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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우연 Jul 20. 2016

찰나의 해피엔딩

 서울을 버려야 서울로 돌아올 수 있다는 말은 그럴듯하게 들렸다. 그 말에 깜박 넘어간 사내들이 있었다. 이들은 지나치게 어두운 상가 처마 아래서, 혹은 지나치게 환한 은행 현금인출기 방 안에서 몸을 떠는 중이다. 모두 돈 좀 더 벌어보겠다고 서울 외곽으로 장거리 운전 나왔다가 서울로 다시 돌아가는 콜만을 기다리는 대리기사다.


 담배를 뻐끔 피워대는 사내들 사이에 어색한 공기가 떠다녔다. 이따금 분위기라도 풀어보려는 듯 “아오 추워”를 연신 내뱉는 사람이 한 명 있었지만 다들 옅은 웃음만을 지을 뿐이다. 비록 같은 공간에 있지만 딱히 유대감은 없다는 사실이 여실히 드러났다. 누군가는 이곳을 곧 떠날 것이다. 불안감, 초조함, 남루함, 지루함은 모두 오롯이 각자의 몫이다.


 “드륵드륵.” 묵직한 진동소리가 이내 적막을 깼다. 가볍고 경쾌한 목소리로 통화하는 것을 보니 서울로 가는 콜이 들어온 모양이다. 한 사내가 드디어 서울로 돌아갈 수 있게 됐다. 부러움 가득한 눈빛이 여기저기서 꽂혔다.


 운전할 차 앞에 도착했다. 세 꼭지 별이 새긴 까만 고급 외제차다. 짐짓 긴장하며 타자 뒷좌석에서 건조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비에 찍은 곳 그대로 가주세요.” 논현동 고급 주택가다. 백미러로 힐끗 본 손님은 30대 정도로 보였고 멀쑥한 정장 차림새였다. 젊은 나이에 성공한 사람이겠거니 싶다. 사내는 대기 공간 하나 없어 좁은 건물 안에서 몸을 구겼던 자신의 처지가 새삼 초라해졌다. 


 헌데 이상한 것이 하나 있었다면 손님에게서 전혀 술 냄새가 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눈빛도, 안색도 차분했다. 그런데도 사내는 시치미 뗀 채 물었다. “어디 좋은 데서 한잔 하시다 가나 보죠?” 손님은 백미러로 사내의 눈을 힐끗 쳐다보고는 다시 내리깔았다. 사내는 애써 무안함을 감췄다.


 다시 적막을 깬 건 손님이다. “거기 음악 하나 틀어 줘 봐요.” 재생버튼 같아 보이는 것을 손닿는 대로 눌렀다. 곧바로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이 흘러나왔다. 물론 클래식이라곤 수년 전 지하철 종착역에서나 듣던 것이 전부였던 사내는 무슨 곡인지 알 리가 없다. 손님은 한술 더 떠 무언가를 주섬주섬 꺼냈다. 와인병이다. 오프너로 ‘똑’하고 마개를 따더니 병째 꿀꺽 마셨다.


 클래식 속에서 와인을 마시는 손님을 태우고 차는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를 달렸다. 사내는 손님의 고상함이 너무 원색적이어서 우습기도 했다. 분명 같은 차 안에 있지만 철저히 자신을 무시하는 듯한 행동도 거슬렸다. 그러나 별수 있나. 두 시간을 추위에서 떤 채 낯선 도시를 겨우 탈출한다는 것만으로도 어딘가. 이 손님 덕분에 오늘은 조금 더 일찍 서울의 품에서 잠들 수 있으리라.


 드디어 내비게이션의 목적지였던 논현동 고급 주택가에 도착했다. 이미 자동차 4대가 정차돼있는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사내는 손님으로부터 대리비를 받고 주차장을 나섰다. 그런데 손님이 자신의 뒤를 계속해 밟아왔다. 사내는 찜찜했다. “무슨 문제 있습니까?” 


 손님은 옅은 조소를 띄며 말했다. “문제는 무슨, 나도 우리 집 가는 거요.” 영문을 모른 채 눈을 동그랗게 뜨는 사내의 어깨에 손님은 은근슬쩍 손을 올리며 덧붙였다. “덕분에 기분 좀 내봤쇼. 이런 거였구나, 해보니까 X도 없는 거…” 손님은 별다른 짐 하나 없이 까만 봉지를 짤랑짤랑 흔들어대면서 앞서 걸어간다. 순간 사내의 눈에 편의점 로고가 찍힌 까만 봉투와 그 속을 유영하는 빈 와인 병이 눈에 들어온다. 그래, 이렇게 보니 고급 와인이 아니라 편의점 와인이었다.


 어안이 벙벙한 사내를 뒤로 두고 손님은 어딘가로 전화를 건다. “네, 회장님. 따님 잘 모셔다드렸습니다. 네, 네. 차도 주차했습니다. 네, 내일 뵙겠습니다…” 손님의 실루엣은 연신 구겨지고 퍼지기를 반복했다. 순간, 사내는 좁은 현금인출기 방 안에서 동료 기사들에게도 느껴보지 못했던 유대감을 묘하게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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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션 작문엔 쥐약인 나도 가끔은 좋은 픽션을 쓰고 싶을 때가 있다.

유대감과 괴리감은 모두 생각보다 '별거 아닌' 지점에서 생겨난다. 

입사용 글을 쓴지 반년은 됐는데, 픽션 작문으로 써먹을 만한 글은 정말 이것밖에 없다. 


11월에 쓰고 3월에 퇴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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