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
집에 들어왔더니 지형씨는 글 쓰다가 풀리지 않는 부분에 막혀서 끙끙대고 있었다.
대충 옷 갈아 입고 설거지하는데, 느닷없이 옆에 와서 순대가 먹고 싶다고 그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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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이 말은
'나가서 순대를 사 오너라!!'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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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럴 거였으면 들어오는 길에 사 오라고 하든지 했어야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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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단호하게 '먹고 싶으면 사와!'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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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의외로 순순히 지형씨가 쿨하게 '알았어~'해버리길래 속으로 내가 더 놀랐다. 등짝 한 대 정도는 각오했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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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튼, 설거지를 하는데 오후 내내 지끈거리던 머리가 또 아팠다.
인상을 찡그리며 '아어. 머리 아파... 진통제 먹었는데도 이러네...'라고 했더니, 나가려던 지형씨가 멈춰 섰다.
그리고는 정수기에서 물을 한 잔 받아 놓고, 비타민과 영양제를 한 알씩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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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내가 진통제는 먹었다는 말에 그거라도 챙겨줄 모양이다... 라도 생각하는 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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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가 호로록 삼켜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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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머리 아프다는 말을 듣고, 나 주려고 영양제 챙기는 줄 알았더니, 니가 씹어먹냐?'라고 그릇 헹구며 툭 던졌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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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거 생각해도 웃겼는지 빵 터져서 깔깔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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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렴 우리 지형씨는 이렇게 매력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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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처음부터, 나 머리 아프다는 말을 듣고, 지 비타민과 영양제를 챙겨 먹는 여자였던!
주변에서 뭐라고 하든지 지가 가고자 하는 길을 꿋꿋이 가는 그런 여자!
나를 챙겨주기 위해서라도 지가 건강해야 한다며, 열심히 운동하는 현명한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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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맞다. 이 여자가 나의 지형씨였던 것을 새삼 깨닫게 되는 그런 순간이었던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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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그렇다.
부부라도 각자도생 하는 거 아니겠나.
억울해서 지형씨 순대 사러 나간 후 비타민 2알에 영양제 더 챙겨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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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오줌 싸는데 아주 노랗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