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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감상문] 스즈메의 문단속

(스포 포함)역경을 딛고 나아가는 현대 시대의 동화이자 우화 같은 이야기

by 김주렁

0. 서론. 운 빗으로 정갈하게 빗어 넘긴 아름다운 결의 '신카이 마코토 류'


2023년 2월 26일에 영화관에서 '스즈메의 문단속'을 프리미어 상영으로 보고 왔다. 신카이 마코도 작품의 열성적인 팬까지는 아니지만, 수려하고 현실을 그대로 빼다 박은듯한 그림체와 작화에 감탄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이번 작품은 극장에서 봐야겠노라고 생각했었다. 마침 주말에 시간이 맞아서 목표를 조기달성할 수 있었다.


영화를 보고 난 후의 감정은 격정적이라기보다는 어느 정도 정제된 감동이었다. 새로움과 놀라움에 의한 낙차가 큰 폭포수 같은 감정이라기보다는 어느 정도 안정되고 평탄한, 넓은 호수 같은 감정이었다. 분명히 나쁘거나 실망스러운 작품은 아니었는데, 왜 그렇게 평탄하였을지 나름의 생각을 거쳐 얻어낸 결론은 '기시감'이었다. 롭고 참신함에서 오는 자극보다는 완숙하고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신카이 마코토 류'의 정갈한 한 상을 대접받은 기분이었다. 이른바 긍정적 기시감이라고 할 수 있었을 감정을 품고 작품을 짚어보며 기억에 남은 소재들을 아래에 남겨본다.

(그림체야 구태여 설명하지 않더라도 수려하니 아래 본문에 이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줄거리 (출처 : 네이버 영화)
“이 근처에 폐허 없니? 문을 찾고 있어” 규슈의 한적한 마을에 살고 있는 소녀 ‘스즈메’는 문을 찾아 여행 중인 청년 ‘소타’를 만난다. 그의 뒤를 쫓아 산속 폐허에서 발견한 낡은 문. ‘스즈메’가 무언가에 이끌리듯 문을 열자 마을에 재난의 위기가 닥쳐오고 가문 대대로 문 너머의 재난을 봉인하는 ‘소타’를 도와 간신히 문을 닫는다. “닫아야만 하잖아요, 여기를!” 재난을 막았다는 안도감도 잠시, 수수께끼의 고양이 ‘다이진’이 나타나 ‘소타’를 의자로 바꿔 버리고 일본 각지의 폐허에 재난을 부르는 문이 열리기 시작하자 ‘스즈메’는 의자가 된 ‘소타’와 함께 재난을 막기 위한 여정에 나선다. “꿈이 아니었어” 규슈, 시코쿠, 고베, 도쿄 재난을 막기 위해 일본 전역을 돌며 필사적으로 문을 닫아가던 중 어릴 적 고향에 닿은 ‘스즈메’는 잊고 있던 진실과 마주하게 되는데…


1. 야기의 주된 재료들. 주된 소재와 전개의 큰 줄기


이야기의 주된 소재가 되는 것은 주인공인 스즈메와 토지시 가문 소타의 문단속 여정을 통한 스즈메의 내면적 성장이다. 규슈에서 도쿄, 스즈메의 고향까지 이어지는 기나긴 여정을 위한 명분은 '뒷문'이라 불리는 이 세상과 저세상의 문을 닫음으로써 지진을 일으키는 '미미즈'라는 존재가 현세로 나오지 못하게 막는 것이다. 스즈메가 의도치 않은 행동으로 인해 문을 틀어막고 있던 요석을 뽑아버렸고, 그 요석이 고양이로 변한 존재인 '다이진'이 소타를 의자로 바꿔버리는 저주를 내렸기에 이에 책임감을 느낀 스즈메는 의자로 변해버린 소타와 함께 긴 여정을 떠나게 된다.


지진이라는 자연현상을 나름의 아이디어를 통해 표현한 것도 인상 깊었고, 사람들의 마음의 무게가 문이 열리는 것을 억누르고 있기에 폐허인 버려진 곳의 문에서 미미즈가 나오게 된다는 설정도 많은 고민이 엿보이는 부분이었다. 입구이자 통로인 문이라는 소재 또한 참신하지는 않았지만 이와 같은 상황에서는 정석적인 상징물이었다고 생각한다. 이와 함께 주술적, 전통적인 분위기도 함께 잘 녹여낸 것 같다. '너의 이름은'에서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이야기의 종반부에 가면, 과거 어린 시절 길을 잃고 헤매던 스즈메를 달래주고 어머니의 유품인 의자를 건네준 것은 미래의 스즈메였음을 알게 된다. 문 너머의 '저세상'이라는 공간을 시간의 의미가 없는 장소로 설정하여 시간이 흐르는 이 세상과 고정된 저세상 사이의 일종의 시간여행을 만들어냈다. 과거의 본인이 가진 아픔을 보듬고 자기성장해 나가는 스즈메의 마음가짐을 1회성의 타임루프를 통해 잘 표현해 냈다.


