지만 말이다.)

그에게서는 항상 옅은 담배향과 후추, 육두구, 감초 같은 이국적인 향신료 향이 맴돌아 신비한 매력이 느껴졌고, 성공한 사업가로서 보여주는 세련된 매너는 가끔 우아해 보이기까지 했다.


동생인 '쉬라즈'는 호주에 정착해서 살았다. 주로 따뜻한 남쪽에서 서핑을 즐기며 지내다 보니 구릿빛 피부와 터질듯한 근육을 가진 유쾌하고 호탕한 남자가 되었다. 따뜻한 곳에서는 성격도 더 부드럽고 밝아지는 것 같다. 근육질이지만 달콤한 다크 초콜릿을 좋아하는 귀여운 면도 있으며 유칼립투스처럼 상큼한 미소를 지을 줄 아는 매력적인 남자다.



포도로 보기


시라와 쉬라즈는 같은 품종이지만 재배되는 지역에 따라 달리 부르고 있다. 프랑스에서는 '시라(Syrah)', 호주에서는 '쉬라즈(Shiraz)'라고 불린다. 껍질이 두꺼우며 타닌이 많고 알코올도 높은 편이다. 풍미도 진하고 강한 편이라 가장 남성적이고 강렬한 맛을 내는 품종이기도 하다.

프랑스의 '론 밸리'는 전통적으로 고급 시라 와인을 만들어내는 지역이다. 특히 북부 론의 '코트 로티(CÔTE-RÔTIE)''에르미타주(HERMITAGE)' 지역에서는 100% 시라로만 와인을 만들며, 세계에서 가장 고급스럽고 가격이 비싼 프리미엄 시라 와인을 생산하고 있다.


남부론의 ‘코트 뒤 론(CÔTES-DU-RHÔNE)’ 지역에서는 비교적 합리적인 가격의 대중적인 와인을 만든다. 시라뿐만 아니라 그르나슈, 무르베드르라는 포도 품종을 함께 섞어서 와인을 만드는데 이것을 'GSM(Grenache, Syrah, Mourvèdre) 블렌딩'이라고 부른다.


프랑스의 국왕 필립 4세와의 권력 싸움에서 밀린 교황 클레멘스 5세는 교황청을 로마에서 프랑스 남부의 작은 마을 아비뇽으로 옮기는 수모를 겪게 되는데, 와인을 좋아하는 교황을 위해 수도승들은 아비뇽 인근에서 좋은 와인을 만들 수 있을 만한 포도밭을 찾아 교황을 위한 와인을 직접 만들었다.

이 와인은 훗날 ‘교황의 와인’으로 불리게 되며, 이 와인을 만든 지역은 그 유명한 ‘샤토 뇌프 뒤 파프(CHÂTEAUNEUF-DU-PAPE)’이다. (이 지역에서는 와인을 만들 때 총 18개 품종을 섞어서 만들 수 있는데, 꼭 18개를 모두 섞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프랑스의 시라는 과일향이 짙고 후추, 육두구, 감초 같은 스파이시한 향과 연기 향이 있으며 균형감이 좋은 우아한 스타일이다.


호주의 쉬라즈는 프랑스 시라에 비해 잔당 감이 높아 입 안에서 더 부드럽게 느껴지고 더 진하며 알코올 도수도 높다. 잘 익은 과일의 향과 다크 초콜릿, 민트, 유칼립투스 향을 느낄 수 있다.





적포도는 강한 타닌과 무게감 때문에 남성적인 캐릭터의 비중이 더 높았는데 청포도는 타닌이 없고 알코올 도수도 낮은 탓인지 여성적이라고 느껴지는 캐릭터가 더 많았다. 화이트 와인을 만들 때 사용되는 청포도 중에는 '샤르도네','소비뇽블랑','리슬링'이 가장 유명하다.




샤르도네(Chardonnay)



사람으로 보기


팔색조처럼 다양한 역할을 소화할 수 있는 여배우다. 본판은 다소 수수하고 밋밋하지만 맡은 역할에 따라 어떤 모습이든 될 수 있는 도화지 같은 여자이기도 하다.

프랑스 부르고뉴의 '몽라셰'라는 우아한 왕비 역할을 하면서 국민 여배우로 자리 잡았다. 걸음마다 달콤한 꽃내음이 날 것 같은 우아하고 아름다운 왕비 역할이었는데 따뜻하고  자애로운 모습과 가끔 촌철살인으로 통쾌함을 느끼게 하는 사이다 같은 모습을 함께 보여주면서 많은 사랑을 받았다.


