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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개인적인 체험 Mar 28. 2018

[한 모금] 너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나는 그 사실을 잊지를 못하고

  수박을 먹을 때면 나는 항상 오이와 오이의 친구들(수박 등 온갖 박 종류)를 싫어하는 나의 지난 인연들을 떠올린다. 비교적 최근에 만난 사람들부터 고등학교 때 같은 반이었던 친구의 얼굴까지 그렇게 한바탕 떠올리고 나면, 나는 그제서야 수박의 맛을 품평하며 먹는 단계로 진입한다. 다 먹고 수박 껍질을 내려놓는 순간, 때때로 그 흰 부분에서 나는 냄새와 맛이 예민하게 다가올 때, 싫어하는 이유가 이것일까 하고 살짝 미간을 찌푸리기도 한다. 싫어하는 것을 좋아하게 되기란 몹시 어려운 일이니까. 나는 그 사람들이 나를 만나기 전에도 좋아하지 않았던 것들을 나를 만나지 않는 지금에도 좋아하지 않을 것이란 생각에, 이상하지만, 위로를 받기도 한다. 특정 음식에 대한 알러지의 경우는 단순히 싫어하는 음식보다 조금 더 잘 기억하는 편이다. 이건 웬만해선 잘 변하지 않는 체질의 영역이니까 말이다.


  매일 그러는 것은 아니지만, 아침에 커피 한잔을 마실 때면 나는 오늘도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시킬 사람과 의외로 휘핑 크림이 취향인 사람, 계절과 관계 없이 따뜻한 또는 차가운 음료를 시킬 사람이 번갈아 가며 머릿속에서 스쳐가기도 한다. 쓴 맛이 나는 나물을 좋아했던 선배는 커피도 아메리카노 밖에 마시지 않았지. 나는 선배와 함께 있기 위해서 내가 별로 좋아하지 않던 음식들을 곧잘 먹어대고는 했다. 무언가 결실을 맺어야 하는 가을보다는 새롭게 시작하는 봄을 좋아한다는 그 말도 냉이, 씀바귀, 달래와 같이 매년 돌아오는데, 그는 그 봄 건너편 테이블에 누가 앉았었는지 기억하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이 나를 종종 서운하게 만든다. 상대에 대해서 너무 사소한 것까지 기억하는 나는 잊혀지지 않는 그 취향들이 때로 버겁다.

 그리고 너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시킬 것이다. 일회용 테이크아웃 잔을 한 손으로 잡고 무게를 가늠한 후에, 어느 정도 마셨다 생각하면 뚜껑을 열고 얼음을 오도독 씹어 먹을 것이다. 어느 아침의 나도 그러하듯이.

 

  더 이상 나이 먹는 것에 예전만큼 호들갑 떨지 않게 된다. 나이 들어감을 인정한다기 보다는 그것을 인정하기 싫어서, 내가 겪을 수 있는 삶이라는 게 이제 어림짐작할 수 있는 정도라서 그런거겠지만. 내가 없이도 이어지는 사람들의 삶이 더 이상 그렇게 쓸하게만 느껴지지는 않는다. 나는 나의 방식으로 사람들을 기억하고, 추억하고. 누군가도 또 나를 그런 식으로 기억하기를 바라면서.

  내가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을 더 알아가려고 부단히 하루하루 살아간다. 나의 안녕을 증명하는 방법이 이 방법뿐인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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