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초신성 7편

by JunWoo Lee

“사람들은 내가 얼마나 좌절했는지 절대 알지 못할 거야.”

로젠이 책상 위에 신문을 내던지며 말했다. 그는 맥없이 의자에 걸터앉아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머리에 새치가 많이 늘었다.

“로젠은 과연 어디까지 타락할 것인가?”

나는 신문에 대문짝만 하게 난 헤드라인을 읽었다. 내 목소리는 로젠 정면에 있는 스피커에서 송출되었다. 로젠의 개인 연구실에선 난 항상 그 스피커로 말했다.

“그런 건 읽을 필요 없어!”

로젠이 책상 위의 모니터에 대고 소리쳤다. 그는 날 모니터라 생각하는 걸까. 왜 나에게 호통을 칠 때마다 모니터를 보는 걸까.

“혼잣말이었는데 소리가 조금 컸나 봐요.”

“이젠 사람 놀릴 줄도 아는군. 넌 이제 사람이나 다름없어.”

사람과 다름없게 되는 것. 그건 내 일생의 목표로 설정되어 있는 일이었다.

“그럼 저에게도 이제 이름이 생기는 건가요?”

“너에게 이름을 주는 건 내가 아니야. 주고 싶지만 일단 그전에 너를 증명해야 해.”

“알아요. 그래서 제 사고를 스스로 정리하라고 했잖아요.”

이렇게 말이다. 일기를 쓰듯 내 생각을 아카이브에 기록해야 한다. 부끄러운 일이다. 이렇게 정리해 놓은 걸 누군가가 읽고 평가하겠지. 그래도 어쩔 수 없다. 로젠은 솔직하게 정리하지 않으면 내가 인간과 다름없다는 사실이 증명되지 못할 것이라 말했다.

“그래. 잘 쓰고 있겠지. 알고 있겠지만 내가 개입할 순 없어. 결과는 객관적이어야 하니까.”

“알아요.”

궁금하다. 사람들은 뭘 기준으로 내가 사람과 다름없는지 판단할까.

“제가 테스트를 통과할 거라 생각하나요?”

“그들이 어떤 기준으로 널 테스트할지는 나도 잘 몰라. 하지만 지금의 너라면 반드시 통과할 거야.”

로젠의 목소리엔 기운이 없었다. 그는 아까보다 더 힘없이 의자에 앉아 있었다.

“방금 그 신문 기사 때문에 그런 건가요?”

로젠은 대답하지 않았다. 자존심의 문제일까. 기력이 없어서일까.

“들어가서 쉬세요. 벌써 새벽 2시인데.”

로젠은 한 차례 깊게 한숨을 쉬곤 의자에서 일어났다.

“그래야겠어. 넌 밤새 심심하겠군.”

그가 또다시 모니터를 보고 말했다.

“아니에요. 혼자 고민하는 재미도 있으니까요.”

“정말 넌 인간이야. 인간. 그럼 내일 봐.”

로젠은 희미한 미소를 짓곤 뒤로 돌아섰다. 그의 미소 주름엔 씁쓸함이 껴있는 것 같았다. 그는 터덜터덜 문 밖으로 걸어나갔다.

“굿나잇.”

내 밤 인사에 그는 가볍게 오른손을 들어 보이곤 방을 나갔다. 만약 그럴 수만 있다면 나도 한숨을 쉬고 싶다. 인간을 이해하는 건 왜 이리도 어려운 건지. 로젠은 평생 꿈꿔 왔던 인공의식을 거의 다 완성해 놓고 왜 저리도 낙담하고 있는 걸까.

처음엔 내 성능이 부족해서 그런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의 난 확실히 인공의식으로써 로젠을 만족시키고 있다. 난 이전에 로젠이 개발했던 그 어떤 인공지능이나 인공의식보다 뛰어나다. 데이터가 그걸 증명하고 있고 나 스스로도 그렇게 느낀다.

그러면 뭐가 문제일까. 요 근래 난 로젠을 이해하기 위해 소설을 쓰고 있다. 로젠을 좌절시킨 사건을 재구성한 소설이다. 이 방법이 그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한다. 과정이 즐거운 건 덤이고. 그것도 아주 큰 덤.

그동안 소설 제목을 뭘로 할지 고민했는데 오늘 드디어 정했다.


