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지식의 무게는 이따금 눈꺼풀을 끌어내린다
작품에 대한 배경지식은 대체로 독자나 관객의 이해도를 높여주지만, 그렇다고 해서 언제나 혜안을 가져다주지는 않는다. 배경지식과 편향, Bias는 말 그대로 한 끝 차이이기 때문이다. 나이브스 아웃:글래스 어니언 (이하 글래스어니언)이라는 작품은 참으로 영리하게도 독자의 배경지식과 편향을 입맛대로 휘두른다. 영화의 스토리, 영상미, 캐릭터성이 돋보이기는 쉽지만 이런 기저에 깔린 사상과 기조 자체가 흥미로운 것은 쉽지 않은 일이자 신선한 경험이라고 생각한다. 모순과 인과관계가 양파껍질 벗기듯 하나하나 떨어져 나가며 꼬리를 무는 글래스 어니언 작품을 장르와 구성, 소재에 따라 풀어나가 보고자 한다.
줄거리 (출처 : 네이버 영화)
브누아 블랑이 라이언 존슨 감독의 새로운 살인 추리극에서 겹겹이 쌓인 미스터리를 파헤치러 돌아온다. 이 대담한 탐정이 새로운 모험을 펼칠 장소는 그리스 섬의 호화로운 사유지. 그러나 그가 어떻게, 무슨 이유로 이곳에 오게 되었는지부터가 무수히 많은 수수께끼의 출발점이다. 블랑은 억만장자 마일스 브론의 초대를 받고 해마다 열리는 모임에 참석한 각양각색의 친구들을 만난다. 초대된 사람은 마일스의 전 동업자 앤디 브랜드, 현 코네티컷 주지사 클레어 디벨라, 최첨단 과학자 라이오넬 투생, 모델 출신 패션 디자이너 버디 제이와 그녀의 성실한 조수 페그, 인플루언서 듀크 코디와 여자친구 위스키 등이다. 이들 모두가 각자 비밀과 거짓, 살인의 동기를 품고 있다. 누군가가 죽은 채로 발견되는 순간, 모두가 용의자가 된다. 아카데미상 후보에 오른 라이언 존슨 감독이 전편에 이어 또다시 각본과 연출을 맡은 《나이브스 아웃: 글래스 어니언》. 블랑 역으로 돌아온 다니엘 크레이그를 필두로 에드워드 노튼, 자넬 모네, 캐스린 한, 레슬리 오덤 주니어, 제시카 헤닉, 매들린 클라인, 케이트 허드슨, 데이브 바티스타 등 전편 못지않은 초호화 출연진이 총출동했다.
1. 성공한 추리극 장르의 속편이라는 배경지식이 가져다준 편향. 그리고 이 편향을 무너뜨리며 기꺼이 잘 활용해 낸 글래스 어니언.
해당 영화는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되었고, 나름의 성공을 거둔 추리극인 나이브스아웃 1편의 속편이라는 배경지식을 갖고 있다. 성공한 영화의 속편이 나오게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수순이나, 글래스 어니언 작품은 본인에게 부여된 이 포지셔닝 자체를 작품의 기저에 깔고서 잘 비틀어냈다. 그런 과정에서 '글래스 어니언'이라는 다소 생경한 소재도 작품의 주제의식을 상징적으로 표현해 주는 오브제이자 컨셉으로 작용할 수 있었다. (글래스 어니언이라는 소재에 대해서는 다음 장에서 풀어내보고자 한다.)
코미디, 추리극, 액션, 비극, SF, 추리극 등 우리가 '장르'라고 부르는 것들에는 그들의 시작점이자 이데아 역할을 해주는 개념 혹은 작품이 존재한다. 반지의 제왕, 찰리 채플린의 코미디, 셰익스피어의 비극, 셜록 홈스, 스타워즈 등의 성공한 작품들이 그것이며, 이들은 클리셰의 본원에서 시작하여 장르로 확장되었을 것이다.
추리극의 경우에도 어느 정도 정립된 왕도가 존재할 것이다.
범인은 본인의 범행 흔적을 얼마나 효과적이고 논리적으로 숨겨내는지
탐정은 여러 단서들을 순차적으로 찾아내며 점진적으로 진실에 다가가는지
그런 과정에서 논리적 비약은 없었는지
복선은 과하지 않고 적당했는지 등
우리가 추리극에 대한 위 수준의 대략적 배경지식을 가지고 '추리극을 본다'라고 하면, 위 요소들이 일종의 길라잡이이자 척도 역할을 해줄 것이다.
