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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 Jun 07. 2023

순문학. 대중문학. 도대체 어쩌라고?

무라카미 하루키의 "직업으로서의 소설가"와 함께 하는 작가 자의식 생성기

"하지만 동시에, 라고 할까, 그보다는 우선, 그래도 명색이 표현자의 말단으로서 무엇보다 정신적으로 자유롭고 싶었습니다." 

(무라카미 하루키,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105p)


나도 자유롭고 싶다. 현실을 피해/너머/도망쳐 허구세계를 만드는 사람인데 정신적으로 자유롭지 못하면, 도대체 왜 소설을 쓰는가.


8. 순문학. 대중문학. 도대체 어쩌라고?


"특히 문학에서는 전후 오랜 기간에 걸쳐 '전위냐 후위냐' '우파냐 좌파냐' '순문학이냐 대중문학이냐'라는 좌표축에 따라 작품이나 작가의 문학적 위치가 세세하게 도표화되었습니다."

(무라카미 하루키,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102p)


웹소설 작가가 되고 싶어도 (아직) 안/못 되고 있지만, 웹소설 작가와 출판 작가가 한때 다르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와 보니 그리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상업문학. 순문학. 대중문학. 뭐, 예술. 


다 어쩌라고 하고 싶다.


작가가 있고, 글이 있고, 독자가 있고 그 안에 '터치'가 있다면 그걸로 다 된 거 아닐까?

물론 예능에서 느끼는 감동과 감동 실화 영화에서 느끼는 감동은 그 깊이가 다를 것이다. 하지만 뭔가 정체도 모르는 '타이틀'이라는 고양감 때문에 높고 낮음을 따지는 건, 내 문학에서는 없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이 든다. 


그러니까 이건 나를 향한 말이다. 내 안의 내가 가진 문학에 대한 생각에게 말하는 것이다. 뭐가 되었든

 

1.글을 쓰고자 하는 충동이 (남을 향한 터치든, 나를 향한 터치든, 재미/모험/흥분을 위한 것이든) 충족되고,

2. 그 충동/의미를 알아주는 독자가 있다면

그것으로 소설은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거기에 작가라는 타이틀이 이 가치를 높여주거나, 하루키의 말처럼 작가의 문학적 위치가 세세하게 도표화되어 그것에 따라 가치가 판정된다고 생각하지 않으려고 한다.


결론적으로, 순문학. 대중문학 도대체 어쩌라고?

- 그냥 글을 쓰고자 하는 내 충동과 그 충동 속 의미를 알아주는 독자가 있다면 그것만으로 소설은 가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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