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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nWoo Lee Apr 20. 2024

정체

재미없는 사람

출판전야를 시작할 때 2024년에는 오픈을 하겠다고 결심했다. 2024년으로 정한 구체적인 이유는 없었다. 그저 데드라인이 필요해 정한 목표였다.


3년 정도면 충분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2년 차가 되기까지는..


오프라인 공간 관련 모임에서 알게 된 친구들과 종종 만났다. 모이면 주로 각자 준비하고 있는 공간 관련된 근황을 나눈다.


만날 때마다 업데이트가 있는 친구들과 달리 나는 그대로일 때가 많았다. 그럴 때마다 다들 멋지다고 생각하면서도 자극을 받았다. 나는 뭐하고 있는 건가.


두 손을 놓고 있는 건 아니었다. 책도 읽고 참고할 만한 장소도 방문하고 인스타그램에 게시글도 올렸다. 근데 그것만으로 장소가 만들어지는 건 아니니까.


출판전야를 만들기 위해선 하드웨어적인 준비가 필요했다. 숙소가 들어설 자리를 알아보고 땅을 사고 건물을 올릴 돈을 모으는 일. 결국엔 해야 될 일이라 생각했지만 엄두가 나지 않았다.


우선 서울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대로변에 나온 곳이 아닌, 골목 깊숙한 곳을 주로 누볐다. 그래야 조금이라도 가격이 낮을 테니까.


골목을 걷다가 마음에 드는 곳을 발견하면 가격을 알아봤다. 다 쓰러져 가는 집이 대부분 5억을 가뿐히 넘겼다. 알고 보니 언젠가 재개발되길 기다리며 방치된 집이었다.


기약되지도 않은 재개발이 현재를 침식하는 것 같았다. 땅 주인은 여기 살지 않으니 동네가 슬럼화되는 걸 오히려 바라지 않으려나. 재건축을 원하는 아파트가 낡아 보이기 위해 외벽을 새로 칠하지 않는 것처럼.


이러나저러나 서울에서 숙소를 열려면 땅을 사는 데에만 5억은 넘게 필요하겠구나 생각했다. 내가 모은 돈으론 턱 없이 모자랐다.


대출이나 임대도 고민해 봤지만 둘 모두 부담이었다. 매달 발생하는 대출 이자나 월세를 감당하지 못할 것 같았다. 이미 자취방 월세도 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서울 근교에 숙소를 세우는 게 현실적으로 보였다. 이때부터 네이버 부동산에서 보는 범위가 늘었다. 광주, 양평, 평창, 여주 등 더 넓은 지역까지 살폈다.


근데 인터넷으로 보는 걸로는 한계가 있었다. 밥 먹을 때마다 본 EBS 건축탐구 집의 건축주들처럼 차를 끌고 땅을 보러 다녀야 했다.


장롱 면허에다 차도 없는 내게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땅을 보러 다니려면 운전을 배워야 하는데 도무지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땅이 날 찾아올 리 없으니 진전이 있을 리도 없었다.


오프라인 공간 모임 친구들과 만나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 한숨이 나왔다. 스스로가 재미없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만날 때마다 전과 다를 바 없으니까.


출판전야를 준비할 때 내가 좋아하는 일만 할 거라는 생각은 안 했다. 그런데도 막상 하기 싫은 일을 마주하니 극복하려고 하지 않는 스스로가 답답했다.


다른 한편으로는 그만큼 내가 간절하지 않은 건가라는 생각도 들었다. 간절했다면 운전을 배워서 나갔겠지. 웬만한 사람들 다 하는 게 운전인데.


출판전야를 품기엔 아직 내 포부가 충분치 않다. 지금 당장 내가 안을 수 있을 정도로 출판전야의 핵심만 떼어서 보면 어떨까. 그렇게 나 스스로를 시험하며 점차 출판전야에 살을 붙여 가는 게 맞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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