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실히 여느 전기영화와는 그 결이 달랐다. 역경을 딛고 목표를 이뤄내 세상을 이롭게 하는 영웅적 인물의 분투가 전형적인 전기 영화의 서사라고 한다면, '오펜하이머'는 이와는 대척점에 서있었다. 오펜하이머라는 인물은 작품의 시작부터 어느 정도 완성되어 있었고, 타에 귀감이 되거나 세상을 마냥 이롭게 했다고만은 볼 수 없는 인물이었다. 게다가 본 작품이 집중하고 있는 것은 오펜하이머라는 인물의 부족한 부분, 치부와 이로 인한 붕괴 과정이었다. 아래에 작품을 보고 나서의 감상을 두서없이 남겨보겠다.
1. 오펜하이머라는 인물. 프로메테우스.
오펜하이머가 '오펜하이머 박사'라고 불리며 본 영화는 시작된다. 이 시점에 그는 이미 범인(凡人)을 벗어난, 어느 정도 재능을 인정받은 상태이다. 작품 내에서 그를 칭하는 '미국의 프로메테우스'는 그가 하게 될 일 뿐만 아니라 그의 존재 자체를 설명해 주는 비유로 활용된다. 본 작품이 주목하는 것은 오펜하이머가 어떤 역경을 거치며 원자폭탄을 만들어내는지가 아니다. 원자폭탄은 제작 일정과 비용을 제외한다면 별다른 갈등 없이 완성된다. 말 그대로 오펜하이머와 그의 동료들이 함께 이 세상에 불을 가져오듯, 원자폭탄은 이 세상에 태어나게 된다. 오히려 갈등이 고조되는 것은 완성 이후 시점이다. 폭탄을 터뜨리는지 아닌지, 이후에 소모적 군비경쟁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닌지, 제작 과정에서 정보가 새나가 소련에서도 폭탄을 개발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닌지, 원자폭탄보다 강력한 수소폭탄을 만들어야 하는지, 정말로 그것이 끝일지 등 갈등은 원자폭탄의 완성을 기점으로 연쇄적으로 확장된다.
프로메테우스가 인류에게 전한 불은 인류를 번영시킬 수 있는 존재이자 그들 스스로를 멸망에 이르게 할 수도 있는 강한 힘이다. 신들에게서 도둑질을 한 프로메테우스는 그 벌로 매일 독수리에게 간을 쪼이는 형벌에 처해지나, 불사신인 프로메테우스는 죽지도 못하고 그 고통을 견뎌내야만 했다. 인류에게 원자폭탄이라는 불씨를 가져다준 오펜하이머가 본인의 치부를 공개당하며 겪었던 고통과 수모는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인 그에게 지워진 숙명처럼 비춰진다.
2. 작품의 배경역할을 담당하는 사건. 오펜하이머와 스트로스의 갈등.법정극 아닌 법정극.
오펜하이머라는 작품에 있어 가장 핵심적인 요소는 원자폭탄이지만, 작품 내 가장 중요한 쟁점은 오펜하이머의 보안 인가 갱신 심사와 스트로스의 내각 입성 심사 과정에서의 갈등 과정이다. 두 장소 모두 법정은 아니지만, 그들은 마치 피고의 자리에 앉아 심판을 받는 형국에 놓이며 이는 법정극을 연상케 한다. 특히 오펜하이머의 심사 과정은 좁은 방에서 여러 인물들이 대담을 나눈다는 점에서 영화 '12명의 성난 사람들'을 떠오르게 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들은 실제로는 법정에 있지 않았고, 재판을 받고 있던 것도 아니었다. 다만 이점은 그들을, 특히 오펜하이머를 더 고통스럽게 만들었다. 애당초 오펜하이머가 심사 과정에서 취조 아닌 취조를 받게 된 것은 오펜하이머와 스트로스의 갈등에서부터 시작된다. 맨해튼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마친 오펜하이머는 공적인 자리에서 스트로스에게 수모를 안겨주었고, 실제로는 아니었지만 스트로스는 오펜하이머가 아인슈타인에게 그의 험담을 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스트로스는 오펜하이머에게 불리한 정보를 전달하고 보안 인가 심사 과정에서 그의 치부를 세상에 알리게 된다. 이 과정에서 본 작품이 실제로는 법정극이 아니라는 점이 강조된다. 오펜하이머 측의 변호사는 이와 같은 막무가내식 심사 진행과 무분별한 정보 공개에 항변하지만, 심사를 주도하던 인물은 본 심사 과정이 법적 과정이 아니고 입증이 불필요한 자리라는 것을 강조하며 무차별적으로 오펜하이머를 모함하고 그에게 불리한 정보들을 쏟아낸다. 표면적으로는 심사 과정이나 그 내면을 들여다보면 오펜하이머의 지위와 명성을 훼손하기 위한 자리에 불과했다.
