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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원 Jun 16. 2021

리부트

계획하지 않은 삶의 변곡점

제주도 가는 항공권을 예약했다. 호텔과 렌트카도 예약했다.

어제 예약했고 내일 출발한다.


저가 상품을 고를 생각은 애초에 없었다.

처음 발견한 사이트에서 한번에 모든걸 예약해 버렸다.

기분이 좋아졌다.


며칠 전부터 아버지한테 바람이나 쐬러 여행 가자고 했는데

아들의 마음을 눈치 챈건지, 당신께서 여행을 가고 싶으셨던 건지...

대뜸 제주도를 가자고 하셨다.


퇴사 한 지 3주가 지났다.

아직 조바심이나 불안감이 엄습하지는 않는다.

그저 적적하고 심심할 뿐이다.

직장생활을 한 이래로 이런 때가 있었나 싶다.


2016년에 1년간 육아휴직을 하고 사업을 준비한 적 있었다.

아이들 크는 모습을 보면서, 평소때 보다 조금 더 자유로운 시간을 보냈다.

외벌이 가장의 휴직은 조금은 위태로울 수 밖에 없었다.


부족한 생활비를 대출로 해결하고

하루 하루 줄어드는 잔고를 보면서

입술이 바짝 바짝 타들어 가는 것을 자주 느꼈다.


이번엔 조금은 다르다.

벌어 놓은 여유자금이 있어서 몇달 정도는

근심 걱정으로 보내지 않아도 된다.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리부트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에

감사함을 느낀다.


다만, 변곡점에서 어디로 꺾어야 하는지

그것이 날 두렵게 한다.

가지 않은 길.


내 직장 생활은, 대기업에 있었으나 그곳과 어울리지 않았고,

중견기업에 있었으나 여전히 어울리지 못했고,

스타트업에 있었으나 어울리기 싫었다.


시장이 필요로 하는 인재는 아닌거 같다.

이력서를 써놓고 몇 군데 지원하고 보니

맞지 않는 옷을 입으려 한다는 느낌이다.


미리 내 사정을 눈치 챈 기업들은

미안하다며 거절 사유를

애써 돌려 말한다.

나를 밀어낸다.


답을 찾아 여행을 떠난다고는 하지만

이번 여행에서는 답을 찾지 않을거다.

이미 답을 정해놓았기 때문이다.


창업이다.


사람들을 만나면

"나 실업자야. 그런데, 취업은 하기 싫고 창업 하고 싶어. 나 어떡해? 잘 할 수 있을까?"

... 라고 말하고 싶지만,

말이 길어질까봐 그냥,


"나 실업자야. 나 어떡해?" 라고 짧게 묻는다.


"리부트 해!" 또는 "창업해!" 라는 말을

누군가 해줄 것을 애써 기대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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