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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개인적인 체험 Oct 18. 2017

[한 모금] 코카 티와 남미 여행

24시간이 모자라는 직장인의 여행

   지난 추석 연휴에 나는 오랜 숙원이던 남미 여행을 다녀 왔다. '황금 연휴'라는 말이 아깝지 않게 넉넉한 추석 연휴에 연차 4일까지 알뜰하게 붙였다. 비행기와 경유지에서 보내는 시간을 빼고도 8일이라는 시간이 나왔다. 마추픽추와 우유니 사막을 8일 안에 주파하겠다는 원대한 포부를 가지고 움직였고, 어쨌든 모든 일정을 8일 안에 소화하긴 했다. 샌드 플라이와 감기 몸살과 고산병에도 불구하고 내 인생의 여행지였다고 말할 수 있었으면 좋으련만, 아직까지는 힘들었던 기억이 더 크게 다가온다. 학창 시절 매몰 비용에 대해서 배웠던 것은 내 마음 가짐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여행 중 멈추고 싶을 때마다 나를 움직인 것은 새로운 경험에 대한 갈망보다, 내가 이미 투자한 시간에 대한 미련이 더 컸던 적도 있다. "내가 어떻게 시간을 내서 여기까지 왔는데!"



   나와 같은 마음을 먹은 사람이 한 둘은 아니었을 거라고 짐작은 했지만, 나는 여행 기간 내내 정말 많은 직장인들과 만났다.  이 시기 페루와 볼리비아를 여행하는 여행자들의 목적지는 너무나도 명확했다. 그리고 거의 한 사람도 빼먹지 않고, (정도의 차이는 있었지만) 고산병을 겪었다. 마추픽추로 향하는 관문인 쿠스코만 해도 해발 3399m에 위치하고 있으며, 우유니를 항공편을 향해 가려면 반드시 겪어야 할 라파즈의 고도는 3640m 였으니 회사 책상 앞에 앉아있다가 갑자기 이 희박한 공기에 둘러싸인 우리들은 어찌할 방법이 없던 것이다. (심지어 나는 중간에 욕심을 부려 고도가 5000m가 넘는 비니쿤카-무지개 산에 다녀왔는데, 이것이 내 여행 계획 중 가장 후회되는 일이었다. 새벽 네 시부터 네 시 반 사이에 이뤄져야 할 픽업은 다섯 시 너머로 지연됐으며, 비니쿤카 입구에서 쨍하던 햇빛이 몇 걸음 채 걷지도 못한 채 사라졌다. 일부 구간 탈 수 있는 말 위에서 안장을 꼭 붙잡고 있을 때, 우박이 두 차례, 눈보라가 한 차례 일었다. 나는 지나가는 한국인들을 마주칠 때마다 소리쳐 물었다. '정상까지 올라 갈 가치가 있나요?')

   고산병으로 힘들어 하는 나에게 사람들은 코카 티를 권했다.(사진 참조: https://en.wikipedia.org/wiki/Coca_tea#/media/File:Mate_de_coca_Peru.jpg .처음에는 그 이름을 듣고 바로 마약 코카인을 떠올렸고, 실제로 코카인과 같은 나무에서 난다.)  안데스인들에게 코카 잎은 만병통치약 같은 존재이며 이 코카 잎을 우려낸 차가 고산병에 특히 효과가 있다는 것을 알고 나서부터는 마실 기회가 있기만 하면 일단 마시기부터 했다. 나는 종종 지역 특산품들의 효능을 보며 연관성을 따져보고 싶은 욕구에 시달리는데, 코카 티를 처음 접하고서도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식물이 고도가 높은 곳에서 자라면 그 고도에 대한 적응력이 뛰어난 것은 물론이고, 섭취하였을 때 그 고도로 인한 통증을 완화시켜준다는 것. 이 두 가지는 실은 꼭 연관관계가 있어야 하는 사항은 아닌 것이다. 지금 '코카 열매'의 문제에만 집중해 본다면, 나를 죽이지 못하는 고통은 나 자신을 강하게 한다는 말은 옳다. 많은 특산품들은 신이 주신 선물일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수련자, 수행자의 모습을 지녔다고도 할 수 있겠다. 여유의 상징인 티 타임에서, 타임의 여유를 잃으니 티만 남았다. 한국에 있을 때 하루 잠깐의 여유를 선사했던 커피/티 타임은 고산병을 이기기 위해 후루룩 들이키는 코카 티 타임으로 변화를 꾀하며 비장함을 더했다. 점퍼 양쪽 주머니에는 코카 캔디를 가득 넣고 말이다. 힘들다고 해서 직장인 여행자들은 멈출 수가 없다. 간절히 원하던 장소에 왔으니 더 전투적으로 움직일 뿐이다. 


