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맞춤

초신성 6편

by JunWoo Lee

검은 막대가 퍼진 다음 날 브리의 집 주변은 더욱더 조용해졌다. 길거리에 목적 없이 떠돌던 사람의 수도 줄었다. 브리는 대부분의 사람이 거울 앞에 서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들 모두 거울 앞에서 자신의 아이디 맨 앞에 있는 이름을 읊조렸을 것이다.

사람들은 첫 번째 자아의 기억을 떠올려 보려 했지만 불가능했다. 그 자아는 몸뚱이 어딘가에 잠들어 있었다. 그걸 깨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검정 막대를 사용하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검정 막대를 실제로 사용하는 사람은 없었다. 아무리 첫 번째 자아가 또 다른 자신이라고 한들 지금의 자신만큼 가치가 있을까. 사람들은 스스로를 희생하고 첫 번째 자아를 살릴 마땅한 이유를 찾지 못했다.

그럼에도 검은 막대가 손 주변에서 떠나는 일은 없었다. 이유는 그들 스스로도 몰랐다. 그냥 막연하게 그걸 갖고 다닐 필요는 있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습관적으로 손 안에서 검은 막대를 굴리며 집 안을 오갔다.

브리도 검은 막대를 쥐고 있었지만 품고 있는 고민은 달랐다. 일단은 검은 막대를 쓰지 말라니. 브리는 그 자리에선 코웃음 치며 사용할 일은 결코 없을 거라 큰소리쳤지만 막상 집에 돌아오니 이유가 궁금해졌다.

왜 다른 사람한테는 약이라고 내놨으면서 나한테는 그렇게 말했을까. 노바의 부탁에 브리는 온밤을 뒤척였다. 노바의 눈엔 내가 어떻게 비치는 걸까. 브리는 현실에 와서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개인적으로 물어보고 싶은 게 생겼다.

그래서인지 브리의 출근길에 약간의 활기가 생겼다. 길거리에 좀비처럼 오가는 사람들 모두 미끄러지듯 흘러가는 브리를 쳐다봤다. 그들은 브리가 부럽기 이전에 당최 영문을 알 수 없었다. 이리도 재미없는 세상에서 어떻게 저런 의욕이 생기는 건지.

브리는 평소와 다름없이 드론에 몸을 맡기고 시내의 경찰서로 출근했다. 경찰서 앞에는 사람들이 모여 있었는데 그들 모두 한 손에 검은 막대를 들고 있었다. 그들은 경찰서 안으로 들어가는 브리를 눈으로 좇았다.

브리는 사람들의 눈빛에 쫓겨 경찰서 안으로 도망치듯 들어가 심문실로 향하는 복도를 걸었다. 심문실에 가까워질수록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심문실 바로 앞에 10명 정도의 사람이 모여 웅성거리고 있었다. 브리는 그들 틈을 비집고 들어가 심문실 안쪽이 보이는 창을 봤다. 심문실 안에서 대여섯 사람이 앉아 있는 노바를 둘러싸고 있었다. 브리는 놀라 급히 문을 열고 심문실 안으로 들어갔다.

“당장 말하지 못해?”

한 남자가 노바에게 호통치고 있었다. 남자 뒤에 서 있는 다섯 사람도 있는 힘을 다해 노바를 째려봤다. 브리는 사람들 사이를 헤쳐 호통치고 있는 남자와 노바 사이에 섰다. 노바는 브리를 한 번 쳐다보곤 다시 남자에게로 눈길을 돌렸다.

“무슨 일이죠?”

브리가 얼굴이 잔뜩 붉어진 남자에게 물었다.

“당신이 말아먹은 일을 좀 어떻게 해 보려고 하는데.”

남자가 화난 기운을 그대로 토해내며 말했다. 브리는 현실 세계에 와서 처음으로 누군가가 분노하는 걸 보았다. 남자의 분노는 왠지 허공에 맥없이 퍼지는 듯한 느낌이 있었다. 브리는 뭔가 이상하다 싶어 얼굴이 붉어진 남자를 멀뚱히 쳐다봤다.

분노에 초점이 없어. 브리는 남자의 눈시위가 방황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남자는 노바는 물론이고 브리에게도 눈을 두지 못했다. 브리는 일이 대충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파악할 수 있었다.

“막상 진짜 사람 앞에서 분노하려니 어렵죠?”

브리가 남자를 쳐다보고 말했다. 남자는 브리와 눈이 마주치자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브리는 남자 뒤에 있는 사람들과도 눈을 마주쳐 보았다. 그들 역시 마찬가지로 브리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곧바로 시선을 피했다.

“뭐라고?”

남자가 또다시 허공을 보며 말했다.

“무리하고 있는 거 알아요. 이 일은 그냥 제가 하는 게 좋을 것 같은데.”

“당신이 한다고? 지금까지 당신이 알아낸 게 뭐가 있어.”

남자의 말에 뒤편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남자를 입으로 하는 하나의 생명체 같았다.