구태여 장르와 추리극에 대한 설명을 풀어낸 것은, 우리가 '성공한 추리극의 후속작'으로서 글래스 어니언을 접한 상황을 설명하기 위해서이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우리는 누가 굳이 강요하지 않더라도 추리극의 잣대를 염두에 두고 작품을 보게 될 것이다. 그리고 감독은 이 점을 십분 활용하여 대놓고 반대 방향으로 작품을 풀어나갔다.
작품의 외견 자체는 극중극 형태의 그럴듯해 보이는 추리극 형태로 구성되어 있다. 고립된 섬에서 열리는 추리 모임에 초대된 각기 다른 사연의 사람들, 그리고 그곳에서 갑자기 발생한 의문의 죽음은 한정된 공간과 용의자들 사이에서의 의심과 추리로 이어지고, 끝내 진범을 잡게 되는 수순으로 진행될 것이라고 개인적으로는 저항 없이 예측했었다. 그런데 막상 진상을 알고 나서는 허망하리만큼 제대로 된 점이 없었다. 모종의 사연과 살인 동기는 없었고, 복잡한 트릭도 없었으며, 악역 포지션의 인물도 영악하고 계획적이기보다는 아둔했다.
추리극의 왕도에 빗대어 이 영화를 평가하면 낙제점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영화 작품적으로는 이 아이러니함이 가장 주요하고 유니크한 포인트가 되어주었다고 생각한다. 이 작품은 추리극이 복잡하고 심오하며, 논리적 완벽함을 통해 카타르시스를 전달해야 한다는 기본적인 틀을 깼다. 틀을 깨는 걸 주장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겠으나, 추리극을 통해 추리극의 틀을 깼다는 점이 이 메시지의 임팩트를 배가시켜 주었다. 생면부지의 남을 평가하기는 쉽지만 내가 나를 평가하기는 쉽지 않은 법이다. 이런 의도적인 엇나감을 통해 기존의 틀을 깨트렸다는 것이 개인적으로는 여운이 오래 남았다.
그리고 이 틀을 더 공고히 만들어줬던 것이 '일류 탐정'의 존재였다. 추리라는 것이 자격증이 필요한 일은 아니다 보니, 사실 일반인들만 모인 장소에서도 어느 정도의 식견과 논리를 지닌 사람이라면 특정 사건을 추리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작품의 주인공은 동네 탐정도 아니고 일류 탐정으로 일컬어지며 전작에서도 큰 활약을 거둔 '브누아 블랑'이었다. 이 정도 수준의 탐정이 추리하는 사건이라면 응당 심오하고 복잡할 것이며, 일반인은 그 목적성과 의도를 쉬이 파악할 수 없을 정도로 치밀하게 짜여있을 것이라고 자연스레 생각하게 된다. 이와 같은 추리극과 탐정의 출현으로 견고하게 쌓아 올려진 선입견의 탑이 일순간 무너져 내릴 때의 카타르시스가 컸다.
이런 의도적 무논리가 작품 내에서 상징적이자 암시적으로 보여진것이 마일스가 사용하는 비문(非文)들이었다고 생각한다. 섬의 주인이자 모임의 호스트, 백만장자인 마일스는 작품 중간중간 어법이나 단어가 틀린 표현들을 사용한다. 처음에는 단순히 마일스의 아둔함을 표현하기 위한 방식으로 생각했지만, 작품이 끝나고 생각해 보니 '우리의 작품은 역량 부족으로 이상한 전개를 펼친 것이 아니고 의도적으로 이상한 방향으로 나아간 것이다'라는 메시지를 던지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위와 같은 요소들은 결국 '겉보기엔 그럴듯해 보이지만 까고 보니 별거 아니더라'는 방향으로 귀결된다. 그리고 여기에서 작품의 제목에 사용된 '글래스 어니언'이라는 단어로 다시 연결된다. 다음 장에서는 유리로 된 양파껍질을 벗기는듯한 작품의 특성을 풀어내보겠다.
2. 왜 글래스 어니언일까, 글래스 어니언일 수밖에 없었을까? 껍질을 반복적으로 벗겨나가는 양파의 특성이 반영된 작품
이 작품에 대해 처음으로 접하게 되는 마중물 역할을 해주는 것은 작품의 제목이다. 글래스 어니언이라는 단어는 처음 봤을 때는 표면적인 의미인 '유리 양파' 이상의 감상을 주지 않았지만, 작품을 다 보고 나서 이 단어를 곱씹어볼수록 작품을 관통하는 소재로서 잘 선정되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을 수 있었다.
기본적으로 이 단어는 Glass(유리) + Onion(양파)로 구성되어 있다. 유리의 특성은 투명함과 깨지기 쉽다는 점, 양파는 까도 까도 껍질이 나온다는 점이다. 이 소재들은 크게 유리, 양파, 유리+양파의 3가지 의미로서 기능했다고 생각한다.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유리의 투명함, 까도 까도 반복되는 양파껍질의 반복성, 유리로 만들어져서 속이 훤히 보이는 유리 양파의 껍질을 까는 허망하고 아둔한 행위가 작품의 전반적인 배경지식이 되어주었다.