   누워서 풀을 뜯는 라마를 뒤로 하고 사진기 셔터를, 휴대폰 카메라 촬영 버튼을 쉴 새 없이 누른다. 드러난 발목을 물어 뜯는 샌드 플라이도 나를 막지는 못했다. 사진 속의 나, 사진 속의 풍경은 평화로움 그 자체이지만 나는 내 자신에게 이 곳에 있음을 끊임 없이 증명하기 위해 스스로에게 소감을 묻지만, 좋다/싫다 같은 단편적인 감정만이 두드러진다.  경험-인상-해석은 연장선 상에 있어도 한 번에 벌어지기는 어렵기에, (해석에는 다른 경험과 지식 같은 다양한 요인이 작용하므로, ) 요리왕 비룡에서 미-미-를 외친다거나, 신의 물방울에서 보르도 지방의 와인에 대해 엄-청난 수사를 늘어놓는다던가 하는 장면은 잘 일어나지 않는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Here I am'이다. 내가 목적지에 와서 느끼는 행복이 비록 몇 분이 채 안 될 지라도, 여행의 묘미는 바로 '여기'에 있다. 남이 만들어 놓은 자료를 통해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내 눈으로 직접 보았을 때 느낄 수 있는, '자연과 인류 역사의 아우라' 말이다. 내가 원하는 곳, 목적으로 하는 곳을 향해 계획하고 나아가서 도착했다는 성취감도 빼먹을 수 없다.

   그러니까 이 글은 타이트한 일정으로 바쁘게 여행하는 직장인들을 보며 '그게 무슨 여행이야' 하는 사람들을 향해 호박씨를 까는 데 일부 목적이 있다. 나도 대학생 시절에 시간을 여유 있게 여행할 수 있을 때에는, 바쁘게 찍고 찍고 하는 여행은 진정한 여행이 아닌 것처럼 여겼던 적이 있었다. 현지인들과 어울리고, 그들이 가는 식당에서 밥을 먹고, 그런 것을 정답처럼 여겼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우리가 그들과 함께 일상을 살아가지 않는 이상 우리는 이방인일 수 밖에 없으며, 언제나 여행자일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여행지에서 다양한 유형의 여행자들이 겪는 경험들 모두가 여행이다. 선호나 기호의 문제이지, 정답과 오답의 문제는 아니다!


   평소였으면 곤히 잠들었을 시간, 일어나 투어버스에 몸을 싣고 사막 한 복판에서 일출을 기다린다. 추위에 떨며 밖에 내리니 내가 타고 온 것과 같은 투어 버스가 족히 열 대는 더 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사진 찍기에 돌입한다. 나도 멋진 사막을 배경으로 자세를 취해 본다. 같은 투어사에서 온 사람들은 같은 레퍼토리의 사진을 찍지만, 그렇다고 해서 즐거움이 줄어들지는 않는다. 사람들은 직장에서 일하던 시간, 집에서 쉬던 시간, 이 곳에 오기까지 보냈던 시간 등 일상에서 시간들이 지금과 명확히 다른 농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안다. 순간에 감사하게 된다면 모두 훌륭한 여행이다. 코피가 터지고, 열이 펄펄 끓어도, 남들이 수없이 밟은 코스를 별 의심 없이 그대로 밟아도 말이다. 장화 속의 발이 얼어 가는 감각, 분홍빛으로 물들어 가는 지평선, 반영 덕분에 두 배로 수를 늘린 투어버스들까지 마음 속에 꾹꾹 눌러 담았다. 나는 나의 감각으로 장소를 덧씌웠다. 

   기나긴 휴가를 끝내고 책상 앞에 앉았다. 휴대폰을 들어, 인터넷 가십 기사가 아닌 갤러리로 가 여행 사진들을슥슥 훑어본다. 남이 아닌, 사회가 아닌, '그 곳에 있는 나'에게 온전히 집중한 증거들이 '남는 건 사진'이라며 으쓱 거리는 것 같다. 나는 치열하게 그 곳에 있었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다음 여행을 계획한다. 어디로 떠날 지 고민하는 과정이 즐겁다. 다음 여행 계획도 역시나 타이트하다. 시간이 금이라는 것을 가장 절실하게 느낄 때가 바로 이 때다. 아마 다음 여행에서도 나는 여러 가지로 힘들 것이다. 하지만 "내가 어떻게 해서 여기까지 왔는지" 잘 알기 때문에, 더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게 될 것이라고. 그저 떠날 수 있음에 감사하며 글을 마무리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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