“뭐.. 그럴 만한 건 딱히 없지만 시간이 아직 얼마 안 된 것도 사실이고 결국엔 다 말해 주겠다고 하니까요.”

브리가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저 여자가 여태껏 말한 게 자기 어머니 얘기랑 말 같지도 않은 검은 막대 얘기가 다인데?”

노바는 탁구 경기를 보듯 브리와 남자 사이에서 고개를 움직였다.

“좀만 더 시간을 주세요. 어차피 별다른 선택지도 없잖아요.”

남자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입을 열었다간 혀끝에 매달린 말이 그대로 튀어나올 것 같았다. 고문. 고문을 해야 한다고 말하면 어떻게 될까. 남자는 슬쩍 뒤를 돌아봤다. 답이 떨어지기만을 기다리는 무기력한 사람들이 있었다.

그는 고문을 말한다면 그것을 행할 자는 곧바로 자신이 될 것이라 확신했다.

“좀만 더 얘기하면 알게 되는 게 있을 거예요.”

노바가 묵묵했던 입을 열었다.

“이제야 말을 하는군.”

남자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힘없이 뒤로 돌아섰다. 그가 뒤로 돌자 뒤편에 서있던 사람들이 흠칫했다. 답을 얻어내야 할 사람이 돌아서니 그들은 어찌할 바를 몰랐다. 남자는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뒤편에서 눈치만 보고 있는 사람들이 얄미웠다.

“조금만 더 시간을 줘 보세요.”

브리가 남자에게 말했지만 그는 돌아보지 않았다. 브리와 노바를 마주 보고 얘기하는 건 뭔가 불리했다. 한 사람을 상대하는 것도 버거운데 두 사람이라니. 도움도 되지 않을 사람들을 믿고 심문실에 들어온 자신이 바보 같았다.

그는 뒤편에서 아무것도 안 하고 눈치만 보고 있는 사람들이 괘씸해졌다. 그들을 위해선 아무것도 해 주고 싶지 않았다. 설령 그것이 자신의 궁금증과 이어진 것이어도 상관없었다. 그는 갑자기 모든 게 싫어졌다. 뒤편의 사람들, 자신의 몸뚱이 그리고 지긋지긋한 현실 세계도.

“그렇게 자신 있으면 알아서 해 봐. 사람들은 곧 하나씩 자살하기 시작할 거야. 이 거지 같은 세상에서 더 버텨서 뭐 해.”

남자는 역정을 내고는 심문실 밖으로 나가 버렸다. 그의 곁에 있던 사람들은 서로 눈치를 보더니 한숨을 내쉬었다. 그들은 하나둘 심문실 밖으로 무기력하게 걸어 나갔다. 심문실 안에는 노바와 브리만이 남겨졌다.

브리는 원래 그랬던 것처럼 책상을 가운데 두고 노바와 마주 앉았다. 노바가 자리에 앉는 브리를 미소로 반겼다. 브리는 그와 눈을 마주치곤 멋쩍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아침에 TV를 보니 아직까진 검은 막대를 사용한 사람이 없더군.”

“곧 소식이 들려올 거라 생각해요.”

노바의 눈빛과 목소리엔 흔들림이 없었다. 브리는 살짝살짝 노바와 눈을 마주쳐 보았다. 브리 스스로도 처음보단 버티는 시간이 늘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갑자기 전날 밤의 고민이 떠올랐다. 왜 나에겐 검은 막대를 나중에 쓰라고 한 걸까. 오늘 와서 보니 답이 뭔지 알 것 같았다.

“내가 검은 막대를 쓰면 널 심문하지 못하겠지?”

브리가 물었다.

“그렇죠. 지금 브리씨가 가진 기억은 모두 사라질 테니까요.”

노바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허. 그래서 그런 거였군. 다른 더 고약한 놈이 널 심문할까 봐 날 붙잡아 두려는 거야?”

브리는 헛웃음을 쳤다.

“어떨까요. 저도 잘 모르겠어요. 그래도 브리씨가 그 누구보다도 편한 건 확실하죠.”

누구보다도 편하다. 도구로써 편하다는 걸까. 아니면 편안한 사람이라는 얘기일까. 브리는 또다시 노바에게 물어볼까 하다 그만두기로 했다. 그렇게까지 구차해지긴 싫었다. 계속 파고들어 봤자 능숙한 노바에게 이리저리 돌림만 당할 게 분명했다.

“됐어. 그냥 얘기나 계속하지. 네가 그렇게 하고 싶었던 얘기를 말야.”

브리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좋아요.”

“음. 어디까지 했더라.. 어머니 영상을 보다가 중간에 끊겼지. 한창 인공의식이란 걸 개발하던 중이었는데.”

“맞아요. 이제 막 성공적으로 인공의식을 개발하려는 때였죠. 근데 그때 큰 불행이 하나 닥쳤어요.”

“무슨 불행?”

“지금의 저희를 만든 가장 중요한 불행이죠.”

노바가 말을 끝내자 심문실 벽의 화면이 켜졌다.

“제게 남겨진 그때의 기록들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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