2. 만족에는 끝이 없듯, 좋아할수록 아쉬운 점도 더 잘 보이는 법이다. 다소 아쉬웠던 부분들


큰 얼개가 탄탄했던 만큼, 세세한 인과관계나 전개 과정 측면에서의 아쉬움도 있었다. 보여주고자 했던 방향과 내용 뚜렷했던 것이 되레 상세한 요소들을 끌고 가는 듯한 모습이었다. 개인적으로는 스즈메/소타와 다이진의 추격 장면에서 위와 같은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스즈메와 소타에게서 도망친 다이진이 갑자기 배에 올라타고 스즈메도 그를 따라 자연스레 무임승차를 하게 된다. 이후 다이진은 다른 배로 도망가게 되며, 힌트 하나 없었던 그들은 갑자기 SNS에 올라오는 고양이 모습을 한 다이진(일반인들에겐 그저 귀여운 고양이로 보였다. 술집에서는 사람의 형태로 보였다는 것을 보면 형태나 외견을 원하는 대로 바꿀 수 있는 듯하다.)의 사진들을 보고 그의 위치를 알게 된다. 이후 비슷한 방식으로 몇 차례 더 다이진의 위치를 알게 되고, 심지어 한 번은 한 번은 다리 교각 위를 걷는 다이진이 TV에 송출되기도 한다. 그 단시간 내에 '다이진'이라는 이름까지 유명해지며 SNS스타 고양이가 되는 것이 일반적인 상황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물론 이 모든 것이 스즈메가 자신을 따라오게 하도록 하기 위한 다이진의 설계였다고 한다면 어느 정도 납득은 가지만, 그럼에도 스토리 측면에서는 어느 정도 편리주의적 사고가 적용되지 않았는지 한다.


그 밖에도, 스즈메가 이동하는 도중 적재적소에 필요한 인물과 이동수단이 나타나기도 한다. 우연히 만난 오토바이를 타고 부모님이 여관을 운영하는 동갑 친구, 비 오는 도로에서 만난 가는 방향이 동일하고 숙소를 제공해 주는 가게 사장님, 도쿄 거리에서 마주친 스포츠카를 탄 소타의 대학 친구 등 여러 인물과 이동수단이 매번 정확히 필요한 시점에 나타기도 한다. 한정된 시간 내 모든 것을 표현해 내기 위한 분량 압축이었다고는 생각한다.


추가로 소소하게 몇 가지만 더 언급해 보자면 아래와 같다.

스즈메가 이렇게 맘대로 학교를 빠져도 문제가 없는 것일지

이 정도 소란이라면 '달리는 의자'가 SNS에서 더 큰 히트가 되었어야 하지 않을지

비슷하게, 미미즈를 따라 하늘로 솟아올라가는 스즈메(일반 사람에겐 그저 허공으로 갑자기 올라가는 것으로 보인다)와 피투성이의 맨발로 도쿄를 걷는 스즈메도 더 큰 이슈 거리가 되었어야 하지 않을지

요석이었던 다이진의 과거, 변덕을 부리고 도망가게 된 이유, 이후 다시 요석으로 돌아가기로 한 이유 등 다이진의 배경에 대한 설명이 다소 빈약했다

어린 시절 문 너머의 세상에 갔었던 스즈메가 문 너머를 볼 수 있고 요석을 뽑을 수 있었던 것은 초반에는 개연성이 부족했다고 생각하지만 스즈메의 어린 시절 이야기가 밝혀진 이후 어느 정도 해소되었다고 생각한다

스즈메의 의자 다리가 하나 없는 것에 대한 이유도 궁금했었다. 요석의 역할을 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지 나름 상상의 나래를 펼쳐보았는데 루프의 시작점을 알 수 없게 되어 조금 아쉬웠다

문을 여닫고 잠그는 행위에 대한 조건이 궁금했다. 단순히 사람 한두 명 정도의 완력이면 문을 닫을 수 있는 것인지, 열쇠로 문을 잠그는 데에 조건이나 제약은 없는지 등


이런저런 아쉬움을 토로해 보는 것은 그만큼 작품 전체적인 인상이 깊었기 때문이다. 분량을 확대하여 보다 상세하게 이야기를 풀어나가 보았으면 어떨지 하는 나름의 바람이 있다.


