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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 Jun 07. 2023

쓰고 싶은 게 너무 많으면?

무라카미 하루키의 "직업으로서의 소설가"와 함께 하는 작가 자의식 생성기

"'아직은 잘 쓰지 못하지만 나중에 실력이 붙기 시작하면 사실은 이러저러한 소설을 쓰고 싶다'라는, 합당한 내 모습이 머릿속에 있었습니다. 그 이미지가 항상 하늘 한복판에 북극성처럼 빛나고 있었던 것입니다. 무슨 일이 있으면 그냥 머리 위를 올려다보면 됩니다. 그러면 나 자신의 지금 서 있는 위치며 나아가야 할 방향이 잘 보였습니다. 만일 그런 정점이 없었다면 아마 나는 곳곳에서 상당히 헤맸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무라카미 하루키,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105p)


10. 쓰고 싶은 게 너무 많으면?


단편을 10분마다 쓰던 때가 있었다. 지금도 보면 알겠지만 난 꽤 쓰는 속도가 빠르다. (장점이다.) 퇴고도 안 하면 후다닥 바로 단편이 써진다. 그러다보니 쓰고 싶은 건 너무 많고 그걸 한번에 하기가 어려웠다. 단편 쓰느라 정작 출품할 수 있는 분량이나 원고는 쓰지 않았다.


그러니 쓰고 싶은 작품이 너무 많다, 라는 게 첫번째 문제이고

떠오르는 아이디어들을 단편으로 안 쓰기 어렵다,가 두번째 문제였다. 


쓰고 싶은 작품이 너무 많은 건 하루키가 이렇게 처방을 내려줬다. 


"그 이미지가 항상 하늘 한복판에 북극성처럼 빛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나 자신의 지금 서 있는 위치며 나아 가야 할 방향이 잘 보였습니다."


쓰고 싶은 작품은 하늘에 빛나고 있다. 그리고 여기서 중요한 건 '나 자신의 지금 서 있는 위치'와 '나아 가야 할 방향'이다. 결국 사실은 쓰고 싶은 걸 한번에 다 쓸 수 없음을 알려주고 있다. 그러나 이게 지금 닿을 수 없음에 조급할 필요가 없다. 왜냐면 그 방향으로 나아가면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결국 닿게 된다. 그리고 그 과정은 아주 신날 것이다. 


떠오르는 아이디어들이 너무 많은 건 반대로 말하면 소재를 많이 얻는다는 말이다. 이에 하루키는 이렇게 대처한다. 그는 기억 속 서랍을 만들어 거기에 세부적인 정보를 넣는다고 했다. 관찰 자료들 말이다. 


"머릿속에 다양한 것을 그대로 척척 넣어두면 사라질 것은 사라지고 남을 것은 남습니다."

(무라카미 하루키,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124p)


그리고 그는 그것들로 소설을 쓴다. 이건 나도 추구해야 할 방향이 아닌가 싶다. 모든 걸 "지금. 당장. 바로." 글로 남겨두려고 하는 것보다는 기억에 넣어두는 것이다. 이게 사라질까봐 조급해하지 말고 "사라질 것은 사라지고 남을 것은 남는다."는 생각으로 사는 게 더 정신건강에도, 원고에도 이로울 것 같다.


아니면 메모장에 조금이라도 써놓던가 말이다.


결론적으로, 쓰고 싶은 게 너무 많으면?

- 하늘에 북극성처럼 띄워 놓는다. 그리고 '지금 내 위치'를 파악하고, '앞으로의 방향'을 잘 잡는다.

- 조급해하지 말고 차근차근 거기로 닿는 과정을 즐긴다.

- 기억에 저장해두고 아니면 메모로 조금이라도 써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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