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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개인적인 체험 Sep 27. 2017

[한 술] 너와 먹지 못한 밥에 대하여

우리 사이에 일어날 수도 있었던 일들

   처음 보는 사람과 밥을 먹는 것보다는 첫타자가 되어 글을 쓰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래도 처음은 역시 어렵다. 

   내가 밥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로 처음 결심한 것은 사회초년생으로서 첫해를 보낼 때였다. 조직 생활의 특성에 대해 가장 먼저 배운 것은 점심 식사 시간이었다. 어색한 사람과 먹느니 대충 혼자 점심을 때우고 말았던 대학 시절의 자유는 회사에 오고 나니 조직 부적응자의 낙인으로 돌변했다. 원하지 않는 사람과 원하지 않는 때에 기꺼이 함께 밥을 같이 먹어야 하는 것. '밥벌이'를 한다는 것의 모든 끼니가 즐거울 수는 없다는 것. 내가 아무렇지 않게 먹었던 모든 밥의 맥락에 숨어있던 사람, 시간대, 장소 같은 요소들이 그제야 툭툭 불거져 나왔다. 내 삶은 조금 더 피곤해진다.

   그러나 내 머릿속을 끝끝내 맴도는 것은 너와 먹지 못한 밥이었다.



   #1. 네가 밥을 먹자고 했을 때, 나는 배가 고프지 않았다. 


    누군가 나를 좋아하는지 아니면 싫어하는지에 대한 것은 누구보다도 재빠르게 파악하면서도, 그 감정의 크기에 대한 것까지는 예민하지가 못 했다. 내 섣부른 판단으로 관계를 망쳐버릴 수도 있다. 생각은 소심한 방향으로만 자라났다. 내가 아직도 오래된 사람과의 익숙한 교류에만 마음을 두는 것은 아마 이 두려움 때문일 것이다. 내가 노력하면 관계가 조금 더 진전될 수 있다는 믿음이 어린 시절부터 내게는 부족했다. 가만히 있으면 중간이나 간다는 말이 있지 않는가. 나같은 사람들은 일생을 '중간이라도 가려고' 애를 쓰며 살아가기 때문에 잘 하는 것에는 모험을 해볼지 몰라도, 못하는 것에는 굳이 힘 빼지 않는다. 희생, 도전, 기적 같은 단어는 입밖으로 내뱉을 수도 있고, 현실에 분명 존재하지만 생경하다. 마치 워렌 버핏과의 식사처럼 말이다. 

  규칙은 싫어하지만 규칙적인 것은 좋아한다. 그것은 나를 혼란스럽게 하지 않으며, 물결에 스르륵 쓸려나가는 모래알 같이 저 너머 언덕으로 내 삶을 조금씩 움직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얼마나 먹느냐는 개인에게 달렸지만,) 일반적인 사람은 아침, 점심, 저녁 하루 세 끼를 먹는다는 공통의 합의가 고마운 것은 어찌보면 그 때문이었다. 그러나 규칙적인 것들 중에 그 무엇보다도 일상적이어서 매번 특별하기는 어렵고, 지루해지기 쉽다. 

    밥 한 끼 먹자는 그 흔한 말이 특히나 '연애 상대로서 긴장감이 있는' 사람의 입에서 나왔을 때는 그 일상적인 한 끼 식사도 특별한 사건으로 변한다. 어쩌면 우리 사이에 어떤 일이 일어날 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하게 만드는 한 끼에 대해서 말이다. 매일같이 밥을 먹고 어울렸던 친구와 멀어지는 일이 '밥 한 끼 같이 먹는 것으로 시작하는 사랑'보다 실상 더 높은 가능성과 빈도로 일어나고 있음에도 의미 부여를 쉽사리 멈추지 못하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결론만 말하면, 그 때, 네가 밥을 먹자고 했을 때, 나는 배가 고프지 않았다. 



  #2. 그리고 네가 이제 다른 여자와 밥을 먹는다. 나는 이제야 배가 고프다.


   내가 네게 호감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많았지만, 늦었다. 그리고 네가 이제 다른 여자와 밥을 먹는다. 나는 인생에서 너무 자주, 뒤늦게 배가 고팠다. (나도 그 후에 다른 사람과 함께 하게 되었지만,) 이렇게 혼자 있을 때면 나는 그때 너와 먹지 못한 밥 한 끼를 상상한다. 


    ***

   숟가락, 젓가락을 부산스레 움직이며 오갈 말들을 생각한다. 말에도 눈코입이 있고, 살갗이 있고, 배설 기관이 있어 우리의 말들은 서로 눈을 맞추고, 살갗을 부딪치고, 때때로 드는 생각을 그대로 배설한다. 우리는 한 마디, 한 숟갈 그리고 한 번의 눈맞춤을 번갈아한만큼 서로에게 가까워진다. 그리하여 식사를 마칠 때쯤 다음 식사를 생각하게 되거나 반대로 마지막 식사임을 직감할 지도 모르지만. 

   음식을 입에 넣기 위해 고개를 숙인 너의 둥그런 뒤통수를 그려본다. 네 까만 머리칼이 앞으로 쏟아지면 나는 속수무책으로 잠시 시선을 빼앗겼다가, 네가 내가 입을 크게 ‘아’ 벌리고 먹는 것을 보지 않았으면 해서 급하게 수저를 들 것이다. 내가 뒤늦게 입을 오물거리면, 음식을 삼킨 너는 나를 향해 뜨겁고, 달고, 때로는 차갑고, 짜릿한 단어들을 뱉어낼 지도 모른다. 네가 던진 말이 식기 전에 나는 급하게 먹던 것을 삼키고, 내가 밥을 먹을 때 어떤 얼굴을 하고 있는지 궁금해진다.

   아마도 너와 내가 밥 한 끼 같이 했다면 생길 지도 모를 여러 사연들이 머릿속에서 돌고 도는데. 

   나는 밥 때를 놓쳤고, 우리는 밥 한 끼 함께 하지 못해 시작하지 못한 사이. 우리가 함께 할 수도 있었던 국과 찌개와 탕, 피자와 파스타, 커피, 술과 고기를 생각하면 나는 시도 때도 없이 배가 고파진다. 



#3. 밥 시간은 돌아오지만, 그때 놓친 밥 때는 돌아오지 않는다.    


   꼭 연애 감정에만 국한된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내가 좋아하지 않는 것을 위해 쏟아붓는 시간을 견디기 위해 또다른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하는 지금과 달리, 어릴 적에는 좋아하는 것을 쫓아다니며 그 시간 속에서 사람들을 많이 만났었다.  (지금도 물론 형편없지만, ) 그 때는 좀 더 서툴렀고 먼저 밥 한 끼 먹자는 말에도 나는 지레 겁먹고 물러섰다. 가까워지고 싶었지만, 먼저 밥 한 끼 먹자 할 용기도 쉽게 내지 못했다. 같은 꿈을 꾸거나, 공통의 관심사가 있거나, 나와 비슷한 기질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나이를 먹어도 내 주변에 계속해서 있을 줄 알았다. 이렇게 시간과 함께 흘러가 버릴 줄은 몰랐다.

   다짐을 한다. 밥 한 끼 하자는 말을 두려워하지 말자고. 이렇게 우리 사이에 일어났을 지도 모르는 행복을 아쉬워하는 것은 내 일상을 더 건조하게 만들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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