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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 Jun 13. 2023

난 왜 꾸준히 못 쓰지?

무라카미 하루키의 "직업으로서의 소설가"와 함께 하는 작가 자의식 생성기

"장편소설을 쓸 경우, 하루에 200자 원고지 20매를 쓰는 것을 규칙으로 삼고 있습니다."

(무라카미 하루키,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150p)


하루키. 하루에 4000자 쓰신다고요? 거의 웹소설 작가시군요..그들은 하루 5500자를 쓰던데...


11. 난 왜 꾸준히 못 쓰지?


솔직히 글을 안 쓰지는 않는다. 글은 쓴다. 장편을 안 쓰면 단편을 쓴다. 글을 쓰기 싫을 때도 글은 쓴다. 하지만 중요한 건 이거다. 


계획하고 쓰지 않는다.


내가 쓰는 건데도 내가 제어할 수 없다. 그래서 참 이것에 대해 고통스러워 하는 것 같다. 왜냐면 나는 무언가를 제어할 수 있어야 편안함을 느끼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마음을 제외하고서, 왜 꾸준히 써야 하는지에 대해 알아보면 좋을 것 같다.


1.왜 꾸준히 써야 하는가?


"우리가 직면해야만 할 혼돈은, 정면으로 마주할 만한 가치가 있는 참된 혼돈은,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그야말로 당신의 발밑에 깊숙이 잠복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충실하고 성실하게 언어화하기 위해 당신에게 필요한 것은 과묵한 집중력이며 좌절하는 일 없는 지속력이며 어떤 포인트까지는 견고하게 제도화된 의식입니다."

(무라카미 하루키,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195p)


'꾸준함'은 성실함의 징표에 불과하지는 않다고, 하루키는 말한다. 꾸준함은 실질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이다. 무엇을 위해? "정면으로 마주할 만한 가치가 있는 참된 혼돈을 충실하고 성실하게 언어화하기 위해."


2. 꾸준함의 기능은 무엇인가?


-좌절하는 일 없는 지속력을 준다


"이사크 디네센은 '나는 희망도 절망도 없이 매일매일 조금씩 씁니다.'라고 했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나는 매일매일 20매의 원고를 씁니다. 아주 담담하게."

(무라카미 하루키,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151p)


희망도 절망도 없이 매일매일 조금씩 쓴다. 이런 꾸준함이 좌절할 일 없이 글을 완성하게 한다고 말한다. 


3. 왜 꾸준히 쓰는 게 어려울까?


"그 결과물인 작품이 누군가에게 칭찬을 받는 일도 있지만 (물론 잘되면), 그것을 써내는 작업 그 자체에 대해 사람들은 딱히 평가해주지 않습니다. 그건 작가 혼자서 묵묵히 짊어지고 가야 할 점입니다."

(무라카미 하루키,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179p)


쓰는 과정은 고독하다. 이건 당연하다고들 말한다. 고독을 고독고독 씹어야 자체 원고 유출로 표절위험을 높이는 짓을 막을 수 있다. 써내는 작업, 즉 작가가 매일매일 하는 그 일에 대해서는 누군가의 보상도 돌아오지 않는다. 심지어 작가 본인이 원하는 '작품'이라는 보상도 없다. 


불안하고 불완전하다. 그런 초고를 보며 하루하루 써나가는 것? 내 시간과 노력을 퍼붓는 것?

너무나 어려운 일이다.


그래. 꾸준히 쓰는 건 어려운 일이다.


4. 그럼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써야 하는 이유.


"하루는 어디까지나 하루씩입니다. 한꺼번에 몰아 이틀 사흘씩 해치울 수는 없습니다. 그런 작업을 인내심을 갖고 꼬박꼬박 해나가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 말할 것도 없이 지속력입니다."

(무라카미 하루키,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180p)


하루키는 어쩜 맞는 말만 해서 나를 침울하게 만들까. 


'꾸준함'은 내 혼돈을 언어화하기 위해, 좌절할 일 없이 쓰기 위해 필요하다. 그러나 그 '꾸준함'은 당연히 어려운 것이다. 보상 없는 노력을 요구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더불어, 불완전한 것을 바라보며 계속해서 글을 써야 하는 건 그 자체로 불안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써야 하는 이유는 다음이다.


"하루는 어디까지나 하루씩입니다. 한꺼번에 몰아 이틀 사흘씩 해치울 수는 없습니다."


하루 안에 15만자를 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사실 안 좋다.)

800매가 딱 나와서 장편소설로 낼 수 있다면 참 간단하다.


그러나 하루는 어디까지나 하루씩. 내가 쓰지 않으면 소설은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하루가 한 발짝만큼, 또 다른 하루가 또 앞으로 한 발짝 나아가는 것이다. 


여기서 하루키는 또 한 마디를 해준다. 솔직히 하루키가 상냥하게 혹은 건조하게 말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이사크 디네센은 '나는 희망도 절망도 없이 매일매일 조금씩 씁니다.'라고 했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나는 매일매일 20매의 원고를 씁니다. 아주 담담하게."

(무라카미 하루키,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151p)


희망도 절망도 없이 매일매일 조금씩 쓰라고.


결국 요약하자면, 난 왜 꾸준히 못 쓰지?

- '꾸준함'의 목적을 몰랐다. 꾸준히 쓰는 건 어떤 이상적인 목표가 아니다. '꾸준함'은 실질적으로 필요한 요소다. "정면으로 마주할 만한 가치가 있는 참된 혼돈을 충실하고 성실하게 언어화하기 위해."

- '꾸준함'이 좌절할 일 없는 지속력을 준다는 걸 몰랐다. 좌절하지 않는 지속력은 집필 중 불안과 결핍을 채우기 위해 중요하다. '희망도 절망도 없이 매일 매일 조금씩 쓰면' 소설은 앞으로 나아간다. 초고가 쓰레기여도 걱정하지 마라. 퇴고로 엎으면 된다. 일단 그걸 언어화한다는 게 중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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