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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감상문] 아바타: 물의 길

비주얼이라는 한 우물을 지독하게 파내려 간 감독의 노력

by 김주렁

0. 13년 만의 속편


2022년 12월 16일 9시 20분에 '아바타: 물의 길' (이후 아바타 2 혹은 아바타 2편)을 보고 왔다. 1편이 개봉한 것이 2009년이니 햇수로만 따져봐도 13년이 흘렀다. 나름의 이유와 사정은 있겠으나, 대흥행을 거둔 기념비적 작품의 속편 치고는 꽤나 오래 걸린 셈이다. 아이언맨 1편이 2008년 개봉하고 어벤져스: 엔드게임이 2019년에 개봉했으니 MCU 페이즈 1부터 시작해서 페이즈 3이 끝나기까지의 기간보다도 길다.


관객의 시간은 무용하게 흘러가지 않는다. 속편을 기다린 시간만큼 그 기대감은 증폭되기 마련이며, 영화가 마음에 들지 않았을 때의 실망감도 이에 상응하여 커지게 된다. 하물며 마이너한 팬층의 작품도 아니고 가히 게임 체인저라고 불릴 만한 작품이 전작인 아바타 1이었기에 감독과 제작진이 느낄 부담감도 상당했을 것이다.


준비한 시간만큼 작품의 호흡도 길어진 것인지, 아바타 2편의 러닝타임은 192분에 달한다. 분량 조절에 실패한 것이 아닐지 싶었지만, 영화를 보고 나니 192분도 원래 더 길었던 시간에서 눈물을 머금고 덜어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토리의 밀도보다는 비주얼적 표현의 밀도가 상당히 높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렇게 좋아하는 성향의 영화는 아니지만 상당한 몰입감을 준 영화였다. 비주얼, 스토리, 전작과의 비교 등을 거치며 영화에 대한 감상을 남겨보고자 한다.


줄거리 (출처 : 네이버 영화)
<아바타: 물의 길>은 판도라 행성에서 '제이크 설리'와 '네이티리'가 이룬 가족이 겪게 되는 무자비한 위협과 살아남기 위해 떠나야 하는 긴 여정과 전투, 그리고 견뎌내야 할 상처에 대한 이야기를 그렸다. 월드와이드 역대 흥행 순위 1위를 기록한 전편 <아바타>에 이어 제임스 카메론 감독이 13년 만에 선보이는 영화로, 샘 워싱턴, 조 샐다나, 시고니 위버, 스티븐 랭, 케이트 윈슬렛이 출연하고 존 랜도가 프로듀싱을 맡았다.


1. 이 영화의 key buying factor은 여전히 비주얼


2009년에 본 아바타 1편은 긍정적인 방향의 비주얼 쇼크였다. 아이맥스와 3D, 모션 캡처 기술 등 영화산업과 기술의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여실히 보여준 워킹샘플 그 자체였다. 그리고 13년이 지난 2022년에 아바타 2편이 개봉했다. 그 사이에 기술 수준은 괄목상대해야 할 정도로 발전하고 보편화되었다. 솔직한 마음으로는 2편이 1편과 동일한 방식으로 충격을 주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본 아바타 2편의 메인디쉬는 여전히 영상미였다.


아는 맛이 무섭다. 성공한 IP는 파괴적이다. 아바타 2편 이 두 가지 요소를 등에 업고 만들어졌다고 생각한다. 영상미 자체는 2022년 현재 보더라도 타의 추종을 불허할 수준이었다. 나비족인 주인공들의 표정과 손짓, 바다 및 태양빛의 표현, 수려한 자연요소들, 거대한 스케일의 전투에서도 무너지지 않는 디테일 요소 등 구태여 설명하지 않아도 될 수준이었고, 3D 구현 자체도 과장되지 않고 적재적소에 자연스럽게 활용되었다. 마치 실제로 존재하는 나비족의 일상을 담은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했고, 그만큼 디테일했다.


하지만 비주얼이라는 너무 강한 무기를 손에 쥔 나머지, 스토리 전개 측면에서는 개인적으로 아쉬움이 남았다. 러닝타임이 긴 것도 스토리가 방대해서라기보다는 한 장면이라도 더 묘사하고 뽐내고자 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다음 단락에서는 스토리적으로 느낀 점을 남긴다.