3. 소간의 기시감 들었던 순간들, 떠올랐던 다른 작품들


스즈메의 문단속이라는 작품 전체적으로 새로운 요소가 많다기보다는 숙한 소재와 방식들이 많이 활용되었다는 느낌을 받았었다. 그것의 장단점은 차치하고, 개인적으로 느꼈던 요소들을 아래에 적어본다.


저주로 본래의 모습을 잃은 남자 주인공이 여자 주인공과 여러 여정을 겪으며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게 되는 것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하쿠와 치히로, '하울의 움직이는 성'의 하울과 소피를 떠올리게 했다.

과거의 본인을 구원해 주는 것이 미래의 본인들인 것 또한 하울과 소피의 사례와 유사했다.

문이라는 매개체가 다른 시공간으로의 통로가 되는 것은 '몬스터 주식회사'나 '도라에몽'처럼 다양한 매체에서 활용되는 일반적 소재인 것 같다. 그것보다는 각지에 발생한 일반인들은 모르는 위험을 해결하며 열쇠로 (문을) 잠그는 행위를 보며 왠지 '카드캡터 체리'가 떠올랐다.


4. 결말에 대하여. 동화적 해피엔딩이 아니었다면 어땠을까


작품을 전체적으로 보면 그 과정엔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결말만큼은 모두 해피엔딩이었다. 의자와 요석으로 변했던 소타는 결국 본래의 모습으로 스즈메와 함께 이승으로 돌아올 수 있었고, 자칫 돌이킬 수 없어 보였던 스즈메와 이모의 관계도 잘 마무리되었다. 본인의 어머니가 죽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저세상을 헤매던 과거의 스즈메와 이를 바라보던 미래의 스즈메도 종국엔 위로받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문득 이런 점들을 하나하나 생각하니 일종의 동화적 구성 같았다는 생각도 들었다. 모진 역경을 딛고 끝내 해피엔딩에 도달하는 전래동화의 현대판을 보는 듯했지만, 이런 이상적 결말이 항상 최선책은 아니었을 것이다. 무언가를 얻는 것이 아니라 잃는 것에서도 배울 점이 있기 마련이다. 만약 소타가 영영 요석에서 사람으로 돌아오지 못했다면, 스즈메의 마음은 본인의 손으로 그를 그렇게 만든 것에 대한 자책과 수백만의 사람을 구해냈다는 안도감이 뒤엉켜 저울질 중이었을 것이다. 이 경우에는 세상에 대가 없이 무언가를 이룰 수는 없다는 사실을 마음에 쐐기를 박으며 관객에게 전달할 수 있었을 것이다. 만약 스즈메가 소타를 포기하지 못하고 미미즈를 저지하지 못했다면, 그녀는 일평생을 실패했다는 죄책감에 힘겨워했을 것이다. 스즈메와 이모의 갈등이 풀리지 못했다면, 각자의 인생은 모두 소중하며 관점에 따라 다른 것이지 틀린 것은 없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막상 해피엔딩이 아니었을 경우를 생각해 보니 되레 뻔한 이야기가 되는 것 같기도 했다. 개인적으로 대책 없는 해피엔딩을 선호하지는 않지만, 스즈메의 문단속 같은 경우엔 이런 동화적 분위기에 맞물려 해피엔딩이 그 역할을 잘 수행해 낸 것 같다.


5. 마무리. 문을 닫으며


각 요소들을 떼어내놓고 보면 개인적으로 선호하는 포인트가 별로 없어서 의아했다. 작품 전체적으로는 꽤나 만족스러웠기 때문이다. 그만큼 신카이 마코토 감독이 본인의 의도대로 인물과 소재들을 잘 엮어냈다는 방증인 것 같다. 평탄한 소재로 이야기와 작품에 여운과 임팩트를 주는 것이 개인적으로는 어려운 작업이라고 생각하는데, 이런 면에서 감독이 그 역할을 잘 수행해 낸 것 같다. 감독의 다음 작품이 나오더라도 극장에 가서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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