이와 같은 과정에서 오펜하이머는 크게 노하거나 항변하지 않고, 담담하게 사실만을 밝힌다. 그에게 도움을 주지 않고 불리한 발언을 한 이들에게도 그는 멋쩍은 인사만을 건넬 뿐이다. 그런 그를 바라보는 아내 '캐시'는 오펜하이머에게 왜 맞서 싸우지 않느냐고 다그치기도 한다. 하지만 그는 마지막까지 일관된 태도로 심사에 임하며, 결과적으로 그는 본인의 과거를 만천하에 공개당하고 소련의 스파이라는 의심을 받으며 심사를 통과하지 못한다. 그리고 이 심사 과정과 병치되어 진행되는 것이 스트로스의 내각 입성 과정이다. 본래라면 이 과정도 통과의례 수준의 질문만 오고 간 후 쉽게 넘어가는 자리이지만, 스트로스는 이 심사 과정에서 과거에 그가 오펜하이머에게 자행한 만행을 만천하에 공개당한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이 과정 또한 법적 절차가 아니기 때문에 입증이 불필요한 자리였기에 그는 해명하지도 못하고 과거의 오펜하이머가 처했던 입장과 비슷한 상황에 놓인다. 결국 그 또한 이 심사를 통과하지 못하며, 작품의 종국에는 내각에 입성한 오펜하이머의 모습을 보여주며 작품이 마무리된다.
3. 그 외 작품 내 영상적 요소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작품을 좋아하는 입장이라 어느 정도 선입견이 존재할 수는 있겠으나, 오펜하이머라는 작품은 3시간에 달하는 긴 러닝타임에도 불구하고 몰입도 있고 완성도 있게 잘 구성되었다고 생각한다. 실제 인물과 사건을 바탕으로 하였기에 큰 반전을 꾀하거나 비현실적 상황을 상정할 수는 없었지만, 그 속에서도 영상적 연출을 탄탄하게 잘 해냈다.
그중 인상 깊었던 것은 오펜하이머의 심리가 시각적, 청각적으로 나타나는 부분들이었다. 원자폭탄이 일본에서 폭발한 이후 그가 느낀 죄책감과 불안감은 원자폭탄에 투영되어 나타난다. 그가 불안해할 때면 갑자기 앵글이 흔들리고 눈앞에 섬광이 나타나며 폭발이 일어난다. 동시에 주변에 있던 인물들은 폭발에 휩싸여 피부가 녹아내리기도 한다. 실제로 그런 상황이 벌어지지는 않지만, 보이지 않는 그의 심리를 영화적 허용(?)을 통해 세상에 구현해 낸 점이 직관적이고 인상 깊었다.
위 장면을 포함하여 반복적이고 불안해 보이는 음향 효과가 작품에 전반적으로 활용되지만, 원자폭탄을 처음으로 테스트하게 되는 그 순간만큼은 정적이 흘렀던것도 기억에 남는다. 폭탄이 성공적으로 터지고 여파가 도달하기 전, 불꽃이 하늘로 솟아오르는 순간은 아무 소리도 없이 고요하다. 이른바 폭풍전야의 고요함이었으며, 이 잠시동안의 공백은 이후 있을 여파를 강조해 주는 역할을 해주었다. 또한 청각적 요소를 배제한 고요한 폭발은 시각적 장면에 더 깊게 몰입할 수 있도록 해주기도 하였다.
작품 내에서 병치되어 있는 오펜하이머의 심사와 스트로스의 심사 과정 중, 스트로스의 심사 과정은 흑백처리가 되어있다. 결론적으로는 실패하게 되는 그의 미래를 암시하는 것 같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각기 다른 시점을 흑백과 컬러 장면으로 구분했던 '메멘토' 작품이 떠오르기도 했다. 마지막 컬러 장면에서 내각에 입성하여 웃고 있는 오펜하이머의 모습은 그 장면만 봤더라면 멋있어 보일 수 있었겠지만 그 장면에 이르기까지 그가 겪은 일들을 생각해 보니 조금은 쓴웃음이 나기도 했다. 격하게 투쟁하지 않은 그는 이기지도, 지지도 않은듯한 모습을 하고 서있었다.
4. 감상을 마무리하며
작품을 보고 나서 감독의 필모그래피를 떠올려보았다. '테넷'이나 '인터스텔라', '인셉션'과 같은 초현실적 요소를 바탕으로 한 대서사시보다는 '메멘토'나 '프레스티지'같은 상호 간의 심리를 집요하게 파고드는 작품들이 함께 연상되었다. 실제 사건을 배경으로 한'덩케르크'가 전투라는 큰 얼개 속에서 고통받던 개개인들을 그려냈다고 한다면, '오펜하이머'는 역사적으로 엄청난 영향력을 미친 사건의 중심에 있던 인물의 서사로 사건들이 수렴되는 느낌을 주었다.
러닝타임을 길게 가져간 만큼 다양한 갈등과 서사를 차분하게 풀어낼 수 있었던 것 같다. 작품의 제목이 폭탄 이름이나 프로젝트 이름이 아니고 '오펜하이머'인 것은 본 작품이 폭탄이 아닌 폭탄을 만들어낸 사람에 집중하여 이야기를 풀어나가기 때문일 것이다. 실제로 일본에 폭탄이 투하된 장면은 영화에 등장하지도 않으며, 라디오를 통해 그 소식만 작품 속 인물들에게 전해진다. 이렇게 인물의 서사와 심리를 통해 3시간 동안 작품을 흡인력 있게 이끌어나갈 수 있었던 것은 감독의 역량이 출중했기 때문일 것이다. 두세 번 정도는 재관람을 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