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신성 5편
“왜 여기서 영상이 끊긴 거지? 뭔가 나오기도 전에 끝나 버렸군.”
브리가 말했다. 그는 모니터를 향해 내밀고 있던 머리를 뒤로 젖히곤 의자에 맥없이 걸터앉았다.
“허무하네. 지금 일이랑 관련된 뭐라도 나오나 했더니 전혀 없잖아. 기껏 참고 봤더니.”
브리가 회색빛 천장을 보며 말했다.
“이 뒤에 일어난 사건으로 어머니는 더 이상 기록을 남기지 못했어요.”
노바가 영상이 틀어져 있는 모니터를 보며 말했다.
“사건? 또 그런 식으로 물고 늘어지려 하는군.”
브리는 코웃음을 치곤 노바를 쳐다봤다. 이번엔 눈이 마주치지 않았다. 노바는 여전히 모니터 속의 어머니를 바라보고 있었다. 뭔가 달랐다. 브리는 노바가 어머니 얘기가 나올 때마다 조금씩 동요한다는 것을 느꼈다. 어머니라는 건 무엇일까? 나도 예전에는 그게 뭔지 알았을 텐데.
< 삐 >
갑작스런 전화 소리에 노바는 모니터에서 눈을 뗐다. 브리는 심문실 벽에 난 창을 쳐다보곤 전화를 받았다.
“무슨 일이죠? 음 그건 저도 잘 모르겠어요.”
수화기를 타고 온 말 때문인지 브리는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노바는 관심 있게 브리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또다시 눈이 마주쳤다. 브리는 멋쩍은 듯 눈을 피하며 머리를 긁적였다.
“저도 그러고 싶죠. 근데.. 그게 쉬운 게 아니라구요. 우리가 게임에서 했던 것처럼 그렇게.. 왜냐면 진짜 사람이니까요.”
노바는 브리의 말에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브리는 깊은 한숨을 쉬었다.
“일단 얘기는 해 볼게요. 알았어요.”
브리는 수화기를 원래 자리에 박아놓듯 돌려놨다.
“젠장.”
“무슨 일이죠?”
“뭐겠어. 재촉 전화지. 네가 계속 본론은 안 꺼내고 뺑뺑 돌리니까 다들 지친 거야.”
“하지만 본론으로 들어가기 위해선 꼭 봐야 했던 영상이에요.”
“그건 너 생각이지. 이 사람들의 인내심은 그다지 좋지 않다고. 나도 마찬가지지만.”
“사실 그럴 줄 알았어요. 애초부터 큰 기대를 하지 않았죠.”
“무책임하기 짝이 없군. 지금 사람들은 자살하기 직전이라고. 다들 이 가짜 세상에서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하고 있어.”
“그래서 제가 약을 하나 준비했어요. 원래도 딱 지금 꺼내려 했던 거죠. 이 약이 삶의 의미를 찾게 해 줄 거예요.”
노바는 품 속에서 조그만 검정 막대 하나를 꺼내 책상 가운데에 올려놓았다. 브리는 그 정체불명의 물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게 뭐지? 네가 전에 말한 선물이라는 건가?”
“기억 입력 장치예요. 이건 브리씨에게 드리죠.”
“나한테?”
브리는 의아해하면서도 책상 가운데로 손을 뻗었다. 막대를 조심스레 쥐고선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검지 손가락만한 크기의 검은색 직육면체였다. 아래쪽 좁은 면에는 조그만 금색 단자가 여러 개 우둘투둘 박혀 있었다.
“이게 뭐지?”
브리는 금색 단자가 박혀 있는 직육면체의 아랫면을 보여주며 물었다.
“거기가 단자 부분이에요. 목 뒷부분을 만져 본 적이 있나요?”
노바의 말에 브리는 오른손으로 자신의 목 뒷부분을 만져 봤다.
“아 이거. 왜 있나 싶었는데 이유가 있었군. 이 목 뒤의 단자도 네가 만들어 놓은 건가?”
브리는 오른손으론 뒷목을 왼손으론 검은 막대의 단자를 문질렀다.
“네. 그 막대의 단자를 목 뒤에 있는 단자와 접촉시키면 돼요.”
“그러면 어떻게 되는데?”
“브리씨 몸에 백업되어 있는 또 다른 자아의 기억이 제자리로 돌아올 거예요.”
“또 다른 자아의 기억? 이 몸 안에 나 말고 또 다른 사람의 자아가 백업되어 있다는 거야?”
“네. 전 하나의 인공 신체에 총 두 개의 자아를 백업해 놓았어요.”
브리는 말없이 심문실 벽의 창을 쳐다봤다. 이 몸 안에 다른 사람이 있다니. 걔는 이 몸뚱이 어디에 붙어 있는 거지? 아무래도 머리려나. 왜 걔는 안에 박혀 있고 난 이렇게 나와 있는 거지. 브리는 창에 반사된 스스로를 보며 생각했다.
