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분만 의사의 선택
“이타심으로 한 일이 이기심 때문으로 오해받을 때처럼 괴로운 것이 없다.”
지금은 오해를 많이 벗었지만 한때 오토바이가 과부 제조기라고 불린 적이 있다. 과부 제조기라는 말은 영어로도 widowmaker라는 말이 있다시피 범세계적으로 통용되는 말이다. 과부 제조기는 남성을 많이 죽게 만들어 그 부인이 과부가 되도록 하는 것들의 통칭이다. 오토바이는 사고 위험이 높고 사고가 나면 운전자가 크게 다치거나 사망할 위험이 높아서 그런 오명을 얻은 듯하다. 물론 지금은 다른 교통수단에 비하여 사고 위험이 더 많거나 사고 시 사망 확률이 월등히 더 높은 것은 아니라고 알려지면서 과거의 오명을 많이 벗었다. 위험한 스포츠 중에 윙슈트라는 것이 있다. 겨드랑이 부분이 날개처럼 넓게 만들어진 옷을 입고 높은 곳에서 낙하산 없이 맨몸으로 뛰어내리는 스포츠다. 그러나 윙슈트는 의외로 부상자가 거의 없다고 한다. 이 슈트를 입고 하늘을 날다 절벽이나 나무에 부딪혀 사고가 나면 부상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거의 100% 사망하기 때문이다. 나는 윙슈트를 탈 줄 모르며 타볼 생각도 없고 앞으로 배우고 싶지도 않다. 아내를 과부로 만들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라 순전히 내가 겁이 아주 많기 때문이다. 그런 내가 지금은 사고가 나면 윙슈트와 별반 다를 것 없이 위험한 흡입기를 끼고 산다.
의료의 발전에 기여한 기계나 기술은 여러 가지다. 그중에서 임신 출산 분야에서 산모와 아기의 건강 증진에 이바지한 것으로 가장 도움이 되는 것 두 가지만 꼽으라면 나는 초음파 장비와 제왕절개 수술을 들고 싶다. 제왕절개 수술은 자연분만으로 낳기 어려운 태아의 출산을 위해서 꼭 필요한 분만법이다. 골반은 좁고 아기 머리가 큰 아두 골반 불균형, 태아의 머리가 산모의 배 쪽에 있는 역아 자세, 태반이 자궁 입구를 가린 전치태반을 가진 산모는 자연분만을 할 수 없거나 하더라도 매우 위험하다. 전치태반은 제왕절개 수술이 시행되기 전 과거에는 태아는 물론이고 산모의 생명도 매우 위태롭게 만드는 산과적 상황이다. 전치태반 산모가 출산 과정 동안에 생기는 다량의 출혈을 피하는 방법은 제왕절개 수술 말고는 없다. 제왕절개 수술을 해도 다른 경우의 출산보다 출혈이 많은 편인데 자연분만일 경우 그 위험은 말할 필요도 없다.
초음파 장비나 제왕절개 수술만큼은 아니지만 산과학에서 분야에서 산모와 아기의 건강에 기여한 의료 기술을 들으라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흡입분만술이다. 분만 흡입기는 1954년에 Malmstrom이라는 사람이 발명했다고 알려져 있다. 과거에는 흡입기와 함께 겸자가 쓰였지만 요즘은 분만 겸자는 거의 쓰이지 않는다. 흡입기를 이용한 흡입 분만은 끄트머리가 뒤집어 놓은 컵처럼 생겼는데 그 부분을 태아 머리에 부착하여 질 밖으로 당겨서 자연 분만을 시도하는 방법이다. 태아 머리가 골반에 끼어 더 이상 나오지 않을 때, 그래서 제왕절개 말고는 방법이 없을 때 머리에 흡착기를 부착해서 밖에서 힘을 가해 당겨주면 아기 머리가 질을 빠져나오게 된다. 진공 흡착기를 양손에 들고 교대로 유리 벽에 붙여 높은 빌딩을 올라가는 광고 영상을 전에 TV에서 본 적이 있는데 그것과 같은 원리다.