미국에 진출해서는 갓 구운 빵과 버터 쿠키를 만들어 파는 밝고 풍만한 아름다움을 지닌 파티셰 역할을 하면서 제2의 전성기를 누리게 된다.


'블랑 드 블랑'이라는 순수하고 청순한 소녀 역할로도 인기를 모았는데 이런 다양한 연기 스펙트럼을 기반으로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슈퍼 스타가 되었다.



포도로 보기


샤르도네는 향이 풍부한 품종은 아니다. 샤르도네 와인의 맛은 대부분 포도 품종의 특성보다는 와인 양조 기술에서 비롯된다. 이 포도의 가볍고 섬세한 풍미가 오크나 효모에서 추출되는 풍미(빵, 버터, 견과류 등의 향)를 발현하는데 적합하기 때문이다. 마치 도화지처럼 말이다.

프랑스 부르고뉴에 있는 '몽라셰(Montrachet)'라는 포도밭은 세계 최고의 화이트 와인을 만들어내는 와인 생산지이다. 100% 샤르도네로 와인을 만드는데 여기서 만들어진 화이트 와인은 굉장히 우아하고 섬세하며 달콤한 꽃향기와 레몬 등의 산미를 느낄 수 있고 열대 과일향이 지배적이다. 마지막에는 고소한 빵과 후추, 계피와 같은 스파이시한 향도 느낄 수 있어 무척 복합미 있는 와인이기도 하다.


미국 샤르도네는 신선한 프랑스 샤르도네에 비해 바닐라, 버터 등의 오크 풍미가 두드러지고 묵직한 바디에 부드러운 질감이 특징이다.


샤르도네는 샴페인을 만들 때도 자주 사용되는데 샤르도네 같은 청포도 품종으로만 만든 샴페인을 '블랑 드 블랑(BDB, Blanc de Blanc)'이라고 한다. 적포도인 피노누아로만 만든 '블랑 드 누아(Blanc de Noir)'나 청포도와 적포도를 섞어서 만든 블렌딩 샴페인에 비해 맛이 무척 섬세하고 순수하다.

이렇게 샤르도네는 만드는 방식에 따라 무척 다양한 스타일을 보여줄 수 있다. 또한 어떤 환경에서도 재배하기가 쉽기 때문에 전 세계적으로 재배된다.




소비뇽 블랑(Sauvignon Blanc)



사람으로 보기


하얀 옷이 잘 어울리는 레몬처럼 상큼하고 순수한 소녀다. 잔디밭에 누워 햇빛 쬐는 것을 좋아하는 그녀에게는 항상 신선한 풀내음이 묻어난다. 프랑스 출신인데 막상 프랑스에서는 큰 관심을 받지 못하다가 뉴질랜드로 이민을 가면서 사람들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프랑스에서는 조용하고 우아한 작은 아씨 같은 느낌이었으나, 뉴질랜드로 떠난 뒤에는 새로운 삶을 시작하기로 마음먹었는지 내숭을 벗어던지고 통통 튀는 생기 넘치는 모습으로 변신했다. 그리고 하고 싶은 말은 참지 않고 다 하는 시원시원함과 솔직한 성격, 열대 과일처럼 따뜻하고 달콤한 미소로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단숨에 사로잡아 버렸다.



포도로 보기


소비뇽 블랑은 피망, 잔디 등 초록 뉘앙스의 향을 가진 포도 품종이다. 산도가 높은 편이라 무척 신선한 느낌을 준다. 가볍고 청량한 질감이 여름에 마시기 딱 좋다.

프랑스 보르도 지역에서 유래했으나 보르도에서는 주로 '세미용(Sémillon)'과 섞어서 와인을 만들고, 소비뇽 블랑을 단일 품종으로 사용하는 곳은 루아르 지역이 대표적이다. 루아르의 소비뇽 블랑은 우아하고 과일향이 적은 편이며 미네랄의 느낌이 강하다.

우아하고 절제된 프랑스 소비뇽 블랑과 달리 뉴질랜드 소비뇽 블랑은 다소 자극적으로 느껴질 정도로 강한 신맛과 진한 풀잎, 허브향을 보여주며 기후에 따라 레몬, 라임부터 감귤, 열대과일향까지 다양한 풍미를 보여주기도 한다. 이런 강렬하고 임팩트 있는 맛과 향이 전 세계 와인 애호가들의 입맛을 단숨에 사로잡았다.