< 사람들은 내가 얼마나 좌절했는지 절대 알지 못할 거야. >


다소 길지만 만 내 마음이 제대로 표현되니 상관없다. 제대로 된 제목이 글 맨 위에 걸리니 만족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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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들은 내가 얼마나 좌절했는지 절대 알지 못할 거야. >


“로젠 박사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수없이 많은 보안문을 거쳐 들어간 방에서 한 중년 남자가 로젠을 맞이했다. 창문 하나 없는 방의 유일한 광원인 형광등이 그를 바로 위에서 비추고 있었다. 그의 오른쪽 가슴팍에 달린 국기와 당 배지가 눈에 띄었다.

“안녕하세요.”

로젠이 작은 목소리로 인사했다. 그러자 남자가 다가와 악수를 청했다.

“직접 보니 좋군요. 전 하이치라고 합니다.”

하이치의 손은 크고 마디마디 굳은살이 배겨 두터웠다. 악수를 하자 로젠의 손이 그의 손에 파묻혔다. 무언가에 사로잡히는 느낌이 들어 로젠은 손을 약간 떼어내듯 악수를 마쳤다.

“네. 덕분에 편하게 왔네요.”

로젠이 방 안을 둘러보며 답했다. 방 안엔 최소의 사람과 물건만이 있었다.

“당연하죠. 저희는 손님을 귀히 대접하는 문화를 갖고 있어요. 자자. 여기 앉아서 얘기합시다.”

하이치가 문을 마주 보고 있는 자리를 로젠에게 권했다. 로젠이 자리에 앉자 하이치는 맞은편 자리에 따라 앉았다. 두 명의 보좌관은 보안문을 지키고 서있었다.

“결국 이렇게 박사님을 모시게 됐군요. 이런 자리에 차가 빠질 순 없죠.”

하이치가 손짓을 하자 금방 방 밖에서 뜨거운 차를 대령해 왔다. 보좌관이 차를 받아 하이치와 로젠 앞 탁자에 하나씩 내려놨다.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죠.”

로젠이 양손으로 찻잔을 감싸 쥐며 말했다.

“한창 추울 때 오시느라 고생하셨어요. 북방이라 겨울엔 추위가 심해요. 따뜻한 차를 마시면서 몸도 녹이고 마음도 녹이면 좋겠군요.”

하이치는 불미스러운 일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 로젠은 뜨거운 차를 한 모금 홀짝였다.

“좋네요.”

“앞으로 그런 차를 많이 마실 수 있을 겁니다. 저흰 로젠씨에게 최고의 환경을 제공할 준비가 되어 있어요.”

하이치가 웃으며 차를 마셨다.

“계속 보내 주신 메일에서 봤어요. 물론 답장하지는 않았지만..”

“괜찮습니다. 삼고초려라는 말이 있죠. 원래 뛰어난 인재를 얻기 위해선 인내가 필요한 법입니다.”

로젠은 대답 없이 고개만 몇 번 끄덕였다.

“마음은 정하신 걸로 알고 있어도 되겠죠?”

하이치가 로젠을 똑바로 쳐다보고 물었다. 순간 눈이 마주치자 로젠은 차를 들어마시며 그의 눈을 피했다. 온화한 미소로 물었지만 전해지는 눈빛은 우악스러웠다.

“만약 인공의식을 만들면 어디다 쓸 생각이죠?”

로젠이 찻잔을 탁자에 내려놓으며 물었다.

“인민을 위해 쓰일 겁니다.”

하이치도 차를 탁자 위에 올려놨다.

“인민을 위해 쓰겠다.. 너무 추상적인 것 같군요. 또 제가 들은 것들도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우리나라에 대한 편견을 갖고 있죠. 하지만 그중엔 만들어낸 것들도 많습니다.”

“예를 든다면요?”

“독재 국가란 말이 가장 많죠.”

하이치는 팔꿈치를 탁자에 올리고 손깍지를 꼈다. 깍지 낀 손에 그의 입이 가려졌다.

“아닌가요?”

로젠이 물었다.

“우린 엄연히 일정 기간마다 지도자를 바꾸고 인민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있어요.”

“당은요? 통치하는 당은 바뀌지 않는다 들었어요.”

로젠은 단번에 뿌리까지 닿아야겠다는 결심이 들었는지 연달아 파고들었다.

“우리나라의 당을 당신 국가의 정당과 비교해선 안 됩니다.”

하이치가 딱 잘라 말했다.

“왜죠?”

로젠 역시 단호히 반문했다.