“이 몸 안에 다른 자아가 하나 더 잠들어 있다는 말이지.”
“네. 지금 그 자아는 활성화되어 있지 않아요.”
“근데 그게 제자리로 돌아온다는 건..”
“한 신체에 두 개의 자아가 동시에 활성화되어 있을 순 없죠.”
노바가 말했다.
“그럼 치료제가 아니잖아. 자살하라는 거랑 뭐가 달라. 애초에 그 다른 자아라는 건 누군데?”
“이전의 브리씨예요. 지금 브리씨 신체의 원래 주인이기도 하구요.”
“잠들어 있는 자아가 이 몸뚱이의 주인이라고?”
“네. 사람들은 가상현실에 들어간 후 여러 삶을 살았죠. 게임 캐릭터가 싫증나면 새로운 캐릭터로 다시 시작하는 것처럼요.”
“이전 삶의 기억은 없어. 새로운 삶을 시작하면 이전의 기억은 지워지니까. 그런데 내가 이런 모습인 적이 있었다고? 말도 안 돼. 내가 이런 추한 모습으로 살았을 리 없잖아.”
“추하다뇨. 절대 그렇지 않아요. 그 모습은 브리씨가 마지막으로 가졌던 자연스러운 모습인 걸요.”
“내 마지막 자연스러운 모습?”
브리는 고개를 숙여 자신의 축 처진 뱃살을 쳐다보았다. 자연스러운 게 이런 거라면 아무도 원치 않을 거야. 이 사람은 왜 이런 모습으로 살았던 거지? 브리는 자신의 몸이 미적인 기준에 전혀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가상현실에선 자신의 외모를 마음대로 바꿀 수 있죠. 하지만 현실 세계에선 한계가 있어요. 사람들은 자신의 선천적인 외모를 바탕으로 늙어 가요.”
“끔찍하군.”
브리가 질색했다. 하지만 노바는 개의치 않고 말을 이어갔다.
“지금 브리씨의 신체는 현실에서 가상현실로 처음 넘어간 자아의 것을 재구성한 거예요. 첫 번째 자아가 리셋을 거듭해서 브리씨까지 이어진 거구요.”
“그러니까 이 몸의 주인이 아주 예전의 나라는 얘기야?”
“네. 가상현실에서의 첫 번째 브리씨죠. 물론 이름은 다르지만.”
“이 사람의 이름은 뭔데?”
“그의 이름은 이지예요.”
“어? 이지? 그건 내 가상현실의 아이디인데. Yiji라고. 그건 리셋하더라도 기억에 남아 있는 거였어. 왜냐면 그게 없으면 리셋을 못 하니까.”
“맞아요. 모든 아이디의 앞부분에 첫 번째 자아의 이름이 붙어 있죠.”
브리는 고개를 괴고 생각을 정리했다. 그는 노바가 건네준 검은 막대를 손에 쥐고 있었다. 노바는 그걸 치료제라 했지만 어떻게 그게 치료제일 수 있는가? 목 뒤에 차가운 금속 단자를 대는 순간 그걸 행한 자아의 목숨은 거기까지였다. 그 뒤엔 이 못난 몸뚱이의 본 주인이 깨어날 것이었다.
브리는 여전히 몸뚱이의 주인이 이전의 자신이라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는 이지라는 사람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 어쩌다 가상현실에 처음 발을 디디게 되었는지도 알지 못했다. 그는 완전한 남이었다.
“도무지 이 막대가 치료제라는 걸 이해할 수 없어.”
브리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브리씨 말대로 가상현실에서 로그아웃 된 사람들은 현실에서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하고 있어요. 그런데 검은 막대를 통해 깨어난 또 다른 자신은 현실에서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거예요.”
“그래. 백 번 양보해서 그렇다 치자. 그래 봤자 뭐 해. 그때의 난 지금의 내가 아닐 텐데. 검은 막대를 목에 댄 순간 난 이 세상에서 사라질 거야.”
브리는 깊게 한숨을 쉬었다. 그는 막대를 문지르며 이지라는 이름을 반복해서 읊조렸다. 노바는 잠시 대답을 미루고 브리에게 생각할 시간을 주었다.
그때 갑자기 심문실 안의 모니터가 켜졌다.
< 기억 입력 장치란? >
화면에서 검은 막대에 대한 설명이 반복되었다. 노바가 브리에게 해 준 설명과 동일했다.
“이것도 모든 사람한테 풀었군.”
“모두를 위한 거니까요. 지금쯤이면 다들 기억 입력 장치를 전달 받았을 거예요. 저 설명을 보고 사용할 수 있겠죠.”
“과연 사용할 사람이 있을까?”
“그건 두고 봐야죠. 그런데 한 가지 부탁이 있어요.”
“뭐지?”
“브리씨는 일단 그걸 사용하지 말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