리슬링(Riesling)



사람으로 보기


추운 나라에 살고 있는 고귀한 귀족 출신 아가씨다. 키가 크고 늘씬하며 깨끗한 이미지의 외모를 가졌다. 화사하고 사랑스러운 면도 있어서 아무리 추운 곳이라도 그녀가 있으면 꽃내음과 과일향기로 가득 찬 훈훈한 봄바람이 불어올 것만 같다.

더위를 많이 타서 서늘한 곳을 좋아하며 주로 독일에서 많은 시간을 보낸다고 한다.


지성과 미모를 갖추고 돈까지 많아 부족한 게 없는 완벽한 여자다. 그래서 웬만해서는 다른 사람들에게 의지하지 않고 혼자서 모든 일을 해결하는 편이다.

꾸미는 걸 좋아하지 않아 민낯에 청바지만 주야장천 입는데도 그 자체로 빛이 난다. 성격도 소탈한 편이라 신분 고하를 막론하고 누구에게나 친절하게 대하지만, 때에 따라서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우아하고 위엄 있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본인이 제조한 독특한 향수를 즐겨 쓰는데 은은한 휘발유향이 난다. 참 특이한 취향이다.

그녀는 나이가 들어 백발의 할머니가 되어서도 우아할 것만 같다.

이토록 매력적인데 의외로 인기는 그다지 많지 않은 편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폭넓은 팬층을 갖고 있지는 않으며 소수 마니아층에게 극찬을 받고 있다.)



포도로 보기


리슬링으로 만든 와인은 병 모양만으로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  유난히 목이 길고 늘씬한 모양의 병이기 때문이다.

꽃향기, 미네랄 리티, 과일향이 강조된 깨끗한 느낌의 와인이며 상큼한 레몬부터 달콤한 복숭아까지 과일향이 무척 풍부하고 화사하다.

주로 서늘한 기후에서 자라는데 그중 독일에서 60% 이상 재배되고 있다.

당도와 산도를 두루 높게 갖추고 향도 강렬한 완벽한 품종이라 따로 블렌딩이 필요 없다. 그래서 다른 품종을 섞지 않고 주로 리슬링 100%로 와인을 만든다.


특유의 깨끗한 맛을 살리기 위해 보통은 오크 숙성을 하지 않으며 오크 숙성을 하더라도 진한 오크향을 덧입히지 않고 질감을 부드럽게 해주는 정도에 그친다.


독일의 리슬링은 '당도'에 따라 등급이 나뉘고, 당도가 높아질수록 가격도 함께 높아진다.

적정 시기에 수확한 파릇한 포도송이로 만든 것은 '카비넷', 조금 늦게 수확한 포도송이로 만든 것은 '슈페트레제', 성숙하고 잘 익은 포도송이만 골라서 만든 것은 '아우스레제'라고 부른다.

거기에 더해, 잘 익은 포도송이에서 유독 잘 익은 포도알만 고르고 골라 만든 것을 '베렌아우스레제(BA)'라고 부르며,  초과 완숙해서 거의 건포도에 가까운 포도로 만든 것은 '트로켄베렌아우스레제(TBA)'라고 부른다.


카비넷-슈페트레제-아우스레제-베렌아우스레제(BA)-트로켄베렌아우스레제 (TBA) 순으로 점점 당도가 높아진다.


카비넷은 가벼운 단맛이 나며 누구나 쉽게 즐길 수 있는 저렴한 가격대이다. 하지만 TBA는 무척 고가이며 특히 '에곤 뮐러'의 TBA는 리슬링계의 로마네 꽁띠라고 불릴 정도로 비싸다. (한 병에 수 천만 원에 이른다.)

숙성된 리슬링에서는 독특하게도 은은한 휘발유향이 나는데 와인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다가가기 힘든 허들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 휘발유향에 중독되어 미친 듯이 빠져드는 사람들도 많다.


게다가 리슬링은 산도가 무척 높기 때문에 타닌이 없는 화이트 와인임에도 불구하고 장기 숙성이 가능하다. 그래서 오래전부터 고급 품종으로 여겨졌다.

와인 전문가가 극찬하고, 와인 수집가가 지갑을 탈탈 털어 사모으는 와인이지만 국내 일반 소비자들의 반응은 영 뜨뜻미지근하다. 아마 단 맛이 나는 와인은 싸구려라는 인식 때문이 아닐까?


이전 06화 직장인의 와인 선물 : 상무님, 이게 제 마음입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