발명 당시에는 금속으로 만들어진 컵을 이용했지만 지금은 금속 흡착기로 인한 두피 손상을 줄이기 위해 부드러운 실리콘 재질의 컵을 이용하다. 단순한 원리지만 그런 것을 태아 머리에 붙여 출산을 시킬 생각을 했다니 정말 기발한 생각이다. 겸자를 처음 발명한 챔벌린처럼 인기를 끌어 아마 많은 돈을 벌지 않았을까 싶다.
그러나 현대에 들어와서 분만 흡입기는 의사에게 많은 돈을 벌어주는 도구로 여겨지기보다는 쓰기도 버리기도 애매한 계륵과 같이 여겨지는 도구가 되었다.
모든 의료 시술 또는 수술에는 위험이 따른다. 그래서 어느 정도의 위험성이 있다고 판단되는 시술이나 수술에는 그에 따르는 위험과 합병증을 설명드리고 시술 동의서를 받는다. 그런 위험에 대하여 설명을 했다 해서 책임으로부터 항상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위험이 동반되거나 고도의 경험이 필요한 수술에는 위험에 상응하는 대가로 높은 수가가 매겨져 있다. 우리나라는 그런 당연한 원칙이 지켜지지 않고 터무니없이 책정된 수가들이 많다. 흡입분만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이런 흡입분만이나 겸자분만과 같은 기계적 분만법은 의료 분쟁의 위험성 때문에 의사에 따라 선호도가 많이 갈린다. 전혀라고 할 정도로 흡입분만은 하지 않고 대신 제왕절개 수술을 택하는 의사도 있고 나처럼 흡입분만을 적극 시도하는 의사도 있다. 그러나 흡입분만을 많이 시도하는 의사라고 해서 위험 부담에서 결코 자유롭지 않다. 많이 쓰면 쓸수록 사고의 위험이 높아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의료 분쟁으로 들어가던 들어가지 않던 흡입분만이 실패하여 태아의 건강이나 생명에 되돌리 수 없는 악결과를 남기면 흡입기를 선택한 자신의 손을 잘라 버리고 싶은 마음이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흡입기를 들게 되는 의사의 선택은 무엇 때문일까? 그 답은 의사마다 다를 수 있겠지만 나의 경우 그 답은 이 글의 마지막에 있다.
모든 도구들이 그렇지만 사용할 때를 신중히 고르고 사용하게 되면 신속하고 정확하게 사용할 것, 그리고 그 단점과 부작용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는 점은 전문가라면 잘 아는 내용이다. 흡입기를 사용하는 대부분 경우는 태아가 힘들어하여 빠른 출산이 필요한 경우나 시간이 지나도 분만 진행이 제대로 안될 때다. 그렇다 해도 흡입분만을 하면 안 되는 경우들이 몇 가지 있다. 그 사례들은 아래와 같다.
• 의료진의 경험 미숙
• 자궁 경부가 완전히 열리지 않았을 때
• 태아의 자세가 확실치 않을 때
• 태아의 머리가 질 쪽으로 충분히 내려오지 않았을 때
• 임신 36주 이전의 조산일 때
• 태아의 머리와 골반 크기의 불균형이 있을 때
• 태아가 골절에 취약할 때 (예: 골형성 부전증)
• 태아가 출혈 질환이 있을 때 (예: 혈우병, 혈소판 감소증)
• 간염이나 에이즈 보균 임신부일 때
문제는 이런 것들이 그리 명확하게 구분이 가지 않을 때가 많다는 사실이다. 의사의 경험 미숙이라면 도대체 어느 정도로 흡입분만에 대하여 경험을 쌓아야 한다는 것인가? 10년의 산과 경험 혹은 수십례의 흡입분만 경험이 있으면 된다는 뜻인가? 그리고 그런 경험이 쌓이기까지는 어떻게 할 것인가?