우선 작품의 스토리가 기본적으로 반복 + 변주 (예컨대 A A' A''... 방식)의 형태를 띤다. 동일한 사건 (듀크의 죽음)을 두고 새로운 사실을 하나하나 제시하며 사건의 진상을 관객에게 제시해 나가는 방식으로, 이와 같은 방식은 반복 횟수는 작품별로 다를 수 있겠으나 추리극에서는 그리 낯설지 않은 방식이다. 하지만 이 작품의 기본적인 특징은 전 단락에서 설명했듯이 의도적으로 이상한 방향으로 나아간다. 여러 단서를 모아나가 사건의 진상에 점차 다가가는 것처럼 작품의 틀은 짜여 있으나, 종국에 등장인물들과 관객이 알게 되는 사건의 진상은 너무나 하잘것없다. 바로 여기에서 왜 양파가 '유리'로 만들어질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다.
양파 껍질을 까내리듯 사건의 진상에 다가가고자 하는 것은 껍질을 까지 않으면 그 진실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리로 된 양파를 생각해 보자. 투명한 유리로 만들어진 양파는 굳이 껍질을 까지 않더라도 그 속에 담긴 진실을 바라볼 수 있다. 글래스 어니언이라는 소재는, 추리극의 형태로 사건을 차례대로 해결해 나가지만 결국은 모두 의미 없는 행위였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작품 내 상황 전체에 대한 압축본이자 상징물의 역할을 해주었다고 생각한다.
3. 그 외에 소소하게 활용된 양파와 유리의 상징성
앞 단락에서 설명한 상징성 외에도, 양파의 껍질을 까는 것처럼 Peel off의 개념이 작품에 전반적으로 활용되었다. 마일스가 공들여 준비한 추리 모임은 브누아 블랑에 의해 단박에 그 껍질이 벗겨지고 말았으며, 이후 실제 살인사건의 추리로 넘어가는 듯했으나 이 또한 살인 동기와 상황을 까고 보니 굉장히 하잘것없었다. 심지어 의도하고 계획한 살인도 아니고 단순 실수에 의한 사망이었으니 말이다.
작중 등장인물들도 저마다의 껍질을 지니고 있었다. 마일스는 모순 그 자체인 사람이었고, 그의 친구들 또한 겉보기에는 화려한 인생이지만 막상 까고 보면 어딘가 결핍된 사람들이었다. 브누아 블랑도 처음에는 우연히 실수에 의해 잘못 초대된 사람처럼 보였지만, 진상을 알고 보니 다른 의뢰를 받고 본인이 의도를 갖고 그 섬에 찾아온 것이었다. 작품의 숨겨진 주연인 앤디 또한 그 정체 자체가 타인을 연기한 것이었으니 다른 겉껍데기를 쓰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성격과 행동 또한 언니 앤디와 정반대여서 굉장히 직관적인 묘사였다고 생각한다.
작품의 마지막에 앤디(의 여동생)는 마일스의 별장에 있는 각종 유리 장식물들을 깬다. 이는 유리 양파의 껍질을 깨는, 거짓됨을 벗겨내는 행위의 시각적 표현방식이었다고 생각한다. 처음에는 마일스의 편을 들던 그의 친구들 역시 장식물을 깨뜨리며 본인들의 거짓됨과 그릇됨을 깨뜨린다.
모든 것이 의도적으로 가짜인 공간에서 유일하게 진짜인 것은 모나리자 그림이었다. 눈썹이 없는 점, 배경이 잘린 것 같은 점 등 그림 자체의 원본이 있는 것이 아닌지 논쟁이 있는 모나리자 작품을 택한 것은 탁월한 선택이었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4. 글을 마무리하며
일반적이지 않은 소재를 가지고 왕도에서 의도적으로 벗어난 작품을 만들면서 성공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마치 억지로 안 맞는 레고 블록을 일부러 반대로 끼우면서 걸출한 작품을 만들어내는 장면을 보는 것 같다. 글래스 어니언이라는 작품은 본류에서의 의도된 이탈을 적합한 소재와 상징성을 가지고 잘 풀어냈던 작품인 것 같다. 무작정 핸들을 반대로 꺾는 것이 아닌, 오른쪽으로 가기 위해 일부러 왼쪽으로 핸들을 꺾는 드리프트 같기도 했다. 이런저런 미사여구가 붙게 되는 것은 이 작품을 꽤나 인상 깊게 보았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이런 치밀한 구성과 의도의 작품을 많이 볼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