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게 얻어지는 건 없습니다.

by 인아쌤

<공이 없는 직업>


이 일을 직업으로 선택하면서 많은 분과 인연을 맺게 되었습니다. 대부분은 학생들이었지만 그중에 일반인 분들도 제법 많습니다.

특히 스피치라고 하는 영역에서 성인분들이 찾는다는 것은 목적을 갖고 오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예전에 시의원을 하고자 연설을 해야 한다는 분이 오셨습니다. 연세가 많아 보였고 하고자 하는 의지가 높았습니다. 하지만 연설이라고 하는 부분에 있어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모르는 발음이라던지 발성이라던지 총체적 난국이라며 상담을 하셨습니다. 그분과 함께 인터뷰를 하면서 그분이 왜 시의원이 되고 싶은지 시의원으로서 어떤 일을 하고자 하시는지 오랜 시간 인터뷰를 했습니다. 그분을 알아야 그분에게 맞는 연설문을 쓸 수 있기 때문에 작은 에피소드도 놓치지 않으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그분이 살아온 역사가 눈앞에 펼쳐진 듯했습니다. 인터뷰를 마치고 열심히 그분의 연설문을 쓰고 실전 연습을 하는 날이었습니다. 단상에서 원고 내용을 발표하는데 뭔가 석연치 않았습니다. 발음이 문제인 듯했지만, 그보다 입술 모양이 살짝 틀어졌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입술이 비대칭이십니다. 거울 보시고 잘 안 올라가는 입꼬리를 확인해 보세요”라고 말씀드렸습니다. 혹여나 마음이 상하지 않으셨을까 염려하고 있을 때 그분이 “어떻게 아셨어요? 대부분 모르시던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전 대장금 드라마에 최고상궁이 장금이에게 “어찌 홍시라 생각하느냐”라는 질문에 “저는 제 입에서 고기를 씹을 때 홍시 맛이 났는데 어찌 홍시라 생각했느냐 하시면 그냥 홍시 맛이 나서 홍시라 생각한 것이 온데..”라며 말한 장금이와 같았습니다. “선생님이 연설하실 때 오른쪽보다 왼쪽이 더 잘 움직이시더라고요.”라고 말씀드리자 그분이 말씀하시더라고요 “예전에 구안와사가 왔었어요. 스트레스 때문에 왔었다고 해서 한동안 많이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치료받고 많이 좋아져서 대부분 모르는데 선생님이 이렇게 집어내시네요”라고 말씀하시는데 저는 어쩔 줄 몰랐습니다. 괜히 그때를 떠오르게 한 건 아닌가 하고요 하지만 그분은 세심하게 잘 찾으신다며 오히려 제게 칭찬을 해주셨습니다. 어려움을 딛고 도전하는 그분의 모습이 정말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래서 정말 열심히 연설을 도와드렸습니다. 톤을 가다듬고 자세, 발음, 제스처 하나한 얼마나 잔소리를 했는지 모릅니다. 그때가 벌써 10년 전이었는데 어린 선생의 잔소리도 달게 받아드려 주신 그분께 새삼 감사드리고 싶습니다. 그분은 어찌 되었을까요? 물론 원하신 바를 이루셨습니다. 그리고 제게도 고맙다며 인사해 주셨습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분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역시 시의원 하실 분이라 그런지 연설도 참 잘하시더라고요 어디서 배우셨나요? ”배우긴요 저는 원래 말을 잘했습니다. “ 기사였는지 전해 들었던 건지는 오래전 이야기라 저 또한 기억이 가물가물 합니다. 하지만 저 말씀을 하셨다는 건 마음에 담겨 있습니다. 연습하실 때 저에게 배워 많이 좋아졌다 하셨었는데 사람들 앞에서 원래 말을 잘했다는 말씀을 하셨다니 씁쓸했습니다. 그리고 생각했습니다. ‘참 공이 없는 직업이구나.’


‘인아쌤에게 배워 많이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라는 말을 하는 게 창피하셨을까요? 그냥 그 말 한마디면 되는데 그 말을 그렇게 안 해주시더라고요. (이 분만이 아닌 저를 거쳐간 분들 대부분이 원래 잘했다 하시더군요) 성과를 이루었으니 제 할 일은 다 했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사람인지라 서운하긴 합니다. 그리고 생각하지요 ‘만약 다시 찾아오시면 뒤끝의 끝장판을 보이겠다.’ 라고요 하지만 그때 생각뿐입니다. 다시 오시면 또다시 열심히 알려드리고 또 공 없는 이야기들을 들으며 힘이 빠지는 무한 반복의 생활을 이어갑니다.



<그럼 왜 합니까?>


이런 질문을 하시겠지요? 제 답은요

공 없는 직업이지만 말하기의 어려움을 겪는 분들이 문을 두드렸을 때 제가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제가 참 괜찮은 사람이구나 생각하게 만들어주기 때문입니다.

앞에만 서면 눈이 깜깜해지고 머리가 하얗게 된다는 분이 당차게 연설하는 모습에 감동을 받고 작은 목소리와 떨리는 어깨가 진정이 되고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에 박수를 치게 돼서인 듯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변화한다는 것에 감사하다 제 앞에서 말씀해 주시는 것에 만족하기 때문에 이 일을 하는 것 같습니다.


쉽게 얻어지는 건 없습니다. 이분들이 제게 고맙다고 말할 수 있도록 저를 만들어 가고 이분들의 약점을 강점으로 만들기 위해 저는 최선을 다합니다. 그리고 이런 성장을 제가 기억하기 때문입니다.


<뒤끝>

솔직히 이분들이 원래 말을 잘했다고 말씀하실 때마다 아니다라고 정정해서 말하고 싶었습니다. 제가 도운 것이라고 원래는 말하는 거 어려워하셨다고 말입니다. 하지만 일 년 전인가 그분을 마트에서 뵙게 되었습니다. 10년 전이었으니 알아보실 수 있을까? 생각을 했지만 제가 너무 반가워 먼저 가서 인사를 했습니다.


”안녕하세요? 해성웅변학원에서 수업했었는데 혹시 기억하세요? “

”아~~ 기억하지요! “

”얘야, 나 예전에 연설 알려주신 분이야! “

딸과 함께 장을 보는 듯했습니다. 그리고 그땐 제게 배웠다 말씀해 주시고 감사했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시간이 흘러서 이젠 그 자리에 안 계시니 배웠다 말씀하신 걸까요?

아니라 생각합니다. 마트에서 저를 보고 반갑게 맞이해 주시며 딸에게 소개해주신 그 마음이 진짜였을 것이다. 생각했습니다. 다만 그때는 앞으로 말을 많이 하셔야 하는 위치에 있다 보니 어쩔 수 없이 그리 말씀하셨을 것이다 생각하고 싶습니다.


많은 분들이 저를 찾아 주십니다. 연설을 해야 할 때나 면접을 해야 할 때나 아니면 다른 사람들과의 대화를 잘하고 싶다는 이유에서요 그럼 저는 그분들을 위해 열심히 수업을 하고 변화하고 성장할 수 있도록 돕습니다. 물론 또다시 공이 없는 직업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러면 어떻습니까? 그분들도 누군가에게는 제 이름 말하면서 고마웠다 생각해 주시는 것만으로도 괜찮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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