얼마 전 의과대학에서 환자의 프라이버시 침해 문제로 학생들의 참관을 허용할지 말지를 환자의 선택으로 두는 조치가 취해진 적이 있다.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라서 과거처럼 학생들이 모든 시술이나 수술에 마음대로 참관할 수가 없다. 만일 모든 환자들이 수술을 담당하는 의사를 제외하고 학생들 또는 경험이 짧은 초보 의사들이 진료나 수술 현장에 참관하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그들은 어떻게 의술을 배워야 하나?
이런저런 이유로 하여 의술을 배운다는 것은 참 쉽지 않은 일이다.
골치 아픈 것은 의사의 경험뿐이 아니다. 태아의 머리가 질 쪽으로 얼마나 내려와 있어야 흡입 분만을 시도할 수 있다는 것인가? 아두 골반 불균형은 과연 객관적으로 분명하게 알 수 있는가? 그런 검사가 있기는 한가?
글로 적어 놓고 보면 분명하고 쉬운 것처럼 보이지만 의료 영역에서는 이런 상황들을 명확히 알기 어려운 경우가 매우 많다. 왜냐하면 임신부의 몸이나 태아는 기계나 컴퓨터가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출산을 돕는 의사 또한 기계가 아니다. 기계가 아니기 때문에 수학처럼 모든 문제에서 항상 같은 답이 나오지 않는다. 의료에서 예상과 다르게 진행되는 경우는 비일비재하며 생각지도 못한 결과가 나오는 경우도 흔하다.
흡입분만을 하였다가 악결과가 나왔을 경우 거의 반드시 듣게 되는 가족들의 항의는 거의 항상 똑같다.
“일찍 제왕절개를 하였다면 괜찮지 않았을까요?” 하는 말이다.
글쎄 말이다. 흡입기를 쓰지 않고 일찍 제왕절개 수술을 하였다면 결과가 달라질 수도 있다. 법원의 판결도 분만의 관련 의료 소송에서 제왕절개를 하였을 때보다 흡입기를 사용하였을 때, 흡입기를 쓰지 않고 자연분만을 시도하였을 때 의사에게 더 불리하게 나오는 경우가 많다. 제왕절개 수술은 아기와 산모를 구하는 최종의 해결법인 것처럼 생각하는 경향 때문이다. 이런 판결들이 누적되다 보니 의사 입장에서 흡입분만을 시도하려는 의욕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분만 의사가 흡입분만을 선택한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오토바이나 윙슈트를 타는 사람은 스피드에서 오는 짜릿함, 위험한 극한 스포츠라는 점에서 오는 흥분 때문에 선택하는지 모르겠지만 분만 의사가 흡입기를 선택하는 것은 그런 짜릿함과 흥분 때문은 아닐 것이다. 최소한 나는 그런 이유로 흡입기를 선택하지는 않는다. 내가 흡입기를 사용하는 이유는 단 하나다.
산모와 태아를 위해 빠른 출산이 필요하고 제왕절개 수술이 안고 있는 위험을 좀 피해서 질식 분만을 하고 싶은 마음 때문이다. 흡입분만으로 얻는 의사의 경제적 이득은 거의 없다. 흡입분만은 나를 위하는 이기심보다는 산모를 위하는 이타심에서 시행하는 분만 방법이다. 흡입 분만으로 유일하게 얻는 것이 있다면 성공하였을 경우 산모와 아기를 위해 최선을 다했다는 뿌듯함 뿐이다. 다만 실패하였을 경우의 대가가 너무 끔찍하다는 것이 단점이다. 위험하고 부작용의 발생 위험이 있기 때문에 흡입기 사용 전에 부작용과 위험에 대하여 설명하고 동의를 얻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아무래도 사전에 미리 준비하고 대비하면 위험을 어느 정도는 피해 갈 수 있다. 다만 흡입기에 관한 한 초래할 위험에 비하여 준비해서 피할 수 있는 여지라고는 그저 설명 의무를 충실히 갖추었다는 것 말고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