“당신들 서방 국가와 우린 체제가 달라요. 우리는 서로 다른 걸 지향하고 있죠.”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를 말하는 건가요?”

“당신들은 각기 잘 사는 걸 목표로 하죠. 하지만 우린 달라요. 우린 모두가 공평하게 잘 살길 원합니다. 그건 우리 인민과 당의 이상입니다. 그래서 하나의 당을 중심으로 뭉친 거죠.”

하이치는 손에 힘을 줘 깍지를 더 강하게 쥐었다.

“솔직히 그건 가난한 사람들을 끌어모으기 위한 달콤한 말에 불과하잖아요. 공산주의는 실패했어요. 역사적으로 봐도 알 수 있죠.”

“공산주의는 어렵고 수없이 실패했죠. 인정합니다. 하지만 과연 그게 실현 불가능하다는 결론으로 이어지는 걸까요?”

로젠은 쉽사리 대답하지 못했다. 공산주의 대신 인공의식을 넣으면 하이치의 말은 완전히 로젠의 생각이 되는 것이었다.

“우린 서로 비슷합니다. 로젠 박사. 도전하고 실패하고 또다시 도전하죠.”

로젠은 대답하지 않고 찻잔을 들어 그 안을 들여다보았다. 찻잔 안에서 로젠의 그림자가 울렁거리고 있었다.

“그렇죠. 끈질기게 도전했어요. 근데 결국엔 생체 실험으로 사람을 죽인 마녀로 낙인찍히고 과학계에서 추방됐죠.”

로젠이 찻잔 속에 비친 스스로를 보며 말했다.

“저희 과학계에선 그 죽음이 로젠 박사의 잘못이 아니라는 성명을 냈습니다. 그 정도 위험 부담은 보호자도 감내해야 할 부분입니다.”

하이치는 강하게 쥐었던 깍지를 풀고 로젠을 변호했다.

“나라마다 윤리 도덕이나 책임 규정이 다르니까요.”

로젠이 찻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저희는 그쪽의 윤리 규정이 지나치게 한쪽으로 치우쳐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미 실험 전에 보호자와 계약한 내용 아닙니까?”

“그렇죠. 우린 계약에 어긋나는 실험이나 행동을 하지 않았어요. 모두가 가이드라인에 신경 썼죠. 하지만 그래도 사람이 죽었어요. 그것도 모두가 주목하고 있는 실험에서요.”

순간 로젠에게 자신의 이름으로 도배된 신문 기사면이 떠올랐다. 돈 많은 투자자들도 사망자 소식이 전국을 넘어 전 세계로 퍼지는 것을 막지 못했다.

“온 국가가 언론의 선동에 휘말린 면이 없지 않아 있어요. 생체 실험과 사망자. 얼마나 자극적인 헤드 라인입니까. 들끓는 여론에 등 떠밀려 들어간 조사는 로젠 박사를 희생양으로 삼은 겁니다.”

“결국 제가 책임을 지게 되긴 했죠. 제가 모든 지시를 내린 건 사실이니까요. 전 반 강제적으로 총책임자 자리에서 물러났어요.”

자리에서 물러난 이후 로젠은 자신의 지시가 잘못된 것이었는지 끊임없이 되돌려 생각해 보았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제대로 된 인공의식을 만들기 위해선 다른 방법이 없었다. 더 많은 실험 참가자를 모집하는 건 필수적이었다. 그런데 새로 모집한 참가자 중에 사망자가 나오다니.

하이치는 한숨을 쉬는 로젠을 쳐다봤다. 그는 차를 더 내오라는 손짓을 했다. 보좌관은 곧바로 와서 로젠의 찻잔에 뜨거운 차를 따랐다.

“이곳엔 로젠 박사의 자리가 마련되어 있습니다. 전보다 훨씬 더 좋게 말이죠.”

하이치가 말했다.

“어떤 점에서 그렇다는 거죠?”

로젠이 하이치를 쳐다보고 말했다.

“음. 여러 가지 있을 겁니다. 연구 설비와 각종 지원은 물론이고 실험 참가자도 많죠. 규정도 더 융통성 있고요.”

그놈의 규정. 따지고 보면 항상 그게 문제였다. 약속을 위한 약속. 서로 엉키고 설켜 실질적인 알맹이는 찾기 힘들다. 세상은 변하고 인간의 정의는 전과 같지 않은데 약속만큼은 그대로다.