2. 시각화의 부재료 역할이 되어버린 스토리


게임 엔진이나 그래픽카드의 성능을 뽐낼 때 활용되는 영상들이 있다. 이와 같은 영상들의 목적은 스토리텔링이라기보다는 시각적 압도에 있다. 같은 상황이라도 나는 이만큼이나 세세하고 다양한 상황을 구현해낼 수 있다는 기술적 과시와 이를 통한 홍보가 목적이다. 아바타 2편을 보면서 위와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본인들의 영상 기술 및 스토리 설정, 세계관을 뽐낼 수 있는 영상을 만드는 것이 주된 목적이고, 스토리는 영상을 보여주기 위한 옷걸이 정도의 역할만 하는 것 같았다.


전작이 대흥행을 거둔 것은 사실이나, 그렇다고 해서 너무 지나치게 전작을 답습했다는 느낌이 드는 구성이었다. 전체적인 배경 상황과 전개가 대동소이했으며, 다만 그 배경이 하늘과 숲에서 물로 바뀌었을 뿐이다. 심지어 갈등하는 대상은 모습과 경험 여부 정도만 바뀌었을 뿐 동일하다고 볼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오락실에서 게임오버당한 후에 다음 동전을 넣어서 새로운 맵과 캐릭터를 골라 같은 상대와 싸우는 느낌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성공한 원곡 (아바타 1편)의 다음 악장이라기보다는 편곡 혹은 변주곡 정도의 느낌이었다.


적당히 넘길 수 있는 것은 적당히, 클리셰라도 효율이 좋다면 적극 활용하겠다는 느낌도 있었다. 주인공인 제이크 설리와 아내 네이티리, 그리고 그들의 자식들이 아바타 2편의 주인공인데, 정말 전형적인 가족 구성원 사이의 갈등 요소가 많이 등장한다. 철없는 둘째 아들과 이를 감싸는 첫째, 남들과 다른 것에 대해 고민하는 여동생, 위험한 곳이라도 무조건 따라가려는 여린 막내까지 너무나 전형적이고 평면적인 인물상들이었다. 그리고 물의 부족으로 간 제이크 가족이 겪게 되는 모습들 또한 외형만 나비족일 뿐 이방인을 맞이하는 원주민들의 자세의 정석에 가까웠다. 철없이 싸우고 별종이라며 제이크 가족을 무시하는 원주민 아이들의 모습은 흔히 생각하는 미국 학교 내 따돌림당하는 모습과 동일했다.


그 외에도 누나 뒤에 숨어 메롱 하는 막내, 본인 자식들이 정당한 이유로 옆집 아이와 싸우고 온 모습을 본 제이크가 아들에게 처음엔 혼내고 나서 상대방 아이들 얼굴은 어떻냐고 물어보는 장면, 이후 worse라고 답하자 만족해하는 제이크, 부모님의 싸움을 문밖(이 작품에서는 천막 밖)에서 엿듣는 아이들, 새 집에 이사 와서 실망감에 들고 있던 물건을 떨어뜨리는 네이티리 등 정석적인 클리셰가 전반적으로 많았다.


물론 이런 클리셰의 활용을 마냥 부정적으로 보는 것은 아니다. 클리셰는 그 전제조건 자체가 성공한 방식이기에 답습하는 것이라서, 너무 뻔하다는 단점만 있을 뿐 실패의 확률이 낮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바타 2편의 경우 영상적으로 보여주고 싶은 것이 많아서 스토리의 임팩트는 다소 경시한 듯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제이크와 네이티리의 생각이 달라 갈등하는 장면도 몇 차례 나왔으나, 그 내용에 비해 갈등의 깊이와 이 갈등이 해소되는 속도가 빨랐다.


스토리가 너무 억지스럽거나 난해 하다기보다는 개인적으로는 슴슴하다는 느낌이었다. 건강에 좋은 맛이지만 자극적인 포인트가 없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3. 감상을 마무리하며


OTT가 성행하는 요즘이지만, 그럼에도 극장에서 봐야만 진가가 발휘되는 영화가 있다. 요즘 본 영화 중에서는 아바타 2편이 이에 가장 가까웠다. 극장에서 3D로 이 영화를 봤다는 것이 나름의 이력으로 남을 것 같다. 스토리에 대한 아쉬움도 있었지만, 그럼에도 영화 자체에 대한 몰입도는 훌륭했다. 한 분야에 진심인 사람이 얼마나 무서운지에 대해 다시금 느낄 수 있었다. 판도라 행성에 있는 다양한 가상의 동물 및 식물, 지형지물을 만들어내는 것은 사실상 한 세계를 가상으로 만들어내는 것과 같다. 동물 하나를 디자인함에 있어서도 숱한 노력이 필요할 것인데, 판도라 행성이라는 아름다운 세상을 빚어낸 감독과 제작진에게 경의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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