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 PT
임대 관리인 분이랑
미팅 한번 하실래요?
부동산 중개인 분이 전화로 말씀하셨다. 임대 관리인 분을 직접 만나 출판전야에 대해 설명해 드려야 했다.
사실상 면접과도 같은 자리였다. 긴장됐지만 이야기를 해 볼 기회는 얻은 셈. 중개인 분을 통해 임대 관리인과의 미팅 일정을 잡았다. 한남동에 위치한 프라이빗 라운지에서 뵙기로 했다.
미팅 당일, 출판전야의 명운이 걸린 자리이기에 떨리는 마음을 안고 한남동으로 향했다. 약속 시간보다 일찍 도착해 근처 카페에서 공간 PT 연습을 하고 라운지 앞에서 중개인 분을 만났다.
동굴과도 같은 입구의 통로를 지나니 로비가 나왔다. 어둠 속에서 은은하게 빛나는 조명이 중후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고급스러운 로비였지만 그만큼 진중한 분위기가 느껴져 긴장됐다.
얼마 후 임대 관리인 분이 맞이하러 나오셨고 우리는 더 깊숙한 곳에 있는 미팅 룸에 들어갔다. 임대 관리인 분과 마주 앉았는데 인상이 좋으셨다. 덕분에 떨리던 마음이 좀 가라앉았다.
인사를 나눈 뒤 회사 명함을 드렸다. 평소 명함을 주고받을 일이 없던 터라 전날에 명함 예절도 찾아봤다. 월세 밀릴 걱정이 없다, 신용할 만한 사람이다라는 걸 조금이라도 어필하고 싶었다.
간단한 소개를 마치고 공간 PT를 시작했다. 이때도 출판전야 기획서가 큰 도움이 됐다. 기획서를 보여 드리며 출판전야가 어떤 곳인지 설명해 드렸다.
파티룸처럼 여러 명이 와서 술 마시고 노는 곳이 아니다. 예술가가 홀로 찾아와 진중히 작업하는 곳이다. 건물이 손상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이런 식으로 설득을 이어갔다. 중개인 분도 오랫동안 준비한 일이고 성실한 분이라 문제없을 거라고 말씀해 주셨다.
뒤이어 임대 관리인 분과 질답을 주고받았고 문제가 될 만한 부분은 없어 보였다. 업종 문제에 대해서는 임대 관리인 분이 임대인과 잘 얘기해 보겠다고 하셨다.
관건은 보증금과 월세였는데 임대인 분이 내가 제시한 계약 조건을 승낙하셨다는 희소식을 들었다. 보증금 1,000만 원에 월세 95만 원으로 계약이 가능했다.
업종, 보증금/월세 문제가 해소되니 계약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가 이어졌다. 이때는 중개인 분이 렌트프리, 관리비, 원상 복구 관련하여 꼼꼼하게 챙겨 주셨다.
초보 임차인 입장에서 익숙하지 않은 영역이고, 협상이란 걸 해 본 적도 없던 터라 혼자였으면 난처했을 게 분명하다. 어버버 하다가 나오지 않았을까.
한 시간 동안 이어진 논의는 긍정적으로 검토해 보겠다는 결론과 함께 마무리되었다. 확실한 결론은 나지 않았지만 한 보 앞으로 나아간 것은 분명했다.
귀한 경험이었다. IT 서비스 기획자가 이렇게 중요한 자리에서 공간 PT를 하다니. 한 달 전만 해도 생각하지 못할 일이었다. 새로운 세계에 발을 들였다는 사실이 새삼 와닿았다.
기다림의 시간은 생각보다 길어졌다. 듣기로 임대인 분이 원래는 건물을 통임대할 계획이었다고 했다. 만약 통임대 계약을 할 임차인이 나타나면 우선순위에서 밀리지 않을까 걱정이 됐다.
일주일 정도 지났을까. 중개인 분에게 전화가 왔다. 준우 님 임대인 분이 계약하시기로 했어요! 이 말을 듣고 뛸 듯이 기뻤다. 이상형은 어디까지나 이상이라 생각했는데 현실에서 연을 맺게 될 줄이야.
계약서를 쓰기로 한 날이 정해졌고 그날 임대인 분을 뵙기로 했다. 왠지 그날이 최종 면접이 될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