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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nWoo Lee Apr 06. 2024

사명 2

출판전야를 하는 이유

소전서림이라는 도서관에서 서가를 둘러보던 중 한 책이 눈에 들어왔다. 그 책은 큐레이션 섹션에서 표지를 드러낸 채 놓여 있었다.


<어서오세요, 책 읽는 가게입니다>. 제목을 본 순간 손을 뻗지 않을 수가 없었다. 마치 나를 만나기 위해 그 자리에서 기다리고 있는 듯했다.


아쿠스 다카시가 후즈쿠에(fuzkue)라는 책 읽는 가게를 준비하고 운영하며 남긴 글. 북카페가 아닌 ‘책 읽는’ 가게의 이야기였다.


도서관에서 책을 읽다가 곧바로 주문했다. 밑줄을 긋고 싶은 문장이 많았다. 필요할 때 찾아오는 귀인 같은 책이 있다고 들었는데 이 책이 바로 그거구나 싶었다.


집에서 책을 받고 다시 읽으며 형광펜으로 밑줄을 그었는데 유독 힘이 실리는 문장이 있었다.


북카페가 의미하는 건 단지 책이 있는 카페이고 거기에 읽는 행위에 대한 태도는 포함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북은 리딩과 전혀 상관이 없다.

책이 있는 장소와 책을 읽을 수 있는 장소는 전혀 다른 곳이다.


아쿠스 다카시는 책을 좋아해서 독서만을 위한 장소를 만들었다. Book보다 Read에 초점을 맞춘, 오롯이 독서인만을 위한 장소.


나 또한 글쓰기를 좋아해 작가를 위한 장소를 만들려고 하니 비슷하다.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아쿠스 다카시에게는 사명이 있다는 것이었다.


하나의 문화가 뿌리를 내리고 줄기를 뻗고 잎을 무성히 틔우려면 그리고 그 무성한 잎을 생기있게 유지하려면 그 일에 전념할 수 있는 장소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아쿠스 다카시는 영화관을 예로 들며 얘기했다. 영화관이 영화 문화의 근거지가 된 것처럼 자신의 책 읽는 가게도 읽기 문화에 기반이 되었으면 한다고.


책의 앞부분에서 일본 사회가 책을 많이 읽지 않는다는 설명이 나온다. 아쿠스 다카시는 읽는 문화를 지키기 위해 책 읽는 가게를 시작한 게 아닐까.


아쿠스 다카시는 '하고 싶다'를 넘어 '해야 한다'의 단계까지 넘어간 것처럼 보였다.


누군가는 그의 얘기에 공감하지 않을 수도 있다. 영화관도 저무는 온라인의 시대, 책 읽는 가게 후즈쿠에가 생기더라도 잘 되지 않을 거라고.


남들이 뭐라 하든 상관 없다. 아쿠스 다카시는 사명으로 주위의 우려를 이겨냈을 것이다. 자신만 이 일이 세상에 필요하다고 굳건히 믿으면 된다. 종말을 앞두고 사과나무를 심는 것처럼.


나와 출판전야에게도 사명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야만 주위의 우려와 마음에서 피어나는 회의를 이겨낼 수 있을 테니까.


출판전야가 나에게만 필요한 게 아니라 이 세상에도 필요하다라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 출판전야가 쓰는 문화의 밑거름이 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어쩌면 글쓰기는 독서보다 상황이 안 좋을지 모른다. 자기소개서 취미란에 글쓰기를 쓰면 신기해 하는 사람들이 있다. 많은 사람이 글쓰기를 낯설어 한다.


주입식 교육으로 이런 현상이 나타나지 않나 생각한다. 자신의 생각을 쓰기 보다는 남의 생각을 받아 적으라고 하는 사회다.


정답이 있는 글쓰기, 누군가는 붙고 누군가는 떨어지는 글쓰기. 재밌게 느껴질 리가 없다. 입시를 거친 대부분의 학생에게 글쓰기는 그렇게 기억된다.


우리와 가장 가까워야 할 창작 수단인 글쓰기조차 멀게 느껴지는 상황이라니. 누군가 유토피아란 만인의 일상적 창조가 일어나는 곳이라 했는데 우리에겐 너무 먼 나라 이야기다.


쓰는 문화가 우리 사회에서 자리를 잡을 수 있도록 글쓰기에 전념할 수 있는 장소가 필요하다. 그러려면 나는 출판전야를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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