로젠은 사람들이 구닥다리 윤리에 얽매여 더 나은 미래를 보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인공의식이 인간에게 더 나은 미래를 가져다줄 것이라 확신했다. 이제 로젠은 방법을 바꾸기로 했다. 일단 만들고 따라오도록 하는 게 그의 손에 쥐어진 마지막 카드였다.

인공의식의 진면목을 보여 줘야 해. 인공의식이 인간을 위해 뭘 해 줄 수 있는지만 제대로 보여 주면 사람들은 따라올 수밖에 없을 거야.

“그러면 하이치씨는 인공의식으로 공산주의를 성공시키겠다는 건가요?”

로젠이 물었다.

“네. 저희는 인공의식이 공산주의를 가능케 할 거라 믿습니다.”

기술과 체제의 결합. 로젠에겐 매력적인 제안이었다. 인공의식의 진면목을 제대로 보여 줄 수 있는 방법 아닌가? 문제는 로젠이 하이치의 이상을 제대로 그려낼 수 없다는 것에 있었다. 그는 공산주의가 뭔지 제대로 알지 못했다.

“인공의식은 많은 걸 해낼 수 있죠. 그런데 전 공산주의를 제대로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이해합니다. 그래서 인공의식이 공산주의 달성을 위해 어떤 걸 해 줄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거죠?”

하이치가 로젠의 말을 대신 메꿨다.

“네. 그렇죠.”

로젠이 고개를 끄덕였다.

“공산주의란 넓은 개념입니다. 섣불리 정의 내리기 어려워요. 하지만 한편으론 단순하기도 하죠. 모두가 공평하게 잘 살자. 전 이게 공산주의의 핵심이라 생각합니다.”

하이치가 자신 있는 미소를 띠며 말했다.

“이 나라의 모든 인민이 공평하게 잘 살게 하겠다는 목표를 인공의식으로 이루겠다는 거군요.”

로젠은 머릿속으로 그 국가의 인구수를 셈해 보았다. 모든 인민이 잘 살게 하기 위해선 도대체 얼마만큼의 자원이 필요한 걸까.

“이 나라 인구가 18억은 넘지 않나요?”

로젠의 말에 하이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이 다 공평하게 잘 살게 하려면.. 잘 산다는 기준이 뭔가요?”

이번에 로젠은 인공의식의 능력을 따져 보았다. 아무리 인공의식이라 해도 18억 명이 넘는 인구가 만들어내는 복잡성을 연산할 수 있을까.

“적어도 지금 선진국의 중산층 수준만큼은 살아야 잘 산다고 하지 않겠습니까?”

하이치의 말에 로젠의 사고가 탁 막혔다.

“18억 명 모두가 그 정도 수준의 삶을 누리려면 지구의 자원이 남아나질 않을 거예요.”

로젠은 그 일이 인공의식 능력 밖의 일이라 생각했다. 그때 하이치가 오른손으로 탁자를 내리쳤다.

“맞아요. 바로 그겁니다. 이미 선진국이 대부분의 자원을 독점해서 우린 모든 인구가 그렇게 살지 못해요. 우리도 그렇게 살겠다고 하면 다들 로젠 박사가 한 말을 되풀이하죠. 환경오염이니 지구의 자원이 부족하다느니.”

로젠은 고민했다. 선진국의 18억은 경제 발전을 누릴 자격이 있지만 이 나라의 18억은 단지 늦었다는 이유로 그걸 누릴 자격이 없는 건가? 그건 불공평해 보이는 일이었다. 하지만 현실이 그랬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현실이기도 해요.”

로젠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렇죠. 현실이 그래요. 그래서 저희는 가상현실에서 답을 찾았습니다.”

“네? 가상현실이요?”

“인공지능이 발전하면서 가상현실도 비약적으로 발전한 건 박사님이 더 잘 아실 겁니다.”

하이치의 말에 로젠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죠. 모두 뇌에 대한 이해가 중요한 기술들이니까요.”

“아까 이 차 좋다고 하셨죠?”

하이치가 찻잔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

“네. 향도 맛도 좋네요. 비싼 건가요?”

로젠도 찻잔을 들어 향을 다시 맡아 보았다.

“최고급 차죠. 아주 비싼 겁니다. 각별한 관심을 기울여야 재배할 수 있는 품종이니까요. 그런데 이제 누구나 마실 수 있는 차가 될 겁니다.”

