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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감상문]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

[스포일러 포함] 영상미는 나쁘지 않았지만, 스토리가 쏘쏘했던..

by 김주렁

어린이날 다음 날인 5월 6일 조조영화로 닥터 스트레인지를 보고 왔다. 오래간만에 극장에서 간식을

먹으면서 영화를 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줄거리(출처 : 네이버 영화)
끝없이 균열되는 차원과 뒤엉킨 시공간의 멀티버스가 열리며 오랜 동료들, 그리고 차원을 넘어 들어온 새로운 존재들을 맞닥뜨리게 된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 속, 그는 예상치 못한 극한의 적과 맞서 싸워야만 하는데….


※ 스포일러가 포함될 것 같습니다. 영화를 보실 예정이면서 스포일러를 싫어하시는 분들은 이 글에서 탈출해주세요.


영화에 등장하는 모든 장면과 요소들을 이해하려면 사전 공부가 많이 필요한 영화였다.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모든 것을 이해하려고 하는 수준까지는 아니고 가볍게 마블 영화들을 찍먹 하는 정도라면 유튜브에서 '영화 보기 전 총정리'정도만 보고 가도 무방하겠다.


크게 영상과 연출 / 스토리 측면에서 영화를 보고 난 후의 감상을 남긴다.


영상과 연출 측면에서


닥터 스트레인지와 마블 영화라는 점을 차치하고 보면, 비주얼 적으로는 꽤나 잘 만든 영화였다고 생각한다. 닥터 스트레인지의 비중이 적은 점 (완다의 비중과 중요도가 더 높게 비춰진다), 닥터 스트레인지와 웡 및 카마르-타지 마법사들의 전투신 비주얼이 약한 점(방어막을 제외하고서는 화살과 대포로 공격하는 점. 하지만 이는 와칸다에서의 연출과도 결이 비슷했다고 생각한다. 다소 이해가 안 되긴 하지만, 감독이 여기까지는 큰 공을 들이지 않은 것 같기도 하다), 마법의 활용도가 전반적으로 낮은 점(날붙이에 붙여 동아줄 용도로 사용되는 마법, 방패와 사슬 정도로만 활용되는 전투, 비샨티의 책을 얻으려고 잠긴 문을 마법으로 열려고 하지만 결국 스트레인지의 시계가 열쇠였던 점, 화제의 음표 전투신 등...) 등 비판받고 있는 부분들도 많지만 영상 자체만 놓고 보면 나쁘지 않았다. 이 정도의 비주얼 역량이면 다른 영화를 만들었어도 성공했을 것 같다.


덧. 작품 초반에 아메리카 차베즈가 스파이더맨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놀리는 장면이 나온다. Gross라고 하거나, 거미줄이 엉덩이에서 나오냐고 하거나 등이다. 멀티버스 관련 전작이 스파이더맨이니까..라고 생각했지만 감독의 필모그래피를 나중에 찾아보니 스파이더맨 감독님이셨다. 본인 이력을 활용한 소소한 위트가 마음에 들어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공포 영화스러운 연출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작품 초반에 등장하는 문어 같은 괴물의 비주얼도 괴기하며, 완다가 블랙 볼트의 입을 없애버리는 장면, 프로페서 X가 다른 멀티버스의 완다의 내면에 들어갔을 때 완다의 깜짝 등장 장면, 마지막 부분 좀비 스트레인지와 악령들의 비주얼 등 밝은 이미지의 마블과는 사뭇 다른 연출이었다. 아무래도 감독의 색깔이 나타난 부분인 것 같다.


연출 장면 중 가장 백미였던 것은 차베즈와 닥터 스트레인지가 완다를 피해 여러 멀티버스를 통과하는 장면이다. 각기 다른 여러 멀티버스를 일순간 관통하게 되는데, 단순히 배경과 시대상만 바뀌는 것이 아니라 물감으로만 된 세계로 가기도 하고, 2D 코믹스로 들어가기도 한다. 발군이었던 것은 각기 다른 세계를 이동하는 그들의 모습이 자연스럽게 연결된 점이다. 영상이라기보다는 셀 애니메이션 제작 방식 같았다. 멀티버스라는 것에 대해 짧은 순간에 보여주면서도 시각적 연출도 놓치지 않은, 그러면서도 마블의 근본인 코믹스적인 느낌도 줄 수 있어서 좋은 장면이었다고 생각한다.


영상 연출 내용을 하나 덧붙이자면, 완다가 꿈에서 깨어날 때의 연출이 좋았다. 꿈에서, 혹은 드림 워킹에서 깨어난 완다는 90도 회전된 모습으로 보인다. 완다가 점차 원래 세상으로 돌아오게 되면서 화면은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다. 시계태엽을 감거나, 잘못된 것을 정위치로 다시 되돌린다는 개념을 시각적으로 단순하면서도 직관적으로 보여주었다고 생각한다.


