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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개인적인 체험 Nov 08. 2017

[한 잠] 내 꿈은 당신과 나태하게 사는 것

내 꿈 중에 가장 무겁지 않으면서 따뜻한 것 

# 1. ~10대 

   꿈이라는 단어는 내게 좀처럼 가벼워 지지 않아서, 꿈을 받아 들고 나는 한참을 서성였다. 꿈이 꼭 그 꿈만 있는 것은 아니지만, 장래희망을 발표하는 초등학교 그 나무 책상 앞으로 자꾸만 돌아가 부끄러워진다. 그때는 누구나 직업이 꿈이었다. 가장 세속적인 직업과 가장 순수한 열망을 동시에 말해도 어색하지 않은 작은 입술에는 처음 들어보는 이름과 처음 먹어보는 음식과 세상의 모든 '첫'들이 기쁘게 머물렀다.

  중고등학교 때 '지금 잠을 자면 꿈을 꾸지만 일어나면 꿈을 이룹니다'는 류의 말들이 유치하다고 생각은 했지만, 실은 누구보다도 그런 말들에 휘둘렸던 것 같다. 한 사람의 꿈이 되기에는 너무 작은 '대학' 때문에 대부분의 시간 동안 나는 행복하지 않았다. 성인이 되면 할 수 있는 근사한 모든 것들을 꿈으로 삼아 불안한 새벽을 견뎠다. '대단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20대의 내가 '시시한 인간'이 되지 않기 위해 애쓰며 살아가게 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를 못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래도 되는 시기였으니까.

 

# 2. 20대

   꿈을 하나 늘릴 때마다 내가 가지지 못한 것을 하나 하나 더 인정해야 했다. 어린 나이에서 젊은 나이로 시간이 흐르는 동안 나는 끝끝내 지나쳐가는 꿈의 뒷모습을 자주 목격해야 했기 때문이다. 특정한 직업을 꿈으로 삼으면 필연적으로 겪게 되는 과정이었다. 자리는 한정되어있고, 나는 아니지만 누군가는 꿈을 이루기 때문에. 자기객관화와 자기합리화가 핑퐁처럼 오가는 시기를 몇번이고 겪게 되면, 이제는 새로운 꿈을 가지는 것에 신중하게 된다. 

  애초에 아프니까 청춘이다 류의 서적은 관심 조차 아까웠다. 살면서 자연스럽게 누구나 한 번은 겪게 될 일이라고 해서, 당연히 참고 견디고 이겨내라는 식의 말투는 (화룡점정으로, 그걸 견뎌내면 나같이 훌륭한 사람이 된다는 식의 결론은) 여전히 참을 수 없다. 상처를 받고, 치이고, 아픈 것은 안겪을 수록 좋다. 이것은 실패를 통해 모든 사람이 성장하는 것은 아니라는, 공감 능력이 경험치라기 보다는 기질에 가깝다는 지극히 개인적인 판단에 기반한다. 지금 글을 읽는 당신이 공감하지 않아도, 그것도 옳다.

  짐작을 했겠지만, 20대의 끝을 향해 가는 나의 꿈은 삶의 태도에 가깝다. 이제 더 이상 내가 이룰 수 없는 것들을 욕망하면서 힘들어하는 것은 싫다. 나는 내 삶이 건강하고, 행복했으면 좋겠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도 건강하고, 행복했으면 좋겠다. 다른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지 못한다면, 적어도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지는 말자고 다짐한다. 그게 2017년 11월의 꿈이다. 2018년의 나는 2017년의 나보다 스스로를 더 사랑할 수 있게, 더 괜찮은 사람이 되는 것 말이다. 

  그래서 요즘 애들은 도전 정신이 없어 등의 모든 '요즘 애들은~' 시리즈들 역시 거부한다. 도전하는 게 나를 행복하게 하면 하는 거고, 아님 말고. 내일의 내가 갑자기 말을 바꾼다고 오늘의 내가 부끄러워 할 필요도 없다. 그냥, 사람 사는 게 그런 거라고 나는 조금 릴~렉스 할 필요가 있다. 


https://youtu.be/EaP2XrDbPgA

내 꿈은 당신과 나태하게 사는 것
더 이상 치열하지 않아도 괜찮은 것
그저 내 키만한 소파에 서로 기대어 앉아
과자나 까 먹으며 TV 속 연예인에게 깔깔댈 수 있는 것
그냥 매일 손 잡고 걸을 수 있는 여유로운 저녁이 있는 것
지친 하루의 끝마다 돌아와 꼭 함께하는 것
잠시 마주앉아 서로 이야길 들어줄 수 있는 것
네가 늘 있는 것 네가 늘 있는 것

그냥 매일 손 잡고 걸을 수 있는 여유로운 저녁이 있는 것
지친 하루의 끝마다 돌아와 꼭 함께하는 것
잠시 마주앉아 서로 이야길 들어줄 수 있는 것
네가 늘 있는 것 네가 늘 있는 것

내 꿈은 당신과 나태하게 사는 것
당신과 남은 생을 사는 것

   

   노래 한 곡을 소개하면서 글을 마무리하려고 한다. '슌(shoon) - 내 꿈은 당신과 나태하게 사는 것'. 이 노래를 알게 된 것은 아마 벅스의 어느 뮤직PD 앨범에서 였을 것이다. 나는 글을 좋아하니까 기본적으로 노래 가사에도 관심을 가지고 보는 편인데, 가사를 보자마자 마음에 와서 딱!하고 꽂혔다. 내 인생에 누군가가 들어온다면, 이런 모습이면 좋겠다,하고 말이다. '내 꿈'과 '당신'과 '나태하게'와 '사는 것'.  지금 내가 가진 꿈 중에는 가장 무겁지 않으면서 따뜻한 것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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