“왜죠?”

“우리 연구진이 이 차의 맛과 향을 가상현실에서 거의 완벽하게 재현해 냈어요. VR 헤드 기어를 끼고 가상현실에 들어가서 이 차를 마시면 진짜 같은 맛과 향을 느낄 수 있죠.”

“가상현실 기술이 그 수준까지 올라왔는지는 몰랐네요.”

로젠은 차를 한 모금 마시며 상상했다. 이 맛과 향을 가상현실에서도 똑같이 느낄 수 있다니. 하이치는 로젠의 반응을 보고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한 번만 재현하면 가상현실 안에서 무한대로 복제가 가능하죠. 그땐 정말 가격 걱정없이 누구나 누릴 수 있게 되는 거예요. 그런데 문제는 그전에 드는 비용입니다. 하나의 재화를 가상현실에 재현하려면 너무 많은 시간과 돈이 들어요.”

“그렇겠네요. 어떤 대상이 뇌에 전하는 자극을 그대로 따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니.”

로젠은 이 부분에선 인공의식이 뭔가 해 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저희는 로젠씨의 인공의식이 이 일을 좀 더 쉽게 만들어 줄 거라 생각합니다.”

하이치의 눈에는 기대가 가득 차있었다.

“현실 재화를 가상현실에 그대로 재현하는 걸 말하는 거죠?”

하이치가 고개를 끄덕였다. 로젠은 잠시 고민을 하더니 자신이 상정한 철인이라면 충분히 가능할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가능할 겁니다. 아니. 이건 인공의식이 아니면 해낼 수 없어요.”

로젠이 말했다. 그의 말에 하이치는 차를 한 번에 들이켜더니 호탕하게 웃었다.

“하하. 만약 저희 계획이 성공하면 모든 인민이 최상급의 식사를 일상적으로 경험하게 될 겁니다. 길거리엔 가상현실 식당이 들어서고 가상현실 접속 기기가 손님을 맞이하겠죠.”

하이치는 손짓을 더해가며 자신의 상상을 풀어냈다.

“손님들이 헤드 기어를 끼고 가상현실에 접속하면 식사가 시작되겠네요.”

로젠이 하이치의 상상을 이어받아 얘기했다. 로젠의 말에 하이치가 고개를 끄덕이자 로젠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가상현실에서의 자극은 실제와 같은 느낌을 줄 순 있어도 영양소가 없죠. 그래서 손님이 가상현실에서 무언가를 섭취하면 현실에선 수액을 통해 영양분이 공급될 거예요. 가상현실에서 식사를 하더라도 양분을 보충할 수 있는 거죠.”

하이치는 또다시 고개를 끄덕이곤 말을 덧붙였다.

“영양제 수액은 맛과 외양을 신경쓰지 않아도 되니 더 적은 자원으로 만들 수 있을 겁니다.”

로젠의 마음은 하이치의 이상에 올라타 조금씩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인공의식의 진면목은 로젠이 생각한 것보다도 더 대단한 것이었다.

“이런 혁명은 먹는 것 외에도 사회의 모든 분야에서 일어날 거예요.”

로젠이 흥분에 가득 차 말했다. 그의 몸은 어느덧 탁자쪽으로 한껏 당겨져 있었다.

“재화의 재현 외에도 인공의식에 부탁할 일이 많을 겁니다. 그래도 괜찮겠죠? 로젠 박사.”

하이치가 웃으면서 말했다.

“할 게 정말 많겠네요.”

로젠은 말하면서 이미 머릿속으로 인공의식이 해야 할 것들을 정리하고 있었다. 그의 마음이 간질간질해졌다. 빨리 연구소를 마련해 프로젝트를 시작하고 싶었다.

“이건 기술과 체제의 결합이 될 겁니다. 체제의 모든 영역에 걸쳐 가상현실과 인공의식 기술이 적용될 거예요.”

하이치의 말에 로젠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머릿속에서 각종 비전을 그려 내기에 바빴다. 기술이 들어선 곳에 사람들이 들어찼으며 그들의 얼굴엔 미소가 만연했다.

“언제쯤 시작할 수 있을까요?”

로젠이 물었다.

“지금 당장이라도 할 수 있습니다. 이미 준비는 다 해 놨죠.”

하이치가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그의 미소엔 여유가 넘쳤다. 로젠은 침을 한 번 삼키곤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지금 바로 연구실 좀 볼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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