다른 멀티버스로 처음 오게 된 스트레인지는 건널목에서 초록불에 길을 건너려 하지만 차에 치일 뻔했다. 그 멀티버스에서는 초록색과 빨간색이 반대였던 것이다. 멀티버스 N회차 차베즈는 스트레인지에게 '안다고 생각하지 말 것'이라는 첫 번째 규칙을 말해준다. 여기까지는 단순히 멀티버스 첫 번째 규칙을 설명하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뒤에서 해당 내용이 한 번 더 활용되어서 기억에 남았다. 원래 세상에서 스트레인지를 곤경에 빠뜨렸던 모르도가 스트레인지를 형제라 부르며 반긴다. 망설이는 차베즈에게 스트레인지는 아까 차베즈가 알려준 '빨간 불에 길을 건넌다.(정확한 표현은 생각이 나지 않으나 이런 뉘앙스의 문장이었다)'는 말을 재인용하며 모르도를 따라 생텀으로 들어간다. 물론 결론은 잘못된 선택이었기는 하지만, 이런 소소한 중복 활용이 감독이 작품에 신경을 썼다는 점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다크 홀드와 완다(스칼렛 위치)를 막아낼 수 있는 유일한 무기인 '비샨티의 책'이 작품에 두 번 등장한다. 첫 번째 장면에서는 스페인 느낌의 포니테일 스트레인지(추후 좀비로 활용되는 기구한 운명의 디펜더 스트레인지)와 차베즈가 책을 향해 달려가나 결국 책에 도달하지 못한다. 두 번째 장면에서는 크리스틴과 차베즈와 함께 책에 결국 도달하지만 거의 얻자마자 완다에게 불태워지고 만다. 결국 책이 활용되지 못한 점도 아쉬웠지만, 책이 놓여있던 제단이 기억에 남는다. 책이 중심에 있고 빛이 사방으로 퍼져나가는 구조로, 굉장히 성스러운 느낌을 준다. 당연히 책 자체가 내뿜는 아우라일 줄 알았는데 막상 스트레인지가 책을 빼고 나니 빛 모양의 투명 구조물이 남아있었다. 감독 입장에서는 크게 상관없다고 생각한 디테일이었을지, 의도적으로 배치한 키치 한 요소일지 개인적으로 궁금했다.


스트레인지가 일루미나티 멤버를 처음 만나게 되는 장면은 정말 너무도 정석적이었다. 권위 차이를 보여주기 위한 높이 차이, 수갑을 차고 서있는 스트레인지와 의자에 앉아있는 구성원들, 그 지위에 맞게 가장 크면서 그 공간에서 혼자 유색인 의자(이자 휠체어)에 앉아있는 프로페서 X, 그들 사이에 존재하는 낭떠러지 공간을 통한 공간의 분리 등 굉장히 교과서적으로 구성된 장면이었다. 어설프게 색다른 시도를 하기보다는 이런 정석적인 공식을 활용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스토리 전개 측면에서


완다에 대한 전체적인 전개 방향은 대략적으로 정해져 있었을 것인데, 이를 풀어나가는 과정과 전개가 세밀하고 잘 짜여진 것은 아니었던 것 같다. 큰 줄기는 정해져 있으니 세세한 인과는 조금씩 대충 넘어간 느낌도 있다.


완다 비전에서 이어지는 완다의 아이들에 대한 갈망은 이 작품까지 이어져 작품의 주된 갈등 요인이 된다. 아이들이 있는 멀티버스로 내가 가기만 하면 무조건 행복해질 수 있다는 논리적 비약을 기반으로 완다는 모든 일을 벌인다. 하지만 결국 마지막에 차베즈의 능력으로 인해 원래 그 세계의 완다와 함께 아이들을 마주하게 된 완다는 아이들에게 괴물, 악한 존재로 배척당한다. (외형이 스칼렛 위치의 모습이기도 했으니 말이다) 본인의 대전제이자 소망이 이루어질 수 없는 것임을 깨달은 완다는 결국 모든 것을 포기하고 다크 홀드가 있는 운다고어 산과 함께 자멸한다. 물론 일순간 갑자기 180도 바뀌어버린 완다의 태도에 개연성이 다소 부족한 것은 사실이다. 완다의 죽음은 정해져 있었을 것이며, 그 과정을 얼마나 관객이 납득할 수 있는 근거를 가지고 풀어나갈 것인지 고민하는 것이 감독의 숙제였다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보면 너무 오래된 클리셰와 방식을 활용한 개과천선식 마무리가 아니었는지 싶다.


완다가 웡의 동료 4명가량을 고문하고 죽이려 하자 모든 사실을 바로 실토해버리는 모습도 살짝 의아하기는 했다. 이미 카마르-타지의 수많은 사람이 희생된 점, 소서러 수프림인 웡의 막중한 책임감 등을 고려해보면 상황에 비해 포기가 다소 빨랐다. 완다가 운다고어에 가게 되는 것은 스토리 상 필연적이었을 것이며, 웡이 갈등을 겪고 고통을 받다가 어쩔 수 없이 털어놓게 되는 장면이었어야 할 것 같은데 이 과정은 전체 스토리 상 크게 중요하다고 판단하지 않은 것일지 의문이 남는다.


일루미나티 소속의 히어로들 소모 속도가 다소 빨랐다. 영화 전체 러닝타임을 생각하자면 전개 템포 측면에서는 적절한 판단이었던 듯 하지만, 그럼에도 개개인에게 주어진 역할이나 비중이 너무 적었다. 편집 과정에서 40분가량 줄어들었다고 했는데 이 부분도 그중 하나 아니었을지 조심스레 추측해본다.


마블 작품에서도 PC(political correctness)를 떼어놓기 힘든 것 같다. 작품의 주요 인물인 아메리카 차베즈, 일루미나티의 캡틴 마블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일루미나티와 완다의 전투 장면에서도 블랙 볼트와 미스터 판타스틱은 아무것도 못하고 바로 리타이어 되며, 캡틴 카터와 캡틴 마블이 완다와 치열하게 싸운다. 무엇이 나쁘고 무엇이 좋다는 것은 아니지만, 의도적으로 이런 요소를 염두에 두고 작품을 보게 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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